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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2*복음의 빚진자
로마서 1장8-15절-김인환 목사
➤“8. 먼저 너희 모두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의 믿음이 온 세상에 두루 전하여졌기 때문이라. 9. 내가 그분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 되시거니와 내가 기도할 때에 언제나 너희에 관하여 끊임없이 말하며 10. 어찌하든지 이제라도 마침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순탄한 여정을 얻어 너희에게 가게 되기를 간구하노라. 11.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은 내가 너희에게 어떤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고자 함이니 12. 이것은 곧 너희와 나 사이의 공통된 믿음으로 통하여 내가 너희와 함께 위로를 받고자 함이라. 13.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기 위해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이제껏 막혔도다.) 14. 나는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빚진 자니라. 15.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분량대로 나는 또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롬1:8-15 KJV)
오늘 읽은 말씀을 가지고 [복음은 비친 자]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원불교 학림사 출신으로 소록도 법당에서 염불을 열심히 외우며 틈 만나면 부처를 전하던 사람이 중앙아시아의 농아들을 섬기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1988년 3월2일 소록도 법당에서 그날도 가부좌를 틀고 30분간 좌선을 한 다음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하는데 갑자기 그 염불하던 그 입에서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찬송이 터져 나온 거예요.
왜 그런가? 했더니 그 당시 소록도 한센 병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분들이 죽음 가운데서도 오히려 기쁘게 그렇게 찬양을 불렀던 그 찬양의 소리가 이 사람이 입에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방언이 터지고 한 시간 넘도록 하는 목탁을 내려놓고 법당을 구르면서 회계 눈물과 콧물로 아주 뒤범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부는 소록도에 교도소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교도소 사람들은 이 사람이 예전에는 부처를 전한다는 사람이 이제 예수님을 전하느냐? 하면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과 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약사인 아내와의 평안한 삶을 내려놓고 중앙아시아 이슬람 특별히 장애인들이 농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선교사로 드린 것입니다. 바로 복음의 비친 사람의 저자인 이민교 선교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왜 이렇게 살았을까요? 책 제목이 알려 주듯이 그는 [복음에 빚진자]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도 일평생 복음을 위해서 살 수 있었던 그 이유가 뭐냐 라고 말하는 복음의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14. 나는 그리스인이나 바바리 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빚진 자니라.”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일평생 흔들림 없이 복음을 위해서 그 고난 중에서도 목숨을 걸고 복음을 위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복음의 빚진 자라는 이 철저한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받은 자라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람으로 인해서 복음을 바꾼 구원을 얻었다면 우리도 복음에 빚진 자요.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빛은 자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다시 복음에 빚진 자로 일평생 복음을 위해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복음의 비친 자는 어떻게 사는 걸까요?
첫째로 다른 이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형제들 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럼 복음이 무엇입니까? 죽어 마땅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신 이르기 위해서 우리가 추구할 그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 에서 우리가 구원 받은 것 그게 복음의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아멘 이십니까? 그렇게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비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요. 이건 너무나 당연해 다 이해해요. 왜 복음을 받은 자 하나님이 날 사랑하셔서 날 구원 하신 것이 복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 사랑하게 되요.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은 형제 다른 이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나타나야 함을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8. 먼저 너희 모두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의 믿음이 온 세상에 두루 전하여졌기 때문이라.”
복음에 빚진자 인사도 뭐 때문에 감사하고 있어요.
좋은 일이 생겼나요? 보통 우린 좋은 일이 생길 때 감사하잖아요. 뭐가 잘 됐어요. 자녀가 잘 됐어요. 사업이 잘 됐어요. 이런 감사 하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은 자신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이때도 복음 때문에 모진 핍박과 고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어쩌면 감사할 일이 없을 수도 있겠지요. 사도 바울은 누구 때문에 감사 하나면 다른 사람 때문에 감사해요. 그 다른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로마에 있는 성도들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겁니다. 와 그게 그렇게 감사할 일인가요?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 때문에 감사한 게 언제였는지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잘되는 일에 함께 기뻐하기 쉽지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럴 수 없거든 우리가 다른 사람 일에 정말 기뻐 한다는 것은 그 안에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사람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일 때문에 기뻐하고 그것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그런 거요. 왜 사도바울은 주권 한가운데 있고 남아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만 아님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아야만 합니까? 라고 원망해도 시원치 않은 그 상황에서 자기의 일이 잘 풀린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잘되고 있는 그 일들 가운데 어떻게 사도바울이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그 하나님의 복음의 빚진자 라는 의식이 있어요.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사는가?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빚을 갚는데 그런 심정인 것이요.
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 많은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복음에 빚진 자란 의식이 없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나한테 물어요. “목사님 저사람 나하고 마음에 맞지도 않고 굳이 저 사람이 나한테 뭐 잘 해준 것도 없는데 왜 내가 첫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까? 혹 복음이 빚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는 사랑 하셨기 때문이요. 그게 복음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혹 복음을 받은 자는 복음의 빚진 자의식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을 사랑이기 때문에 감사 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 뿐이 아니에요.
본문 9절 말씀을 ➤“9. 내가 그분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 되시거니와 내가 기도할 때에 언제나 너희에 관하여 끊임없이 말하며 10. 어찌하든지 이제라도 마침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순탄한 여정을 얻어 너희에게 가게 되기를 간구하노라.”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별로 안 놀라시는 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번 한 주간 저와 여러분은 다른 이를 위해서 나와 여러분 로마 교인들은 사도바울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이렇게 물어 볼까요. 성도 여러분 성도들을 위해서 이번 한 주간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로마 성도들을 위해서 사도바울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 우리가 이게 쉽지 않다는 거 안전에 우리가 누가 어려우면 집사람 제가 기도할게요. 이 말은 쉽게 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아니에요. 그런데 기도하지 말라. 그래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랑하는데 자식 내 가족 사랑하면 기도해요.
사도 바울이 어떻게 뜨겁게 감사할 수뿐만 그들을 내 잘된 일 때문에 너무 감사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바울이 로마 있는 성도들 다른 일을 자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빛은 자였기 때문에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복음의 빚을 졌다면 다른 이들 뜨겁게 사랑하지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의 빚진 제자로 산다는 것을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이들과 복음의 교재를 나누는 공동체로 사는 거예요. 복음의 교제를 나누면서 10절을 읽겠습니다. ➤“10 어찌하든지 이제라도 마침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순탄한 여정을 얻어 너희에게 가게 되기를 간구하노라.” 자 사도바울이 기도를 했어요. 뭐라고 기도 했습니까? 로마 있는 성도들이 형제들이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병 낫게 해주십시오. 이런 기도 했습니까? 바울이 쉬지 않고 기도했던 기도제목이 뭐였나? 봤더니 너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원한다.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 만나고 싶다. 너희를 보고 싶다. 너희들 만나서 교제하고 싶다. 이게 사도바울이입니다. 여러분 이게 여기서 뿐만 아닙니다.
➤빌립보서 4장1절 “1. 그러므로 극진히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들 곧 나의 기쁨이요 왕관인 나의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서 굳게 서라.”
사도바울이 다른 사람들 향한 마음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감옥에서 기록한 서신입니다. 감옥에서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 데살로니가전서 2장17절 ➤“17. 그러나 형제들아, 우리가 얼굴로는 잠시 너희를 떠났으나 마음으로는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 얼굴 보기를 크게 원하며 더욱 넘치도록 힘썼노라.” 잠시 헤어질 때도 크게 너무 안타까워서 너의 얼굴 보기를 내가 열정적으로 더욱 힘쓰며 너희를 만나길 원한다.
여러분 왜 사도 바울이 그토록 로마 있는 성도들을 만나기를 원했습니까? 사랑하면 보고 싶잖아요. 사람은 다른 게 원하지 않아요. 함께 만나서 교제하는 것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어요. 여러분 얼마나 사도바울이 사랑했으면 감옥에 갇혀 있어서도 아니 자신은 지금도 헐벗고 춥고 그 상황 속에서도 그런 게 중요하지 않고 어떡하든 그들을 만나서 사랑하면 어제 만난 데도 오늘도 만나고 싶은데 사랑이 식으면 이런 말을 합니다. 또 만나 이런 얘기를 하는 거요. 여러분 우리는 결혼은 지 26년이 되는 넘었는데 우리 와이프가 늘 그래요. 제가 늦게 나가면 여보! 당신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당신이 보고 싶다는 거 아세요. 왜 비우세요? 우리의 사랑은 26년간 쉬지 않는 거요.
복음의 비친 자는 복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랑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더 나아가서 함께 공동체를 이로써 도지한은 것 이것 보다 더 가치 있고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이 없거든요. 복음을 알면 공동체를 사모 할 수밖에 없다. 공동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데 오늘의 한국교회 보통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냥 복음을 천국 가는 티켓 정도로 압니다. 그래서 그냥 나중에 죽기 전에 예수님 믿는 게 제일 복된 말이요. 말이라고 해요. 그게 말입니까? 세상 말로 복음을 모르니까 그런 얘기를 해요. 복음을 아는 순간부터 이 땅에서도 수고로이 왔을 뿐인 이 땅에서 우리가 복음으로 서로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교체할 수 있는 이 놀라운 복위에 복을 더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번에 사역 훈련 중에서 이렇게 자신에게 소그룹에서 영향력을 줬던 분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있었나 봐요? 원래 제가 이제 그 먼저에 들어가면 저에게 이렇게 쓰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의외로 그런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그래가지고 저는 제외하고 쓰십시오. 이러는데 제가 심화반 스케줄 때문에 못 들어왔더니 저에게 편지를 쓴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정말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분이 들어가기 전에 저한테 품에 문자를 보내서 편지를 보냈는데 제가 답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글을 보내셨는데 이런 글이 중간 조금만 읽어 드릴께요.
“처음 우리 교회에 왔을 때 이혼 후 긴 시간을 혼자 내 삶을 꾸려 가느라 고군분투 하며 살아왔던 그 때 목사님과 제자반 5기라는 따뜻하고 특별한 공동체 안에서 참 많이 웃고 다른 자매들을 통해 인간상호 관계를 다시 배우고 그 지지와 힘으로 어찌 보면 좀 성급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남편과 재혼 할 수 있는 힘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속해 있었던 목사님과 제자반 5기라는 속으로 공동체는 참 놀라운 공동체였습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고백했던 제가 참 많은 사랑을 받고 깊은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고 주님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얻고 마음속 깊이 덮어 어떤 어려움과 고통들을 상처를 함께 나누며 치유하는 놀라운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무모 하지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아는 사람은 내가 복음의 비친 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공동체를 참여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의 들어가서 복음을 나누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복음의 비친 자로 산다는 것이 뭘까요?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이 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의 비친 자들은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교제하기를 열망하게 되요. 그러나 가장 큰 열망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과 교제하는 열망도 참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열망이 있어요. 그거 뭐냐면 이 복음을 전하고 싶다.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사도바울도 그랬어요. 오늘 14-15절 한번 읽어볼까요? ➤“14. 나는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빚진 자니라. 15.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분량대로 나는 또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내가 빚진 자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내가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큰 복음을 전합니다. 좀 이상하지 않아요. 즉 여기서 너희는 바로 로마인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이미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복음을 로마 교인들이 복음을 알기는 아는데 복음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 복음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그 풍성하게 어떤 것인지 모른 채 복음을 그냥 알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냥 천국 가는 티켓 정도로만 알아요. 그래서 어떻게 다르게 복된 사람이냐? 복음을 받은 사람도 이 세상에서 자기 맘대로 형통을 누리고 살다가 천국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래요.
왜 그런 소망을 갖게 됐을까요?
복음이 우리를 얼마나 부요케 하는지 복음이 우리를 가난한 중에도 우리를 부유하게 하고 근심 중에도 우리를 기뻐하게 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이 그냥 천국행 티켓 정도로 알고 있으니까 그 복음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복음을 전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요.
여러분 우리교회 와서 훈련을 받으면 제자훈련 통해도 왜 공동체가 형성되고 사람들이 이렇게 변화하면요. 제자훈련 핵심이 복음이 어떠한 것인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제자훈련 핵심 교재의 제목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구원입니다. 그 복음을 전하세요. 그래서 일산에서 우리교회로 이사 오셨던 어떤 안수집사님이 우리교회에서 이제야 복음을 깨닫고, 그래서 복음을 깨닫고 나니까 목사님 예전에 다니던 자신이 율법주의에 가졌다가 사람들이 문제투성이로 보였는데 복음을 깨달으니까 사랑스럽고 문제는 나만 잘하면 된다 이거 목사님 저런들 복음 앞에서 깨닫습니다.
복음의 결론은 너나 잘하세요. 이것 때문에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니까 그래서 그분은 그 다음부터 깨달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요, 이 세상 형통에 투자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7-9절에서 말합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8.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로움 곧 믿음으로 통해서 [하나님]에게서 난 의로움을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얻고 싶은 그 간절한 거 예수님 때문에 모든 걸 다 잃었는데 조금도 의지하지 않는다. 배설물로 여깁니다. 아니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17-20절 ➤“17. ¶ 그가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니 18. 그들이 그에게 오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모든 때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 너희와 함께 지냈는지 너희가 알거니와 19. 내가 온전히 겸손한 마음과 많은 눈물과 또 숨어서 기다리는 유대인들로 통해서 내게 닥친 시험들과 더불어 [주]를 섬기며 20. 너희에게 유익한 것은 어떤 것도 숨기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보여 주며 공중 앞에서 또 집에서 집으로 다니며 너희를 가르치고 21. 유대인들과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
그런데 그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빈부노소 사람에게 라도 더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아요. 여러분 그런 복음을 위하여 살고 복음을 위하여 죽을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왜요 복음에 미친 자유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그 사람과 그 은혜에 빚을 진 사람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연주자] 라는 책을 쓴 송솔나무 라는 연주자가 있습니다. 그분들께서 유명한 분이에요. 세계 최고의 음악대학 중의 저자의 인생 이야기이며 동시에 믿음의 성장 이야기인 이 책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부모 사랑 속에서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저자는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1988년 갑자기 어머니를 따라서 미국으로 가게 됩니다. 집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학교에서는 왕따와 야유, 구타를 당하지만, 기도 중에 성령님의 음성을 처음 듣던 날 공립학교 밴드부의 플루트 주자가 되고, 만 13세에는 줄리어드 예비스쿨 장학생이 됩니다. 재학 중 링컨 센터와 카네기홀에서 독주와 오케스트라 협연 경력을 쌓으며 스위스 로잔 국립음악원에 입학합니다.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면 드라마 [허준] 그리고 [이산]등에 거기다 나온 연주가 이 사람이었는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요. 그런데 이분이 예전에 매니지드 그 메리즈워터에다 중에 한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청나게 큰 일이 들어 왔다는 거예요. 그래 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일본 오사카 엑스포에서 일본과 진행하는 진행팀의 제일 높은 사람이 원하는 직을 줄테니 이 사람을 블루그래 송솔나무 인거요. 또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대표까지 그 자리에 참석하게 따고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날 하필이면 일본의 작은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기로 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집회가 있었어요. 그 자기 돈을 자기도 복음의 빚진 자였기 때문에 이렇게 가기로 했는데 순간 그 작은 교회를 가는 거 보단 여기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회에 전화 걸어서 양해를 구해 가지고 스케줄을 조정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그 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마음이 왠지 침침한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스로운 음성이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순간 깨닫습니다. 내가 바보짓을 했구나!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어서 다시 그 작은 교회로 가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일본을 갔는데 가보니까 음악당이 아닌 일단 다다미방이 그냥 펼쳐져 있는 거예요.
게다가 음향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겨우 이 공연을 위해 10분전에 렌트해서 겨우 이렇게 음향 장비를 빌렸습니다. 그리고 청중이 없어서 그냥 수녀님 2분과 팔이 하나가 없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고 젊은 청년과 기운이 있는 것 같은 아저씨뿐이었습니다. 10명도 안 되는 것,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내가 만약 여기 있지 않았더라면 레드카펫이 깔려 있는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멋진 옷을 입고 있는 루이비통 사장님이 내 연주를 듣고 있겠지!” 그런데 지금 자비로 와서 이 10명도 안 되는 이 다다미방에서 내가 이걸 좀 뭐 하고 있는 거지 대강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었지요.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몇 명이 눈에 이슬이 불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쪽 팔이 없어서 집밖에 나오지 않았던 그 할머니께서 예수님을 믿는 손녀와 함께 나와서 그 순간 예수님을 영접한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이 그 소녀는 얼마나 감사 했는지 할머니가 어린 아이처럼 송솔나무와 사진 찍는 모습에 감동한 그 소녀가 다다미방 창고에 들어가서 꺼이꺼이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를 순리하던 한 젊은이가 그 순간 거기 와서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부터이다. 순간 그는 아! 내가 왜 거기 있었는지? 깨닫게 된 이유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루이비통 가방 중에 제일 값나 가는 것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기까지 하시며 그렇게 산 우리의 값만큼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분 송솔나무가 복음의 빛은 자로 다시 회복되는 걷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오늘 복음의 빚진 자로서 사도바울처럼 이렇게 살아가야지 않겠습니까?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헐값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도저히 구원할 가치가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외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놓으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 값을 치르게 하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은 우리 모두는 복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우리는 모두가 복음에 빚진 자로 살 수밖에 없는 것만이 우리 가운데, 그래서 더 이상 사도바울처럼 내가 이전에 유익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복음을 위하여 다른 이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들과 복음의 교제를 나누면서 아직도 복음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더 나누어주는 이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놀라우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하심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이제 복음의 놀라우신 그 사랑과 그 은혜에 빛을 알고 복음의 빚진 자로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로움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일평생 살아가길 원하는 사랑하는 성도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나이다. 아멘.Ⓗ-💗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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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잠 30:32).
(^~^)거룩하고 복된 주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오늘 복된 하루 되시길 소망 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