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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와 새해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환상적인 일출을 연이어 보았다. ‘삼대째 내리 적선한 일’도 없는데 황홀한 복을 받았으니 일단 눈과 사진으로 잘 모실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2월 31일에 본 노을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최근 몇 년간 본 노을 중 최고였다. 하동군 금남면 신노량항의 아주 작은 섬인 학섬의 갯바위, 일명 코뿔소바위 너머로 지는 노을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크기나 모양새 모두 언덕에서 내려오는 코뿔소를 너무나 빼닮은 코뿔소바위의 앞뒤 다리 사이에 돌개구멍이 나있는데, 저무는 붉은 태양이 그 구멍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 ▲ 지난해 마지막 날 하동 금남면 신노량항 코뿔소바위의 노을을 보면서 김인호 시인이 머리에 태양을 이고 코뿔소에게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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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부터 며칠째 그 노을을 찍으러 갔다가 ‘나의 야생화 사진 사부’인 김인호 시인을 만났다. 지리산행복학교 야생화사진반의 선생인 김인호 시인은 겁도 없이(?) 붉게 타오르는 노을 속의 코뿔소를 향하여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난해의 마지막 태양을 머리에 인 채 코뿔소바위와 더불어 모델이 되어준 쾌남아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김 시인과 하동읍내의 장터에서 국밥을 먹고는 새해 일출을 같이 보기로 의기투합했다. 단 하루 사이에 지난해 노을과 새해 아침 일출을 함께하는 남다른 인연임이 분명했다.
사실 새해 아침이 그리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듯했다. 예저기 다 둘러보아도 신년 국운은 여전히 부동산 문제와 더불어 경기침체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워 보이고, 정국은 여전히 ‘전투 모드’에 가까운 듯하다. 잘은 모르지만 “청마의 기상으로 한반도가 바로 서고, 역천의 세상이 바로 잡히는 시절이니 정월부터 유월을 지나 구월까지의 일시적 혼돈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당연지사”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리하여 새해 일출 장소를 어디로 할까 여러 번 고민하다 김인호 시인과 하동군 금남면의 중평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리산 천왕봉에 못 가는 대신에 남부능선의 형제봉이나 구제봉, 남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금오산에 가려다 포기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돼 올해는 아예 바닷가 가까이 다가가기로 한 것이다. 지리산행복학교 선생과 학생 등 ‘지행교 교주들’ 몇 명에게 한밤중에 긴급 연통을 넣어 새벽 6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캄캄한 새벽에 무슨 비밀회합이라도 하듯이 중평항에서 만났다. 김인호·김해화 시인, 금남면 바닷가마을에 사는 ‘꽃지기’ 이세정·정중석 부부, 근처에서 힐링클럽 일자르디노를 운영하는 ‘여울비’ 이상주, ‘이슬비’ 장숙남 선생, ‘낚시 고수’ 이철수씨, 그리고 ‘고RPM 여사’로 통하는 신희지 지행교 교무처장 등이었다.
하지만 일출예정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남동쪽 먼 바다에는 낮은 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멀리 삼천포 연육교의 불빛이 보이는 듯하더니 구름은 더 두꺼워지면서 마침내 지워지고 말았다. 모두들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보며 긴장하던 이들이 일출 예정시간이 15분 정도 지나자 하나둘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에휴, 올해 일출 사진은 시원찮겠어. 아이고 추워. 일단 뜨거운 차나 한 잔 마시자고.”
내심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하늘의 뜻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인생 뭐 있어? 모두들 건강하시고, 지난해처럼 새해에도 한 판 신나게 놀아보자고.”
빙 둘러서서 차를 마시며 새해 덕담과 더불어 손을 잡고 포옹을 했다.
일출 받들고 일몰 코뿔소 들이받는 포즈 취해
바로 그때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뜨, 뜬다, 해가 뜬다구!”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순간 모두들 후다닥 뛰어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조금 높아진 검은 구름 위로 새해 첫 태양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마구 셔터를 눌러대는데 때마침 중평항에서 고기잡이배 한 척이 태양 아래를 미끄러지듯이 지나갔다. 순식간이었지만 금상첨화였다. 이따금 갈매기들도 날아올랐지만 제대로 담지는 못했다. 모두들 흥분한 상태로 몇 척의 작은 어선들이 지나가는 풍경 사진을 찍다가 태양이 슬쩍 더 높이 머리를 들자 약속이나 한 듯이 삼각대를 접고 모여들었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 김에 나는 ‘고RPM 여사’에게 앞으로 두 손을 내밀어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다. 손바닥 위로 새해 첫 태양을 받드는 모델이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럴 듯하게 나왔다.
- ▲ 하동군 금남면 중평항에서 새해 첫 일출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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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태양을 보며 새삼 ‘인간으로서의 명예’를 생각했다. 인디언 모호크족의 추장인 제이크 습지는 ‘새해맞이 감사의 인사말’을 이렇게 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입니다.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해주신 위대한 신령의 산물에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멋진 인사말이 아닌가. 새 아침 이 마음 여여(如如)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일출을 함께 본 지행교 교주들과 근처 꽃지기님의 집으로 몰려갔다. 그 와중에 언제 준비했는지 뜨끈뜨끈한 떡국을 내오는 것이었다. 더구나 반주로 산삼주까지 얻어마셨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보다 더 행복한 새해 아침은 이전뿐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채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다시 남해에서 일출을 보았다. 첫날을 바닷가에서 인연을 맺어서인지 이번에는 무인도에서 본 것이다. 밤 10시가 넘어 금남면 노량에 사는 ‘낚시 고수’ 이철수씨에게 전화가 왔다.
“행님, 내일 새벽에 학꽁치 잡으러 갈까요?”
“뭐라꼬, 학꽁치? 그것 확 땡기네. 어디로?”
“일단 새벽 6시까지 우리 집으로 와보이소.”
“오케이, 몇 시간 뒤에 봐.”
단 10초 만에 통화는 끝났다. 낚시가 그렇듯이 감이 오고 입질이 왔을 때 바로 잡아채야 하는 법, 그것이 인생 아닌가. 인생이 뭐 별것인가. 우물쭈물하다가 평생 못 만나고, 못 가고, 못 먹고, 못 주고는 문득 ‘대문 밖이 저승’인 곳으로 훨훨 날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달뜬 마음에 채 세 시간도 못 자고 일어나 중무장을 하고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해 바닷가로 달려갔다. 뜻밖에 어둠 속에 이철수씨 집 앞에서 꽃지기 이세정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교에서 출발한 어르신 다섯 명과 함께 여명의 남해 상주해수욕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낚싯배를 탔다.
- ▲ 겨울의 은빛 손님인 학꽁치 낚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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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으로 무인도 일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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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파도를 가르며 배가 나아가자 동남쪽 하늘도 여명의 커튼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무인도인 목도의 갯바위에 닿자마자 태양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생애 처음으로 무인도에서 일출을 본 것이다. 학꽁치 낚시는 뒷전인 셈이었다. 새해 일출을 보고 1주일 만에 다시 보다니, 그리 덕을 쌓은 일도 없는데 참 후안무치하게도 복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이철수씨는 순식간에 학꽁치 13마리를 낚아 올렸다. 겨울바다의 ‘은빛 손님’ 학꽁치가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거리며 날렵한 몸매를 흔들어댔다. 너무 아름다워 차마 먹기에 미안한 학꽁치, 그러나 겨울철 소주 안주로는 가히 ‘별 다섯 개’를 넘어설 정도다. 흰 살에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한 맛이라니, 그것도 무인도에서 일출을 보며 식전의 석 잔 소주에 곁들이는 횟감으로는 최고가 아닌가. 마구 폭음을 하고 싶었지만 장소가 무인도 갯바위이다 보니 간신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해가 떠오르자 추운 날씨마저 풀려 마치 봄날의 동화 같은 무인도 바닷가였다. 거북손을 뜯어 삶아먹고 라면을 끓여먹으며 오후 3시까지 잘 놀다 돌아왔다. 아니, 잘 돌아온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를 태우러 오기로 한 낚싯배가 깜빡하고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무인도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될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 즐거운 일이었으니, 학꽁치의 몸짓으로 다가오는 한파마저 거뜬히 넘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낚싯배를 타고 남해 무인도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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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부터 바다에 깊이 마음과 몸을 주어서인지 공교롭게도 환한 달빛 또한 바닷가에서 보게 되었다. 그것도 이번에는 서해안 태안반도에 자리한 오지의 자드락 펜션 앞바다에서 섣달 열이튿 날의 달빛이 교교하게 내리는 밤바다를 본 것이다.
지리산에서 만난 동갑나기 남자친구들, 지행교 네 명이 오래 전부터 함께 겨울여행을 하기로 다짐했었다. 지난해 겨울에는 강원도 정선의 오지마을 덕산기계곡에 다녀왔고, 여름에는 서해 대천앞바다 작은 섬 녹도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지난 1월 11일 출발해 하동~순천~해남~진도~목포~고창~변산반도~군산~태안반도 등 서해를 일주하는 2박3일의 여정이었다.
쉰 고개를 막 넘긴, 아직 크게 아프지 않고 살아남은 수컷들이 모처럼 의기투합해 나선 길이었다. ‘제발 아프지 말자. 너무 욕심내지 말자. 세상사 힘들어도 가끔은 즐기며 살자. 남의 눈치나 보지 말고 제멋대로, 제맛대로 살아보자’는 모토 아닌 모토를 걸고 만사 제쳐놓고 떠났다. 훠~얼~훨~ 철새처럼 행복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섬진강에도 달빛이 교교하게 흘러넘치고 있었다. 늑대처럼 최면에 걸리기에 참 좋은 밤이 아닌가. 달빛을 보며 돌이켜보니 여행과 더불어 지나온 삶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3년 전에는 나도 처음으로 ‘마이 아파’ 내 몸에도 달빛이 고이다 못해 흘러 넘쳤다. 10년간의 전국 도보순례 등 반노숙자생활로 얻은 훈장인 결핵성 늑막염을 앓고 난 뒤에야 늑막(肋膜)이라는 글자 속에 달월(月)자가 들어 있는 이유를 처음 알았다. 2년간 치료하고 지난 1년 동안 야생화를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완쾌됐다. 그러고 보니 천지간의 약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지난 시절을 생각해 보면 20대에는 나이 스물아홉을 넘기지 않겠노라는 치기의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30대를 맞으며 서른셋을 넘기지 않겠다고 마음만 먹다가 어느새 절대로 용납하지 못할 마흔아홉을 넘기고는 마침내 지천명의 때를 막 넘어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앞으로도 내 목숨 내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만 어쩌면 이미 덤으로 사는 인생일지도 모르니, 다만 그때가 오면 달게 받아들여야겠다는 마음뿐이다. 물론 스물아홉 이전의 정신, 그 순수함을 어찌 다 지키겠는가마는 그래도 적어도 죽기 전까지는 서른세 살 정도의 열망과 열정만이라도 절대로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 ▲ 1 푸른 잎을 간직한 채 빨간 열매를 맺은 청미래덩굴. 2 눈 위를 뚫고 나온 광대나물이 경이스럽다. 3 설산중국도 눈 속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4 겨울의 꽃,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5 한겨울에도 지지 않은 둥근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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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바닷가 벼랑 끝에 둥근바위솔
지난해 12월, 바닷가 벼랑 끝에서 만난 둥근바위솔도 인상적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오는 한겨울 바닷가 벼랑 끝에 마지막 둥근바위솔이 피어 있었다. 남도의 해안가를 돌아다니다 만난 이 야생화가 경이롭다 못해 눈물겨웠다. 이미 11월 말에 졌어야 할 둥근바위솔이 하루 종일 먼 바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사막의 삶을 살고 있었다.
척박한 벼랑 끝에서 거름기도 없는, 바위틈의 흙도 아닌 돌 부스러기에 겨우 뿌리를 내린 채 어쩌다 내리던 빗물과 밤이슬만 마시며 염천 사막의 낙타처럼 푸우,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찔하고 열악한 곳에서 혹한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다.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외롭고 높고 쓸쓸한 정신의 깃발’은 바로 저런 것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둥근바위솔의 눈으로 휘휘 둘러보면 노란 산국은 폭설 속에도 마지막 얼굴을 내밀고, 청미래덩굴의 빨간 열매 또한 얼었다 녹으며 ‘붉은 투혼’을 보여 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도에는 한겨울에도 꽃이 피고 있다. 은목서나 금목서와 닮은 구골나무가 흰 꽃을 피우고, 성질 급한 동백꽃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양지바른 땅바닥에는 광대나물과 큰개불알꽃과 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머지않아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이 피어날 것이다. 그야말로 봄은 이미 아주 가까이 와 있다. 그리하여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한 편의 시
동백꽃을 줍다
이원규
이미 져버린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닌 줄 알았다
새야,
시든 꽃잎을 물고 우는 동박새야
네게도 몸서리쳐지는 추억이 있느냐
보길도 부용마을에 와서
한겨울에 지는 동백꽃을 줍다가
나를 버린 얼굴
내가 버린 얼굴들을 보았다
숙아 철아 자야 국아 희야
철 지난 노래를 부르다 보면
하나 둘
꽃 속에 호얏불이 켜지는데
대체 누가 울어
꽃은 지고 또 지는 것이냐
이 세상의 누군가를 만날 때
꽃은 피어 새들을 부르고
이 세상의 누군가에게 잊혀질 때
낙화의 겨울밤은 길고도 추웠다
잠시 지리산을 버리고
보길도의 동백꽃을 주우며,
예송리 바닷가의 젖은 갯돌로 구르며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지 않는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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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 혁아 화야 산아
시든 꽃잎을 물고 우는 동박새야
한번 헤어지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인 줄 알았다
첫댓글 '지지 않는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라는 것을'
참 좋네요
우리들의 이름 한자가 들어가 있는...^^
@교무처장/高RPM(신희지) 그러고 보니 우리 둘다 희야네요
@요안나 저 또한 희야 인네요.ㅎㅎ
몸과 마음이 자연속에 있으니
씌여지는 시가 향그럽습니다.
그렇죠.
지지 않는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죠.
이 시인님이 사는 모습 부럽네요.
주위 사람들도 잘 만난 것 같고.
요안나님, 고마워요. 새해 건강 화평하시기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