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란 이름, 참 에로틱하다. 황토 흙 빨간 것도 그렇고 섬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가까움도 그렇다. 서로가 마주보는 섬들의 구조는 제 안을 살피듯 서로를 보듬은 모습이다.
드문드문 민가가 나타나면 개들이 먼저 집을 지키고 나왔다. 바닷가이되 산그늘에 속한 허름한 집들은 터만 남아서 대신 가축들을 들이거나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로 용도변경 된 신세.
고향의 옛집 생각이 났다. 어릴 땐 오르막 골목 끝에 햇살 바른 남향집이었지만, 어느덧 산그늘에 숨어들어 개나 닭, 염소들을 기르는 처지가 비슷했다. 부모님에게는 가축들이 자식처럼 거두어 먹일 또다른 식구이니, 하루에 한 두번씩 꼬박꼬박 밥을 먹이러 찾아가셨다. 모이를 주면서도 그저 무슨 말이든 하는 거 보면서, 구박도 좋고 싸워도 좋으니 여기가 사람 사는 곳임을 느끼게 되었다. 노인들 무료할까봐, 버려진 골짝마다 사람을 기다리는 뭇소리들은 떠들수록 사람 사는 풍습 같았다. 우리집도 꼭 이렇게 허물어져 있어서인지 괜히 빈집들에 눈길이 갔다.
마을의 뒷배경엔 욕지중학교가 있었다. 섬마을 학교이니 인근의 섬들에서 배를 타고 오가는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보지 못한 풍경이었지만 상상만으로도 눈이 잔잔해진다. 교문 입구에 학교 비석이 듬직했음에도 교사 벽면에 한번 더 '욕지중'이라고 써놓은 것도 재미가 있다. 기죽지 말자는 듯 당당한 글씨체다. 그것도 학교를 빼니 욕지 너머 머나먼 지중해까지, 말이 저 멀리로 멀어지게 한다.
'머리엔 새로움이 가슴엔 따뜻함이' 섬마을 아이들은 바다를 볼 때마다 날마다 반짝이는 빛조각에 눈이 부셨을 것이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새롭고 따뜻했겠다.
설령 그 시절엔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어른이 된 후 큰 자산이었음을 문득문득 깨닫지 않을까. . 늦되어도 때가 있다 하고, 늦어서 알게 되면 오히려 그 새로움이 더 깊이 남겨지는 것이더라. 세월은 그래서 늘 대기만성형.
골목길은 가끔 탁 트인 조망보다 숨바꼭질이나 보물찾기처럼 옛 시절의 향수를 선물할 때가 있어 좋다. 여느 마을보다 특별히 나을 것 없던 골목길이 타임머신을 태우듯 아련한 시간의 기슭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텃밭 같은 공터에 어린 동백묘목들이 심어져 있고, 오래된 마삭줄들이 빈 집을 칭칭 기어가기만 해도, 어딘지 아련해진다. 일부러 꾸미지 않았기에 더 반갑고, 머무른듯 흘러왔기에 모든 것이 그대로인 이 낡음의 뭉클함.
화사한 동백은 보잘 것 없이 쇳물 드러낸 철대문에 더 조화롭고, 낡은 유리문에 붙었다 껍질처럼 벗겨지는 오래 전의 글자들도 함께 늙어가서 정다워 보인다. 서툴게 꾸미는 것보다 나은 그대로들이 골목들을 빛나게 해준다. 발견의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골목길에 전시된 낡은 사진들에는 욕지도 주민들의 어제와 마을의 옛날이 특별할 것 없는 모퉁이마다 전시되어 있다. 길거리 전시관이 펼쳐져도 이런 방식의 추억전은 없었던 것 같다. 골목으로 난 낡은 창문이 근사한 전시실의 깔끔한 흰 벽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이유이다.
느닷없이 만난 타인들의 과거사지만, 그 속에 우리들의 옛날이 어찌 없으랴.
'1955년 욕지 근하유치원 소풍'사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엄마 미소를 짓게 했다. 시대가 조금 달라도 과거 시절의 그리움이란 모두가 한결같은지, 반가운 옛 아이들의 떼창이 사진을 뚫고 울려 퍼질 것 같다.
이 날을 위해 얼마나 잘 차려입었을까. 모자들은 썼는데 모두 이렇게 맨발이네. 고무신들은 땅따먹기 하다 날아갔을까.
이 표정들이 유치원 아이들이라니 그게 더 신기하다. 어여쁠 것 없는 이 땅의 아이들에서 어여쁨을 발견하고 머스마들 사이에 다소곳이 치마를 차려 입은 유일한 언니. 그 앉음새 가만히 바라봐도 쪼매나게 달싹거리는 그 목소리 가까이에서 듣는 듯하다.
1977년 동촌마을 새마을 운동 현장, 서촌 나루터 풍경, 1962년 황동복 입영환송 군대 보내는 사진, 1958년 욕지면장 가족사진, 욕지 어업조합 갈치 경매 모습, 욕지면 청사와 고구마분을 손질하는 여공들의 모습…. 사진의 내용들은 오늘날 디카의 무수함보다 훨씬 다채롭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풍경 속에 사람이 담겨서 시절을 들려준다면 그것은 이미 사진이 아닐 것이다. 기억에 콱 박힌 추억의 골목길. 세상에 이런 골목길을 숨겨둘 줄 아는 욕지도 사람들은 또 무언가. 알면 알수록 사람을 끌어들이고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곳이란 이런 곳이 아닐까.
욕지도 유일의 중국집 한양식당. 영업시간 10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철저하게 지킨다는 듯 투박한 말투가 출입문을 지배한다. 그 당당함이 웃게 하고, 웃으니 또 정스럽다.
맞은편 가게 이름은 욕지섬 식당이란다. 욕지도라 하지 않고 욕지섬 식당이라니, 이름만으로도 푸근해진다. 고구마 섬이다보니 고구마를 썰어 말린 '뺏데기'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정확한 글자를 몰랐는데 이 섬에서 본다. 물론 이 글씨 철자가 맞는지 모르지만 왠지 틀려도 상관없게 여겨진다. 이 뺏데기로 국을 만드는지 메뉴가 뺏데기 장국이다. 나 뺏데기 좋아하는데, 그 맛이 궁금하다. 궁금하면 한 번 더 가? 내 안은 이미 마을길 탐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예수의 상이 있어 골목길을 벗어난 우리는 성당을 찾아보기로 한다. 화려한 색색의 타일이 수를 놓은 즐거운 성당이었다. 브라질 리우의 그 커다란 예수가 이곳 성당에선 조무래기 아이들을 품어 안을 것처럼 팔을 벌렸다. 성당이 아니라 어린이집 같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화단도 있어 마치 동화속에 들어간 것 같다.
추위가 찾은 적 없다는 듯 노오란 따스함이 떠나지도 않았던 봄을 부채질 하는 듯하다.
순수와 둘이 예수님과 장미꽃을 만나고 오니 일행들은 살아있는 호래기를 한 점씩 먹거나, 욕지도 군고구마를 구입해 있다. 투명한 호래기는 눈이 너무 또록또록해서 차라리 눈 깜짝 않고 집어 먹는 사람, 오늘 유난히 고팠을 젓가락질이 화려하다. 군고구마는 손가락 두 개 포갠 크기였지만 한 입 먹어보니 아주 달다.
오후 4시 35분 출발하는 배가 겨우 일가족 같은 사람 수를 태우기 위해 항으로 들어선다. 배는 크고 사람은 적어서 미안하게 들어선다. 온돌방은 너무 따뜻해서 눕는 게 가장 이상적인 자세이다. 앉아 있다가 눕게 되고 누워서 오늘의 영상을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눈이 감긴다. 그러나 겨우 10여초 쯤이었으니, 가다 만 것이다. 순수는 제 늦잠 잔 걸로 모자라 남의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었다.
에구, 그러나 이런저런 얘기 하니 좋다. 욕지도 섬길이 돌아올 길을 바래다주고 있는데 뭐가 나쁘겠나. 후후~~
- 아슬아슬하게 집에 도착했다. 왜냐면, 내 평범하던 일상을 기다림으로 채웠던 응팔 마지막회를 정확하게 맞춰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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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람풍경 원문보기 글쓴이: 키스
첫댓글 복사를 해서 긁어넣으면 줄 간격이 100m달리기를 해도 될 만큼 멀어집니다.
각설...
토요일 저와 함께 욕지도로 떠났던 분들 그리고 그 분들의 마님들께 감사한 마음 전하고,
이 글 속에는 (사진 찍기 싫어하는 듯하여) 사진도 신상도 싣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모두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기를 빕니다.^^
낡은 유리문에 붙었다 껍질처럼 벗겨지는 오래 전 글자,
함께 늙어가서 정다워 보인다~
사진들이 참 정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