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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특수미끼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치씨가 우아영을 선택해버리고, 우아영 역시 도치씨에게 마음을 열어버리자 이감독은 맥이 빠졌다. 오진숙도 똑 같은 상태였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오진숙과, 다 잡은 상대에게 단 한방에 끝나버린 UFC파이터 꼴이 된 이감독. 흐르는 물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유회원칙流回原則에 빠지고 말았다.
파트너정하기 게임에서 참패한 악몽이 아직 남아 있는 이감독과 오진숙은 국립방사능검역소 벤치에서 도치씨가 모든 인연을 끊고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자 지금이야말로 우아영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파트너정하기 게임하는 순간부터 오진숙은 도치씨를 좋아했다.
이감독에 비해 배도 나오지 않았고 키도 크며 성격도 시원시원 찰칵찰칵 끊고 맺는 도치씨를 오진숙이 더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매사에 자상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 때문이었다.
허지만 인연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 그런지 도치씨와 우아영의 사이는 시간이 가고 날이 갈수록 눈꼴시럽도록 더 견고해져버리기만 했다.
우아영이 도치씨의 무릎을 가슴으로 끌어안고 다시 말했다.
“도치오빠. 내가 방사능검사하자고 한건 사실이지만 있잖아. 감독님하고 진숙이가 완전 무장하고 철저하게 검사한다고 더 설친 거 있지. 그 점을 도치오빠가 참작해야해. 나는 도치오빠 건강을 걱정해서 그런 거지만 저 사람들은 도치오빠를 골탕 먹이려고 그런 거다? 내 말 믿어?”
도치씨가 절교나 다름없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절박한 말을 하자, 우아영과 도치씨 관계에 금이 가도록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던 이감독과 오진숙은 도리어 우아영의 말에 또 한 번 멍했다. 쇠망치에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멍한 기분을 확인 사살하듯 완전히 뿅 가게 만든 건 도치씨였다.
도치씨가 말했다.
“두 사람 잘 들으세요. 내가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두 사람이지 우아영이 아니에요. 나는 우아영과의 인연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어요. 왠줄 아세요? 이감독이 그날 했던 월척은 이감독 뱃속에 들어가고, 남은 건 두 장의 어탁뿐이잖소? 계약서반품조항대로 우아영까지 원점으로 돌리려면 이감독이 잡았던 그 두 마리의 월척을 살아 있는 그대로 가져 오시오. 그때까지는 내가 우아영을 보관하고 있겠소. 알아들었어요?”
이감독은 도치씨의 제안에 할 말이 없었다.
그때 그 월척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는데 어디 가서 구해 온단 말인가? 자신의 뱃속으로 들어 간 월척을 다시 가져 온다는 것은 지구가 거꾸로 돌아도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죽은 놈 살리는 게 확률적으로 낫지.
오진숙도 마찬가지였다.
우아영을 내치면 도치씨의 옆자리를 자신이 꿰 차려고 했는데 일이 완전 박살나자 이감독을 원망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한마디 쐈다.
“어째 감독님 말은 한 번도 제대로 되는 게 없어요?”
사면초가에 몰린 이감독이 두 눈만 멀뚱거릴 때 우아영이 판도를 바꾸는 말을 했다.
“도치오빠. 우리 이제 이 사람들 빼고 소주가자 으응?”
기가 막히고 곡할 노릇인데 한 술 더 뜨는 우아영의 발언에 이감독과 오진숙은 몹시 당황했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강박관념이 들었다.
이제 남은 길은 붙들고 늘어지는 엿가락타법을 쓸 수밖에 없다. 이감독이나 오진숙이 우아영과 도치씨로부터 내쳐지면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낚시문제다. 지금 도치씨가 개발하고 있는 매머드급 신약수준의 미끼를 사용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끝장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도치씨가 거의 완성단계에 있는 미끼는 특수미끼다. 미끼로부터 사방10m 이내의 고기는 아파트 분양받으려고 몰려드는 치맛바람보다 더 지독한 효능이 있는 동물성특수미끼다. 미끼 냄새만 맡으면 10m이내의 고기는 제 정신이 아니다.
도치씨가 개발한 이 미끼의 핵심 원료는 제비배설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어묵공장의 배합기로 제조한 것 까지는 알지만 그 이상의 레시피는 아직 극비다. 수조에서 임상실험까지 끝낸 이 미끼를 이번 조행에서 현장공개실험 하기로 했는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탁 막혀 졸도할 것 같았다.
이감독이 숨 가쁘게 말했다.
“오늘 소주 값은 무한리필로 내가 낼게!”
오진숙도 끼었다.
“도치형부! 2차는 제가 낼께요.”
우아영이 도치씨의 무릎에 걸터앉으며 이감독과 오진숙을 노려보며 앙칼지게 말했다.
“도치오빠, 인제 이 사람들 완전 삭제해! 의리도 없고 인정도 없고 도치오빠 앞에서만 죽은 척하지 돌아서면 완전 콩깍지 턴다. 진짜야 도치오빠!”
다급해진 이감독 이젠 체면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미스우 그러지마! 우리가 남이야? 왜 이래?”
오진숙이도 싹싹해졌다.
“아영언니. 감독님은 빼도 나는 안 뺄 거지? 그렇지?”
우아영은 도치씨의 무릎에 앉은 것을 임금님의자에 앉은 것으로 착각하는 듯했다. 두 다리를 흔들거리며 머리를 도치씨의 가슴에 기대고, 도치씨의 팔을 자신의 허리에 감으며 오진숙과 이감독 보란 듯 거들먹였다.
“도치오빠! 인제 우리 갈까? 나 목말라!”
이감독이 잽싸게 우아영의 말을 낚아채며 말했다.
“아아아! 잠간잠깐. 내가 잘 아는 요지경 소주집 있소! 거기로 모실께!”
도치씨가 말했다. 구미가 당기는 목소리였다.
“요지경 소주집?”
“그럼 그럼요. 완전 예술이에요. 도치형부!”
도치씨가 흥미를 보이자 이감독과 오진숙은 도치씨 앞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며 아예 읍엎드려절하기을 했다.
오늘밤. 이감독과 오진숙은 한없이 작아졌고, 도치씨와 우아영은 두 사람이 합쳐져 크게 보였다.
국립방사능검역소 로비 유리창 앞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짤막대원이 검역관과 통통대원을 돌아보며 깜짝 놀라 말했다.
“앗! 한사람이 사라졌어요! 사고 났나봐요!”
바로 옆에 섰던 검역관이 말했다.
“난 말이야, 이래서 짤막 자네가 진짜 싫은 거야!”
왼쪽의 통통대원이 재빠르게 말했다.
“둘이 붙은 거죠?”
검역관이 말했다.
“저 사람들이 무슨 공무원 시험치냐? 붙긴 어딜 붙냐? 관공서 마당에서?”
검역관이 유리창을 소매 끝으로 닦은 후 유리창에 눈을 가까이 붙였다.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사뭇 진지했다.
“저 때가 좋은 거다! 우리는 참말로 헛살았어!”
첫댓글 이 글이 왜 인기글인지 확실히 알것 같아요
ㅎ
아직 완전히 탈고한 글은 아니지만 이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고운밤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