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글쓰기 강사를 하면서 처음 강의를 들으러 온 수강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그들은 말한다. 학창시절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한때는 상장도 받곤 했는데, 살다 보니 어느새 50이 넘어 작가의 꿈을 잊고 산 지 오래 되었단다. 소설을 써도 몇 권 쓸 만큼 사연 많은 인생을 살았는데, 이제 시간적 여유가 좀 생기니 글을 써보고 싶단다. 자서전 한 권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어떤 이유에서 글을 쓰고 싶고, 또 배우러 왔든지 글쓰기 교실을 찾아온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장년기 또는 노년기에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인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온 것임에 틀림이 없다. 상대가 조금은 차갑게 받아들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대답은 한 가지다.
“혼자서도 글 잘 쓰시면 여기 오실 필요 없지요. 배우려고 오셨잖아요. 그럼 결석하지 마시고 열심히 쓰시면 됩니다.”
글 잘 쓰는 비결은 아주 간단하다. 다독(多讀)과 다작(多作)뿐이다. 열심히 읽고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달라져 있는 자기의 문장력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나는 그들에게 수업을 하면서 종종 말하곤 한다.
“글쓰기 교실에 온 것만으로도 여러분들은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멋진 시니어입니다.”
능력 있는 강사를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다. 조만간에 백일장에 가서 상을 타거나 작가로 거듭 태어날 것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자신이 원했던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실행으로 옮기기 시작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줘도 좋을 일이라는 의미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묵묵히 글을 열심히 써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 달에 한 편도 쓰지 못하면서 글이 잘 안 써진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다. 알고 보면 후자의 경우엔 개인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다거나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을 동시에 배우려고 하다 보니 결국은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경우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고 글이 잘 안 써진다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 역시 나로서는 한 가지 뿐이다.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면 일주일에 단 하루 이틀만이라도 글을 쓰는 시간을 정해놓고 집중해서 글을 쓰고 한 달에 한 편이든 두 편이든 자신의 목표를 정하라고 말한다.
시니어들의 글쓰기는 당장 글을 써서 직업활동을 하려는 젊은이들과는 거리가 멀다. 수능에서 국어점수를 높게 받아야 하거나 공채시험 논술에서 합격 점수를 받아야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그들은 스스로 글쓰기를 습관화시키면서 즐거움을 찾고, 그런 과정이 지속되면서 자신이 원하는 테마를 정하여 책 한 권이라도 출간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설령 죽는 날까지 책 한 권을 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후회하지도 않을 것이란다. 그러니 그들의 버킷리스트에는 점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행에 도전하느냐 얼마나 꾸준히 지속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글쓰기 수강생으로 나를 찾아온 지 어느새 5년째를 맞이하는 사람 S가 있다. 그녀의 나이는 올해 62세다. 나를 찾아오기 전에도 꾸준히 다양한 책을 읽고 나름대로 글을 쓰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이 있다. 글을 쓰다가 한번 멈추면 몇 개월이고 그냥 시간을 흘려보낸 적도 있었지만, 글쓰기 강의에 출석하면서부터는 지속적으로 글 쓰는 습관이 길러졌단다. 그간 써놓은 수필 작품이 200여 편에 달한다고 했다. 이제는 잘 된 작품만 골라서 에세이집 한 권 펴내도 되니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라고 권유하자, 그녀는 자신에게 글쓰기는 평생 취미생활로 가져갈 것이기에 굳이 급하게 서두르고 싶지 않단다.
요양보호사로 직업활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천천히 여행하듯이 즐기고 있는 그녀를 보노라면 시니어 인생을 참 알차게 의미 있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녀의 현재진행형인 버킷리스트에 어떻게 점수를 매길 수 있겠는가?
한 길만 걷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얼마 전이다. 출판사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원하는 원고가 있는데 주변에 그런 원고를 쓰는 사람이 없느냐고 했다. 머뭇거릴 여유도 없이 아주 적합한 예비작가가 있다고 했다. S를 추천했다. 머지않아 그녀는 출판계의 시니어 작가로 이름을 올리게 될 것 같다. 나로서는 그녀의 70대, 80대를 더욱더 기대하게 하는 일이다. < ‘살아있는 동안에 한 번은 꼭 해야 할 것들(박창수, 새론북스, 2017.)’에서 옮겨 적음. (2019.05.25.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