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버스정류소를 그냥 지나칩니다.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노량진 번화가(?)를 지나 H학원에서 장승배기쪽으로 좌회전을 합니다.
점점 숨통이 트입니다. 역시 촌년은 사람들 북적거리는 걸 못 견딥니다.
시끌벅적한 주점들과 포장마차를 아쉬운(?) 마음으로 지나갑니다.
걷기 시작 15분쯤 되면 1차 고비를 맞습니다. 앞으로 1시간을 어떻게 걸어가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이 때만 잘 넘기면 1시간 이상도 끄떡없습니다.
장승배기역에서 보라매 방향으로 우회전을 합니다.
20미터쯤 가다보면 길 건너편 모텔의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안 보려고 해도 이상하게 눈길이 갑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딴 생각 금물. 경험은 사고를 지배합니다 ㅎ)
바로 소설가 김훈씨입니다.
그가 예전 시사저널 편집장이던 시절, 한창 학교 앞 모텔(등 유해업소) 건축을 허가하느냐 규제하느냐 하는 얘기로 시끄러웠을 때, ‘독창적’ 관점의 칼럼으로 단숨에 주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학교가 얼마나 많은데, 그 주변에 모텔을 다 못 짓게 하면
대체 우리 청춘남녀들은 어디서 사랑을 나누란 말이냐.. 뭐 그런 맥락의 내용으로
언론계는 충격(?)에 빠지고, 청춘남녀들은 환호를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있습니다.
저는 그를 ‘인간적인 언론인’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간판구경, 사람구경, 쇼윈도구경 등을 하며 걷다보면 동작구 전병헌 국회의원(민주당) 사무소가 나옵니다.
입구에 있는 현수막에서 그는 늘 멍한(?) 표정으로 웃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후 100분 토론에 나와 의기양양하게 앉아 있던 그의 얼굴이 오버랩됩니다. ‘썩소’ 한 번 날려줍니다.
신대방삼거리를 지나 보라매역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한 노래방 앞을 지나는 데 도우미 언니들과 아저씨들이 쌍쌍으로 나옵니다.
2차 가나봅니다.
보라매역에서 다시 보라매공원 방향으로 좌회전을 합니다.
역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농심본사 건물 위 전광판의 '매울 신(辛)'입니다.
잠깐 신라면에 얽힌 비화 하나. 농심의 신 모 회장은 자신의 가문을 세계적으로 알린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성씨가 바로 한자로 辛자를 쓰기 때문이죠. 그가 처음에 신라면을 내놓았을 때,
가문 어르신들은 '성씨를 팔아먹는다'며 대노했다고 합니다.
이젠 가문 행사 때마다 신라면을 나눠주고 있다니 상황이 완전 역전된 셈입니다.
게다가 친형인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 일본여인과 결혼하고 롯데재팬 등을 설립해
민족과 가문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았다는 비판을 받는 터라 더욱 대조적으로 비춰집니다.
보라매공원 정문, 기상청 등을 지나면 이제 집까지 10분도 남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근처 사는 후배를 불러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오늘은 피곤하여 그냥 패스합니다.
집에 들어서며 시계를 확인합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약간 단축돼 1시간 5분쯤 걸렸습니다.
걸어서 집에 가기 4주째 접어들었습니다.(일주일에 4-5회) 처음엔 다이어트 좀 해보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초콜릿과 술을 끊지 못하니 별 효과는 못보고 있습니다. ㅡㅡ;
하지만 몇 가지 좋은 점을 발견하니 나름대로 걷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더워서 흘리는 땀이나 사우나에서 억지로 빼는 땀이 아닌, 몸에서 은근히 배어나오는 땀은 사람의 기분을 참 좋게 합니다.
시원한 물로 샤워 후 잠자리에 들면 에어컨과 선풍기 없이도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헬스장 이용료와 교통비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남들은 돈을 쓰면서 운동하는데 저는 오히려 버스비까지 버는 셈입니다.
몇 주간 절 고통스럽게 하던 변비도 사라졌습니다.
수험생활 막바지엔 체력싸움이라는 데, 지금부터 미리 체력 좀 다져놓아야겠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걸어보시죠! ㅎㅎ
(수다가 길었습니다~ 요즘 하루종일 말을 거의 안하고 사니까 인터넷으로 수다를 떨게 되네요.
교수님과 한잔하며 수다 떠는 게 최근 거의 유일한 수다이자, 낙이었습니다. 다시 찾아뵈어야겠네요^^)
첫댓글 여러가지 얘기 재밌네요.ㅋㅋㅋ 아직도 걸어다니시나 봐요... 화이팅입니다.ㅋ 저도 벌써 2주째 한강을 뛰고 있습니다.ㅋ 처음엔 한강대교에서 63빌딩까지였는데.. 이제는 국회의사당까지 뛰어갔다 옵니다. 딱 한시간 걸리는데... 요즘 무릎에 통증을 좀 느끼지만... 기상시간도 빨라지고 집중하는시간이 상당히 늘었습니다. 체력=합격...!ㅋ
국회의사당까지면 거리가 꽤 되겠네요. 뛸 수 있는 용기 부럽습니다.(무릎은 조심하세요. 무릎연골 한 번 망가지면 회복이 어렵다네요.)
3년간 한강대교를 매일 지나다녔는데, 이젠 그쪽방향으로 갈 일이 거의 없네요.. 해질녘 한강, 나름 운치있는데 ㅎ
암튼 운동 열심히 하시고, 공부도 열심히 하세요.. ㅎㅎ
초콜릿은 그렇다쳐도 술을???ㅋㅋㅋ 잼있는 얘기 잘 읽었습니다...인생에 도움이 되었어요..
어떤 얘기가 인생에 도움이 됐는지? ㅎㅎ
저두 워킹홀릭입니다~~ 나이 들어서 그런지 뛰는 건 사양~! 걷고 나서 하는 샤워는 살짝 한기도 느낄 수 있는 천연 냉방~
전 시골이라 그리 생각할 거리는 없어서 초록을 벗삼아 걷고 있습니다~^^
working holic 은 아니시죠? ㅎ 제 생각엔 자연을 벗삼아 걷는 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다지 몸에 스트레스 받는 스타일은 아니라... 그냥 '건강'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잠을 잘 자려면 운동 등등 여러가지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마음 컨트롤 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