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임금님
강승수 신부
“이 세상의 왕이 누구일까요?”라고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물으니 “하느님이요!”라고 답한다.
과연 하느님은 현대 세계의 왕이 맞는가?
현대 사회에서는 돈을 가지고 있고 그 돈으로 물건을 사고 있는 소비자가 왕 노릇을 하고 있다.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을 지닌 소비자는 왕과 같은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 ‘소비자들’의 요구에 충실하게 응답을 하다 보니 본래 왕이신 하느님께서 지으신 질서를 거스르고 있다.
봄이면 씨 뿌리고 여름에 자라 가을이면 거두는 것이 본래 왕께서 지어 놓으신 순서이고 그 절기에 걸맞은 먹거리를 먹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왕이신 소비자들’께서는 사시사철 푸른 채소와 열대과일을 맛보시기를 원하고 계시며 실제로 그 원은 손쉽게 채워지고 있다.
한겨울에 푸른 채소나 열대과일을 소비자 왕들께 맛보여 드리기 위해서는 이중삼중의 비닐하우스 안에 기름을 태워 난로를 피워야 한다. 이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이며 그 와중에 온실가스가 뿜뿜 뿜어져 나오고 있다. 채소와 열대 과일 뿐이겠는가? 소비자 임금님들의 식탁에 빠지지 않는 소, 닭, 돼지를 먹이는 사료는 대부분 배를 타고 대륙을 건너온 곡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농’ 나눔터에 나누어 주시는 가톨릭 농민들의 먹거리는 제철을 거스르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지어 놓으신 ‘창조 질서’ 안에서, 그분께서 허락하시는 만큼만 나누어 먹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농’은 소비자들의 철없는 욕구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농민들이 중심이요 주인인 ‘우리농’의 농부들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그분의 아름다운 질서를 존중하면서 농사를 지으신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분께서 허락하시는 만큼만 생산하여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다. 그리하여 지구에게도 사람에게도 이로운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니, 우리 사회와 교회가 유기 농사를 짓는 농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우리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강승수 신부(대전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