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수행이 가장 귀하다
문광 스님
나옹선사의 토굴가에는 ‘무슨 일이 세간에 가장 귀한고[最貴]?’라는 구절이 있다. 한평생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과연 어떤 일이 가장 귀할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출가 전 속가 선친의 서재에는 ‘독서최귀(讀書最貴)’라는 편액이 걸려있었다.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는 뜻으로 평생 학문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살다간 선비의 좌우명다운 문구라 할만하다.
출가한 뒤 앞의 의문에 대한 답의 의미로 ‘연공최귀(連功最貴)’라는 말을 만들어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하면서 인연되는 사람들에게 권하게 되었다. 뜻인즉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하는 연공정진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는 것이다. 만일연공(萬日連功)이 일차 목표이고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계속 연공 정진하다가 죽는 날 아침에 깨끗하게 씻고 그날 해야 할 연공정진 마치고 조용히 마지막 길 떠나는 것이 개인적인 발원이라면 발원이다.
연공이란 것이 참으로 말처럼 쉽지 않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진한다는 것은 수행을 삶의 제일의 목표로 삼아서 먹고 자는 것과 같은 일상이 되어 완전히 습이 될 만큼 무르익어야 가능한 것이다. 번다한 삶은 우리에게 별도의 정진시간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해서 최소 하루 50분은 혼자만의 개인적인 수행시간을 마련하여 자정이 되기 전에 하루공부를 해 마치는 것이다. 처음에는 108일 연공을 1차 목표로 하고, 1년이 지나 1080일 정도가 되면 습관이 되어 어느덧 삶속에 녹아들게 된다.
석가세존의 6년 고행처럼 불자라면 최소한 하루도 빠지지 않는 정진을 6년은 해야 된다는 의미로 6년 동안 연공정진하면 회향기념을 한 번 하고, 이런 과정을 10년, 20년 지속하여 만일(萬日)이 되면 이번 생은 수행자로 제대로 살았다고 할 만할 것이다.
화계사 불교대학을 필두로 불자님들에게 화두참선도 좋고, 독경이나 기도, 염불이나 다라니 그 어떤 것도 좋으니 자기만의 수행 한 가지를 꾸준히 용맹스럽게 밀어붙이라고 권면했다. 그랬더니 벌써 수십 명의 불자가 연공수행을 부지런히 하고 있고 3년을 넘은 분들도 꽤 된다.
본인이 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권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나의 연공도 죽을 때나 완성되는 것이므로 내가 권해서 시작한 연공수행자들 역시 승속을 막론하고 모두 같은 길을 가는 평등한 도반일 뿐이다. 깨쳤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남녀노소와 재가출가를 가리지 않고 일평생 매일 정진하며 사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 감히 단언해 본다.
한국불교의 자성과 쇄신의 첫 단추는 우리 스님네들의 연공정진과 수행결사에서부터 그 정초가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집에서 살면서 예불을 모시고, 여러 소임들을 보고, 수많은 포교활동을 하면서도 반드시 자신만의 별도의 수행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밀고 나가야 한국불교가 새롭게 꽃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성철 스님도 제자들에게 대중생활을 하면서도 늘 토굴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고, 일타 스님도 중이 자꾸 사람노릇하려고 덤벼드는데 중노릇 잘 할 생각부터 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 모두 밀행으로 자기수행을 놓지 말라는 경책이었지 싶다.
중국의 남전보원 선사는 선(禪)의 황금시대라는 당나라의 선사이었음에도 선법(禪法)은 있으되 선수행자가 없다고 한탄했다. 지금 한국은 우리에게 좋은 간화선법과 전통적인 많은 수행법들이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남방·티베트·미주유럽 등지에서 여러 수행법을 수입하기를 즐겨한다. 물론 부족한 부분을 보완·절충도 하고 자극으로도 삼을 수 있어서 좋은 일이나 그보다 앞서 과연 우리네 발심과 원력이 철두철미한지 새롭게 점검해 보아야 할 일이다.
우리는 과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기수행을 끈질기게 밀어붙여본 경험이 있는지, 과연 몇 년이나 연공(連功)을 이어왔는지 자자(自恣)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연공최귀(連功最貴)!’ 현대 한국불교의 혁신이 달려있는 일구(一句)가 아닐까?
문광 스님
[출처: 법보신문 | 2015.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