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7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ㄴ-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27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존중에 애정을 더하기
나는 옻을 많이 탑니다. 그래서 어려서는 윗동네에 가려면 옻나무가 많이 있는 동산을 지나는데 그 근처만 가도 온몸이 가렵고 옻이 오른 듯해서 먼 길로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게 무서워서 옻닭도 못 먹고, 옻나무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목공을 배우면서 옻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옻칠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칠흑(漆黑)같다는 말이 그 때 느낀 신비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개를 가구에 박을 때는 정말 신비한 느낌이 듭니다. 지금은 전복이 아주 보편화된 해산물로 많이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려서는 전복을 보기가 하늘의 별을 따듯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자개장이면 정말 최고로 값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자개를 무늬대로 잘라 목심(木心)이나 칠면(漆面)에 박아 넣거나 붙이는 칠공예 기법을 나전(螺鈿)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전감(蜔嵌) · 함방(陷蚌) · 취라(吹螺) 또는 나전(螺塡)이라고도 하며, 한국에서는 원래 자개라고 하였습니다. 나전에 사용하는 조개껍데기는 야광패(夜光貝) · 전복껍데기가 주로 쓰이며 이 밖에도 담패(淡貝) · 현패(蜆貝:가막조개) · 멕시코 포패(鮑貝) 등 진주 빛을 내는 조개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조개껍데기를 숫돌 등에 갈아서 여러 두께로 만들어 내고, 끌이나 실톱으로 자른 다음 줄칼로 형태를 다듬어 아교로 목심이나 칠면에 붙인 다음 옻칠을 하고 닦아서 윤을 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조개껍데기가 아름다워도 아교와 옻칠로 붙이고 칠을 하지 않으면 그냥 떨어져 있는 조개일 뿐입니다. 그것을 일일이 조각하고 붙이고, 칠을 하면서 잘 붙여야 합니다. 그래서 <아교와 옻처럼 떨어질 수 없이 가까운 사이>를 나타내는 말 ‘교칠지교’(膠漆之交)가 생겨났습니다. 당(唐)나라 때의 백낙천(白樂天)과 원미지(元微之)의 교분에서 생긴 말입니다. 그들은 황제에게 백성들의 고충을 시로써 고발하다가 미움을 사 좌천을 당해 시골로 떨어져 살게 됩니다. 그러자 서로 그리워하다가 백낙천이 원미지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 편지가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고 가슴에 담습니다.
“4월 10일 밤에 낙천은 아뢴다. 미지여, 미지여. 그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도 이미 3년이 지났네. 그대의 편지를 받지 못한 지도 2년이 되려고 하네. 인생이란 길지 않은 걸세. 그런데도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하니 말일세.
황이교칠지심 치어호월지신(況以膠漆之心 置於湖越之身)
‘하물며 아교와 옻칠 같은 마음으로 북쪽 오랑캐 땅에 몸을 두고 있으니 말일세.’
나아가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물러서도 서로 잊을 수 없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떨어져 있어, 각자 흰머리가 되려고 하네. 미지여, 미지여. 어찌하리, 어찌하리오. 실로 하늘이 하신 것이라면 이것을 어찌하랴!”
《백씨문집》〈여미지서(與微之書)〉
교칠(膠漆)은 아교와 옻을 말합니다. 아교로 붙이면 서로 떨어질 수가 없고, 옻으로 칠을 하면 벗겨지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딱 붙어 떨어질 수 없는 그리운 마음을 ‘교칠지심’이라 하고, 그런 두 친구의 교분을 가리켜 교칠지교(膠漆之交)라고 합니다. 교칠지심은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말할 때도 쓰입니다. 그 교칠지심을 가진 친구가 내게 있는지 생각해보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레위와 친구가 되십니다.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릅니다. 이제 죽음으로 교칠지교를 맺습니다. 그는 죄인인 신분으로 용서를 받으며, 주님의 치료를 받는 행운을 얻습니다. 주님은 의사로서, 친구로서, 스승으로서, 레위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시고, 제자로 삼습니다.
존중에 애정을 더하기
그대는 친구나 동료에게 존중받고 싶은가?
사람들은 대개 존중에는 인색하지 않다
문제는 존중이 아니라 존경 받을 수 있는가에 있다
존경이란 단어는 뭔가 남다른 경외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실력이 앞선다거나 지위가 높다거나 하는 것으로
존중을 얻어낼 수는 있지만
존경까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존경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존경은 존중에 애정이 더해 졌을 때 가능하다
그대가 존중하는 친구나 동료가 있다면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줘 보라
그 애정은 존중을 존경으로 만들고
다시 그대에게 되돌아와 존경심으로 보답할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존중에 애정을 더해 상대에게 건네주고
존경을 얻는 지혜를 터득한 사람들이다.
【 좋은글 中 에서 】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9ㄷ-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11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12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13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14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축일2월 17일 성 보니필리오 모날디 (Bonifilius Monaldi)
신분 : 수도원장, 설립자
활동 연도 : +1261년
같은 이름 : 모날도, 모날디, 보니필리우스
성 알렉시우스 팔코니에리(Alexius Falconieri)는 베르나르두스 팔코니에리(Bernardus Falconieri)의 아들로 그의 집안은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에서 부유한 상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6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피렌체의 성모 형제회에 입회하였다(1225년). 1233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그들은 동정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 이때 마리아께서는 그들에게 은수자의 기도와 고독한 생활에 대해 말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피렌체 교외 라 카마르치아(La Camarzia)에 집을 짓고 살다가 몬테 센나리오(Monte Sennario)로 이주하였는데, 1240년에 또 다른 마리아의 환시를 보고 ‘성모의 종’(The Servites)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이때 성 보니필리우스 모날디(또는 보니필리오)가 초대원장이 되었다.
성 알렉시우스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은 모두 사제로 서품되었으나 그 자신은 사제가 될 자격이 없다고 느껴 수도원의 재정관계 일을 맡았으며 카파지오(Cafaggio)에 수도원 성당을 짓는데 전념하였다. 성 알렉시우스는 이 수도회가 교황 베네딕투스 11세(Benedictus XI)로부터 인가받을 때까지 생존했던 유일한 설립회원이었다. 그는 110세까지 장수하다가 몬테 센나리오에서 운명하였다. 성 알렉시우스와 그의 여섯 동료들, 즉 성 보니필리우스 모날디, 성 요한(Joannes Bonaiuncta), 성 마네투스(Manettus dell'Antella), 성 아마데우스(Amadeus degli Amidei), 성 후고(Hugo Uguccione), 성 소스테네(Sosthenes Sostegno)는 1887년 성모의 종 수도회의 일곱 설립자 이름으로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보니필리오 모날디 (Bonifilius Monaldi)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