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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시절에는 하인리히 리케르트의 가치 철학에 영향을 받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그의 철학은 《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 하는 전기 철학과 1930년~35년 사이의 소위 전회 이후의 후기 철학으로 나뉜다.
그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은 후설의 현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딜타이의 생의 철학 등의 영향하에 독자적인 철학을 개척하여 현존재의 존재의미를 탐구하는 실존론적 철학을 수립하였다. 하이데거의 전기 철학은 방법론적으로는 해석학적 현상학이며 그 대상으로 보자면 현존재, 즉 인간실존에 대한 존재론이다.
한편 현존재로부터 존재 자체로 핵심적 주제가 옮겨간 후기 철학은 역사적으로 존재 자체가 인간 현존재에게 어떻게 스스로를 현시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 이래의 역사는 존재망각으로 점철되었으며 특히 오늘날과 같은 기술시대는 존재망각이 극단에 이른 시기라고 한다.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이 플라톤 이후로 "어떠하다(성질)”라는 뜻을 "존재"라는 개념을 써서 접근하려고 했지,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즉, 존재에 대한 모든 연구가 특정한 성질에만 국한되어있고, 존재 자체를 어떤 성질이 있는 형질로 취급했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미 상정하는 전제"를 분석하는 것이 어떤 대상을 탐구하는 데 우선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철학자와 과학자가 더 기본적이고 이론에 앞서는 존재를 무시했기 때문에 그들의 이론을 보편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잘못 되었으며, 우리가 존재와 인간 존재를 그릇되게 인정하였다. 이러한 뿌리깊은 몰이해를 피하기 위하여, 하이데거는 철학의 역사를 하나 하나 되짚어 보면서 철학적인 질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믿었다.
후기의 주요 저작 -철학에의 기여, 기술에 대한 논구,휴머니즘에 대해서, 숲길, 언어의 도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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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하이데거의 관심과 해석학
후기 저작(『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1930), 『인간주의에 관한 서한』(1947))에서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수행했던 실존분석을 두 가지 방법으로 보충한다. 첫째는 초극(über-winden)의 철학으로, 둘째는 언어의 철학으로 보충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플라톤, 칸트, 헤겔, 니체 등의 서구 형이상학적 전통 사상가들의 형이상학적 탐구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즉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에서 망각되고 있는 존재가 인간에게 최초로 개시하는 현존재의 시간적 경험을 현상학적으로 탐구하여 형이상학을 극복하려고 한다. 이 극복은 형이상학에서 간과되고 있는 존재의 시간성을 회복시켜줌으로써 그 근원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후기 저작에서 『존재와 시간』의 실존분석으로 나가려고 했던 두 번째의 길은 언어를 통해서이다. 하이데거의 언어에 대한 중시는 그의 전기와 후기의 사상을 연결시켜주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으로서 시적으로 기능하며, 거기에서 진정한 사유가 싹튼다고 주장한다. 『존재와 시간』에서 이루어진 세계 내 존재로서의 현존재의 이해적인 존재방식에 대한 분석은 언어를 전혀 새로운 맥락에 위치시킨다. 여기에서 언어란 바로 실존적 이해에 대한 해명이었다.
그는 언어가 인간으로 하여금 역사적일 수 있도록, 즉 역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간 존재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언어 행위야말로 인간에게만 특유한 것이다. 그러나 말은 그 자체에 있어서 언어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언어에서 나타나는 것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 존재자체이다. 언어는 바로 존재에 대한 근원적 해석으로써 세계에 있는 인간의 일상적 실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존재자를 세계 내 존재로서, 또한 우리의 기투(Entwurf)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의 존재방식인 언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의 하이데거의 전환은 '이해이론'에서 큰 중요성을 갖는다. 이를 통하여 사물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만드는 존재의 해석학적 기능은 언어의 핵심적인 본질이 된다. 이해란 스스로를 개방하고 독단적인 태도를 지양하려는 물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는 장소를 찾아내는 방법을 알아내는 문제이기도 하다. 언어 자체는 본질상 해석학적이다. 해석학적 과정은 텍스트에 드러나 있지 않는 의미를 해명해내는 근원적인 사유의 과정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하이데거는 해석학을 텍스트 해석의 문헌학적 분야로 간주하던 과거의 생각을 뒤집어 해석학의 전반적인 내용과 맥락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해석학을 현상학과 동일시하고 또한 이해를 가능케 하는 언어의 근본적인 기능과도 동일시함으로써 해석학이란 말을 새롭게 정의했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본질적인 해석학적 절차에 의해 언어, 예술작품, 철학 그리고 실증적 이해 자체에 접근해 갔다. 그리하여 모든 이해가 실존적 이해의 역사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가다머 등의 해석학이 성립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볼 때 "근대 유럽의 인간의 자각이 종착점에 다달음으로써 현대의 세계사적 상황을
계기로 나타난 것이 실존주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근세 내지 근대는 인간의 '나'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존재의 명증성과 권위를 '나'의 자각에서 구하는 것이 근대 인간의 특징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나'의 자각이라고 말해도 그것은 르네상스 이래 여러 가지 모습을 취해 왔다.
예를 들면 독일 관념론의 철학에 있어서는 '나'는 형이상학적으로 신격화(神格化)되어서 세계를 토대지우는 원리, 즉 모든 존재의 창조자라는 지위로까지 상승되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나'도 그 후 대두한 실증주의적 사조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물질적 세계의 암흑 안에서 방황하고 침체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금세기에 들어 와서는 위기적 상황이 '나'의 존재 그 자체를 허무화하고 절망의 골짜기에 빠뜨렸다. 전에 데카르트는 방법론적 회의로부터 '나'의 명증성에 도달하였으며, 칸트는 비판적 정신에서 '나'의 권위를 확립했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명증성, 권위도 상실하여 '나'는 키에르케고르의 소위 '죽음에 이르는 병'(절망) 속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즉 중세의 신적 지평에서 해방된 근대적인 '나', 모든 존재의 근거가 되었던 '나'는 오늘날 회의와 절망에 빠지고 허무 앞에서 떨고 있다. 이와 같이 '나'에게 남아 있는 길은 오직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회의와 절망을 직시하고 진실로 이것과 대결하여, 즉 회의, 절망을 검토하고 허무주의를 초극해서 '나'의 본래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의 자각의 역사적 종말, 바로 그 귀착점에서 실존주의 출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존주의는 '나'의 새로운 자각과 재건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현대의 위기적 상황에 직면하여 그것을 초월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자기주장이다.
한편 키에르케고르와 마찬가지로 야스퍼스(Karl Jaspers ; 1883~1969)도 주체적인 실존을 철학의 중심대상으로 삼았다. 과학은 대상을 밖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하지만 철학은 대상을 초월하여 절대적 진리에 이르게 된다. 이것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구체적 상황 속에서 주체적으로 생겨나는 실존의 자각이다. 실존은 자기자신에 관계함으로써 기존의 관념을 타파하고, 자기자신을 초월함으로써 전체적 진리에 이르게 된다. 또한 초월자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이율배반, 즉 극한 상황 속에서 계속 좌절하면서 이것을 초월하는 실존의 내적 행위에 있어서 암호로서만 파악된다.
이 암호를 바르게 읽음으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비합리성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의 역할은 암호 읽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며, 암호를 읽기 위해서는 한계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한계상황이란 실존이 피할 수 없는 상황, 즉 고뇌, 죽음, 투쟁 등을 말한다. 이 상황에 직면하면 인간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철학적 사고로 이전하여 본래의 실존에 눈을 뜨고 신에 대한 진정한 경험을 얻게 된다. 이렇게 실존에 눈뜬 인간의 교제인 '실존적 교제'가 진실한 인간사회의 존재방식인 것이다.
*실존적 교제-야스퍼스가 실존 해명의 근본 개념으로서 ‘사랑’ 대신에 쓴 용어. 인간끼리 서로 자기의 실존을 실현하는 일과 상대자의 실존을 실현하는 일을 목적으로 하여, 서로서로 실현의 계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관계를 이른다.각자의 실존은 이러한 실존의 교제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초월자(God)와의 결합을 실현하려고 한다. 이것은 '사랑 속에서의 투쟁'으로서 나타나고, 이러한 교제 가운데에서 인간은 서로 참된 실존, 본래적인 자기를 실현하게 된다고 설명된다. 이 주장을 받아들여,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적 대립에서 생긴 투쟁을 '사랑하는 속에서의 투쟁'이라고 왜곡하고, 노사 협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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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사개설 1996. 4. 1.
책 정보
고영복 사회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