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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서적 다시 읽기] 너무 깊이, 너무 오래 감추지는 마세요!
이 책은 한국인 선교사제로서 처음으로 멕시코에 파견되어 유카탄반도에 위치한 캄페체교구 성 프란치스코 본당 공동체의 책임을 맡아 주님께서 허락하신 작은 체험과 깨달음을 모은 영성 에세이다. 문화풍토가 다른 나라에서 선교사제의 삶과 그 신앙, 그리고 우리 신앙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해 말한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40도가 훨씬 넘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가정방문을 마치고 성당으로 돌아오는데 말없이 걸음을 옮기는 두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렇게 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 축제인가?”라고 말한다. 그 소명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고개가 숙여진다. 하느님과의 더 깊고 성숙한 만남을 위해 잠시 하느님을 마음속 어느 조용한 방에 꽁꽁 숨겨두신 형제자매님들과 내가 신부가 되어 어린 시절 가장 무서워했던 뱀과 뱀들의 땅(캄페체는 뱀을 뜻하는 ‘아킴’과 진드기를 뜻하는 ‘페츠’에서 기원된 지명이다.)에 와서 사목을 하고, 형의 야구 글러브가 탐이나 그걸 사려고 오랫동안 비자금을 모아 아무도 모르게 쥐가 다니는 천장에 너무 깊이, 너무 오래 감추었다가 흔적도 못 찾고 잃어버린 쓰라린 추억을 나누고 싶다고 하였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사제의 삶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이라는 필연을 앞에 두고 좀 더 자연스럽게 인생의 희로애락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죽음을 묵상하면서 살아가란다. 장례미사를 집전하면서 자녀들에게 “마지막으로 관 뚜껑을 열어젖히고 아버지의 눈, 코, 입, 그리고 나머지 모습 하나하나를 잘 새겨 놓으라고 이른다.” 얼마나 절실한 가르침인가. 냉담으로 장례미사를 거절한 그곳 사제들에게 “죽음 앞에서 소속이 뭐가 그리 중요하고, 냉담 몇 십 년 한 것이 뭐 큰 걸림돌이 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식도 없는 선교사제 셋이 모여 자기가 키웠던 강아지 자랑에 열을 올리는 난감한 상황을 팔불출의 행진이라고 해학을 편다. 그리고 사제로서의 삶은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 안에서만 존재한다. 이 바깥에는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죽음이 우리를 기다릴 뿐이다. 살아 있을 때 해야 할 그 무엇을 묵묵히 실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감추어 놓은 하느님을 찾는 신앙인의 삶”
“일주일에 한 번쯤이라도 우리의 영혼을 위해 성당에 앉아서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주님의 현존과 귀를 막아야 비로소 들을 수 있는 주님의 음성이 지금 당신을 기다리고 있고,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바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밝고 깨끗하고 향기로운 생각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깊이 박힌 욕심들을 들어내고 그 자리를 그대로 비워 두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신앙생활을 몇 십 년 하셨다는 분도, 1년 365일 평일미사를 거르지 않는다는 신자 분을 만나도 마음을 잘 다스리는 분들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그리고 “몸에서 나는 냄새 말고 삶에서 나는 냄새도 있다고 한다. 언행이 바르고 단아하여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행이 불일치하고 어지러워서 말할 때나 행동할 때마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반성하란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영혼을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마음공부를 어떻게 하고, 우리 언행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기꺼이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니 만큼 다음의 부정의 방법론인 세 가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가라고 한다. 첫째,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하지 않는 것. 둘째,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하지 않는 것. 셋째, 갖지 않아도 좋을 것을 갖지 않는 것. 이것을 좌우명으로 삼아 실천한다면 단순하고 경쾌한 삶을 살아가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나를 버리는 것이 신앙이라고 했다.
“사랑을 설명한 글”
중학교 1학년인 몬세는 주교관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따라와 자주 일을 돕는다. 병으로 집에 계신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맛있는 음식의 유혹을 참아내고 자기 몫인 소시지와 소고기를 소중하게 싸서 아버지께 갖다드린다. 비닐봉지 안에서 심장처럼 뜨겁게 살아서 펄떡이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죄를 짓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그 지은 죄에 대해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느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회와 용서가 필요하단다.
판치토 노신부님이 죄인임을 자처하며 젊은 사제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느님의 용서와 도움을 청하는 고해의 모습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없는 감동과 배움을 얻었다고 했다. 또한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을, 내 남편과 다른 사람의 남편을, 내 아내와 다른 이의 아내를, 내 아이와 다른 이의 아이를 절대로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비교하는 순간 공정치 못한 기준에 따라 그릇되게 우월이 가려지게 된다. 비교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훨씬 부드럽고 풍요해진다고 하였다.
어느 날, 구걸하는 늙은 여인이 햄버거를 받아들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바카디(사탕수수를 증류해서 만든 독한 럼주의 일종) 한 병만 사 달라.”고 했다. 여인은 술의 힘으로 연명하는 것 같아서 “술은 절대 안 된다.”고 말은 했지만 “추워서 도저히 잠을 못 잔다.”는 말에 걸려 별 생각을 다 하다가 한 병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다가 끝내 주지 못하고 돌아서면서 “주님!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여쭙는다. 인간으로서의 어려운 고뇌 끝에 내린 최후의 결정이 아니었을까? 선교사제의 삶이 어찌 쉬우랴. 사랑과 연민으로 떠난 수난과 죽음의 여행은 빈 무덤처럼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우리 마음에서 부활로 이어진다며 한마디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떠나라!(루카 10,3 참조) - 《너무 깊이, 너무 오래 감추지는 마세요!》, 최강 신부 지음, 가톨릭출판사 펴냄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내 마음의 도덕경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말씀이 미래형도 아니고 과거형도 아니고 지금 바로 현재진행형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내 마음의 도덕경」을 통해서 또다시 이 말씀을 듣는다. 도(道)는 무엇인가? ‘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즉 도는 모든 것을 존재의 지평 안에 실어내는 가장 크고 가장 근본이 되는 바탕으로써 길이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마땅히 따르고 걸어야 할 법칙으로써 길이다. 도는 우주 만물의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생명력이다. 도는 생명 중의 생명, 모든 사물에게 생명을 부여해주지만 자신의 생명력은 고갈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다. 이 길과 영원한 생명을 체득하여 알고 따르는 것이 바로 최고의 앎이며 진리다.’라고 「내 마음의 도덕경」 저자 김일권 신부는 적고 있다. 이 말씀에 공감을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고 수도자인 나에게 있어서 도는 예수님이시다.
이 놀라운 동양적 사유를 다시 대하면서 어쩌면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사는 ‘우리’에게 주는 간곡한 메시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치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데이터 전송속도가 더욱더 빠른 LTE(Long Term Evolution)가 기준이 되는 스마트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달리던 길을 멈추고, 보던 것도 끄고, 마음을 청정하게 비우는 수양공부를 해보자고 초대하는 부르심인 것이다.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갈 수 없다고, 마음이 무뎌져서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변명은 부끄럽게도 통하지 않는다.
「도덕경」은 다양한 문화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번역본을 가진 책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양에 250여 종의 번역본이 있었다고 하니 지금은 거의 300여 종에 가까울 것으로 짐작된다. 서양의 많은 철학자, 문학가들이 「도덕경」에서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수양공부에 힘썼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최근에 와서 여성학, 경영학, 심리학, 성경, 정치학, 인간학 등의 영역에서 「도덕경」을 접목하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가장 관심있고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생태적 감성과 영성, 그리고 힐링을 요구하는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도덕경」에 담긴 철학 사상을 재해석하여 우리에게 쉽게 소개하고 있다. 갓난아이, 돌풍, 소나기, 발꿈치, 수레바퀴, 항아리, 흰 실, 통나무, 활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을 철학적 소재로 삼아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유세계로 이끌어 주는 「도덕경」의 매력을 저자는 영성과 성경을 곁들여서 우리에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구성이 아주 탄탄한데 「도덕경」의 목차를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도덕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또 장자나 영성의 대가들의 사상과 함께 진정한 도와 길, 덕, 무위 등을 소개하며 마지막에는 삶의 진지한 성찰이 묻어나는 자신의 인생과의 접목이 돋보인다.
도를 아십니까? / 청정한 빈 마음과 득도 / 섬김과 살림살이를 위한 무위 / 우주의 꼴과 인생의 멋 / 사색의 길에서 만난 내 자신 / 도덕경 형성에 얽힌 이야기 / 도덕경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런 구성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먼저 ‘위대한 길’인 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안정되고, 신은 하나를 얻어서 영묘하고,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서 채워지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생겨나고 자라며, 통치자는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한다.” 여기서 하나는 궁극적 실재인 ‘도’를 가리킨다. 도를 근원적 생명력으로 보고, 도에서 모든 사물이 작용하고 생동하는 생명의 힘이 유래한다고 보는 것이다.
청정한 빈 마음을 위한 도 닦음의 길에 대한 가르침은 얼마나 심원한가? “지식추구의 길은 날마다 더하고 쌓아가는 것이며, 도 닦음의 길은 날마다 덜어내고 없애가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에 이르게 된다.” 감관과 이성의 상호작용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일들의 축적과는 달리 덜어내고 없애가는 자기 비움의 길은 수양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이 깊이를 깨닫고 실천할 혜안을 가진 벗들은 얼마나 될까? “아직 염색되지 않은 흰 실과 아직 가공되지 않은 통나무처럼 본래 그대로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헛된 생각과 헛된 욕망을 줄인다.”는 말에서 우리가 무심결에 사용하는 ‘소박(素樸)’이라는 단어는 소가 원래 가공되지 않은 흰 실을 가리키고 박은 가공되지 않은 통나무를 가리킨다니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복명 곧 ‘참된 생명활동의 회복’을 선택하길 바라는 노자의 초대를 읽을 수 있다. 이는 「도덕경」 저자가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자연’, 곧 스스로 그러하고 본래적인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절대자와의 만남이나 어떤 궁극적인 실재와의 합일, 그리고 어떤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비워 지식과 물질적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인의 경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동서의 종교나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가르침인 것을 「도덕경」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우리 인간이 소중히 간직하고 기억해야 할 삶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세 가지 보물’이었다.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잘 지키고 보존한다. 첫째는 자애로움이고, 둘째는 검소함이며, 셋째는 세상에 처함에 있어 감히 잘난 체하여 앞에 나서려 하지 않음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은 고통이나 어려움, 두려움을 견뎌내는 용기만이 우리의 사랑이 참인지 드러내 준다.
정말 주옥같은 말씀들이 마음을 건드리고 회오리바람처럼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이 책의 가르침을 소개하기엔 지면이 너무 작다고 할 수밖에….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말하는 도덕경의 저자를 통해 창조주 하느님을 만나러 떠나보자.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말을 들을 때 의미가 다른 두 가지 해석을 해볼 수 있다. 하나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사건 사고로 혼란을 가져오면서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 또 하나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큰 은총이 주어져 그저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 때이다. 모든 것이 공짜처럼 거저 주어진 은총 앞에서 감읍해서 드리는 저자의 고백은 후자이다.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일어난 엄청난 일 앞에서 아주 겸손하면서 큰 사랑으로 세상을 품어 안은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책을 읽었을 때 진정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그에게서 발견하면서 ‘아, 우리나라에 어디 이런 분 없을까?’ 하고 고개를 돌려보던 일이 엊그제 같다. 요셉의원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를 예수님처럼 돌보던 선우경식 박사가 하늘나라로 가시던 날도 또 하나의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는구나 하고 한편으로 마음 아팠던 것은 남아있는 그의 손이 아직도 필요한 사람들을 보면서이다. 그런데 반갑게도 여기 또 하나의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책을 만났다. 바로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책이었다.
가톨릭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가톨릭을 소개하면서도 감동을 주고, 재미까지 있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는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우면서도, 어느 사이 그 속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으며, 또 가슴이 뜨거워져 함께 눈시울을 붉히는 감동을 안겨주는 책이다. 그래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것은 저자 안득수 박사의 삶과 신앙을 이끌어 오신 분이 바로 성부·성자·성령이신 성삼위 하느님임을 알게 해주는 진정성 있는 신앙체험기이기 때문이다.
국립대학교 부속병원 병원장이 될 때까지 그저 평범한 신앙인이자 의사였던 저자는 하루 아침에 병원장이 되면서 성경을 그저 좋은 책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말씀이 생생이 살아 움직이면서 쑥쑥 굴러 들어오는 체험을 하게 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실험과 통계로 입증하고, 수천 수만 번 되풀이된 경험을 차곡차곡 정리한 의학에 기초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학도인 그에게 종이에 인쇄된 성경 속 글자가 왜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지 근거를 대며 설명해보라면 속수무책 설명할 길이 없을 터이지만, 그 때의 그 떨림과 움직임이 너무도 생생하고 분명했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마치 파스칼이 요한복음 17장을 읽다가 너무도 강렬한 성령체험을 하고 신앙고백문을 쓰지 않을 수 없었듯이 그의 성령 안에서의 삶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병원장이 된 후 처음 맞이한 주일의 독서 이사야서를 그의 좌우명으로 삼는 모습에서, 또 그것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저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교구의 성령쇄신봉사회 회장으로 27년 동안이나 봉사한 그에게 일어난 수많은 주님의 섭리와 은총에 대한 확신은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그가 일하는 병원에서 성모님을 모시고 몇 안되는 신자들이 모여서 하는 기도모임은 점차로 사람들을 감복시키고 종교집회라고 감시하던 사람들마저 가톨릭 신자로 만들게 하는 그의 참 신앙의 실천적 삶은 이미 교구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정신적으로나 영적, 육체적으로 아픈 이들이 찾는 사람이 되었고 도움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자신의 손을 먼저 내밀어 물리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영적인 치유까지도 해주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도 우연처럼 보이고 해결되는 것도 정말 절묘하지만 그곳에는 참으로 주님의 섭리가 개입하고 있음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사건은 위기가 닥칠수록 더욱 하느님께 의지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그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 그 유명한 전주의 전동성당이 1989년 백주년을 맞았고 그 전 해에 그는 사목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성전 2층 회랑에서 불이나 귀한 성당의 천장과 지붕이 다 타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망연자실 모든 신자들이 눈물과 걱정을 전화위복으로 바꾼다. 100년 성당의 낡은 곳을 손보는 대대적인 개선 보수작업을 위해 뛰어다니던 그에게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놀랍게만 보인다.”는 시편의 말씀이 그대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너무 가난한 의대생이 천주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려고 세례를 받았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전교의 큰 일꾼으로 쓰셨다. 완고한 유교집안이었던 그는 효심 지극한 장남이었다. 할머니를 위시해서 집안의 어른들을 주님께 이끌고 가정을 성가정으로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여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종교의 벽을 넘어 그가 진심으로 베푼 사랑은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현실에서 그대로 살았던 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삶을 보여준다. 병원에 실려 온 환자들, 특히 죽음을 앞둔 이들이 그의 사랑과 진실한 진료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세례를 받고 하늘나라로 떠나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깊이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랑과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그는 죽어가는 환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임종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는 성바오로복지병원에서 일하며 환자가 인간으로서 마지막 순간을 잘 정리하고 떠날 수 있도록 동반해 주는 영혼의 의사로 일한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을 하느님께 데려다주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오는 사람들을 주님의 현존을 일깨워주는 수호천사로 보면서 기도한다.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님, 인자하신 주님께서 오늘 저희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저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소서. 아멘.”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아주 특별한 순간
새벽 5시 40분, 새벽미사를 가기 위해 시내 한복판에 있는 수녀원을 나서면 새벽을 맞이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가장 먼저 난장판이 된 거리의 쓰레기를 묵묵히 쓸어 담는 미화원 아저씨를 만난다. 그분들의 노고를 주님께 맡겨드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토요일 새벽이 되면 거리는 아직도 취기가 가시지 않은 많은 남녀 청년들로 붐빈다. 그 거리는 더욱 각종 쓰레기가 난무한다. 그 젊음의 뜨거운 피는 갈 곳이 없어 추한 새벽 풍경의 일부가 되는 이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텅 빈 마음과 느린 발걸음에서 절망과 만난다. 어디에서도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순간의 젊은 혈기려니 하면서도 갈수록 늘어나는 숫자를 보면서 청년들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아, 이럴 때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확인시켜준 책, 이때 만난 책이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은 우리를 그분의 자녀인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자캐오를 죄인이자 세관장으로 보는 우리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캐오의 이름을 부르시고 온전한 시각으로 바라보시는 바로 그 예수님이 그 청년들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한없는 연민과 기도의 마음이 되는 까닭이다. 그들 자신이 존중심을 가지고 자신을 대한다면 언젠가 그들의 삶도 변화될 것이고 예수님을 만날 것임을 희망한다. 마치 천 원짜리 돈이 아무리 구겨져도 그 가치라든지 정체성이 어디로 달아나지 않듯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가 하느님께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당신의 인장이 새겨진 우리는 하느님 눈에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죄에 걸려 넘어져도, 구겨진 돈처럼 엉망진창으로 삶이 구겨져도 우리는 여전히 가치를 지니고 있고 하느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하느님의 소중한 존재이고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기쁜 소식인가!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평판에 너무나 쉽게 좌우되고 비판이라도 받을라치면 부평초처럼 흔들리고 거품처럼 사그라지기 쉬운데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근본, 원천이 필요하다고 한다. 삶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초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치유피정을 지도하는 저자 안토니오 신부는 자신이 체코에서 경험한 것을 들려주면서 우리의 희망을 일깨우고 있다. 열세 살에서 서른 살까지의 청년 300명이 피정에 왔는데 그중 250명 정도가 마약을 하거나 약물중독 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다시 말해 삶이 중간에 멎어버린 사람들이었단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로….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15년 만에 마약을 끊은 청년, 어머니와 화해한 딸 등 예수님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 것을 체험한 사람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이 기적의 비밀은 하느님 말씀과 성사에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교회에 다니면서 삶에 변화를 못 느끼는 것은 마치 뚜껑 닫힌 병과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닫힌 병뚜껑을 열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또 혼자서 열 수 없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닫힌 뚜껑을 열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해야 한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지향에 대해 새삼 강조하는 것이 반가웠다. 지금 모바일(휴대폰)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매일 기도지향을 바치며 9일 기도(54일 동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지향을 바치는 것은 작은 행위이지만 주님께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 특히 매일 미사 중에 주님의 잔을 들어 올릴 때 성작과 함께 그 지향들을 들어 올리는데 믿음을 지니고 드리는 기도지향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모두 헤아려지기 때문이다. 믿음 안에서 투자를 해야 한다고…. 그것은 우리에게 위기가 닥칠 때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과 함께 머물렀던 시간은 영원히 남는다. 그 시간을 보낸 사람은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세상이 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질주를 한다. 특히 성공한 사람 앞에는 그 타이틀이 있다. 타이틀은 지나가는 것, 언젠가는 끝나는 것, 그래서 이 타이틀은 실망과 씁쓸함을 준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는 타이틀, 예수님의 제자, 하느님의 자녀라는 타이틀은 결코 실망을 주는 법이 없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분, 군중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다리시는 그분께 가기만 한다면. 안토니오 신부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고백록」에서 고백한 그 유명한 말에 한 문장을 덧붙인다.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님 안에 쉬기까지 우리 마음은 찹찹하지(평온하게 가라앉지) 않삽나이다.”, “내 마음 안에서 쉴 곳을 발견할 때까지는 하느님, 당신도 쉴 수가 없었나이다.” 아버지도 아들을 만나기까지 쉬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문장을 만나는 순간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압도되고 감읍하는 전율을 느꼈다. 그렇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랑하시나이까.
성경 한 권만 들고 치유 피정을 지도하는 안토니오 신부는 확실히 치유의 은사뿐만 아니라 말씀의 은사, 지식과 지혜의 은사를 받은 분 같다. 이 책에 실린 25개의 피정 강론은 쉽고도 이해가 빨리 되지만 그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영성의 핵심과 정곡을 찌르는 그 말씀은 우리를 주님의 사랑과 회심에로 초대한다. 특히 용서와 고해성사에 관한 부분은 얼마나 시원시원한지, 늘 무거운 돌이 가슴 근처에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용서가 되지 않을 만큼 큰 죄는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과 희망인가. 그는 우리가 삶에서 결코 예수님과 떨어지지 말도록 강력하게 요구한다. 서품 받은 지 1년 만에 피정지도라는 소임이 떨어졌을 때의 두려움을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서 완전히 해방된 체험에 비추어 우리를 그분께 완전히 맡기도록 인도한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
벌써 여름의 기운이 나무들을 휘감고 있는데 그 푸름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겨울이 온 듯 꿈처럼 눈 덮인 팔공산과 비슬산을 보고 있자니 올 봄 유난히 봄을 보내기 싫어 떨어지는 꽃잎도 아쉬워하던 한 사람이 여기 있구나 싶었다. 매화향기에 취할 무렵이면 조선시대의 화가 고담 전기의 “매화초옥도” 속의 벗을 찾아가는 선비인양 그렇게 눈과 낙화 분분한 그리움에 젖어 본다. 그리고 습관처럼 책을 손에 잡는다.
이번에 나를 책속의 만남으로 이끄는 책은 그림이 있는 에세이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이다. 사람은 나무를 키우고 나무는 사람을 키우며,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더니, 오호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 있었다. 김천 평화동 출신의 김연수 소설가는 성당마당에서 큰 나무를 배경으로 전쟁놀이 하다 잠든 이야기를 어찌나 맛깔스럽게 써놓았는지 최근에 평화동성당을 다녀와서 그런지 몰라도 책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한 번쯤은 겪었던 이야기여서 더 공감을 하게 되었으리라. 그리고 성당마당에 있던 큰 버드나무에서 느꼈던 평화로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누구에게든 내가 조금이라도 따뜻한 사람일 수 있었다면 그건 평화동성당의 버드나무가지 덕분이리라.” 아, 사랑스런 그 버드나무가 아직도 건재한지 확인하지 못했던 무심함이 이리 안타까울 수 있을까.
남아프리카의 희망봉!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의 동쪽 끝 나라까지 온 선교사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희망봉에서 느꼈던 단상들은 얼마나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주든지 내심 고맙기까지 하였다. ‘희망’은 그처럼 우리 시대의 아픔과 상실들을 보듬어 안을 단어이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엄청난 고통과 절망이 지나간 상태를 뜻하는지도 모른다며 그때야말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고통과 절망이 지나간 뒤에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더 밝아지고 환해진다며, 참으로 넘기 힘든 봉우리를 ‘희망봉’이라고 옛사람들이 부른 이유를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에서 찾는다.
“감옥에 다녀온 뒤로는 원할 때 산책할 수 있는 일, 가게에 가는 일, 신문을 사는 일, 말하거나 침묵할 수 있는 일 등 어떤 작은 일도 고맙게 생각했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단순한 일이었다.” 사소한 일상의 일들이 고맙게 느껴질 때 삶이 늘 감사로 채워지고 만나는 사람마다 괜히 웃어주고 싶은 그 쉽지 않은 길을 만델라는 감옥에서 체험한 것이고 우리는 책을 통해 발견하니 그 얼마나 공짜의 인생인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선현들은 말했다. 책은 지혜의 샘이다. 길과 지혜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처럼 소설가 김연수는 신앙과 삶과 역사를 어떻게 하면 이어줄까 하고 글을 쓰고 있다.
소설가 오정희는 행복이라는 주제를 주로 다루면서 만났던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고단함을 풀어놓게 하고 나누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가 쓴 글에서 금아 피천득 선생은 봄이 마흔 살을 넘긴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이 기적이라며 거칠고 무디어진 마음의 감각을 신선하고 경이롭고 따뜻하게 열어주는 봄, 새 생명의 고마움을 기도라는 주제로 적어 내려간다.
소설가 공선옥은 특유의 수더분한 필체로 세상의 부조리함과 이 부조리함에 젖어 냉정하고 차갑게 변한 인간사를 놓치지 않고 비판적 관점으로 적고 있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경외심과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 세상을 살리는 것임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그러면서 남의 고통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그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을 건넨다. 아름다운 풍경이란 사람이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말을 건네고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라고 그 자리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소설가 이기호는 자신이 고등학교 졸업식 때 받은 명함 한 장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며 우리를 그 시절로 들어가게 한다. 대학도 떨어지고 희망도 없어지고 선생님에 대한 미움이 가득해서 선생님의 오토바이에 본드 칠을 하고 졸업식장에 들어갔는데 그 선생님이 유난히 말썽꾼 제자들에게 명함을 주시며 무슨 일이 생기면 30분 이내에 달려가겠다고 하셔서 본드를 지우면서 사랑의 눈물을 흘렸던 감동에로 초대하고 있다.
소설가 이명랑의 글은 사람 사는 향기를 잔뜩 풍기면서 주위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맛깔스러운지 저런 이웃과 함께 살아보고 싶다고 느낄 정도이다.
시인 조창환은 시인답게 죽음과 삶의 문제를 화두로 그리움과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회고는 우리를 다시 그분 곁으로, 그분 마음에로 모이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더라고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소설가 한수산은 여행과 만남에 대해 아름다운 필체로 다가온다. 만남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가. 서로의 영혼이 얽히는 순간과 순간의 고리들이라고 여러 만남을 소개하고 있다.
산에 가면 여러 나무들이 어우러져 각기 자기만의 개성과 아름다움으로 도저히 치우침을 가지지 못하게 하듯이, 이 책에 있는 작가들의 36편의 글들은 어느 한 편도 더도 덜도 없이 그림과 어울림이 아름답다. 여섯 명의 소설가, 그리고 한 명의 시인이 쓴 글을 예술로 소통하는 메시지로 세상에 꿈을 건네며, 자연과 예술의 융합을 실천하고 있는 이순형 화가가 설렘이 있게 책에 담고 있어 읽는 재미만 아니라 보는 재미도 더하고 있다.
책은 이처럼 쉽게 지혜를 만나서 고개를 주억거리게도 하고 밑줄도 긋고 싶고 다시 추억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또한 30년 동안 대구의 신앙인들과 함께 걸어온 「빛」잡지는 얼마나 많은 길과 지혜를 건네고 빛을 비추었을까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숭고한 동행이 내내 주님께 가는 길에 빛이 되어주길 희망하며 축하와 감사를 드리는 마음이다.(*본문그림 : 이순형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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