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000000">서양인들이 나를 다른 방으로 맞아들여 앉도록 했다. …… 식사를 대접하기에 이미 먹었다고 사양하니, 서양떡 서른 개를 내왔다. 그 모양이 우리나라의 박계(薄桂,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을 넣고 반죽해 직사각형으로 큼직하게 썰어 기름에 지진 조선의 과자로 한자로는 ‘중박계(中朴桂)’라고 쓴다)와 비슷했는데,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았으니 참으로 기이한 맛이었다. 만드는 방법을 묻자, 사탕과 계란, 밀가루로 만든다고 했다. 선왕(숙종)께서 말년에 음식에 물려 색다른 맛을 찾자, 어의(御醫) 이시필이 말하길 “연경에 갔을 때 심양장군(瀋陽將軍) 송주(松珠)의 병을 치료해주고 계란떡(雞卵餅)을 받아먹었는데, 그 맛이 매우 부드럽고 뛰어났습니다. 저들 또한 매우 진귀한 음식으로 여겼습니다”라고 했다. 이시필이 그 제조법에 따라 만들기를 청하여 내국(內局)에서 만들었지만 끝내 좋은 맛을 낼 수가 없었는데, 바로 이 음식이었던 것이다. 내가 한 조각을 먹자 그들이 곧 차를 내왔는데, 대개 이것을 먹은 후에 차를 마시면 소화가 잘되어 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뱃속이 매우 편안했으며, 배가 부르지 않았지만 시장기를 잊을 수 있었다.
이기지가 맛본 ‘서양떡’에 사탕, 계란, 밀가루가 들어갔다고 하니, 아마도 그 떡은 카스텔라(castella)일지 모른다. 카스텔라는 계란 노른자와 설탕․물엿․꿀을 섞어 충분히 젓고, 계란 흰자는 따로 거품을 내어두었다가 나중에 함께 섞은 뒤 여기에 밀가루를 넣어 가볍게 저은 다음 팬(pan)에 부어 구워서 만든다. 이것을 다시 팬에 넣고 철판으로 눌러 180℃ 정도에서 한 시간가량 구워낸다.
동아시아에 소개된 카스텔라는 포르투갈의 무역선을 타고 들어왔다. 16세기 초반 이미 타이완을 점령했던 포르투갈의 무역선에는 아시아 선교에 열중하던 가톨릭의 예수회 신부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 남단에 도착해 성당을 세우고 포교활동을 했다. 그중 베이징에 도착한 프랑스와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신부들은 오븐을 구할 수 없자 그 대용으로 벽돌로 만든 난로에다 카스텔라를 구워 자신들도 먹고 현지인에게도 나누어주었다. 이기지가 베이징에서 카스텔라를 맛볼 수 있었던 것도 예수회 신부 덕택이었다.
그 맛에 반한 사람 가운데는 이기지의 글에 나오는 이시필(李時弼, 1657~1724)이란 의관도 있다. 그는 이 카스텔라를 조선에서 다시 만들어보려고 애를 썼던 듯한데, 그의 저서 《소문사설(謏聞事說)》에 카스텔라 만드는 법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던 모양이다. 빵의 주재료는 밀가루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밀은 주로 겨울에 파종해서 한여름인 음력 6월에야 추수를 하는 겨울밀이다. 그것도 황해도를 비롯해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되었다. 또한 겨울밀은 봄밀에 비해 글루텐 성분이 적어서 빵을 만들려고 해도 반죽이 쉽게 되지 않았다. 빵을 만들기 좋은 봄밀도 이스트도 사탕도 없는 조선의 한양에서 빵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탕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카스텔라도 만들기 어려웠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빵의 역사 (1) - 서양떡으로 전래되어, 일본식 빵으로 확산되다 (한국의 생활사, 주영하)]
저 내용이 맞다면 아마 카스텔라를 만들 때 제대로 된 밀과 사탕(사실상 설탕을 가리키는 말인듯.)이 조선에 잘 없어서 제작하는데 실패한 모양입니다.
첫댓글 갑자기 카스테라 먹고싶다
저도 빵 먹고 싶어짐
적어도 카스테라에서는 밀의 글루텐 함유량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카스테라의 핵심은 계란으로 만드는 머랭이죠. 아마 머랭치는 것을 몰랐거나 또는 충분치 않았거나, 아니면 오븐 역할을 할 것이 없었던 것이 실패사유라고 보입니다. 그냥 재료를 전 부치듯이 섞어 반죽을 만든 후 시루에 넣고 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