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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도는 주의 은혜를 구하며 형제를 사랑해야합니다.(삼상2:22-26)
2024, 2/18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2:22-26절 말씀으로“성도는 주의 은혜를 구하며 형제를 사랑해야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지난주에 연세대 생명공학과 연구팀이 소의 세포를 결합한 새로운 쌀을 개발했다고‘매터’라는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는데, 쌀에 동물세포를 혼합한“하이브리드 쌀은 모양이 일반 쌀과 같지만 견과류의 맛과 소고기 같은 단백질을 공급해준다니 세상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정말 무섭습니다.
연구팀은 소고기뿐만 아니라 다른 육류나 생선의 맛과 영양분도 공급해주는 쌀도 개발한다는데 이걸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연관해서 생각할 때 좋아해야할지 반대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님오실 날이 더 가까워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2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성도가 금이나 은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합니다.(26절)
둘째로, 남을 실족케 하는 것은 화를 피할 수 없는 큰 죄입니다.(24-25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나라백성으로,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면 아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두 가지가 아닐까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은 돈과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장악하며 우월적 삶을 살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우리 신앙인은 금이나 은으로 대표되는 이 땅의 부귀영화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으로 살아가려는 것이 저들과 다른 부분입니다. 또한 형제와 이웃이 나로 인해 실족치 않도록 애쓰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습니다. 이런 신앙인은 바르고 정직하게,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서 세상 사람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땅히 주의 은혜를 구하며, 형제를 사랑함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셔야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왜 우리가 주의 은혜를 구하며, 형제가 실족치 않도록 살아야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도가 금이나 은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합니다.(26절)
본문 2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아멘
본문은 어린사무엘이 자라면서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더욱 은총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눅2:52절의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만 보아도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을 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만 잘하고 사람들과 관계는 별 상관없다는 외골수적인 신앙도 안 되고, 반대로 하나님은 제켜두고 사람들 비위만 맞추려는 절름발이 신앙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 받고, 사랑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진짜신앙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에게는 물론이고 사람에게도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불쌍하고 불행한 신앙인의 본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재물을 중간에 가로챘고,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는데, 이들이 이런 망나니짓을 한 것은 이들이‘추구하는 것’이 진짜 신앙인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도 이들은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어떤 짓도 했던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추구했던 것은 기름지고 많은 고기들입니다. 이들은 물질적 욕심이 지나치다보니 결국 거룩한 제사장직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의 저주로 죽임을 당했는데, 이들은 여호와 신앙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에만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이 왜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였을까요? 그렇습니다. 만약 이들이 패악을 저지를 때마다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손이 굳어버리고, 입이 비뚤어지며, 성기능이 마비되었다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히 인지하면서 두려워서 절대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담시대에도 여전히 잠잠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데, 하나는 그럼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순종하는 사람과, 엘리의 두 아들처럼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다 떠나는 사람인데,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더욱 믿음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엘리의 두 아들의 심한 패악질에도 반응치 않은 것은 저들이 스스로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거나, 아니면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사 자유의지를 침범치 않으시려는 이유이거나, 아니면 저들이 자기 죄를 변명할 수 없도록 확증시키려고 방치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하나님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거나, 있어도 천국과 지옥은 허상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마음껏 죄와 더불어 먹고 마셨던 것인데, 결국 그들의 죄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어땠을까요?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았습니다.
사실 사무엘이 어린 나이에 제사장의 의복을 입고 성막에서 시중들 때 사람들은 어린 아이가 성막에서 일한다고 칭찬할 수도 있겠지만, 민40:3절 말씀을 들어 나이 30이 되어야 성막에서 일할 수 있는데 어린애가 일한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엄숙하고 진중해야 하는 성전에서 어린 아이가 천방지축 하면 도움은커녕 오히려 걸리적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무엘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은 것은 그가 워낙 성실하고 예의바르게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겼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무엘은 비록 어리지만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평생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바르고 정직하게,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이렇게 말하자(삼상12:4) 백성들이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이렇게 대답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삼상12:5)
여러분!!! 사무엘은 신앙인에 걸맞게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바르고 정직하게 진실하고 성실하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진실한 신앙인, 진정한 예수쟁이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을 떠나면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기로 작정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길어야 60년, 그마저도 늙고 병들면 누리지 못하는 이 땅의 즐거움과 쾌락을 위하여 이 천국을 포기한다면? 세상에 이런 천치바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엘리의 두 아들처럼 신앙인이면서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막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프고 슬픈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어짜피 지옥가는 인생이라 어떻게 살든 상관없지만 우리는 달라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까지 포기하며 세상의 부귀영화와 지식과 권력만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내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 뒤통수치고, 미워하고, 원수 되는 것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얻은 게 무엇입니까? 언뜻 보면 얻은 게 많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대가로 하나님을 잃고, 사람 잃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이 땅의 성공이나 재물보다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 받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신앙이고 사람과 올바른 관계 맺기입니다.
이런 분은 늘 겸손합니다. 그리고 바르고 정직하게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도 이런 사람을 높이시고, 더 귀한 일과 직분을 맡기십니다. 그래서 잠22:2절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을 받기만 하면 명예와 권력, 은이나 금은 뒤따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 받고 인정받는 것에 두고 살아가십시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잠3:4절의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는 말씀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음으로 복된 삶이 되는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둘째로, 남을 실족케 하는 것은 화를 피할 수 없는 큰 죄입니다.(24-25절)
본문 24-2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아멘.
본문말씀은 엘리 대제사장이 두 아들이 흉측한 죄를 저지른다는 소식을 듣고 타이르는 내용인데, 특히 24절 후반부에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이 말씀을 볼 때 엘리의 두 아들이 저지른 범죄가 백성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해 제사를 집례하고, 하나님말씀을 가르치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지도자로 어른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더욱이 당시는 인쇄술이 없다보니 율법 책이 귀한 시대로 제사장들이 하나님말씀을 들려주었고, 또 말씀을 해석해주다보니 이들의 말과 행동은 백성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사람들이 행동하는데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서 백성들에게 선한 본을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악한 짓만 일삼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했고, 회막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동침했습니다. 다른 제사장도 아니고 대제사장의 아들들이 저러고 있으니 다른 백성들은 어떻겠습니까?‘아~ 저래도 죄가 안 되나보다. 저래도 되나보다. 그럼 나도 해야지’이러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백성들의 신앙이 점점 변질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이 멸망의 길로 갔던 것입니다. 사실 엘리시대에 이스라엘이 종교적, 도덕적으로 심히 타락하고 부패했는데, 이렇게 된 것은 대제사장이었던 엘리 아들들의 책임이 큽니다. 엘리 아들들의 죄악으로 백성들이 실족했고, 멸망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된 자로서 선한 본을 보이지 못하고, 그릇된 길로 가 악한 본을 보임으로 다른 교우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새 신자들을 실족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들은‘자기 믿음은 자기가 지키는 것’이라며 저들의 실족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변명합니다. 물론 현실이야 어떻든 내 신앙은 내가 지키는 것이 맞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나 새 신자가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도 지속적으로 악에 노출되면 변질되고 타락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죄악의 근원은 송두리째 돌려낼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실족케 하면 어찌될까요? 25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작정)하셨음이더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백성들을 실족하게 만든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가 죽음으로 갚아야할 중대 범죄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걸 통해서 깨닫는 것은 형제나 이웃을 실족케 하면 심각한 죄가 되며,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생각 없이 말을 쉽게함으로 상대방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고, 심하면 교회 다니는 걸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건 정말 조심해야합니다.
주님도 마18:7절에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살다보면 남을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그 실족에 대해서는 책임을 피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고후11:29절에서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이렇게 말씀했고, 고전8:13절에도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영혼을 실족케 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물론 상대방이 오해해서 혼자 삐지고 실족하는 것이야 어찌 하겠습니까만은 그러나 내 잘못으로 형제가 상처받고 아파하고 실족하는 일은 없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말하다보면 기분 나쁘고 감정 상해서 싸울 수도 있고, 교회를 떠나 실족할 수도 있지 않느냐며 그래도 나는 하고 싶은 말 하겠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게 실족한 영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눅17:2절에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의 동해보복 법처럼 다치게 하면 다치게 함으로, 영혼이 실족하면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보통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걸 알기 때문에 사도바울도 형제가 실족한다면 평생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고전8:9절에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사도바울처럼 만일 형제가 실족한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는지요? 지금까지 형제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신앙인은 아니었는지요?
이제는 형제와 이웃이 실족치 않도록 늘 보살피고, 내가 좀 손해 보는 일이 있어도 양보하고 형제를 섬기는 삶이되셔야합니다. 이것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해주며, 복을 받게 해주는 지름길임을 기억하시고 그런 삶이 되도록 힘쓰고 애쓰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