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말씀을 증언하니(행14:1-20)
갈등
1. 사도행전 이야기 23번째 시간입니다. 7-8월 휴가 시즌을 보내고, 주일예배에 연말까지 사도행전 말씀을 이어갑니다.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교회를 세워가신 이야기입니다. 책 제목을 사도행전이라고 했지만, 내용은 성령행전입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을 선택하셔서 교회를 세워가셨어요.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사도들을, 스데반과 빌립과 같은 훌륭한 집사들도 사용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누가가 기록하다 보니 그가 직접 동행하고 목격했던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만 기록했을 뿐입니다. 12장까지는 베드로의 전도 이야기, 13장부터 28장 끝까지는 바울의 전도 이야기입니다.
나머지 사도들과 성도들은 각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시리아로, 아라비아로, 바울보다 먼저 로마로, 또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시리아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며 그의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어요. 바울 일행은 배를 타고 구브로-키프로스 섬(지중해에서 세 번째 큰 섬, 시칠리아-사르데나)에서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구브로를 떠나 배를 타고 다시 육지로 들어와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오늘 본문에는 (지도 영상)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밤빌리아-버가-앗달리아-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바울은 각 지역의 대도시-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을 중심으로
2. 복음 전도를 했어요. 각 지역에는 유대교 회당이 대부분 있었고 바울은 먼저 그곳을 찾아서 설교를 하며 복음 전도를 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절,“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아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이스라엘이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세계에 흩어져 살았어요.(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이것이 초대 교회 선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5대양 6대주에 있는 한인교회들처럼요. 유대교 회당에는 바울의 설교를 환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2-3절,“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유대인들의 방해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고니온 사람들 가운데 유대인을 따르는 자들과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는 자들로 나눠졌습니다. 바울을 반대하는 이들이 모욕하고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떠나 루스드라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험한 일을 당하면서도 가는 곳마다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갈등 심화
3. 루스드라에서의 전도는 어땠는지 봅니다.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의 회당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8-9절,“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는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누가는 루스드라 전도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 이야기만을 소개했습니다. 성전 미문에 있었던 사람은 거지였고, 루스드라에 있었던 걷지 못하던 사람은 사도 바울의 설교를 직접 듣고 주목한 것으로 보아서 거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를 하면서 이 사람이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는 자세를 보았어요. 이때 성령께서 이 사람이 걸을 것이라고 바울의 마음에 확신을 주셨습니다. 10절,“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너무 쉬워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암이든 간경화이든지, 불면증, 우울증, 팔목이 돌아오고 발바닥이 닿고, 귀신이 나가는 것 등. 평생 걷지 못하던 사람이 순간 일어났으니 루스드라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4. 11-12절,“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이 기적으로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 사람들에 의해서 신적인 존재가 되었어요. 루스드라 사람들은 조용한 바나바는 제우스(로마는 주피터), 복음을 전한 바울은 헤르메스(이 말에서 해석학이라는 말이 나옴)라고 부르고, 그들을 향하여 제사를 하고자 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때 옷을 찢고 사람들에게 급하게 말했습니다.
15절,“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이런 일은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다. 우리가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들이 천지를 창조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사를 막았어요. 바울과 바나바가 제사를 막으며 성경 이야기-이스라엘 역사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이야기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실마리
5.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이야기를 읽어보면 공통되는 장면은 가는 곳마다 먼저 그곳에 회당이 있는지 없는지 찾았습니다.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서 설교를 하면 듣고 환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수는 듣지 않으려 하고 다른 사람들도 듣지 못하게 한 이들이 있었어요.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들의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고 다른 성도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연합하여(이방인과 유대인과 관리들)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두 사도가 알고 도망하여 루스드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을 알고도 사도 바울은 전도 여행에서 가는 곳마다 그곳에 유대인 회당이 있는지 찾았습니다. 이것은 롬9:1-3에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니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가 되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항상 동족인 이스라엘에 대해 부담감이 있었어요.
6. 그것은 자신이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어떤 고난을 당해도, 심지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이 구원을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참말이고 자신에게 그치지 않는 고통이라고 했어요.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복음을 몰랐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영적인 눈이 열리고, 다시 성경을 읽을 때 바울은 복음을 발견하고 깨닫고 누리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귀하기에 그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고전9:16)
전도는 그런 것입니다. 끝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나를 박해하더라도 그 영혼을 사랑함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목요일 오후 오병이어 데이(붕어빵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 듣고 믿는 이들이 있었어요. 4절,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바울은 그들과 함께 그 도시와 인근 지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 회당은 화약고와 같이 분란을 일으키도 했지만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 듣고 변화될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귀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7.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 회당이 없었습니다.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했어요. 바울이 루스드라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의 눈에 한 사람이 주목되었습니다. 선교지 신학교나 교회에서 강의나 설교를 하면 늘 발견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앉아서 강의와 설교를 듣는데, 다른 누구보다 집중하여 듣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빌립보에서는 루디아였고(16장), 루스드라에서는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집중하여 들었습니다. 이것을 말하는 바울도 알고 듣는 그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이 믿음으로 반응하여 나을 것을 확신했습니다.“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선언했어요.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이 사람이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이 기적을 보았던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들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복음 제시
8.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우리는 신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억지로 막았습니다. 바울은 자기들이 신이 아니라고 하며 하나님 이야기를 했어요. 바울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 이야기만 했어요. 이방인 전도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바다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지금 하려는 것과 같이 헛된 일-세상 신을 만들어 섬기는 일-
제우스와 헤르메스 등 그리스와 로마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6-17절,“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을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사도 바울은 복음이 전파되기까지 각 민족이 그들 방식대로 살아가게 하나님이 방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9. 우리나라도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는 유교나 불교를 따르며 조상 제사를 지냈어요. 바울은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계시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자연 계시를 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비를 주셔서 곡식들이 열매를 맺어 먹게 하셨다고요. 이제 여러분이 복음을 들으며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기대
10.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을 떠나서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유대교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루스드라까지 왔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찾아 온 거리가 각기 160km, 32km나 되었습니다. 3-4일은 족히 걸어서 왔어요. 이후로 유대인들은 바울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복음 전도를 방해했습니다. 그들은 루스드라에서도 사람들을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유대교 법으로 그를 죽여도 좋다고 누군가 증인을 섰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 바울이 한 것처럼요.
19절, 바울이 죽은 줄 알았다고 번역했지만 원문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죽은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사명자는 사명을 다할 때까지는 죽지 않습니다. 바울도 그랬어요. 하나님께서 바울을 살리셨습니다. 바울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다시 루스드라에 들어갔습니다. 바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성도들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당시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디모데를 만납니다.(16장)
10. 선교 역사는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복음을 포항과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메타버스), 또 국경을 넘어 아시아-아프리카-유럽으로 전합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찬양하며, 바울처럼 우리 동족 대한민국을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고 해외의 이방인들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쉬지 않게 하소서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내 진정 사모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