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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잠언 제13강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말씀 / 잠언 27-29장
요절 /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잠언을 읽다 보면 마치 옛날 어르신들의 잔소리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도 노년의 솔로몬이 자녀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어른들의 잔소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들을 때는 건성으로 듣지만 그 나이가 되면 내가 같은 잔소리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7-29장은 마치 잔소리 같아서 일관성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 장별로 삶의 지혜, 공의, 그리고 훈육이라는 흐름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말씀이지만 새로운 부분들을 살펴보고 세상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I. 삶의 지혜 (27장)
잠언 27장은 삶의 태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27:1절을 보십시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이 말씀은 단순히 자랑하지 말라는 의미만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뉘앙스는 다르지만 우리말에도 비슷한 의미를 전달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 이 구절들은 우리 삶이 생각만큼 그리 확실하지 않다고 말해줍니다. 저는 신경과 후배 두 명의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한 명은 30대에 사고로, 한 명은 20대에 질병으로, 그것도 신경과 질환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많은 죽음을 지켜봤지만, 후배들의 죽음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람 일은 정말 알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1절 말씀은 하루도 장담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을 말해줍니다. 최근 있었던 비행기 사고도 충격이었지만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률은 대단히 높습니다. 교통사고로 하루 평균 35명이 사망하고 1년 사상자 수는 33만 명이 넘습니다. 과거에는 전쟁과 질병, 특히 전염병에 의한 사망이 많았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거의 7천만 명에 달합니다. 흑사병은 1347년부터 1351년, 약 3년 동안 2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습니다. 말라리아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말라리아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콜레라도 매년 3만 명 정도 사망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03: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성경은 우리 인생, 삶의 한계를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겸손을 가르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내일에 마음을 빼앗겨 오늘을 누리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하루도 장담할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가 소중해 집니다.
그래서 27:23-27절은 현재의 일에 충실하라고 조언합니다. “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24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5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26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27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성경은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자족을 가르칩니다. 이 말씀이 현재에 머물러 나아가지 말란 뜻은 아닙니다. 다만 재물이나 왕관 같은 큰 것에 뜻을 두면 현재를 누리지 못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사람이 불행을 느끼는 이유는 대부분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남의 것, 손에 닿지 않는 것을 바라보다가 정작 내 손에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양 치는 것은 지루하고 중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상이 우리 삶을 지탱해 줍니다. 양의 털, 염소, 염소의 젖은 의식주를 책임지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을 줍니다. 너무 멀리 바라보지 말고 지금 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할 때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큰일도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 양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맹수와 싸우고 돌팔매를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잠언 22:2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성실한 날들을 쌓아 튼튼한 기초를 만들어야 나와 가족, 이웃의 삶을 채울 수 있고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27:20절을 보십시오.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스올과 아바돈은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지옥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어도 지옥을 채울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사람의 눈(마음)도 비슷합니다. 성경은 이를 ‘안목의 정욕’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반떼 사러갔다가 그랜저 계약한다.”는 남자들의 농담 아닌 농담이 있습니다. 계속 보면 채울 수 없는 욕심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현실적인 격언입니다. 쇼핑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크롤 하다 보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것에 밀려납니다. 욕망은 쇼핑이나 물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족들에 대한 기대와 욕심도 다르지 않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좀 더 잘하기를 바라고 관심을 받으면 독차지하고 싶어집니다. 욕망을 품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잘 인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채울 수 없는 욕망이 아니라 현실의 삶과 일, 가족, 이웃에 집중해야 합니다. 욕망이 아니라 일상과 사람이 우리 삶을 붙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망이 아니라 삶 전체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충실한 하루 삶을 통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공의와 의인 (28장)
28:1절을 보십시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잠언은 의인과 악인을 비교해 많은 말씀을 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강조하는 뉘앙스에 차이가 있습니다. 28:1의 의인(찻디크 - 의로운, 공정한, 올바른)은 공정이 강조된 단어입니다. 바꿔서 표현하면 공정하고 올바른 사람의 마음은 늘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이 없으니 사자와 같이 당당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어서 양심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면 불안이 찾아옵니다. 1절은 불안을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외래에서 불안을 ‘누가 쫓아오는 것 같다’고 표현하시는 어르신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불안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Macbeth does murder sleep – the innocent sleep" (Act 2, Scene 2) "O, full of scorpions is my mind, dear wife!" (Act 3, Scene 2) 죄는 잠을 죽이고 양심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부유하지만 쫓기는 마음, 불면증을 가진 것보다 차라리 가난한 게 낫다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하지만 악인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요새 TV에 자주 등장하시는 분들이 죄가 분명한데도 당당해 보입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악을 의로 가장합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바카쉬 – 찾다, 요구하다, 원하다, 묻다) 자는 모든 것(콜 – 모두, 전체, 완전함)을 깨닫느니라.” ‘모든 것’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완전함의 의미를 담고 있고, ‘찾는’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묻는 사람이 완전한 정의를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악인은 정의를 자기에게서 찾기 때문에 정의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히 정의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철학자들도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긴 책을 썼지만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반면 다윗은 철학을 배우진 않았지만 하나님께 수시로 묻는 자였습니다. 심지어 가족과 재산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쫓을지 말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럴 때 다윗은 죄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고 묻고 지키면 불의한 세상에서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28:14절을 보십시오.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여기서 복은 정의를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당당함, 평안함입니다. 그리고 불의하게 사는 자는 평안 없는 삶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이사야 48: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아무리 정의를 왜곡해도 결국 불의한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악인이 형통한 것 같고 괜찮아 보여도 모두 평강을 빼앗깁니다.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엄청난 권력을 누렸습니다. 자국민 천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죽을 때까지 권력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 독재자는 늘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고 심지어 의사도 믿지 못해 결국 뇌졸중으로 사망했습니다. 스탈린이 죽어갈 때 측근들이 일부러 의사를 부르지 않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죽을 때 아무도 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인생이나 드라마, 소설 모두 과정보다는 결말이 더 중요합니다. 공의를 지키면 과정이 불편하고 힘들 수 있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훌륭한 결말을 얻을 수 있습니다.
III. 지혜와 훈육 (29장)
29장은 훈육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29:1절을 보십시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폐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여기서 핵심 단어는 ‘자주’입니다. 자주 책망 받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문제는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본인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책망을 받을 정도면 일상적인 삶에 지장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고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적받음에도 교정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분노입니다. 11절입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소아정신과 분야의 스타인 오은영 박사 때문에 유명해진 ‘금쪽이’라는 단어를 아실 겁니다. 이들은 대부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분노조절장애). 분노조절장애는 제대로 훈육 받지 못한 아이,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훈육 받지 못한 감정은 분노로 나타나고 결국 자신에게도 손해로 돌아옵니다. 물론 감정을 다스리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저도 전공의 시절 화를 참지 못해 사고 친 적이 있습니다. 조금만 참았어도 문제없이 지나갈 일이었는데 고집을 부리다가 망신을 당했습니다.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들은 그 감정이 통하는 가족 내에서는 괜찮지만 사회에서는 원만한 관계유지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15, 17절을 보십시오. “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채찍이라는 과격한 용어가 나오지만 훈육은 나와 가족,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럼 훈육의 대상은 누구일까요? 말씀에 집중하고 있는 분이라면 지금 머리 속에 누군가가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 자신이 먼저라고 말씀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내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핸드폰 그만보라고 이야기해도 내가 핸드폰을 놓지 않으면 배울 것이 없습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은 아이의 문제는 곧 부모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타고난 성격적 결함, 장애가 있는 아이를 제외하면 문제 행동 뒤에는 부모의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내가 바로 서야 자녀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자신을 훈육하는 방법은 다시 27, 28장으로 돌아갑니다. 27:1절 – 하루를 충실하게 살고, 2절 – 함부로 자랑하지 말고, 3절 – 분노를 조절하고, 13절 – 보증 서지 말고, 15절 – 이웃과 다투지 말고, 18절 – 윗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20절 – 욕망을 다스리고, 28:5절 – 하나님의 정의를 배우고, 28:27절 – 이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들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 마음은 성장하면서 하나의 틀, 프레임을 만듭니다. 그리고 프레임은 무릎 반사처럼 상황에 자동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항상 화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그런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틀을 바꾸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주변 사람의 도움과 인내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9:2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안전으로 번역된 원어(사가브 sagab)는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안전하게 높은 곳에 두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인도하심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약점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 삶은 높은 곳으로 인도됩니다. 높은 곳은 변화도 포함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높은 곳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 : 잠언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을 조화롭게 가르칩니다. 나와 가족, 이웃을 위한 삶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기는 어렵지만 한 말씀을 붙들고 행한다면 매년 달라지는 모습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한 말씀을 주셔서 삶이 달라지고 변화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