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25일 (목)
제목 : 처형되는 아도니야
오늘의 말씀 : 열왕기상 2:13-25 찬송가: 398장
13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14 또 이르되 내가 말씀드릴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15 그가 이르되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16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17 그가 이르되 청하건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18 밧세바가 이르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19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왕좌에 앉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자리를 베푸니 그가 그의 오른쪽에 앉는지라
20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소서 내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21 이르되 청하건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왕의 형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
22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
23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24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중심 단어: 아도니야, 밧세바, 구하다, 솔로몬 왕, 아비삭,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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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야의 야심
15절: 왕위는 자기 것이었음/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 했음/ 왕권이 돌아가 아우의 것이 됐음
17절: 아비삭을 아내로 삼고자 함
도움말
1. 아비삭을… 삼게 하소서(17절): 선왕의 여자를 취하는 것은 선왕의 권한을 물려받는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므로 이 요구는 간악한 것이었다.
2. 한 가지 작은 일(20절): 아도니야의 간악한 저의를 간파하지 못한 밧세바의 무지를 반영한 말이다.
3. 집을 세우신(24절): ‘왕궁을 짓다’라는 뜻이 아니라 ‘왕조를 형성하다’라는 뜻이다.
말씀묵상
아도니야의 어리석음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2:12)는 말씀처럼 강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왕권을 인정해 주셨고 그 나라를 강하게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왕의 측근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함께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도니야는 여전히 왕이 되려는 야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기대를 접지 못하는 아도니야의 모습은 측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에게는 왕이 되는 목적밖에는 없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아비삭을 빌미로 왕권을 넘보다가 결국 자신의 생명마저 잃고 맙니다(25절).
솔로몬의 통찰력
밧세바는 아비삭을 아내로 구하는 아도니야의 요청을 쉽게 받아들여 그의 소원을 솔로몬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단번에 왕위를 노리는 아도니야의 계략을 눈치챘습니다. 당시 왕의 아내를 취하는 행위는 그의 왕좌를 차지하는 표시로 여겨지곤 했습니다(삼하 3:7; 16:21-22). 아도니야는 다윗의 곁에서 수종들던 아비삭을 손에 넣음으로써 왕권을 빼앗기 위한 빌미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때 솔로몬은 지난번과는 달리 아도니야의 문제를 단호하게 처리합니다. 개인적인 감정과 혈연관계를 넘어서 이제 그에게는 한 나라의 평안과 안정을 지킬 의무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관용의 정신과 공의로운 형벌을 지혜롭게 실천해야 했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아도니야의 야심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관용과 공의로움 사이에서 사람들을 지혜롭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오늘의 묵상>
말에는 그 사람의 생각, 감정, 의지, 마음, 영성, 비전이 포함되어 있다. 표현력이 부족한 나도 내 가슴에 있는 것을 숨기지 못할 때가 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 ‘작음’ ‘낮춤’ ‘섬김’ ‘사랑’... 자주 사용하는 단어속에 그 의미가 담겨져 있다.
비록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표정과 행동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 말에 하나님 사랑이 빠진 욕심, 탐심, 정욕이 가득 차 있을 때는 마음 문이 닫히고 귀를 막게 된다. 뻔히 속셈 보이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는 화가 나기도 한다.
주님보시기에 하나님이 주신 들꽃공동체와 라마나욧선교회 비전을 놓기 기도하기 보다, 재정을 위해서 먼저 헌금과 후원자를 기도하는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
솔로몬에게 목숨을 구걸했던 아도니야는 아직도 야심을 버리지 못하고 밧세바에게 겁 없이 다윗이 품었던 여인 아비삭을 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아도니야의 말속에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야심이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이것은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의 뜻이나 민심이 아니었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솔로몬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가 정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기름부어 왕으로 세운 것을 인정하는 자였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아도니야는 아직도 왕좌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본래 왕좌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속셈에서 아도니야를 밧세바에게 아비삭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옵소서. 청하건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그런데 밧세바의 반응이 더 놀랍다.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다윗이 비록 죽었지만 그동안 왕의 신하들이 다윗을 위해 젊은 여자 아비삭을 구해서 그의 품에 안겨 준 것을 생각하면 화가 났을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질투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좌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비삭을 요구하는 아도니야의 악한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좋다!”라고 한 것이다. 이 요구를 듣고 있던 솔로몬은 화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요청하십니까? 차라리 그에게 왕위를 넘겨 주라고 요청하십시오! 그는 나의 형이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아비아달 제사장과 요압 장군도 모두 좋다고 할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어머니 밧세바의 청을 듣자마자 그 뒤에 숨은 아도니야의 반역 의도를 명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아도니야의 요구는 단순히 여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반역에 동조했던 요압과 아비아달의 세력을 다시 모아 왕권을 찬탈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솔로몬은 이전에 베풀었던 자비와 관용을 거두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근거로 하여 아도니야에게 즉각적인 사형을 선고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했던 말씀이 또 생각이 난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행5: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탐욕의 끝은 멸망이다. 주님은 오늘 내 안에 숨은 탐욕이 있는지를 점검하게 하신다.
자신의 숨은 탐욕을 성취하기 위해 영향력 있는 사람의 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하려 든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은 자칫 분별력을 잃고 밧세바처럼 ‘좋다!’라고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
혹 나도 그런 사람은 아닐까? 그 기준이 주님의 뜻이 아닌, 내 탐욕과 감정 때문이라면 충분히 잘못된 판단이요 멸망의 길로 가는 선택이 된다.
주님은 오늘 이것을 경계하게 하신다. 이 경계심을 놓친 왕들의 역사가 바로 열왕기상하였다. 전무후무한 지혜자도 이 기준에서 벗어남으로 결국 통일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지게 한 왕이 되고 말았다.
오늘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좋다!’라고 결정하는가?
주님은 오늘도 내 귀와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는 단어 ‘버림’과 ‘낮춤’만이 내가 살길임을 알게 하신다.
사랑의 주님. 제 마음에 주님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지게 하옵소서.
혹 숨어 있는 탐욕이 있다면 발견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 정직하게 직면하게 하옵소서.
깊은 마음속으로부터 주님의 비전이 넘쳐 흘러나오게 하옵소서. 얄팍한 속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재정을 채우고 후원자를 확보하려고는 생각을 버리게 하옵소서, 내 감정과 나의 유익을 위해 함부로 ‘좋다!’라고 말하지 않게 하옵소서.
다윗처럼 정직하고 정결한 마음과 성령을 구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마음으로 낮은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작은 영혼과 작은교회들을 섬기고 그들이 살아나고 세워질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hhpWaUUvk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