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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나이다] (26) 야고보와 요한 사도
예수님의 믿음직한 제자들, 야고보와 요한
야고보와 요한 사도는 베드로·안드레아와 함께 예수님의 첫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어머니 살로메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입니다.(마태 27,56; 마르 15,40; 16,1 참조) 그들은 베드로·안드레아와 함께 고기잡이하던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로 삼기 위해 찾아갔을 때 그들은 아버지와 삯꾼들과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마태 4,18-22; 마르 1,16-20) 아버지가 삯꾼을 부릴 정도이고, 어머니가 예수님의 시중을 들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갈릴래아 지방 일대를 따라다닌 것(마태 27,55-56)으로 보아 처가에 얹혀 살던 베드로에 비해 경제적으로 집안 형편은 더 나은 듯합니다. 살로메는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아주 현실적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라고 거침없이 청탁했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신 것처럼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주십니다.(마르 3,17) 우리말로 ‘천둥의 아들들’이란 뜻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이름을 그들의 격정적인 기질을 드러낸 표현으로 해석합니다. 실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라는 과격한 말을 내뱉을 만큼 성격이 불같았습니다.(루카 9,51-56)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타볼산에서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는 것을 목격한 제자입니다.(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 또 주님께서 수난 전날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마태 26,36-46; 마르 14,32-42; 루카 22,39-46),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마르 5,35-43) 이들 셋만 따로 데려가셨지요. 이처럼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의 가장 믿음직한 제자였을 뿐 아니라 가장 사랑받은 제자였습니다.
대 야고보
형인 야고보는 주님의 사도 가운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대(大) 야고보’라 부릅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셨을 때 함께 있었습니다.(요한 21,2) 또 그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의 이층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함께 성령이 오시길 기도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는 유다 이스카리옷을 대신할 마티아를 사도로 뽑는 데 있었으며,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사도 1─2장) 그는 스테파노의 순교를 시작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할 때에도 다른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사도 8,1-2) 그는 유다인의 환심을 사려고 교회를 박해했던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임금에 의해 44년께 순교합니다.(사도 12,2)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 그리고 스페인에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다 유다 지방으로 돌아왔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시신은 그의 제자들이 스페인 서북부 지방 들판에 매장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무덤이 무슬림들의 침입으로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9세기 무렵 별빛이 쏟아지는 들판의 한 동굴에서 발견됐고, 그 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곳이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입니다.
요한
요한 사도는 베드로·안드레아·형 야고보와 함께 언제나 첫 자리를 차지합니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시몬과 야고보에 이어 세 번째(마르 3,17)로,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에서는 베드로·안드레아·야고보에 이어 네 번째(마태 10,2; 루카 6,14)로 나옵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 다음으로 요한이 언급됩니다.(사도 1,13) 이는 요한이 열두 사도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을 잘 드러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총애를 받은 사도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지시에 따라 베드로와 함께 파스카 음식을 준비했고(루카 22,8),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마지막 만찬을 했습니다.(요한 13,23; 21,20) 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기십니다.(요한 19,27) 아울러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에 제일 먼저 무덤으로 달려갔고(요한 20,5),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알려줬습니다.(요한 21,7)
요한은 형 야고보와 달리 겸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쓴 복음서에서 단 한 번도 ‘요한’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아울러 요한이 주님의 사랑을 얼마나 확신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성령 강림 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교회 지도자로 전면 등장합니다. 그는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서 불구자를 고쳐주고(사도 3,1-10), 최고의회에서 담대한 설교로 복음을 전합니다.(사도 4,1-22) 이에 바오로 사도는 베드로와 야고보·요한 사도를 “교회의 기둥”(갈라 2,9)이라고 인정합니다.
요한 사도는 파트모스 섬에서 유배 중에 묵시록을 썼고(묵시 1,9), 유배에서 풀려난 후 에페소에서 성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트라야누스 황제 치세인 100년께 선종했다고 합니다.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전구(Intercessiones)
감사기도 중 ‘전구’(轉求) 부분에서 사제는 이 세상을 떠난 이들과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청합니다. 전구 기도의 대상에는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까지 모두 포함되는데, 이로써 미사가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성사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감사기도 제2양식의 전구는 짧지만 매우 훌륭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엔 교회를 위한 기도, 죽은 이를 위한 기도, 산 이를 위한 기도와 이에 연관된 성인들을 기념하는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① 교회를 위한 기도
“주님,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를 생각하시어, 교황 ( )와 저희 주교 ( )와 모든 성직자와 더불어 사랑의 교회를 이루게 하소서.”
사제는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우리 교회가 사랑으로 일치하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 보편교회와 지역교회를 이끄는 교황과 주교를 기억합니다. 한편, 이때 언급되는 신분은 오직 성직자이지만, 이는 성직자가 교회를 대표한다는 전통에 따른 표현일 뿐, 의미상으로는 수도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전체 교회를 뜻합니다.
② 죽은 이를 위한 기도
“(오늘) 이 세상에서 불러 가신 주님의 종 ( )를 생각하소서. 그는 세례를 통하여 성자의 죽음에 동참하였으니 그 부활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에서는 특별한 고유 전구 기도를 덧붙일 수 있습니다. 또한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뿐 아니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 곧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서 비록 주님을 몰라 신자가 되진 못했지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다가 죽은 이들이 분명 주님의 자비를 누릴 거란 희망이 이 기도에 담겨 있습니다.
③ 산 이를 위한 기도와 이에 연관된 성인들을 기념하는 기도
“저희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으로부터 주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그 배필이신 성 요셉과 복된 사도들과 모든 성인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소서.”
끝으로, 지금 살아있는 우리가 주님의 자비를 입어 이미 천상 행복을 누리는 성인들과 한 공동체를 이루고 영원한 삶을 누리며 주님을 찬양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성인들 가운데선 성모님이 제일 앞에 나오고 그다음 성 요셉, 이어서 사도들과 모든 성인 순으로 언급됩니다. 참고로, 교황청 경신성사성(현 경신성사부)은 2013년 5월 1일에 발표한 교령에서 감사기도 제2, 제3, 제4양식에 “그 배필이신 성 요셉과”라는 구절을 넣도록 하여 현재 감사기도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교회, 하느님 백성의 친교] (13) 교회, 다양한 표상들 안에 담기다, 「교회헌장」 6항
「교회헌장」 5항에서 하느님 나라는 성사로서의 교회가 드러내는 실재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성사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느님 나라의 계시를 직접이 아닌 표상들로, 곧 유목이나 농경 생활, 건축이나 혼인 등 우리의 삶에서 접하게 되는 표상들을 통해서 제시합니다. 「교회헌장」 6항은 하느님 나라의 성사인 교회의 본질을 그러한 다양한 표상들로 소개합니다.
첫째, 교회는 ‘양 우리’ 혹은 ‘양 떼’로 표상됩니다. 유목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표상으로, 양 우리의 유일한 ‘문’이며, 양들을 기르시고 이끄시는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요한 10장 참조).
둘째, 교회는 하느님의 ‘밭’입니다. 밭은 농경 사회의 표상으로 밭의 ‘농부’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그 밭을 ‘포도밭’으로 선택하셨습니다(마태 21,33-43 참조). 참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는 가지인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며,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요한 15,1-5 참조).
셋째, 교회는 하느님의 ‘집’입니다. 그 집의 ‘머릿돌’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맞아들이지 않았지만, 버려진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마태 21,42 참조). 하느님의 집인 교회가 그 기초 위에 사도들을 통해서 지어졌고, 그 기초 덕분에 교회는 견고한 건물이 됩니다(1코린 3,11 참조). 또한 건물의 개념에서 하느님의 거처, 하느님의 장막, 지성소로서의 성전, 거룩한 도읍, 새 예루살렘 등이 교회의 표상이 됩니다.
넷째, 교회는 ‘어린 양의 신부’입니다. 신랑인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바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기르고 보살피시며, 교회가 그리스도와 깨끗한 몸으로 결합하여 사랑과 신의로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에페 5,21-33 참조). 또한 영원한 천상 은혜로 교회를 채워 교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떨어져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천상 것을 추구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을 때까지 교회의 생명은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교회헌장」이 이런 표상들을 통해서 강조하고자 하는 교회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사람들 사이의 일치, 그리고 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 「교회헌장」의 초안은 6항에 나오는 여러 표상들의 언급 없이 “그리스도의 몸”(7항)이라는 표상만을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6항의 표상들은 각각의 미비한 부분을 서로 보완하면서 교회의 본질을 풍부하게 드러냅니다. 교회는 다양한 표상들 안에 담겨있습니다.
[교회의 언어] Seminarium(세미나리움)
“米”(쌀 미)자를 파자하면 木(나무 목)에 八(여덟 팔)자가 두 번 들어가는데, 이는 쌀 한 톨을 얻기 위해서는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쌀 한 톨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가르침이 글자에 담겨있습니다. 쌀 한 톨을 얻기 위한 긴 노력의 첫 과정은 못자리에 볍씨를 뿌려 모를 기르는 일입니다.
모를 기르는 못자리를 라틴어로 “Seminarium”(세미나리움)이라고 합니다. 씨앗을 뜻하는 “Semen”을 어원으로 가지는 말로써 “Seminarium”은 교회의 봉사자인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를 뜻합니다. 교회의 못자리가 바로 신학교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못자리에서 모가 자라나지 못하면 그 어떤 수확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사제를 얻기 위해서는 여든여덟 번의 손길보다 훨씬 더 큰 관심과 사랑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소 주일을 맞아 교회의 심장이자 못자리인 “Seminarium”(신학교)에서 성소자들이 하느님이 부르심에 성실히 응답하며 잘 자라날 수 있도록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가톨릭 신학]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
루카복음 1장에 예수님 탄생 과정이 묘사됩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28)라고 인사합니다. 당시 일반적 인사는 ‘샬롬’(shalom, 평화가 너와 함께!)인데, 이례적으로 그리스식 인사말인 ‘카이레’(chaire, 기뻐하여라)라 인사합니다. ‘카이레’는 라틴어 ‘아베’(Ave)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 탄생 순간 천사는 왜 이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이는 구약의 스바니아서 3,14-17을 인용한 것입니다. “딸 시온아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주 너의 하느님,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시온’ 혹은 ‘시온의 딸’은 ‘계약의 궤’를 모신 장소이자 동시에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한가운데’ 계시기에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이 말씀이 마리아에게 적용됩니다. 마리아의 모태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니 ‘기뻐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탄생 예고를 통해 마리아는 시온의 딸, 즉 주님이 계시는 ‘계약의 궤’가 되고, 마리아가 하느님 약속이 실현되는 백성이 됩니다. ‘기쁨’(chaire)과 ‘은총’(charisma 카리스마)은 어원이 같은 단어인데, 기쁨과 은총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주님이신 예수님이 마리아의 태 안에 머무르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한 이’입니다.
이어서 천사는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알려줍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 ‘예수’의 원래 발음은 ‘예슈아’(Yeshua)나 ‘예슈’인데, 이를 그리스어화해서 라틴어식으로 표기한 것이 ‘예수’(Jesus)입니다. 이는 당시 비교적 흔한 이름이었고, 구약의 위대한 인물인 ‘여호수아’나 ‘호세아’와 어원과 의미가 비슷합니다. 즉, ‘예수’는 ‘야훼는 구원이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탈출기 3장에 모세를 통해 계시된 하느님 이름이 ‘야훼’(JHWH)인데, 이 이름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요? 시나이산에서 알려진 하느님 이름은 이후 구약의 여러 인물과 사건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이라 알려집니다. 그리고 천사가 알려준 ‘예수’라는 이름은 야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결정적인 풀이이자 완성입니다.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시작된 하느님의 이름 계시가 예수님 이름 안에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기쁨과 은총과 구원을 얻고 싶다면, 모든 답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의 길, 진리, 생명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자 하느님이신 그분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셨고, 지금은 하느님 말씀 안에, 특히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10,9)
[“저 여인은 누구실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구원 사업을 이루신 자리였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온전히 전해지고, 모든 이의 죄가 용서받고, 하느님의 진리가 빛나며, 어둠이 밝혀지고, 사탄이 패배하며, 세상이 하느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자리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진리가 드러났고 우리 모두에게 전해졌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분, 어느 누구도 위협하거나 벌하지 않으시는 분, 다만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는 분이라는 진리가 십자가 위에서 드러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 홀로 하느님이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영원 안에서부터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내어주시며 당신과 같으신 아드님을 낳으신 분,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당신의 사랑 전부를 전해주신 분이라는 진리가 나타났습니다. 하느님 아드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지만 세상 위에 군림하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비우시어 사람이 되신 분, 아드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시고 인류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셨고, 당신의 자유로운 순종과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구원하신 분이라는 진리가 십자가 위에서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아드님의 사랑의 영, 한처음 심연 위를 감돌며 창조 사업을 이루셨고, 생명의 숨으로 사람을 생명체로 만드셨고, 거센 샛바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군대에서 구하신 분, 성령 하느님께서는 창조와 생명과 구원과 사랑의 영이라는 진리가 십자가 위에서 드러났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시고 전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수용한 마리아는 계약의 여인
하느님의 참 사랑이 드러나고 전해지는 자리, 하느님의 사랑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인간 편의 사랑이 요청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을 전하시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수용하지 않았다면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인이시여”(요한 19,26) 하고 부르셨습니다. 왜 어머니를 “여인”이라 하셨을까요?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과 혼인한 “여인”으로 여겼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이기에 호세아 예언자 이래 이스라엘 백성은 “여인”으로 불렸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마리아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카나의 혼인 잔치,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그분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때도 어머니 마리아를 “여인이시여”(요한 2,4) 하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이루실 새 계약을 생각하시며 어머니 마리아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여인”으로 여기셨던 겁니다. 성모님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하고 사람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주님의 계약을 충실히 받아들이고 응답하라는 권고였습니다. 시나이 계약이 맺어지던 그때, “주님께서 이르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탈출 19,8; 24,3.7) 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세 번 다짐한 것과 같았습니다.
계약이 맺어지려면 백성들 편의 수용과 응답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아래 계신 당신 어머니를 바라보시며 주님의 계약에 충실한 백성을 생각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계약의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의 생명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전하셨고,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응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주시며,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와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창세 1,20)가 되었듯,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받아들인 하느님의 생명을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영적 어머니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eis tà ìdia, 요한 19,27) 모셨습니다. 한국어 성경은 “타 이디아”(tà ìdia, 자기 것들)를 “자기 집”으로 번역했지만,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영적 재산, 신앙의 보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을 주셨고, 은총을 주셨고, 말씀을 주셨고, 성사를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평화를 주셨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당신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고,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님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였습니다.
탄생하는 교회에 함께하신 어머니 마리아
사도행전 1장 12-14절은 탄생하는 교회에 함께 계신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북돋우며 격려하셨습니다. 어떻게 침묵해야 할지, 어떻게 성령 하느님을 깨어 기다리고 맞이할지 알지 못하던 제자들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보며 기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당신께서 받아들인 하느님의 사랑을 제자들도 받아들이도록 이끌어 주신 겁니다.
제자들은 어머니 마리아의 도움을 받으며 성령 하느님을 맞이하였고, 어머니 마리아 역시 성령 하느님을 새롭게 맞이하며, “곰곰이 생각하[고]”(루카 1,29), “마음속에 간직하[던]”(루카 2,19) 예수님의 신비를 알아듣기 시작했습니다. 동정녀로서 어떻게 하느님의 아드님을 자신의 아들로 잉태하고 낳을 수 있었는지, 그 신비를 비로소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소년 예수님의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하신 도저히 알아듣지 못한 말씀도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하신 주님의 말씀은 마리아에게서 가장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신비를 제자들에게 전하며 그들이 하느님의 진리로 거룩해지도록 이끄셨습니다. 탄생하는 교회,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 제자들이 성령을 맞이하도록 북돋워 주셨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응답하며 하느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도우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오롯이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