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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5: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 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보내되
(민 5:3)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
(민 5:4)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그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냈으니 곧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행하였더라
(민 5: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 5:6)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민 5:7)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 줄 것이요
(민 5:8) 만일 죄 값을 받을 만한 친척이 없으면 그 죄 값을 여호와께 드려 제사장에게로 돌릴 것이니 이는 그를 위하여 속죄할 속죄의 숫양과 함께 돌릴 것이니라
(민 5:9) 이스라엘 자손이 거제로 제사장에게 가져오는 모든 성물은 그의 것이 될 것이라
(민 5:10) 각 사람이 구별한 물건은 그의 것이 되나니 누구든지 제사장에게 주는 것은 그의 것이 되느니라
“속죄의 절차(민 5:1-10)”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1-4: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잔와 유츨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보내라”
여호와께서는 세상에 죄가 관영하게 되자, 노아를 비롯한 8명의 식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 후에 노아의 후손들은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살게 되었지만, 수한이 현저하게 짧아져서 현재와 같은 인간의 수명처럼 100년을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은 오히려 더 불 붓듯 하고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각각 혼잡하게 하고 온 지면으로 흩어지게 하는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그 후로 세월이 흐른 후 인간들이 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배역하지 않도록 오직 한 사람을 선택하여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훈련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중 선택된 자가 멀리 하란에 살았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친척의 집을 떠나 멀고 먼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그가 100살이 되도록 씨와 땅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겨우 혈통적으로 사라의 몸으로부터 한 아들을 얻게 되는데, 그가 이삭이었습니다. 이삭은 야곱과 에서를 낳았지만, 여호와께서는 두 아들 중에 야곱을 일방적으로 선택하시고 그를 통해서 열 두 아들을 낳도록 하셨습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술수에 능한 자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종족이 멸망하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열 두 아들들은 요셉을 선발대로 애굽에서 430년간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로의 대우를 받을 만큼 환대 속에 지낼 수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애굽 왕조가 바뀐 다음부터는 애굽의 종으로 전락하여 압제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그들은 육체적으로 강건하여 400여 년이 지난 후에는 70명에서 200만 명 이상으로 인구수가 늘어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약속대로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마침내 준비해 놓으신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최초로 이스라엘에 전 세계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심을 선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시내 산이 있는 광야에 머물렀지만, 이미 소문을 퍼져서 당시로서는 전 세계가 이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최대 최강의 애굽을 굴복시키고 자유와 독립을 쟁취한 이스라엘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1년이 넘도록 한 곳(시내 산 기슭)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이 기간은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설정을 하기 위해서 규례와 율법 등을 받아 이를 익히고 때에 따라서는 지시한 대로 성막을 만들고 그 외 여러 가지 규례들을 지킬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기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막이 완성되고 제사장 제도가 시작될 즈음해서 여호와께서는 인구조사를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각 지파 별로 실시된 인구조사는 군대를 조직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직접 임재하실 곳인 성소 안 지성소의 거룩함과 엄위함에 대한 보호조치와 그들이 이 땅에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레위 지파는 12지파에서 제외시켜 성막 즉, 거룩함과 세속적인 12지파와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아담 이후 에덴 동산의 하나님 나라의 원형을 그대로 재연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죄악을 입고 있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성막을 중심으로 율법과 규례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은 지상에서 그분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순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동안 아브라함과 약속하셨던 대로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창대하게 하겠고 동서남북의 땅을 주시 마 하셨던 대로 후손들이 창대하여 한 국가를 이룩할 만큼 많은 수가 되었으며 이제는 약속하셨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입성을 앞둔 시점에 와 있었습니다.
그전에 12지파는 전투적인 자세가 필요했으며 각 지파마다 장정들을 계수하여 전진 배치시켰고, 특히 레위인들이 철저하게 성막을 감싸고 진행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민수기 5-6장은 그런 맥락에서 성막을 중앙에 위치하고 12지파가 사방으로 감싸는 형태의 진영을 갖추고 그들 가운데에서 정결과 거룩함을 지킴으로써 출발 직전의 완전한 점검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내용들은 이미 레위기(13-15장)를 통해서 규정된 정결과 더럽힘에 대한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경우를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피부병(나병 환자)를 가진 자와 유출병(성적인 문제)자와 그리고 주검을 보거나 만짐으로 부정하게 된 자는 진영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영 밖으로 나가고 진영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해 질 때에 목욕하고 해 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네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련하고 그리로 나기되
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며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신 23:10-15)”
피부병은 곰팡이로 말미암아 생긴 병으로서 겉으로 보기에 상한 모습을 말합니다. 즉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유출병은 정액과 월경 등 성기를 통해서 배출되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생명의 근원에 대한 조치로서 원 생명의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임재하신 곳에 이와 같은 불순한 몸의 상태를 더럽다고 판정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검을 보거나 만진 자도 불결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명의 원천이신 여호와 진영에서 죽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신학적인 사고는 레위기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류에 해당되는 이스라엘 백성은 일단 진영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성막에 임재하신 여호와께서 거룩하시므로 그들로 말미암아 진영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5-10: “남녀 불문하고 남에게 손해를 입혀 야훼께 불성실한 어떤 한가지 인간의 죄를 지으면 그는 죄인이 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라. 남자나 여자를 가릴 것 없이, 남에게 어떤 잘못이든지 저질러서 그 일로 주를 배신하였을 때에, 그런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 대로,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에게 본래의 값에다가 오분의 일을 더 얹어서 갚아야 한다( 민 5:6-7 :표준새번역).
이 규정 역시 레위기에서 이미 말씀된 내용입니다. 타인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그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죄를 짓는 경우가 된다는 말씀은 평상시 우리가 생각하는 죄의 형태와 다른 측면을 보게 됩니다.” 즉, 이웃에게 죄를 범했을 경우에 그것은 곧 인간관계에 있어서 불의한 행동이지만, 하나님과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죄를 범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믿음의 공동체 즉, 성막을 중심으로 모이는 12지파의 공동체에서 해당되는 명령으로 해석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에게 피해를 끼친 행위가 하나님을 배역하는 행동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성과 연계하여 공동체 내의 정결함에 비추어 볼 때, 도덕적인 잘못까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남녀 무론하고 남에게 잘못하여 피해를 끼쳤을 경우는 곧바로 하나님을 배역하는 행위이므로 죄를 자복함은 말할 것도 없고 해당된 당사자에게 찾아가 죄의 대가를 온전히 갚되 1/5을 더 추가해서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서운한 감정과 분한 감정까지를 고려하여 충분히 갚는 다는 표현이며, 아울러 죄를 범했던 자의 입장에서는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뿐 아니라 내재적인 마음까지 깊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물건값의 20%를 더해서 보상한다는 규법은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였다는 객관적인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죄값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가 죽었거나 그의 친척 중에서 받을 자가 없다면 그 죄값은 여호와께 드려야 했습니다. 실제적으로는 제사장에게 돌려야 합니다. 속죄제를 통해서 거제로 제사장 앞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대개 양심적이고 신앙심이 깊은 성도가 과거의 죄값을 깊이 인정하고 갚을 마음을 가졌지만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사회적인 경향이 손해를 끼친 당사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죄값을 치르게 되면 무슨 죽을 죄를 저질러서 체면이 구겨진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밀리 혼자만 알고 교회에 상응한 금액을 헌금이나 헌납하는 것으로 상계하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대부분은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잘못했던 자를 찾으라는 명령은 자신의 죄를 공개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잘못과 죄악을 최소한 당사자 앞에서는 공개하고 사죄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원칙입니다. 한국처럼 체면문화가 상존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적으로 결정적인 사회적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행동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공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의 인원수가 50~100명 정도된다면 서로를 감싸고 다들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형교회에서 한 성도가 이러한 고백이나 갚음이 있었다면 유별난 행동으로 때로는 어리석은 짓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조직화 된 교회 규율에 의해서 객관적인 판단의 한계가 좁혀졌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한 지도급 목사님이 한기총 회장 선거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하여 당선된 적이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선거비용이 30억 원 정도가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여파로 전 교회와 교단들이 화들짝 놀랐습니다. 사실 다 아는 비밀이었지만, 공적으로 이와 같은 추한 점을 공개했기 때문에 잇슈가 되었습니다. 손봉호 교수님도 한기총 해체 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잠재울 한 목사가 들고 나섰습니다. 조용기라고 하는 분이 이슬람 자금법을 반대한다며 대통령 하야 운동을 펼치겠다고 떠벌렸습니다. 그 바람에 한기총 회장 부정선거자금에 대한 뜨거운 여론이 묻혀버렸지요. 그리고 조용기란 분은 대통령 하야는 와전된거라고 했다나요? 세상은 이렇습니다. 주께서 오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천주교는 신부가 고해성사라는 제도로 이를 독점했습니다. 개신교는 한 사람의 죄악과 아픔에 대해서 믿음의 구성원 모두가 함께 슬퍼하고 감싸 안는 즐거움과 행복이 있습니다. 이를 교회가 훼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죄는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은 죄값을 갚아야 하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그것도 20%를 더해서 갚아야 하는 손실이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원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용서 받지만(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죄책에 대한 아픔은 자신의 몫입니다. 그리고 내가 저지른 죄악 때문에 고통 받는 이웃에게 내 것으로 헌신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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