외갓집 장독대에 피었던 봉숭아
-아! 봉숭아 물 손톱에 들이고 싶다-
봉숭아 꽃잎이 지고 있다. 봉숭아 꽃잎 따서 툇마루에 앉아
손톱에 봉숭아 꽃 물들이어 주시던 엄마가 생각나서 대둔산 자락
아래에 위치한 전에 살던 외갓집을 향해 떠났다.
호남선 기차를 타고 연산역에서 내려 다시 양촌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오랜 가뭄으로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들녘이 보인다.
외가댁이 가까워지자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계시던
엄마가 봉숭아를 찧어서 툇마루로 나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정님아, 어서 오렴. 엄마가 봉숭아 물들여 주려고 기다리고 있단다.“
단발머리 찰랑대며 엄마 곁으로 뛰쳐나가는 소녀의 모습도 보인다.
그때의 단발머리 소녀가 지금 할머니가 되어 엄마와의
추억을 찾아 양촌을 찾고 있다.
엄마는 책도 꽤 많이 읽으시고 유식했던 것 같다.
봉숭아 물을 들여 주시며 봉숭아에 대한 전설도 이야기해주시곤 했다.
“옛날에 그리스의 한 여신이 살았단다.
어느 날 도둑으로 몰려 의심을 받게 되자 결백을 주장하며
떠돌이로 살다가 길에서 쓰러져 죽었단다. 죽은 그 자리에 꽃이
한 송이 피었고 그 꽃이 봉숭아란다.”
그래서일까? 봉숭아는 씨앗이 익었을 때 건드리면 툭 튀어 터진다.
나를 건드리지 마시오(Don’t touch me.)라는 뜻이란다. ‘
나는 도둑이 아니에요’ 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몸짓 이였는지도 모르지’라고 엄마는 말씀했었다.
엄마에 대한 추억을 더듬다 보니 어느덧 양촌리에 도착했다.
외가댁 버스 정류장에 내려 골목골목을 더듬어 외갓집
문 앞에 서니 다행히도 문이 열려있다.
할머니 한 분이 마당에서 닭에게 모이를 주고 계시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롭다.
"안녕하세요? 이 집 주인이시군요. 제가 피난 시절 이곳 외갓집에서 살았거든요.
그 집이 궁금해서 들렸습니다. 들어가 봐도 될까요?”
시간을 내서 일부러 온 것이지만 난 가볍게 길 가다 들린 것처럼 말했다.
할머니는 달려와서 내 손을 덥석 잡는다. "아니 이게 누군겨? 정님이 아닌겨?
나 화순이야. 우리 피난 시절 이곳에서 탄피 주워 놀다가
어른들에게 혼쭐 나며 놀던 화순이야."
맞다. 화순이다. 신문지 구겨 놓은 듯 주름투성이 얼굴에
그 옛날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황소처럼 어질던 그 눈빛은 여전하다.
우리는 한참을 서로가 끌어안았다.
뒤뜰에 가보니 장독대도 여전하고 봉숭아도 옛날 그때처럼 풍성하게 피었다.
친구는 감자 한 양푼 쪄서 내온다. “어여 먹어. 배고프지?”
감자 하나 껍질을 벗겨 내 손에 쥐어 준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소달구지 타고 피난 왔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반백 년이 훨씬 지나
두 할망구가 툇마루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구석구석 집을 둘러본다. 장독간도 여전하고
봉숭아 채송화 민들레도 여전하다. 엄마와 함께 앉아
초승달을 바라보며 봉숭아 물을 들여 주던 그 자리에 앉아 본다.
흥얼흥얼 봉숭아 노래를 불러보며 단발머리 두 늙은
소녀들은 봉숭아 찧어 다섯 손톱 위에 올려놓고 그 시절을 추억하며
서로의 손가락을 실로 꽁꽁 매어 준다.
엄마 눈썹 같은 초승달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는다.
엄마 생각나면
장독대 찾아
봉숭아 꽃잎 찧어
손톱마다 채우고
해 저문 툇마루에 앉아
몰래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