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날... (2절) o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않은 자요 속은 자요 여러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3절) o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5절) o ...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에 힘쓰게 하려 함이라... (8절) o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0절)
내가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구원 받은 나는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말하고 지킴은 조심하여 선한 일에 힘쓰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서 8:13-14을 보고 회심하며 인간의 원죄론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한 구원론을 확립하여 기독교 신학의 교리를 정립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1:16-17절을 보고 회심하며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한 것임을 알고 새로운 그리스도교가 탄생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인간의 원죄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대하여 계속 반복하여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가 필요했는지 궁금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알고 나서 보면 쉬운 말인데 모르고 봐서 어려워던 것이었을까? 제가 보기에는 아마도 성경책이 일반에 보급이 되지 않았음도 한 원인이고, 아우구스티누스 시절까지는 아무래도 율법에 얽매인 경향이 있었고, 루터까지는 교황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과 정치권력과의 관계 등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성경 책이 각국 언어로 번역되고 인쇄되기 시작한 것이 기독교 전파와 개신교 정립에 큰 공헌을 한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원죄와 구원론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바울이 반복하여 해석하였으며 다른 기자의 신약에서도 계속 반복하여 나옵니다. 이 반복 기록된 그리스도교의 근본 교리는 성경만 자세히 읽으면 저절로 알 수 있는데 위대한 성인들의 지혜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는 것이 사실 모양은 우습게 되었습니다.
원죄와 구원론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며 저에게도 하시는 말씀임을 깨달았습니다. 말씀을 깨달음은 사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준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눈으로 보고 지식으로 그냥 아는 것보다 가슴으로 깨달을 때 큰 기쁨과 은혜가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고 하고 또한 2절 말씀을 주십니다. 저의 천성으로 볼 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이지만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하도록 해야 겠습니다. 저의 비판적이며 시니컬한 시각을 항상 온유하며 관용한 시각으로 비방하지 말고 다투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태어나야 함을 알고 노력하겠습니다.
다투지 말며 이단(구분 짓는) 사람과는 한두 번 이야기 후에 멀리하도록(10절) 하겠습니다. 항상 온유하고 범사에 기쁨을 느끼는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첫댓글 거듭남에 힘쓰시는 성도님을 축복합니다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말씀의 깨달음이 느껴짊을 축복합니다!
날로,날로 발전하십니다!
칭찬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