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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는 꽃의 싸움이다 |
사실 난 평소 화투나 카드라곤 취미도 없었다. 그저 단순히 ‘얼굴 없는 미녀’의 지수(김혜수 분)와 ‘말아톤’ 초원이(조승우 분)가 만나 과연 어떤 연기를 펼칠지에 관심이 쏠렸다. 지수의 그 섬뜩하고 묘한 매력과 초원이의 순수함이 어떻게 조합될지 궁금했다. 영화 <타짜>가 시작되기 전까지 내내 의심 반 기대 반이었다.
영화는 작은 가구 공장 창고에서 시작된다. 허름한 아저씨들 몇몇이 둘러 앉아 화투판을 벌이고 있다. 화투(花投).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고스톱(go stop)’이라고 불리는 놀이가 이 영화에선 ‘꽃의 싸움’이라는 매력적인 단어로 소개된다. 작은 카드 한 장, 한 장에 그려진 그림 때문에 간혹 어르신들은 화투로 ‘동양화 공부 한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가끔 TV에서 ‘도박’에 관한 보도를 들을 때면 그 어마어마한 액수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때도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큰돈을 걸고 그 위험한 게임을 할 수 있는지 묻고도 싶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 돈으로 적금 붓고, 보험을 드는 게 훨씬 더 안전할 텐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도박꾼이라고 처음부터 그 길로 들어서고 싶었겠는가? 도박은 영화에서처럼 한번 재미삼아 한다는 것이 돈을 잃으니 오기가 생겨서 횟수를 거듭하다 정신 차리면 어느 순간 빚더미에 앉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오가는 돈은 말 그대로 ‘몇 백, 몇 십억 원’ 정도의 액수다.
영화에서 마담(김혜수 분)이 “누구의 돈도 아니다. 돈은 돌고 돈다”라고 한 내레이션이 도박판에서의 진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 돈을 얻기 위해 몸부림친다. 고니(조승우 분)가 기차에 매달린 돈 가방에 몸을 의지한 채 바동대는 모습이나, 영화 후반부에 정 마담이 자신의 부하에게 “우린 돈만 챙기면 돼!”라고 외치는 모습 등. 돈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처절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는 단순히 돈과 도박만이 아닌 특별한 삶의 목적이 없는 ‘사람’들을 보여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고니가 가구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면 화투를 집어 들진 않았을 것이다. 고니 말고도 정 마담, 평 경장(백윤식 분) 등 영화 속 인물 모두가 삶의 뚜렷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돈을 쫓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영화의 내용전개 방식이 흥미로웠던 것도 있지만, 더욱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것은 바로 배우들이었다. 특히, 정 마담을 연기한 김혜수의 연기는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환상적이었다. 짧은 단발머리와 화려한 그녀의 의상은 사랑에 절대 굴할 것 같지 않은 도도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당당함이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돈을 태워버린, 남자로서 자신을 떠나가는 고니를 향해 총을 겨누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지지만 말이다.
평 경장을 연기한 백윤식도 대단했다. 감칠맛 나는 이북 사투리와 함께 흰색 정장에 자전거를 그가 아니면 어느 누구가 소화했을까.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이유로 영화에 그리 오래 등장하진 못했지만, 이 영화의 명대사라고 할 수 있는 말들은 모두 그가 내뱉은 말이었을 거다. 특히 “아수라발발타”를 외치던 그의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승우의 연기는 마치 그가 평생을 고니로 살아왔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언제 그가 얼룩말을 좋아하던 ‘말아톤’의 ‘초원이’를 연기했었는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영화에서 도박판이 벌어졌던 장소는 생각만큼 거창하지 않다. 비닐하우스, 창고, 선박 등이 주요 장소로 등장한다. 그만큼 도박이라는 것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 일어난다. 딸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아이에게 사회가 이런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비춰지면 어쩌나?’하는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박과 화투는 소재일 뿐 결국 내 두 번째 영화 <타짜>는 인간과 욕망에 관한 영화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나와 딸아이 역시 이 영화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꼭 도박이 아니더라도 우리주변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사소한 것들이 많다. 아마 당분간은 딸아이와 이런 얘기들로, 이 영화의 결말을 새롭게 써봐야 할 것 같다. |
손순자(영문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