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우리의 민속주는 그 지방의 특색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저마다 독특한 맛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혼이 담긴 민속주를 논할 때 충남 논산 가야곡에서 생산되는 ‘왕주’를 빼 놓을 수 없다. ‘궁중술’로 널리 알려진 왕주는 가야곡 청정지역의 맑은 물을 사용하여 100일 동안 정성스럽게 익힌 술이다. 짜릿하고 새콤달콤하면서도 은은한 약초 향이 일품이다.
‘왕주’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5년 논산시의회 의원으로 재직할 때다. 당시 가야곡 왕주는 민속주 등록을 계기로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는 단계였다. 왕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최고 품질의 술을 만들어 국민에게 내놓겠다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2년 뒤인 97년에는 충남도가 왕주를 주류부문 최초로 도지사 추천특산품으로 지정했다. 이를 계기로 왕주의 명성은 높아져 갔다. 당시 심대평 충남도지사는 각종 행사 때마다 왕주를 내놨다. 심지사는 타지에서 방문하는 손님에게도 늘 ‘왕주’를 권했다.
고향의 술 ‘왕주’에 매료돼 왕주의 애호가가 된 나는 시장이 된 뒤에도 입장이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왕주에 대한 사랑은 깊어만 갔다. 그래서 ‘왕주 홍보맨’을 자처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왕주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왕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왕주가 고향의 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왕주의 제조과정과 왕주의 품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왕주는 각종 약초를 혼합해 제조하기 때문에 적당히 마시면 ‘보신기능’을 얻을 수 있는 술이다. 왕주는 또 그 향이 일품이다. 누룩 특유의 향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왕주의 향은 오래오래 지속되기로 유명하다. 여기에 매실의 단맛과 신맛이 왕주 특유의 ‘감칠 맛’을 만들어낸다.
지금도 논산에선 손님이 오면 ‘왕주’를 내놓으며 자랑한다. “왕주는 술중의 술, 최고의 술입니다.”
〈임성규·논산시장〉
[전통주 기행]‘TIME OF KING’으로 외국인 입맛 유혹
가야곡 왕주의 전통은 한 가족의 대를 이은 노력 덕택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가야곡 왕주의 명인 남상란씨(59·전통식품명인 13호)다.
남씨는 친정어머니 도화희씨로부터 왕주의 비법을 배웠다. 도씨 역시 친정어머니 민재득씨(작고)로부터 왕실에 진상하던 왕주의 제조 비법을 전수받았다. 민씨는 자신의 가문(여흥 민씨)을 통해 왕실로 진상되던 왕주의 제조 비법을 배워 딸에게 전수했고 도씨 역시 딸인 남씨에게 그대로 전해줬다. 지금의 명인인 남씨의 외할머니가 바로 민씨다. 남씨는 이렇게 대대로 내려온 ‘궁중술’의 전통 제조 비법을 남편 이용훈씨(60·가야곡왕주 대표)와 함께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씨는 대량생산을 위한 기계화가 이루어진 지금도 전통 비법을 기본으로 해서 술을 만든다는 원칙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쌀을 씻을 때도 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늘 흐르는 물을 이용한다. 쌀의 잡티 등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다. 술밥과 누룩 등을 술독에 앉힐 때 넣는 솔잎도 항상 5~6월에 채취한다. 솔잎 고유의 향과 맛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이물질을 없애기 위해 참나무 숯과 말린 고추 3~4개를 띄우는 과정과 밀봉한 뒤 그늘에서 100일간 숙성시키는 과정 등 기본은 모두 전통비법 그대로다.
남편 이씨는 술의 명맥을 단순히 이어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야곡 왕주를 한해 6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로 키웠다. 알코올도수 13도의 전통 왕주 이외에 25도와 40도짜리 증류주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왕주는 어느새 전국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정연(38)·준연(35)·규연(32)씨 등 3형제도 부모의 뒤를 이어 왕주에 인생을 걸었다. 이들은 어머니로부터 왕주의 전통조 비법을, 아버지로부터 왕주를 제조·판매하는 기업의 경영 기법을 배우고 있다. 요즘은 미국에서 유학한 준연씨를 중심으로 왕주의 국제화에도 나서고 나섰다. 최근 양주병과 비슷한 디자인의 증류주 브랜드인 ‘TIME OF KING’(사진)을 내놨다. 외국인의 입을 겨냥한 왕주다. 곧 ‘위스키 말고 왕주 줘’를 외치는 외국인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논산|윤희일기자〉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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