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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귀뚜라미 화석서 발견된 생물 최초의 의사소통 흔적 등
| 진화와 함께한 ‘소리의 생태계’
| 인류 급증하며 환경소음 늘어… 노화 촉진 등 생태계에 악영향
지구상 생물들은 소리로 소통하고, 포식자를 피해 생존을 도모하며 번식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개구리는 번식기에 우는 것이 종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고, 고래는 반사되는 메아리를 통해 물체의 질감까지 구분한다. 에이도스 제공
귀뚜라미 Cricket [학명: Velarifictorus aspersus]
귀뚜라미 Cricket [학명: Velarifictorus aspersus] 소리
고요한 세상이었다. 45억 년 전 탄생한 지구에 울려퍼진 소리는 바람소리에 불과했다. 35억 년 전부터는 꿈틀거리는 세균의 웅얼거림, 동물의 조용한 움직임 소리가 이어졌다. 여러 생명이 우발적인 소리를 냈지만 소통을 위한 소리를 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혁명은 10억 년 전 일어났다. 고대 귀뚜라미의 한 종인 '페르모스트리둘루스'가 주인공이다. 이 귀뚜라미의 화석에 박힌 날개에는 하늘을 나는 기능과 관계없는 날개맥이 있다. 두 날개를 비비면서 마찰음을 만들었고, 다른 귀뚜라미들이 다리에 달린 청각 기관을 통해 소리를 들어 소통했던 것. 인류가 찾아낸 가장 오래된 소리의 증거다.
고대 중생대 백악기 귀뚜라미 화석
지구를 둘러싼 소리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다. 고대 귀뚜라미의 화석이 발견된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부터 수많은 생명의 목소리가 가득한 보르네오 열대림과 수생 생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 세계 강과 바다, 호수, 우리 주변 도심까지. 소리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 마이크를 들이대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탐험기와 같은 즐거움을 준다.
저자는 전작 ‘숲에서 우주를 보다’ ‘나무의 노래’ 등으로 익히 알려진 미국의 자연 작가다. 진화학, 생물학 등 풍부한 자연과학 지식과 유려한 글솜씨를 함께 버무린다. 이 책은 2023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10억 년 전 귀뚜라미로부터 시작된 소리의 생태계는 약 1억5000만 년 전 백악기 시대 ‘육지 혁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번창했다. 이 시기 꽃식물의 진화가 이뤄졌고, 먹이 생태계가 풍부해지자 여치, 메뚜기, 나방, 딱정벌레 등 각종 곤충의 번식이 시작됐다.
청력도 한몫했다. 비슷한 시기인 1억6000만 년 전부터 포유류에서 귓속뼈가 진화하고 달팽이관이 길어져 새로운 감각 세계가 열린 것이다. 듣고 말하는 능력이 발전하면서 지구가 소리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모든 생물은 소리를 내고 듣는 방식을 각자의 몸에 맞게 진화시켰다. 늑대거미와 깡충거미는 짝을 유혹할 때 내는 진동의 주파수를 사냥터인 낙엽층의 소리 전달과 맞게 조절한다. 코끼리는 ‘우르릉’ 하는 소리로 먼 거리를 가로질러 서로를 부르는데 이 소리는 땅을 통과해 흐른다. 코끼리들은 발에 있는 감각세포를 거쳐 다리뼈를 통해 속귀로 소리를 듣고 소통한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농경사회가 시작되자 수렵 채집 시기에 비해 F와 V 같은 순치음(脣齒音)이 3배가량 늘었다. 연한 음식으로 식단이 바뀌면서 윗니와 아랫니의 교합 방식이 달라진 탓이다.
기후와 식생 역시 영향을 미친다. 높낮이가 있는 모음은 건조한 공기에서 후두에 부담이 되므로, 건조 기후의 언어는 자음을 많이 쓰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한국어와 영어 등의 언어가 자음이 풍부한 이유다. 반면 열대림 지역에서 발달한 언어는 상대적으로 모음이 풍부하다. 자음을 알아들으려면 주파수가 높고 진폭 변화가 급격해야 하는데, 이런 특징은 빽빽한 숲지대에서는 쉽게 손상되기 때문이다.
생태계 위기를 소리의 위기로 보는 관점도 새롭다. 지구를 뒤덮는 선박과 각종 탐사선이 쏘는 에어건(음원)의 확산 등으로 바다의 소음이 증가하면서 바닷속 환경소음은 측정이 시작된 20세기 중반 이후 10년마다 두 배씩 증가했다고 한다. 소음 속에 자라난 새들을 분석한 결과 노화 정도를 보여주는 염색체의 유전 지표인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진다는 연구 결과 등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공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한다. 소통의 근원인 소리를 추적하면서 불통의 시대에 귀 기울이는 법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원제 ‘야생의 부서진 소리들’(Sounds Wild and Broken) |
경이로운 소리들, 진화의 창조성, 감각의 멸종 위기
(Sonic Marvels, Evolution's Creativity, and the Crisis of Sensory Extinction)
| 저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 역자 노승영 | 출판 에이도스 | 2023.9.19.
✵ 책소개
2023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 『숲에서 우주를 보다』와 『나무의 노래』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미국 최고의 자연작가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신작이다. 45억 년 지구의 역사에서 ‘소리’의 진화는 생물 진화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자 경이로움이었다고 말하는 지은이는 생물의 생존과 번식에서 소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으로 뒤덮인 이 지구가 왜 개인을 고립시키고, 공동체를 분열하게 하며, 생명의 생태적 회복력과 진화적 창의성을 약하게 하는지를 설파한다. 소리의 진화에서부터 생명 진화의 창조성 그리고 자연과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지는 지은이의 신선한 논리가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과학적 통찰력과 어우러져 빛을 발한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개구리 울음소리, 고래의 노래가
인간의 음악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저자 :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David George Haskell)
미국의 생물학자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공부했으며, 미국 코넬 대학교에서 생태학과 진화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과 시적 산문을 결합해 새로운 문화적 미학을 개척한 레이철 카슨과 같은 보기 드문 과학자’, ‘특이한 천재’, ‘미국 최고의 자연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데이비드 해스컬의 작업은 자연세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관조적 성찰을 통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9년 카네기재단에서 주는 최우수교수상을 받았으며 2014년에는 구겐하임 펠로우로 선정되었다. 수많은 과학논문과 함께 자연과 과학에 대한 시,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첫 책 『숲에서 우주를 보다』는 미국 국립학술원 선정 최고의 책,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후보, PEN/ E. O. Wilson 과학저술상 가작(佳作), 리드(Reed) 환경저술상, National Outdoor Book Award를 수상했으며, 두 번째 책 『나무의 노래』는 《사이언스 프라이데이》《브레인피킹스》 선정 최고의 과학책, 《포브스》 선정 최고의 환경도서, 존 버로스 메달을 수상했다. 세 번째 책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은 2023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다.
올 여름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숲에 있는 고목나무에 둥지를 튼
호반새가 새끼들에게 먹잇감을 물어다주는 모습. , 뉴스
✵ 역자 : 노승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한다. 옮긴 책으로 『향모를 땋으며』 『숲에서 우주를 보다』 『나무의 노래』 『새의 감각』 『시간과 물에 대하여』 『노르웨이의 나무』 『세계 그 자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지구의 마지막 숲을 걷다』 등이 있다.
✵ 목차
머리말 008
1부 기원/ 태곳적 소리, 그리고 듣기의 옛 뿌리 017. 통일성과 다양성 024. 감각적 타협과 편향 040
2부 동물 소리의 번성/ 포식, 침묵, 날개 061.꽃, 바다, 젖 084.
3부 진화의 창조성/ 공기, 물, 나무 125. 아우성 145. 성과 아름다움 172. 발성 학습과 문화 211. 심층시간의 자국 252
4부 인간의 음악과 속함/ 뼈, 상아, 숨 285. 공명하는 공간 318. 음악, 숲, 몸 352.
5부 감소, 위기, 불의/ 숲 385. 바다 428. 도시 471
6부 듣기/ 공동체 속에서 듣기 571. 우주적 과거와 미래에서 듣기 545
감사의 글 552/ 참고문헌 557/ 찾아보기 596
✵ 책 속으로
우리 귀는 안쪽을, 우리 종의 재잘거림을 향하고 있다. 주변에 서식하는 수천 종의 소리를 소개하는 수업은 대부분의 학교 교과과정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대체로 인간의 언어와 음악이 자연 바깥에 존재하며 다른 존재의 음성과 무관하다고 간주한다. 음악회가 시작되면, 우리는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는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책과 소프트웨어에는 다른 인간의 목소리만 실려 있다. 소리를 기리는 공공 기념물은 드물며, 그마저도 살아 있는 지구의 소리 역사가 아니라 거장의 반열에 오른 한 줌의 인간 작곡가만을 드높인다._82쪽
모든 생명은 연결과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하려면 자신의 머리와 몸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우리가 중요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진화가 마련한 보상과 지침이다. 아름다움의 경험이 여러 형태를 띠는 이유는 세상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많고 맥락마다 나름의 미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조상들은 안전하고 풍요로운 환경, 동료들과의 올바른 관계, 훌륭히 완수한 과제, 창조성의 결실, 연인의 몸, 아기의 까르르 웃음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이 모든 미적 경험은 우리 조상을 관계와 행동으로, 이를 통해 생존으로 인도했다. 우리가 사람, 동물, 식물, 풍경, 생각의 타자성과 연결될 때 우리에게 내면의 불꽃을 선사함으로써, 아름다움은 객관적 세계 속으로 뻗어 나가는 덩굴손으로 주관적 경험을 먹이고 떠받친다. 감각 지각을 감상하고 사유하는 능력인 심미안은 자아 너머의 진실을 찾는 길잡이이자 자극제다.-(208쪽)
살아 있는 모든 소리가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라면 지금 순간의 창조성, 다양성, 그것의 감소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윤리적 허무주의는 존재의 덧없고 숙명적인 본성에 대한 한 가지 응답이다. 하지만 소리 자체는 또 다른 답을 내놓는다. 모든 소리 경험은 침묵에서 찰나적 존재로 다시 침묵으로 변화한다. 또한 침묵은 소리에 형태를 부여하여 음향 형태가 생겨나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낸다.
검은지빠귀의 노래나 교향악단의 음악은 소리가 우주 속에서 걸은 여정을 재현한다. 이 여정은 무(無)에서 시작하여 짧은 삶을 거쳐 다시 침묵으로 돌아간다. 여기에 소리의 가치가 있다. 지구의 소리가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질서와 서사의 찰나적 발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존재에서 형태와 운동을 거쳐 죽음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개인적 여정이 가치가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550쪽)
✵ 출판사서평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부서진 관계를 복원하는 생물학자의 대서사시
2023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
『숲에서 우주를 보다』와 『나무의 노래』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미국 최고의 자연작가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신작이다. 45억 년 지구의 역사에서 ‘소리’의 진화는 생물 진화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자 경이로움이었다고 말하는 지은이는 생물의 생존과 번식에서 소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으로 뒤덮인 이 지구가 왜 개인을 고립시키고, 공동체를 분열하게 하며, 생명의 생태적 회복력과 진화적 창의성을 약하게 하는지를 설파한다. 소리의 진화에서부터 생명 진화의 창조성 그리고 자연과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지는 지은이의 신선한 논리가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과학적 통찰력과 어우러져 빛을 발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35억 년의 침묵을 깬 생명의 ‘소리’가 이 지구상에서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다룬다. 세포막에 생긴 작은 털(이 섬모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의 진화에서부터 최초의 소리를 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귀뚜라미 화석, ‘육지 혁명’으로 불리는 백악기 꽃식물 진화와 곤충 다양성의 폭발 그리고 날개의 진화, 포유류 인간에게 음성을 선사한 목뿔뼈의 진화 등 이 지구가 온갖 다양한 생명의 소리로 가득하게 된 굵직한 진화적 사건들을 다룬다. 그뿐만 아니라 동물의 소리와 성적 신호, 번식 과시가 어떻게 미적 경험과 결합하는지 생물학적 시각에서 파헤친다. 다음으로 책은 인간의 언어와 음악이 과연 다른 동물 종의 소리와 다른 것인지 의문을 던진다. 구석기 시대의 뼈피리에서부터 현대의 악기와 음악 연주회장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음악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음악이 생물 종의 소리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이라는 단일 종이 내는 소음에 의해 잠식당한 지구의 소리 경관이다. 숲과 바다와 도시를 지배하는 인간의 소음으로 침묵당하는 생물 종의 현실 그리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고립과 단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명의 소리는 경이이자, 창조이며, 치유이다.
물과 돌과 바람 소리밖에 없었던 지구에서 소리를 내는 생물 종의 출현은 생명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생물 종은 소리로 소통하고, 포식자를 피해 생존을 도모하며, 번식을 위해 짝에 구애한다. 개구리의 울음은 공기의 진동을 일으키며 퍼져나가, 이것을 듣는 다른 개구리 관객의 유전자와 몸과 신경계에 새겨진 지식을 깨운다. 그리고 그 개구리는 이 소리를 듣고 이해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생명 진화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리는 원동력이 바로 성적 과시와 미적 경험의 공진화였음을 보여준다. 번식기의 암컷 개구리가 수컷의 구애 노래를 듣고 성적 선호를 표현하고 번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가 언어로 소통하고 음악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새의 지저귐, 개구리의 개굴 소리, 곤충의 날갯소리와 우는 소리, 심해 터널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음성과 노래를 전달하는 고래의 노래, 소통을 위한 인간의 언어와 음악은 본질적으로 같다. “음악은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통해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우리 내면의 능력을 일깨우거나 키운다. 이것은 수억 년간 동물계에서 소리가 맡은 역할이었으며, 지금은 인류라는 종이 자신과 타인의 몸, 감정, 생각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험 중 하나로서 표현된다.”(381쪽) 소리라는 생생한 감각 경험이 성적 선호와 번식, 진화와 생존, 아름다움의 경험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연결 그리고 다른 존재와의 관계성으로 이어지는 생물학적 논리가 강렬하고 신선하다.
단절과 고립, 개인주의와 윤리적 허무주의 그리고 감각적 소외의 시대
코로나 19 봉쇄로 사람들의 이동이 줄어들고 산업 활동이 느려지자 지질학자의 지진파 장비에는 일찍이 본 적 없는 것이 발견되었다. 바로 전례 없는 ‘지구적 고요’였다.(478쪽) 이 거대한 재앙은 인간이라는 단일 종이 만들어낸 소음이 얼마나 지배적인지 또 다른 수많은 생물 종의 음성이 침묵 당하고 있는지 알게 했다. 인간의 문명은 다른 생물 종으로부터 높이 쌓은 벽에 다름 아니었다. 인간이 만든 문명과 도시 안에서 누리는 풍요는 파괴와 빈곤의 다른 면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 다른 종, 우리를 지탱하는 땅으로부터 감각적으로 거의 완전히 고립된 채 살아간다.”(426쪽) 소나무 농장에서 온 종이 펄프나 보르네오 숲에서 온 목재를 쓰는 우리 소비자는 자기가 쓰는 제품이 어디서 왔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심지어 먹고 마시고 쓰는 것마저도 그렇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의 유래는 내 몸이나 감각과 아무 관계도 없다.”(427쪽) 클릭 한 번에 배달되는 인터넷 쇼핑은 심지어 상인이나 가게 점원과의 접촉으로부터도 우리를 분리한다. 우리 현관문 앞에 배달된 택배 상자는 식민주의적 교역의 절정이요, 사람이나 땅과 맺은 살아 있는 관계의 흔적이 모조리 깎여나간 상품이다. 이러한 무지와 고립은 세계화된 교역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감각적 소외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는 윤리의 뿌리가 되고 방향을 알려주는 정보와 감각으로부터 감각이 단절된 채 떠다닌다.
이제는 우리와 함께 사는 다른 생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
다른 생명과의 감각적 연결은 호기심, 책임감, 애정을 일깨워 고립되고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고 치유한다.
“생물학을 공부하면서도 (다윈이 우리의 혈족이라고 가르친) 이 존재들의 ‘소리’를 들어보라거나 대화해보라는 말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531쪽) 이것은 도전이자 반성이다. 대상으로서 다른 생물종을 해부하고, 수치와 그래프로 나타내며, 주변에 서식하는 수천 종의 소리에는 무관심한 인간중심적 태도에 대한 반성이다. 돌이킬 수 없는 기후 변화와 고립과 단절로 치닫는 위기의 지구를 치유할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지은이는 다른 생물 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지은이의 실천으로 가득하다. 에콰도르의 아마존 우림, 지구 역사상 최초의 소리를 냈던 것으로 알려진 고대 귀뚜라미의 화석이 발견된 프랑스의 시골 마을, 구석기 시대의 동굴, 현대의 음악 연주회장, 수많은 생명들의 목소리가 가득한 보르네오 열대림, 수생생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강과 바다, 온대림, 전 세계 인구의 55퍼센트가 몰려 사는 대도시 … 지구의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마이크를 들이대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지구의 바다를 뒤덮으며 오가는 선박에 의해, 석유를 탐사하기 위해 바닷속에 터트리는 에어건에 의해 물속에서 끊임없이 소음에 시달리는 수생 동물들의 고단함, 화재와 개간으로 사라져가는 열대우림에서 살 곳을 잃어가는 동물의 슬픔, 땅속 1킬로미터까지 침투하는 도시의 낮은 소음과 인종과 계급과 성적 차별이 녹아 있는 온갖 소음에 의해 침범당하는 도시인의 불쾌감은 서로 다르지 않다. 지구 역사상 오늘만큼 생명의 소리가 풍요롭고 다양한 적이 없으며, 그 다양성이 이토록 위협받은 적도 일찍이 없었다.(12쪽) 이 위기의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우리 곁에 사는 생물 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우리가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우치게 한다. 다른 생명과의 감각적 연결은 호기심, 책임감, 애정을 일깨워 고립되고 끊어진 관계를 복원하고 치유의 길로 이어진다. 지은이의 야생의 소리에 대한 탐구는 고립과 단절, 개인주의와 윤리적 허무주의를 넘어서고 감각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다.
45억 년 지구의 역사에서 생물 종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나’를 넘어 ‘너’와의 연결을 통해서 진화의 창조성을 발휘하고 생존해왔다.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처한 지구에서 비관주의와 윤리적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바로 다른 존재에 귀 기울이고, 서로 감각적으로 생생하게 연결되는 데 있음을 지은이는 역설한다. “소리가 가치 있는 이유는 생성하기 때문이다. 옛 플라스마의 파동, 귀뚜라미와 고래의 노래, 새끼 멧새와 아기의 옹알이, 매머드 상아에 불어넣은 인간 숨결의 음. 이것들은 모두 창조 행위이다.”(550쪽)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동아일보 2023년 10월 07일(토) (유원모 기자)/ 인터넷 교보문고/ Daum·Naver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