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 시인의 시집 『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
약력
이송희 시인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고,
《열린시학》 등에 평론을 쓰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 『아포리아 숲』
『이름의 고고학』 『이태리 면사무소』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대명사들』이 있으며,
평론집 『아달린의 방』 『 길 위의 문장』
『경계의 시학』 『거울과 응시』
『유목의 서사』,
연구서 『현대시와 인지시학』,
그 외 저서로 『눈물로 읽는 사서함』 등이 있다.
가람시조문학상신인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제20회 고산문학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시인의 말
세상을 바꿀 수 없 다면
마음을 물들이고 싶다.
사랑의 빛으로 세상을 품는
사람을 기억한다.
시는 내게 다리 같고,
낡은 책 같고,
지울 수 없는 염료 같다.
2024년 10월
이송희
회전문
네 얼굴은 수시로 표정을 바꿨어
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
한동안 어지러워서 한 곳을 맴돌았지
깍지 낀 연인들이 눈 밖으로 사라지면
가끔씩 멀리서 봄냄새가 흘러왔지
아침을 지나오다가 납빛이 된 네 얼굴
별들이 떨어져도 컵 속 물은 고요해
싸늘한 눈빛이 어제를 돌아 나올 때
모른 척 낯선 얼굴로 너는 또 문을 민다
보수동 책방골목
나는 다시 어두운 행간을 서성이네
걷다가 놓쳐버린 지난 세기의 구절들
불안을 뒤적이면서
손끝으로 길을 읽네
그 어떤 수식도 없이 간결했던 우리의 말
날을 세운 문장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먼지 낀 갈피 속에는 숨 죽은 목소리
골목 끝 마지막 장에 내간체로 살던 그가
빛바랜 문단 사이로 비틀비틀 걸어오네
그 시절 추운 언어를 부둥켜안고 우네
깨진 창문 안에는 몰래 읽던 역사책들
불온한 시대의 페이지를 접고 쓰네
서로가 참고문헌이 되어
길의 목록을 만드네
업데이트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에서 만났어요
잡티가 남아 있는 뿌연 창을 닫으며
다음날 갈아 끼우려 맑은 창을 주문해요
방치된 대화상자엔 흘러넘친 이야기들
아무 때나 나타나는 당신 닮은 아바타
애달픈 밤의 모서리가 하얗게 빛났죠
흘러간 사랑 노래를 배경으로 깔면서
노을 지는 장면을 들어내고 지워갔죠
우리는 서로에게서 벗어나는 중이에요
분리수거
어제를 분리해서 폐기하는 아침이면
소리가 흘러넘칠까, 병뚜껑 덮은 채
우리는 얽힌 감정을 하나둘 떼어냈어
옷깃을 물고 있는 하마가 달아났어
당신을 머금던 눈물도 털어냈지
멍든 눈, 찢어진 입은 늪 속에 가뒀어
두터운 어둠을 접어 돌돌 말아 넣었지
서로의 속을 열어 나눠진 우리는
날마다 비워가면서 가벼워지고 있었어
주말부부 클리닉
우리는 둘만의 비밀번호 공유했지
현관문 열자마자 마주 보는 빈 벽들
침묵이 도배된 방은 대체로 지루했어
흘러내린 이불 속에 적막은 더 부풀었지
아무도 모르게 지문조차 덮는 먼지
포트엔 여느 때처럼 한숨이 끓고 있어
혀끝에 침 발라 우표를 붙이던 아침
끝 문장을 쓰지 못한 편지가 그리운데
우리는 다 식은 주말에 저녁밥을 먹고 있어
해설 I
경쾌한 언어로 적은 주관적인 기억
이정현(문학평론가)
"당신은 지친 나를 양말처럼 구겨 넣는다
바닥으로 흘려버린 감정은 버려둔 채
서글픈 비명을 밟고 거칠게 문 닫는다"
-「서랍의 시간」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변하지 않지만, 과거의 의미는 변한다. 기억하는 자의 위치와 상황이 변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불균형한 물질이다. 시시때때로 변하고, 첨가된다. 아무 것도 아닌 대상이 사무치는 애증의 대상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 변화를 감당하면서 인간은 비로소 거듭난다. 프루스트가 얘기했듯이 시간을 구원하는 것은 기억이다. 이송희 시인의 신작 시집 『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에서 시적 화자는 어떤 대상을 응시하며 주관적인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누가 날 여기에 데려다 놓았을까?
안개를 건너가면 새 길이 열릴 거라던
귓속에 맴도는 말이
모래알로 흘러내린다.
뭉크의 절규를 저벅저벅 걸었다
허방에 헛디디고 늪지에 빠진 발
경계가 지워진 곳에
덩그러니 몸만 남아
하얗게 물든 밤과 캄캄한 낮의 시간
그 속에 갇혀서 제자리만 맴돌던,
뭉개진 나를 꺼내어
기억을 두드린다
-「화이트아웃」 전문
발랄한 시들을 읽으면서 희미한 슬픔을 느끼게 되는 건 생의 필연적인 '어긋남'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기억은 당신을 붙들지 못하고, 이 세계의 질주를 멈추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자의 슬픔. 그것이 생의 비애다. 그래도 시인은 발랄한 시를 쓴다. 시인은 그것만이 남루한 생을 위로할 방법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