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애국가가 나오면 의무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 애국가가 들리면 즉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에 국기가 게양된 곳을 향해
엄숙한 자세로 애국가 끝날때까지
서 있어야 했을때가 있었습니다
전국민이 그런 우스꽝스런 짓을 애국으로 교육받은
서글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남자 머리 길다고 바리깡으로
머리 한가운데에 고속도로를 내고
행길에서 남자 경찰이 엉거주춤 앉아
치마 입은 여성들 허벅지 위로 줄자를 갖다대
치마길이를 재고 치마 짧은 여성은 연행했던
무식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노래하면 공산주의자로 몰렸던
암흑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존엄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며
돈 되는 거라면 모든걸 다 희생해야 한다는 그런
부끄러운 정책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홍보한
천박한 정권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친구들끼리 막걸리 마시며 대통령 흉 좀 봤다가
잠복 근무중인 공안 경찰에게 체포됐던
일명 막걸리 법이라는 그런 야만의
법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주기적으로 밤마다 딸같은, 혹은 손녀같은
여자아이들을 끼고 양주퍼마시며
질펀한 시간을 보냈던 타락한 위정자가
이 나라를 지배했던
수치스러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부패와 독재 정권에 항의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게됐던
그런 암흑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암흑과 공포의 터널을 벗어나기위해
수많은 민주 시민들이 투쟁하다
고문에 의해, 곤봉에 맞아, 최루탄에 맞아
군대 끌려가 의문사로,
옥고끝에, 계엄군이 쏜 기관총에 맞아,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의 피눈물 희생을 딛고
좀 미흡하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 이만큼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이나라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신문사에서는 펜대로 기사를 갈기며
정당에서는 국민을 현혹하며
지난 저 야만의 시절로 돌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얼마나 기가막힌 노릇입니까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이 얼마나 피가 거꾸로 솟구칠 일입니까.
내가 겪지 않았다고
역사적 사실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나는 그런 오욕을 뒤집어 쓰지 않았기에
오욕의 지난 역사에 더한 부채의식을 갖고
이 천금같은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할겁니다.
첫댓글
💙함께💙
끝까지
지켜나가겠습니다.
초딩때
학교가 언덕 위에
있었는데
헉헉 낑낑 올라가서
교문을 통과하면
일자로 된 길다란 시멘트
받침에 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의 대한 경례를 하고
교실로 들어갔어요.
몸이 약하고 젓가락 같았던 저는
국기의 대한 경례를 할 때마다
핑글핑글 어지러웠어요..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네요~~^^
힘내서 힘차게 지켜야겠다는
생각과 결심을 서게 하시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글이 어쩜 이리도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요~~^^
역시 최고최고~~😊😊😊
@지안(운영위원/수원)
지안님 일찍 주무신다고 하신것 같던데
아직 안 주무셨나요..아님 주무시다가
잠깐 또 깬건가요?...
우리 문팬의 젊은 분들에게 제가 꼭 하고 싶었던 얘기라
두서없이 끄적거려 본거랍니다 ^^
지안님도 편히 주무세요~
@오월(서울강서)
네~~~😊😊😊
편안한 밤 되세요~~💕💕💕
오월님과 비슷한 시기를 함께.
공감합니다.
그때는 그것이 애국자.
지금 광화문 광장에 모인분들은 정체성이 떨어집니다. 옛 향수에...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분들.
개혁과 혁신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을 외치면 인정합니다.
촛불시민의 진정성을 깨달아야...
상식적으로 이해 안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나라에는..
에혀~~
그저 한숨만....
개인적으로 광화문이나
서울역에서 테극기 모독
행위를 하는 분들을 보면서
젊었을 때 못헤 본 것들을
이제사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남자들 군대얘기도 안가본
사람들이 마치 다 아는 사람처럼
떠드는 것처럼....
진짜 군대가서 고생한 사람은
군대얘기 안하고 학생시위도
마찬가지 입니다....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들은 그 짓이 애국이 아니라 매국이란걸
모르는 사람 절반,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사람 절반
그런 비율이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