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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9월, 스물네살의 나이로 조선 땅을 밟은 루비 켄드릭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개성시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아픈 아이들을 간호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 온 지 불과 9개월 만에 급성 맹장염으로 쓰러진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젊은 날 주님을 위해 헌신하려고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불모지, 은둔의 땅 조선을 향해 태평양 바다를 건너와 머나먼 조선 땅에서 희망을 가르치고 구원의 은혜를 보여주며 나라 잃은 백성, 신음하는 이들을 위로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사역을 해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죽기 전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이 곳에서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조선 땅에는 많은 꽃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지금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 켄드릭 선교사의 묘지 비석에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만일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주어진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한국에서 선교적 결실을 얻지 못하고 제대로 사역을 시작하지도 못했지만 그 여성선교사님이 보여준 것은 위대한 삶과 아름다운 죽음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 땅은 참 치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멋진 인생, 아름다운 삶, 건강한 생활 등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인생, 멋진 삶이 무엇인지, 참 건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채 아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진정한 인생의 의미, 아름다운 삶이 우리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시편 107편 19,20절입니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세상을 살릴 방법, 그리고 이 땅에서 치유받을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말씀 전체를 간단히 정의한다면 “오실 분에 대한 약속와 오신 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우리에게 주신 말씀 성경의 내용은 우리를 위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이사야 53장은 구약성경 내용 중 신약시대 오실 메시야를 예언한 가장 대표적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오실 메시야는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기 위해 오시는 분이시며 그 치유와 회복을 위해 자신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고난받으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오실 메시야는 고난의 종으로 오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종려주일을 맞이하며 이번 한 주간 고난주간 예수님의 희생을 묵상하며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 고난주간에 우리의 고난을 극대화하여 무슨 신앙의 단계를 성장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구속사역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약 6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수님을 예언한 본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깨닫고 그 분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를 위해 죽어주신 하나님의 어린 양되신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을 묵상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서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 첫째는 인간의 몸으로 겪으신 고난입니다.
이사야 53장 1절입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성취할 구원자 하나님의 종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기 600년 전 이미 주님에 대해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우리의 전한 것”이라는 말의 문자적 뜻은 “우리의 듣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사야 52장 7절에 나온 구원에 관한 소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12장 38절에서도 다시 인용됩니다.
요한복음 12장 38절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유대인 앞에서 기적을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보여주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못할 때 이사야 53장 1절 이 말씀을 인용하시며 예수님 자신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것의 성취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2장 38절 말씀과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 1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되고 구원메시지가 이 땅에 울려 퍼질 때 세상 사람들이 이 복음을 거부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구원메시지를 듣고 깨닫고 믿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전적 은혜라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 지식, 인간 노력, 인간 능력으로 구원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복음을 듣는다고 기적을 삶에서 경험한다고 모두가 믿음이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듣고 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긴 믿음이 우리를 메시야의 말씀을 듣게 만들고 메시야의 모습을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구원의 주인으로 오신 메시야는 이사야 53장을 통해 고난받은 여호와의 종인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사야 53장 2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예언하면서 그 분이 우리와 동일한 모습으로 오시는 분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실 메시야는 연한 순과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분은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나 아름다운 것이 없으신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연한 순’이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요네크’입니다. 직역하면 어린 나무, 묘목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뜻하는 영적 의미는 메시야로 오시는 분이 큰 권력과 명성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닌 완전히 힘을 잃은 패망한 이스라엘의 나약한 힘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의 의미를 살펴볼 때 패망한 다윗왕조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마른 땅’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치야’는 메마른 곳, 황무한 곳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실 때의 상태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가물고 메마른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정말 이스라엘 땅과 세상의 환경은 말씀이 없어 메말랐던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뿌리’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세레쉬’입니다. 영적 뿌리, 이스라엘의 뿌리를 의미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아브라함의 후손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사야 53장 2절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이 땅에 임할 것을 예언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 1절에 이것에 대한 정확한 성취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구원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보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님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윗 왕의 후손이기에 황금 마차를 타고 창검을 든 병사들이 호위하면서 구원사역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에 의해 통치받고 있는 망한 나라에서 아무런 힘도 없이 돈도 없이 연한 순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 2, 3절에 기록된 메시야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역자, 하나님의 종임에도 급격히 낮아지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실 구원자가 멸시받고 천대받고 버림받고 간고를 겪고 질고를 아는 것을 오늘 본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메시야는 보잘 것 없는 작고 연약한 순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묘사처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정말 비천한 상태로 낮아져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말씀의 예언과 성취를 모두 보면서 신구약 모든 말씀이 그래도 이뤄졌음을 확신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연한 순,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고운 모양도 없는, 풍채도 없는,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도 없는 상태로 구원자가 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대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구원자가 이 땅에서 마침내 구원 사역을 다 이루신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사야는 고난받으신 종 예수님을 선포하였습니다. 고난받으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철저하게 버림받고 외면받았습니다. 온갖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기꺼이 그 수모를 묵묵히 이겨내셨습니다. 왜냐면 오직 이 땅의 백성을 사랑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그 사역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신 예수님께 감사함으로 예배하시고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약하고 연한 순으로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사역을 완성하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얻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 둘째는 대접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고난이었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육체적, 정신적 온갖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들마저도 예수님을 배척하고 외면하면서 더 큰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 3절에 기록된 ‘멸시를 받아’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바자’라는 단어인데 거절, 배척, 업신여김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버림받고 외면받으셨습니다. 제자들까지도 배반하고 외면했습니다. 이런 외면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자신을 이 당에 보내신 하나님의 외면까지도 느끼면서 이 사역을 묵묵히 해내오신 것을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이 땅의 목회자와 성도들도 예수님을 외면하거나 모른 척 하며 예수님을 버리곤 합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이 좋은 척 하지만 교회 밖으로 나가면 전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예수님을 부인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보다 세상 권력, 세상 명예, 세상 부를 추구하며 예수님을 잠시 뒤로 미뤄둡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삶입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교회에 와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구원의 감격에 대한 이야기, 신앙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세상자랑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재력이 어떻고 권력이 어떻고 학력, 학벌이 어떻고 세상 삶을 자랑하며 시끌벅적합니다. 돈, 건강, 자녀, 직업, 명성이 항상 주된 관심사입니다. 세상 출세를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습니다. 최근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목회자들이 모여서 국회의원으로 누가 되었으면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정당을 비교평가하면서 여당이 어떻고 야당이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교인들이 모여서도 정치이야기로 인해 다툼까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앙인이라면서도 교회에서 복음과 신앙적 이야기보다 세상 얘기를 더 많이 하며 세상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는 교인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에서 예수님을 외면하고 버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을 외면하고 버리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본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살리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늪에 허우적거리는 우리를 고치시고 구원하시고 치유하시고 다시 살리시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만드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오셔서 온갖 외면을 당하시고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받으신 예수님을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당할 천대, 멸시, 구박을 우리 대신 받으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세상 피조물이 멸시, 천대, 구박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정말 진실된 회개로 이제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과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서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 마지막 셋째는 자신의 죄가 아닌 세상 모든 죄의 값으로 받으신 고난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 4절부터 6절까지 메시야가 받은 고난에 대해 묘사하며 참 사랑의 실천이신 메시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메시야가 당한 고난, 고통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닌 인간의 죄, 세상의 죄를 대신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말씀을 통해 우리는 메시야의 찔림이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메시야의 상함이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중 하나가 되셨고 신이신 그 분이 누추하고 약한 존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스스로 고통을 당하셨고 슬픔과 아픔과 저주 가운데 홀로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이런 고난을 받으신 이유, 이런 구속의 험란한 삶을 사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고 오늘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메시야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대신 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야가 징계를 받아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아서 우리가 치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 6절에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같이 읽겠습니다.
이샤야 53장 6절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우리의 죄문제를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방금 읽은 본문에서 “그릇 행하여”라는 말은 “길을 몰라 제 멋대로 살아가는 것”,“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죄로 물들어 있는 인간의 전적 부패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복된 길을 가기보다는 자기자신이 생각하는 길을 추구합니다. 그렇게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 스스로 구원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방법을 만드시고 온전하신 존재, 거룩하신 분을 우리 대신 죽어야 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사야 53장 6절에서 “우리는 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부인하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뜻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도 원래 각기 제 길로 갔던 존재입니다. 신약신학 박사이신 박윤선박사님은 “속죄사역과 창조사역을 비교해 보면 속죄 사역은 훨씬 위대하고 공들여 하신 것이다. 창조는 몇 날 동안에 하신 것이나 속죄는 창세 전부터 여러 천 년 경영하시며 계속하여 오시다가 필경 독생자의 보혈을 흘려 완성하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오실 메시야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이 세상에서 묵묵히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사야 53장 7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본문에 예언된 구원자 메시야는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의 모습입니다. 지금 읽은 본문 7절에 ‘도수장’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테바흐’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식용으로 사용할 짐승을 잡는 장소, 우리가 일명 ‘도축장’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장소입니다. 이 단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런 불평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모습은 유월절 제사에 제물로 쓰이는 어린 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제물된 어린양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회복이 이뤄진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을 정복하고 권력을 만들어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정복하는 사명을 주셨을 때 그 사명은 땅의 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회복 명령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정복사역은 수난과 형벌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대속제물되어 인간들이 받아야 할 죄의 댓가를 담당하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적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결국 이 땅에 오신 메시야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 구원을 성취하게 되었으며 온 세계에 존귀와 영광을 널리 알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의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 12절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범죄자를 위해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위해 기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잘못을 따지거나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그들의 죄를 해결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 속 죄의 문제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며 우리의 삶에서 참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지 말씀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적 사랑은 우리에게 엄청난 은총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구원을 온전하게 다 이루시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여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또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시며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만족시켰고 하나님께는 완전한 공의를 만족시켜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며 참된 치유와 힐링의 은총을 누리는 우리 인생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오신 구원자 메시야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 평화와 나음을 위해서 찔림과 상함, 징계,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예수에 대해 기쁨으로 맞이하지 않았고 그의 대속사역을 기뻐하거나 높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배척하며 멸시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들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현실문제만 신경쓰며 자신의 영적 문제에 대해선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하고 구원받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믿고 예수님께서 구원자 메시야되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시라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은 은혜입니다.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종려주일 거룩한 예배를 드리고 내일부터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하루하루 시간을 보낼 때 그리스도의 고난이 나를 향한 놀랍고 크고 깊은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이웃을 돕고 섬기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