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까말까 고민했습니다. 요즘 주말에도 개인적인 일로 바빴고, 오늘 안봤다고 뭐 다음주에 내리겠냐, 라는 마음도 들더라고요.
하지만 괜히 스포 당하기 싫은 마음에, 어차피 근처에서 뭐 좀 살 것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했습니다.
보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개그와 멋짐, 플롯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나, 모순적이게도 이 셋을 전부 같이 넣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그가 들어가면 멋지기 힘들고, 멋진 장면에선 개그가 들어가기 힘드며, 이 두가지를 넣으며 플롯이 지저분하지 않게 만드는건 더 어렵죠. 플롯이 느슨하다면 그건 그 자체의 문제고요. 요즘 마블이 아쉬웠던 점은 이러한 조화가 많이 사라진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플롯이 꼬여 개그로 떼우려던 토르:러브 앤 썬더, 진지했으나 개그를 넣을 틈이 없던 이터널스, 혹은 플롯 때문에 개그와 감동 둘다 희석이 된 앤트맨과 와스프:퀀텀 매니아처럼 말이죠(전부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 개인적으로는 제임스 건 감독이,논란은 있지만, 2010년,2020년대 최고의 감독 중 한명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종일관 캐릭터를 살리고, 개그를 넣으면서도 그 진지한 장면에선 개그에서 빌드업된 그 캐릭터의 멋짐을 폭발시키거든요. 가장 '멋짐'을 폭발시킬 수 있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명이고요.
특히 이번 서사는, 1부터 이어져오던 하나의 고정관념을 깨버리는데, 그 느낌이 상당히 새롭습니다. '그랬단 말야?' 가 아니라 '그랬구나!'라는 깨달음이 한순간 다가오죠. 그래서 엔딩마저도 이해가 됩니다.
플롯이 꽉 찼고, 개그도 여전하고, 감동적입니다. 저는 호평을 많이 하는 편이니 걸러들으셔도 좋지만, 스파이더맨과 함께 마블 최고의 트릴로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MCU인물들로만 완결된 걸로 따진다면 최고의 트릴로지고요.
그리고 참 완결을 맛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봐준 관객들을 위해 마무리를 지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포라고 하면 스포일지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 노래는 여전히 하나의 상징성을 가집니다. 그동안 7080 팝송으로 색다른 느낌의 B급 정서를 가오갤 Vol.1,2가 보여줬다면 Vol.3의 음악은 좀더 시대를 지납니다. 바로 이 영화를 봐온 대부분의 관객들이 향유해온, 9000 팝으로 말이죠.
그래서 한 때는 SF와 팝이라는 절묘한 조합으로 현실성없는 시대를 아예 현실과 동떨어지게 보도록 해서 즐겁게 볼 수 있던 가오갤 시리즈는, 방법을 달리해서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이미 가오갤 화법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그들이 즐겨 듣던 노래들을 들려주며 그 때의 감성을 다시 느끼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 오프닝이 또 새로운 맛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가오갤 자체가 늘 오프닝 맛집을 운영했지만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스탭롤. 원래 쿠키 때문에, 그리고 마블이 잘 꾸미기도 해서 끝까지 보고 나갔던 MCU지만, 이번만큼은 스탭롤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하나하나 넘어갈 때마다 그 때 그 장면이 떠오르고, 그러니 그때 느꼈던 감정도 다시 생각나는 것 같더라고요. 가오갤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넣은듯한 히어로물이고, 그에 걸맞는 디테일이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던 시리즈가 하나 끝났다는 느낌이 확 와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섭섭했습니다.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소회겠네요.
제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알게 된건 한창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할 때였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으니 한창이란 말은 좀 안맞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지만 넘어가겠습니다.
당시 윈터 솔져를 극장에서 보며 MCU를 접하고 당시까지 대부분의 시리즈(그 헐크는 아직도 못보겠더라고요)를 보면서 MCU의 맛에 빠져들 무렵, 이상한 마블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과 이미지를 봤습니다. 진짜 이상하더라고요. 인간 하나, 초록색 외계인 하나, 덩치, 너구리, 나무? 특이한 조합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가 재밌을지 의문이 갔지만, 당시 마블을 믿은 사람으로, 그리고 힙스터로서 명량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러 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타로드의 타이틀 장면을 봤습니다. 그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방금전까지 역대급 감동, 비장한 오프닝으로 가는 줄 알았던 순간 흘러나오던 Come and Get your Love 노래와 동시에 나오던 타이틀. 순간 저도 그렇고 극장에서 헛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번에 보여주던 명장면이었고, 이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늘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나머지 넷이요? 그건 골라야 할 때 생각하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굿즈? 비슷한 것도 샀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음악 CD였죠. 이후 심심할때마다 듣고 있죠. 마음같아서 블루레이나 다른 이벤트 상품을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대신 취직 후 블루레이 샀음(..)
이후 Vol.2에서도 1보다 개그의 비중이 늘었지만, 역시 멋진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이후로 Mr. Blue Sky도 Awesome Mix Vol.1과 함께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 제가 1편을 처음 본 때가 2014년이었으니, 트릴로지의 마지막을 보는데 꼬박 9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근로장학금을 쪼개서 라밥먹고 영화를 보던 애송이는 취직해서 직장생활에 대한 불만도 쓰고 재테크에 진심인 아재(..)가 되었고, 사는 곳도 바뀌고, 몸무게도 불었습니다. 아,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솔로인건 같네요(..)
그런 제게 마지막 장면과 스탭롤은, 그시절의 감정을 느끼며 영화를 마무리하기에 가장 알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했던 시리즈가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멋진 마무리를 보여줬거든요.
하나하나 보며 '그땐 그런 장면이었지' '그런 진행을 보일지 어떻게 알아?' '아 맞아. 저때 그 장면이 너무 좋았는데' 같이, 마치 영화 스탭들과 그 때 그시절을 같이 되짚는것 같았고, 정말 하나의 스토리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년동안 이어졌던 제 개인적인 무비 로그 하나가 매조지 된 것이죠.
한편으로는 아쉬웠습니다. 다시 이런 조합을 볼 수 있을까? 영화에 대한 추억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끝난다는게 그런가봅니다. 너무 지겨워서 언제 끝나나 하다 끝나거나, 끝나고보니 아쉽거나.
또 나오면서 생각하기로는, 마블의 트릴로지들마다 마지막 느낌이 참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언맨/캡틴아메리카/토르가 하나의 캐릭터에 대한 성장이 끝나고 인피니티 워/엔드게임으로 스토리가 넘어간다면,
스파이더맨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느낌과 20년 간의 스파이더 맨 영화 팬들에게 하사하는 하나의 추억,
앤트맨과 와스프는 모순적이게도 새로운 서사를 시작하기 위해 작품 자체에는 신경을 덜 쓴 느낌이었죠.
그렇게 생각하면 개별시리즈로 시작해, 물론 인피니티 워/엔드게임에서 별별일 다 겪지만, 개별시리즈로 완결한 시리즈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인 감상이니 나중에 돌이키면 아닐 수도 있지만요.
쓰다보니 별 이상한 쪽으로까지 뻗어가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였고, 시리즈에 걸맞은 엔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만약 제 착각으로 3부작이 아니어서 가오갤 4도 나온다고 하면, 당연히 기분좋게 챙겨볼거고요.
마지막으로 저만 즐거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요즘 극장에서 이벤트 경품 받는 것에 빠졌는데, 가오갤 이벤트 상품은 전용 티켓과 4D 전용 포스터였습니다.
이미 티켓은 매진된 것을 알았지만 포스터는 받고 싶었는데, 사실 이렇게 늦게 본다면 포스터는 당연히 다 떨어졌기 마련입니다. 슬램덩크는 오후에 봤는데도 다 떨어졌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그냥 별 기대 없이 물어봤더니 포스터가 남아있더라고요. 불과 일주일 전 수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포스터가 다떨어지고 스티커 세트만 남았었는데요.
그간 작품의 재미와 별개로 한국 관중 동원력은 약했던 가오갤의 처지와 묘하게 겹쳐보여서 뭔가 유쾌했습니다.
상당히 이기적인 소망이지만, 앞으로도 B급 쌈마이 감성을 가진 A급 장르영화로, 이런 포지션을 계속 유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은하수비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