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의 아침입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그러나 그분은
정작 외면 받는 왕이셨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당신의 생명을
이 땅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주려 오셨던 사랑의 왕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를 환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이 땅의 주인이
이 땅이 오셨을 때
대부분의 방들은
다 욕심과 분주함, 염려들로 가득차 있어
있을 곳 없는 주님은 마굿간에
말구유에 누인
아기로 오셨습니다.
정작 아기 예수를 영접하기 위해
준비되어진 제사장들도
그분의 오심을 외면했습니다.
보다 못한 안타까움이
동박사 3사람을 통해
잠자던 제사장들을 깨우는 기별을
보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 2:2)
그제사 그들은 700년전에 기록된
예언서 미가서를 펼쳐 읽습니다.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5-6)
그러나 그뿐
그들은 평화의 왕을 맞으려 출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보다 왕자리를 참된 왕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염려한 헤롯왕이 더 분주하고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그것은 그때나 이때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캐롤송은 환영하나
그들을 위해 생명을 주실
그리스도 예수는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선물을 안겨줄
산타크로스는 환영하나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안겨주실
예수 그리스도는 배척합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알지만
정작 이 세상을 주님의 탄생으로
둘로 나누어
기원전(Before Christ)과 기원후(A.D)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생명을 주려 오셨으나
그 생명을 받는 이는 적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주셔 오셨으나
그 평화를 받는 이는 적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참된 사랑을 주셔 오셨으나
그 사랑을 받는 이는 적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사랑하는 일을 포기 하지 못하십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멸시하고
그분을 외면해도
그분은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랑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5078aYmx9QM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미국 어느 작은 마을에 9세 된‘윌리’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이로는 4학년의 아이쯤 되지만 지적 능력이 다소 떨어져 2학년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교회에서 연극을 준비하는데, 선생님은 윌리에게 대사가 단순한 여관 주인 역을 맡겼습니다.
왜냐하면 여관주인은 아주 간단한 대사만 하면 되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오면 ‘빈 방이 없어요’라는 말만 세 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연습을 하는 동안 곧잘 해 냈습니다. 그래서 모두 연극이 성공적으로 잘 되길 기대했습니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고, 동네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윌리는 몹시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주인에게 ‘방을 빌려달라’고 말하자 윌리는 ‘빈 방이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방을 빌릴 수 없느냐’고 묻자 윌리는 연습한 대로 ‘빈 방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요셉과 마리아가 ‘정말 빈 방이 없느냐’고 애타게 졸라대고 윌리는 ‘빈 방이 없어요’하고 돌려보냈어요. 슬픔속에 요셉과 마리아는 이제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 모습을 우투커니 바라보던 윌리는 큰 소리로 마리아를 불렀어요. ‘우리 집에 빈 방이 있어요. 가지 마세요. 우리 집에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내 방이 있어요. 내 방에서 쉬고 가란 말예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윌리 덕분에 당황한 요셉과 마리아는 연기를 하지 못하고 연극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에요. 교회당 객석에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연출자와 배역을 맡은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매서운 시선이 윌리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윌리가 사고를 쳤기 때문입니다. 그 날 연극은 중단되었고, 윌리는 눈물범벅이 되어 말했습니다. “예...예수님께 방을 드..드리고 싶었어요. 아기 예수님께...”
그 연극은 가장 황당한 연극이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장 감동적인 연극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연극은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로 1977년 가이드포스트, 다이제스트 등의 월간지를 통해서 ‘월리의 성탄절’이라는 짤막한 칼럼으로 소개되었고, 우리나라에서 1980년부터 매년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일반 문화계에서도 어김없이 공연되는 “빈방 있습니까?”라는 연극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신의 마음의 한 칸을
오늘 주님께 드리지 않겠습니까?
내 주변의 외면당하고
어려운 이들의 위해
손 하나 내밀어 보지 않겠습니까?
이 땅에 오신 사랑의 왕은
당신의 사랑에 목말라 하십니다.
그분께 당신의 사랑을
드리지 않겠습니까?
당신 때문에 이 땅에
오신 사랑의 왕은 외로워하십니다.
당신의 마음을
그분께 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세상을 다 가지신 그분이셨지만
당신을 위하여 그분은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그분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버리시겠습니까?
십자가만은 그의 것
작자 미상
그리스도 우리 주님 이 땅에 오셨을 때,
그의 머리 눕혀 둘 침대는 빌려 온 것.
성내로 내려오실 때 타고 오신 나귀는
산마을 길가에서 빌려 온 나귀.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십자가만은 그의 것.
산기슭 풀밭에서 무리를 먹이실 때,
주님께서 떼신 떡은 꾸어 오신 조각 떡.
모인 무리 배불리신 물고기 한 접시는
어린 아이 도시락에서 꾸어 오신 몇 마리.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십자가만은 그의 것.
무리를 가르치고자 올라타신 그 배는
바닷가 어부들에게서 빌려 오신 작은 배.
집도 가정도 없으셨던 우리 주님,
쉴만한 휴식처도 빌려 쓰신 남의 방.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십자가만은 그의 것.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기 위하여
묘지로 향한 길에 방 한 칸 빌리셨네.
그의 무덤 위하여 동굴 하나 빌린 그들
그의 시체 감아 드릴 세마포도 빌렸네.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십자가만은 그의 것.
그가 쓰신 가시관은 날 위해 찔린 가시.
이 몸 위해 나의 구주 대신 죽음 당하셨네.
십자가에 달리시고 손발에 못 박히심은
나의 죄와 허물을 속해 주려 하심이니.
그가 쓰신 면류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그것은 참으로
내가 졌어야 할 십자가.
https://youtu.be/dNLTVnuJUCQ
https://youtu.be/oFCDcY_jujU
https://youtu.be/QRUQqsH_EH8
https://youtu.be/mT4uPlgDVJk
https://youtu.be/cUYs_ye9K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