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특히 감옥은 더 견디기 어려운 곳입니다. 한낮의 열기가 건물에 스며들어 3층은 찜질방에 들어간 것처럼 따끈따끈하다고 합니다.
덥습니다. 2003년에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면서 매년 여름에는 여름휴가 대신에 교도소에 갇혀있는 이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올해는 찾아갈 곳은 많은 데 나이가 들어서 예전처럼 다니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오랜 인연이 있는 형제들만이라도 띄엄띄엄 다니면서 만나고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얼마나 반가워하고 고마워하는지. 약간의 구매물과 보관금을 넣어 주고 10분에서 13분의 짧은 접견 시간을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으면 다시 내년을 기약하면서 작별 인사를 합니다.
교도소 방문은 벌써 삼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낯설고 어색합니다. 정 안드레아는 1995년쯤인가 서울구치소 천주교 교리 담당을 맡았을 때 만난 사형수입니다. 사형수는 최고의 형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최고수’라고 불렀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은 모두 재소자 옷을 입습니다. 옷 색깔만 봐도 기결수인지 미결수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 기결수는 명찰 색깔로 구분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방 번호와 수인번호로 세분하게 됩니다. 빨간색 명찰에 갇혀있는 방의 층과 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번호가 있습니다. 사형수였던 안드레아는 2008년쯤에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감형을 받았습니다. 사형수에서 무기로 감형되었습니다. 33년 정도 수감되어 있었지만, 사형수 기간은 형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기로 감형된 후부터 형기를 계산하기에 십팔 년이 좀 지났습니다. 안드레아는 무기로 감형된 후에는 공부교도소로 옮겨져서 수형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동안 방송통신대학 과정을 공부해서 학위를 두 개나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화성직업훈련교도소로 직업훈련을 받으러 왔습니다. 견우와 직녀처럼 일 년에 한 번은 만나는 힘으로 지낼 수 있어서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군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제노비오 형제는 31년이나 갇혀있습니다. 이제는 가석방을 기대하지만 꿈 같은 일입니다. 이제는 꿈꿔도 감옥이라고 합니다.
서울구치소에는 정 프란치스코가 삼십몇 년째나 갇혀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를 못 한 경우를 빼고는 매년 만났습니다. 이제는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날 즈음에 마지막 말을 건넵니다. 어느 때인가 면회를 오지 않으면 그때는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보이는 일이지만 버림받은 사람들 곁에 있어 주는 것. 우공이산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깁니다.
제물포구청에서 결국 화수동 재개발 관리처분 인가를 고시했습니다. 동네에는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이제는 발 등에 떨어진 불처럼 민들레국수집을 옮길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