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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 계룡산
산 이름은 주봉인 천황봉(天皇峯, 845m)에서 연천봉(連天峯, 739m)·삼불봉(三佛峯, 77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 볏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차령산맥 중에서도 비교적 험난한 이 산은 유연히 흐르는 금강의 풍차와 어울려 독특한 산악 경관을 이루고 있다. 계룡산은 풍수지리에도 우리나라 4대 명산으로 꼽힐 뿐 아니라 특히, 계룡팔경은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가을의 낭만이 "뚝, 뚝", 갑사
백제 때 창건되어 화엄종 10대 총찰 중에 하나가 된 갑사는 마곡사의 말사이다. 으뜸 또한 첫째란 뜻의 '갑사'는 18세기말 산 이름을 따서 계룡갑사로 부르고 있고, 경내에는 15동의 불전과 승당, 부속, 전각들이 있으며 주변 산골짝 여러 곳에 산내 암자를 두고 있다. 보물은 갑사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 256호), 갑사부도(보물 재 257호), 갑사동종(보물 제 478호), 월인석보판목(보물 제 582호)등이 있다.
갑사에서 수정봉까지 이어지는 명승지에 1곡에서 9곡까지 바위에 이름을 새겨놓는 아름다운 계곡 갑사구곡은 큰 바위와 높게자란 고목들이 많은 계곡과 어우러져 자연이 주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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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정월 초 3일이면 갑사에서 주차장까지 대신제 행렬이 장관이다. 괴목앞에 이르면 불교와 민간신앙이 어우러져 마을의 안녕과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괴목대신제를 지낸다. 각자의 소원을 적어 태워 올리는 소지행사가 절정을 이룬다.
태고 적부터 공주 땅을 적시고 흐르면서 수협, 어로, 채취 등 획득경제에 의존하여 생활하던 구석기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내어준 강. 한반도 인류의 여명기를 공주땅에 열고, 때론 공주의 자연과 때론 공주의 역사.문화와 어루러지며 지역의 뿌리가 되어 온 강. 공주의 중심부를 수놓으며 흐르니 아름답고, 강에 기대어 공주사람들이 문명을 꽃피우니 살기좋은 곳. 공주에 금강이 흐른다.
백제의 고도 공주의 상징, 공산성
공산성(사적 제 12호)는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웅진백제(475 ~ 538)를 지킨 왕성이다.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능선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은 포곡형 산성이다. 백제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공주산성,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 인조가 이괄의 난(1624)을 피해 산성에 머문 이후 쌍수산성으로도 불렀다. 조선 선조·인조 때 지금과 같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된 공산성에서 시대별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다.
백제인들이 산위에 왕궁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성벽은 밖에서 오르지 못하게 쌓고(치성雉城), 남북에 두 개의 문루와 적에게 보이지 않는 출입문(암문暗門)을 만들었다. 공산성 옆의 공주 옥녀봉성(충청남도 기념물 제 99호)은 흙으로 쌓은 성(퇴뫼식)으로 공산성의 보조왕성의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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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제 기간에는 공산성 앞에서 금강신관공원까지 부교로 건널 수 있다. 금서루에서는 백제왕국의 위풍당당함을 ‘웅진성수문병근무교대식’으로 볼 수 있고, 금강신관공원에서는 밤풍경이 아름다운 공산성 감상이 가능하다.
곰의 전설 어린 고마나루
단군신화 이래 곰 토템(totem)에 익숙한 우리의 정서가 서린 고마나루는 설화 속 곰의 원혼을 달래는 살아 있는 우리 민속신앙의 현장이자 공주지명의 연원지로도 알려져 있다. 고마나루는 금강이 공주를 관통하여 흐르다. 급히 남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는 지역으로, 물살이 세고 험하여,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 등 이곳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잦은 사고를 당하였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수신이 노하여 그런 것이라 하여 곰의 설화를 원용(援用)하기에 이르렀는데 곰의 원혼을 달래어 더 이상의 사고를 막고자 하니, 공주의 민간 신앙으로 자리 잡는다.
‘공주’라는 지명의 연원이 된 고마나루에 전해지는 곰녀의 전설은 대강 이렇다. 강 건너 연미산 굴에 살던 암곰이 사람을 사랑하여 자식까지 낳고 수 년을 살았으나, 곰녀(암곰)와의 생활을 견디지 못해 배를 타고 강 건너로 가버린 사내를 애타게 부르다 지쳐, 자식과 함께 강물 속에 몸을 던져 죽어갔다는 곰녀의 슬픈 전설이다.
전에는 강둑이나 공주에서 부여까지 시원스레 뚫린 백제대로쪽 송림 끝에 자리잡은 곳에 웅신단이 있다. 자그마한 뜨락이 있는 웅신단에는 고마나루에서 발견된 돌곰상이 모셔져 있다.
베일에 쌓인 백제사의 열쇠, 송산리고분군
송산리고분군(백제25대왕)은 1971년 배수로 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굴되었는데, 1,500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완전한 상태로 발굴되었다. 이는 삼국시대 파장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한국 고대의 유일한 왕릉으로, 화려하고 세련된 미의식과 창의성, 수준 높은 공예기술을 엿볼 수 있다.
심산유곡 고즈넉한 절집, 마곡사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산으로 산의 이름처럼 크고 아름다운 산이라는 태화산에는 조계종 제 6교구 본사인 마곡사가 있다. 마곡사는 백제 무왕(840년)때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많은 보물이 있으며, 대광보전의 빛바랜 단청이 오래된 절집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사찰의 대광보전, 대웅보전 옆에는 김구선생이 머물던 백범당과 백범명상길로 향기나는 솔바람이 유혹하는 대로 천천히 걷거나 등산을 해도 좋다.
한국문화연수원은 2009년 현대와 전통의 조화로운 형태의 절집으로 개원하였다. 회의실, 대강당, 강의실, 선방, 차실을 두루 갖춘 숙박시설로 템플스테이, 수행프로그램, 기업연수, 체험활동이 가능하고, 백범명상길 3코스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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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백범 선생이 마곡사(백련암)에서 은거, 수도생활을 할 때 구국의 일념으로 사색했던 길 따라 조성된 백범명상길은 3코스가 있다.
계룡산국립공원의 서쪽에 있는 폭포이며, 명칭은 옛날에 신선들이 이곳에 숨어서 놀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계룡산에 있는 여러 폭포 가운데 가장 큰 폭포로, 주변의 암벽과 울창한 숲이 절경을 이룬다. 가을단풍과 어울린 경치가 유명하지만, 겨울철 얼음폭포를 이루는 경관도 독특하다.
계룡산 서쪽에 위치
구석기 문명을 잉태하다.
석장리 주거지에서는 고래를 땅바닥에 새긴 것, 예술작품으로 추정되는 물고기 모양의 지닐예품도 출토되어 구석기인들의 예술활동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비록, 공주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주거유적이 석장리에서만 조사되었지만, 당시 금강주변에는 석장리와 같은 생활유적들이 곳곳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과 인공의 아름다운 조화, 금학생태공원
금학동주민센터 앞에 다다르면 생태공원을 알리는 곰 가족의 친근한 이정표가 보인다. 금학생태공원 주차장의 아래쪽에는 습지가 조성되어 있고, 위쪽에는 두 개의 수원지가 있다. 주차장에서 가까운 곳에 작은 야외무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다양한 문화 나눔이 이루어지고 있다. 윗수원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주미산은 물과 산이 잘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다. 금학생태공원에서 두리봉과 봉화대로 오르는 공주대간 트래킹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