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7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성령을 소멸치 말라!
살전 5:18~22
<1. 분노의 불>
“속에서 천불이 난다” “열불 난다!”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입니다.
누구나 경험합니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때~
사람 속에는 ‘불’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안에 있는 ‘불’을 분석해 봅니다.
내 안에 어떤 불이 있는가?
저와 여러분 안에는 3가지의 불이 있습니다. 몇 가지가 있다고요? ~ 3가지!
첫째 불은 지금 말씀드린 “분노의 불”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할 때의 ‘화’입니다.
이때의 화, 한자어로 불 화(火)자를 씁니다. 불과 화가 같은 말입니다.
사람의 심중에 화가 나는 것은 불과 같다는 것을 일찍부터 인정했습니다.
이 화가 엄청나게 치솟아오를 때, 분기탱천할 때, “속에서 천불이 난다” “열불 난다”합니다.
이 불을 어떻게 해야합니까? ~ 당연히 꺼야합니다. 이 불을 끄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 아이를 키울 때는, 아이가 어려서부터 이 불을 스스로 끄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 요즘 선생님들이 작정하고 나섰습니다. 연일 집회를 합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화를 삭히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학교에 보내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가서도 제멋대로입니다. 화가 나면 선생님에게도 대듭니다.
선생님이 이런 아이를 꾸중하면 자기 자녀를 망신 주었다고 부모가 고소합니다.
잠 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잠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분명한 것은 지금 한국의 교육방침, 성경과는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몸도, 정신도 어립니다. ‘학생 인권’보다 따끔한 가르침이 먼저입니다.
☞ 무릇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불을 다스려야 합니다.
<2. 애정의 불>
두 번째는 애정의 불입니다. 애정의 불은 사랑의 불이지만 약간 달라요!
사랑 중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이라서 애정의 불입니다. ‘에로스의 불’입니다.
남녀간 애정에 불붙으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콩깍지가 씌었다”
결혼!! 이 콩깍지 씌지 않으면 힘들어요! 결혼은 애정의 불이 붙어야 성사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애정의 불이 잘 안 일어나요!
너무나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애정의 불은 타오르지 않습니다.
애정의 불, 너무 쉽게 타올라도 문제, 너무 안 타올라도 문제입니다.
결혼할 때 애정이 불타서 결혼했는데, 어떤 사람은 살다가 그 불이 또 타올라요!☻
이거 심각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의 불, 결혼 이후에 일어나면 이거 얼른 꺼야 합니다.
119 소방대 불러야 합니다. “아내가 있는데, 딴 여자를 보고 내 가슴에 불 났어요!”
얼른 꺼야 합니다. 끄지 않으면 가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 지금 한국에서 ‘분노의 불’은 학교 문제로 번졌습니다.
☞ ‘애정의 불’은 저출산 문제로 번졌습니다. 심각해졌습니다.
분노의 불도, 애정의 불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애정의 불이 꼭 필요할 때가 있듯이, 물론 분노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분노해야 하는데 분노하지 않으면 그것도 심각합니다.
러시아의 한 시인은 말했습니다. “분노하지 않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
☞ 애정의 불, 인류의 역사를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었습니다.
☞ 애정의 불로 왕의 자리를 포기한 사람도 여럿 있습니다.
애정의 불을 끄지 못해서, 하나의 종파를 만들어낸 사람도 있습니다.
영국의 국왕 헨리 8세는 애정의 불을 끄지 못하고 법을 뜯어고쳤습니다.
부인과 이혼하고 앤과 재혼하기 위하여 가톨릭 법을 고치고 ‘성공회’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영국의 국왕 찰스 3세, 그도 문제적 인물입니다.
파커 볼스라는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다이애나’와 결혼합니다.
다이애나는 이것을 알고 고민과 번민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다이애나가 죽고 난 다음 찰스 3세는 자기의 사랑, 파커 볼스를 그제야 아내로 맞이합니다.
영국의 국왕이지만, 애정의 불을 잘못 다스린 사람입니다.
<3. 성령의 불>
우리 안에 불이 있다. 첫 번째 불은 ‘분노의 불’ 두 번째 불은 ‘애정의 불’입니다.
세 번째 불이 있습니다. 뭘까요? 그것은 ‘성령의 불’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분노와 사랑처럼 내주합니다. 그러다가 성령의 불을 일으킵니다.
☞ 성경에서 성령은 ‘불’로 표현됩니다.
___잘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이 왜 성령을 불로 표현합니까?
___우리 안에 기본적으로 분노의 불, 애정의 불이 있습니다. 성령도 바로 불입니다.
☞ 성령의 불로 뜨겁게 데인 사람이 있어요.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자기 안에서 성령이 외쳤습니다.
“너, 지금 당장 길거리에 나가서 내가 너에게 준 말을 선포해라!”
예레미야가 하나님 주시는 말씀을 나가서 선포하면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두들겨 팹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서 불타오르는 성령의 불을 억지로 껐습니다. “에이, 안 할래!”
렘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외치라고 주신 말씀 즉, 성령의 불, 어떤 것이었습니까?
지금 유다가 바벨론과 전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강대국이고 유다는 약소국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야가 밖에 나가서 그렇게 외치면 매국노로 몰렸습니다. 집단 린치를 가합니다.
물이 마른 우물에 쳐 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입을 다뭅니다.
그러면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의 불길이 타 올라서 예레미야를 다 태울 것 같습니다.
“항복해라! 하나님의 뜻이다. 지금 항복하면 70년 후에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신다!”
이렇게 나가서 외치면 또 얻어터집니다. 매국노가 됩니다.
예레미야에게 임하신 “성령의 불” 예레미야는 끄지 못합니다. 끌 수가 없어요!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안에도 “성령의 불”이 있습니다.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외치면 사람들이 비아냥거립니다.
미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도 안 합니다. 성령의 불을 스스로 끄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스가랴 선지자가 말합니다.
(19~20절)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성령의 불 vs 악령의 불>
눅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도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입니다.
이 불이 어떤 불입니까? 성령의 불입니다. 성령의 불이 땅에 이미 붙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다 감당했노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 안에 성령의 불이 함께 들어옵니다.
성령의 불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에게만 있는 불입니다. 안 믿는 이에게는 없습니다.
안 믿는 이에게는 성령의 불이 없다고 했습니다.
믿는 이에게는 ‘분노의 불’ ‘애정의 불’ ‘성령의 불’ 셋이 있습니다.
안 믿는 이에게는 ‘분노의 불’ ‘애정의 불’ 두 가지만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안 믿는 이에게는 ‘성령의 불’이 아니라 ‘악령의 불’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기 이전에는 ‘분노의 불’ ‘애정의 불’ ‘악령의 불’로 살았어요!
☞ 영에는 딱 2 종류가 있습니다. 악한 영, 악령입니다. // 선한 영, 성령입니다.
예수 믿기 이전에 일이 잘 안 풀린다 싶으면 점쟁이를 찾아나섰습니다.
점쟁이에 씌인 영이 성령입니까, 악령입니까? ~ 결코 선한 영이 아닙니다.
예수 믿기 이전에는 풍수지리를 믿었습니다. 풍수지리에 따라 묘를 썼습니다.
매일 운수를 보면서 살았습니다. 사주팔짜를 믿었습니다. 물 떠놓고 빌었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이끄는 영, 그 영이 선한 영입니까, 악한 영입니까?
결코 선한 영이 아닙니다. 예수 믿기 전, 우리는 “악령의 불”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한 영, 착한 영, 성령을 주시었습니다.
그때부터 악한 영이 쫓겨나고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예수 믿기 전 내가 따르던 악령, 내 안에서는 쫓겨났지만 악령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안에 계시는 성령, 자기 밖에 있는 악령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기 안의 성령보다는 자기 밖의 악령에 미혹됩니다.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안에서 타오르는 성령의 불을 끄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씀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19절)
<성령 소멸=예언 멸시>
우리가 예수 믿기 이전에는 ‘우리 안에 악령, 우리 밖에 성령’이 계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후부터 ‘우리 안에는 성령, 우리 밖에 악령’
그런데, 우리가 예수 믿기 이전 습관이 남아있어서 성령을 소멸하고 악령을 따라갑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이것을 경계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하시면서 뒤이어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 “예언”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순종하면서 살기 이전, 악령에 따라 살 때의 모습이 어땠습니까?
자기 자신의 미래를 알고자 사주 관상을 보고, 손금을 보고 풍수를 믿었습니다.
때로는 두툼한 복채를 준비하고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요즘 ‘기도원’ 간판을 붙이고 방문자들에게 ‘미래’를 얘기해 주는 곳이 꽤 많습니다.
‘기도원’ 간판을 붙였으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마음껏 기도할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기도 많이 한 사람’이 손님을 맞이하고 마치 점쟁이처럼 행세를 합니다.
요즘 그런 사람을 일각에서 “예수 점쟁이”라고 부릅니다.
그 사람들이 내미는 근거 본문이 20절입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성경이 말하는 예언, 기독교의 예언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언은 예배에서 목사의 설교가 예언입니다. “설교가 예언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꼭 쥐어짜면, “예수님 다시 오십니다. 그러니 대비하십시오!”
예언 중에서 가장 큰 예언, “예수님 다시 오십니다!” 이것이 예언입니다.
이 예언보다 더 큰 예언, 더 정확한 예언은 없습니다.
☞ 저의 첫 번째 책, “하나님의 기름부음”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온 힘 다해 설교를 들으면, 그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아, 주님이 다시 오시니,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얼마든지 캐치할 수 있습니다. 설교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설교 듣는 중에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의 불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찬송하는 중에, 감사하는 중에 성령의 불이 일어납니다!
분노의 불, 애정의 불, 성령의 불, 우리 안에 있는 세 가지 불입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라>
지금까지 성경에서 성령은 “불”로 표현됨을 보았습니다.
우리 안에 3가지 불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분노의 불” 잘 다스려야만 하는 우리 안의 불입니다.
“애정의 불” 살릴 사랑은 살리고, 억눌러야 하는 사랑은 자제시켜야 합니다.
“성령의 불” 성령의 불은 살리고, 악령의 불은 꺼야 합니다.
세상의 ‘영’ 중에는 악한 영, 선한 영, 둘로 나뉨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악한 영은 악령입니다. 선한 영은 하나님의 영, 성령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기 이전에는 모두가 악령의 미혹 속에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고, 악령은 나의 밖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러나 악령에 미혹되어 푸닥거리를 하고 점을 치고, 부적을 부치던 습관이 남아있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고, 세상에 있는 악령의 속삭임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대목을 21~22절에서 말씀합니다.
(21~22절)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악의 모양은, 분노의 불을 끄지 못하고 폭발하는 악입니다.
다음으로 버려야 할 악의 모양은, 애정의 불을 끄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는 악입니다.
세 번째 악의 모양은 악령에 미혹되어 점쟁이 놀이를 하는 악입니다.
성령의 불길은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성령의 불은 끄시면 안 됩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 안 믿을 때 습관으로 세상의 영, 세상풍조를 따라가면 안됩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누가 미래를 묻거든,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러니 그 때를 대비하셔야 합니다!”
“예수님 다시 오시면, 천국과 지옥으로 나뉩니다. 그러니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언입니다. 꼭 이렇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함이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