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오래 되었다. [눈동자]라는 노래를 부르며 우리 곁에 나타난 것이 1993년. 이후 지난 14년 동안 그녀는 노래로, 드라마로, 그리고 영화로 우리들의 시선을 한결같이 붙잡았다. 따라서 우리는 엄정화에게서 신선함보다는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을 더 많이 받는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눈동자]를 부르며 그녀가 등장했을 때는 정말 눈에서 비늘이 벗겨질 만큼 신선했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년)로 영화 데뷔 했을 때도 그녀의 신선함은 여전했다.
그러나 엄정화는 90년대 중반, 자신의 마케팅 포인트를 청순함에서 섹시함으로 바꾸었다. 주로 뮤직비디오와 방송의 쇼 프로그램을 통해 형성된 그녀의 섹시 코드는 그러나 여가수들이 흔히 그렇듯이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섹시함을 내세웠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섹시 코드는 동시대 여성들에게 더 높은 호소력을 갖고 전달되었다. 이것이 엄정화가 가진 가장 특별한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섹시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요염하지만 도발적이지는 않았다. [초대][페스티발][배반의 장미][마지막 유혹] 등 그녀가 뮤직비디오를 통해 전파한 섹시 코드는 남성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도발적 유혹이라기보다는 숨어 있는 매력으로 남성들을 빨아들이는 은근한 섹시함이 있었다.
엄정화의 노래가 동년배 혹은 그 밑의 젊은 연령층 여성들의 노래방 애창곡 상위 순번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나도 저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섹시 코드를 발산하는 여자 연예인들의 상당수가 오히려 같은 여성들로부터는 질투심을 유발시키는 데 비해서, 엄정화의 친근한 매력은 그녀와 비슷하게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즉 엄정화의 가장 큰 지지자들은 그녀를 자신의 역할 모델로 설정한 후배 여성 계층이다.
MP3의 보급과 함께 가요 시장이 침체된 이후 엄정화는 [마누라 죽이기](1994년) 이후 8년만에 다시 연기자로 방향 전환한다. 그녀의 영화 데뷔작을 만들었던 유하 감독의 두 번째 작품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년)에서, 결혼 따러 연애 따로, 남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직장과 만족할만한 물질적 조건을 갖고 있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 뒤, 여전히 예전의 남자 친구를 만나는 연희라는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었다. 엄정화는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3년)에서는 김주혁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조화를 이루면서 새침한 모습으로 연기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또 결혼 안한 30대 남녀들의 이야기 [싱글즈](2003년)에서는 동미라는 캐릭터르 통해 쿨한 여성상을 보여주었고, [오로라 공주](2005년)를 거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년)과 최근의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년)까지 그녀는 자신의 도회적 이미지를 조금씩 변주하면서 연기영역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천민자본주의라고 비판을 받던 압구정동을 무대로, 산업사회의 물신화 풍조를 비판한 유하 시인의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시인 자신이 영화화 한 데뷔작에서부터 가장 최근작까지 거의 비슷한 캐릭터를 보여 주었다. 그녀는 주로 산업사회의 도시적 미를 가진 여인으로 등장했다. 엄정화의 영화 중에서 대박 영화는 거의 없다. 하지만 크게 흥행에 실패한 영화도 없다. 이것은 그녀가 빅 스타급은 아니지만 적극적 지지자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90년대 가요시장이 융성할 때는 노래를 주로 부르더니, 가요 시장이 침체되니까 연기에 더 주력한다고 해서 그녀를 기회주의자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연예산업에 종사하는 종사자들은 자신의 상품가치가 극대화되는 곳을 쫒아간다. 엄정화는 냉정한 시장경제의 법칙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유리한 조건을 선택한 것뿐이다.
일찍이 엄정화는 소녀 가장이었다. 과거형을 쓴 것은 지금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쾌걸춘향][부활] 등의 TV 드라마를 통해 차세대 연기자로 떠오른 동생 엄태웅은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 연상의 여인 고두심과 커플로 등장하여 닭살 연기를 보여주는 등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막내 동생이라 애 같기도 하지만 가끔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며칠 전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이젠 내가 지켜줄 테니까 힘들면 내색도 좀 하고 그래 라는 내용이었다. 동생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남자연기상과 인기상 후보에 올라서 너무나 대견하다.]
엄정화의 부친인 고엄진옥씨는 엄정화가 6살 때 세상을 떠났다. 너무 일찍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지만, 아버지가 서라벌 예대 재학시절 연기를 전공해서 많은 연극무대에 섰던 촉망받는 배우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엄정화의 아버지는 졸업 후 안정된 직장을 위해 교직을 택해서 전문배우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엄정화 엄태웅 남매의 연기 뒤에는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엄정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송사 합창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힘들게 가수 데뷔한 후 영화를 찍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연예계 생활을 가수로 활동했다. 연기로 방향전환을 할 때 본인은 심사숙고하고 많이 갈등했지만 동생 엄태웅 등 가족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모습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연기를 하면서도 아버지가 배우였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아버지에 대한 묘한 향수와 존경심이, 어려울 때 나를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해주었다]
엄정화는 최근 일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엄정화의 일본 팬클럽은 [템테이션]. 그녀가 부른 노래 제목에서 작명한 이 모임은 숫자는 많지 않지만 매우 열성적으로 엄정화를 응원하고 있다. 일본 위성채널 소넷을 통해서 엄정화가 출연한 TV 드라마 [12월의 열대야]가 일본에 방영되면서 일본 내 엄정화의 지명도가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엄정화는 모델, 가수, 연기자로서 일본 시장을 노크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제작한 사이더스FN의 김미희 공동대표는 [내 욕심인데, 정화씨. 시집가지 말고 연기만 했음 좋겠어. 결혼한다해도 이미숙 선배처럼 그런 배우로 활동했으면 좋겠어]라고 엄정화에게 말했다. 30대 중반이 넘은 여자 연기자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엄정화는 욕심 부리지 않고 있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가정 형편상 유학도 가지 못하고 변두리 동네에서 피아노 교습학원을 연 김지수(엄정화 분)가 동네의 말썽꾸러기 악동 경민(신의재 분)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경민이 피아노에 천부적 재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지수는, 경민을 열심히 지도하여 피아노 콩쿨· 대회에 입상시킴으로써 학원 홍보에 도움을 받으려는 얄팍한 속셈으로 경민을 지도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민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갖게 되고 계산적인 마음의 벽을 허물면서 두 사람의 가까워진다는 이야기다.
[난 천재가 아니다. 천재적이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열등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나는 내 꿈의 실현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엄정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그녀는 과욕을 부리지 않았고 항상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긍정적 낙천적 사고방식은 항상 그녀에게서 기분 좋은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대역을 써도 되는 피아노 연주를 굳이 직접 시도한 것만 봐도 그렇다.
[처음에는 내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직접 연주를 해야 한다면 손가락이 굳어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다 마음을 굳히고 연습을 시작했다. 연습해두면 나한테 나쁠 것 없다, 잘할 수 있다, 라고 생각했다. 연습을 하면서 점점 빠져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시작해서 영악한 다른 어린이 배우들과는 달리, 꼬마 피아니스트로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경민 역의 신의재군과 친해지는 과정은 영화 속의 장면과 흡사했다. 내성적이고 돌발행동을 자주 하던 신의재군은 나중에는 친조카처럼 엄정화와 가까워졌다.
엄정화의 다음 작품은 [키에누 꼬시기](가제). 키에누 리브스를 닮은 직장 상사 다니엘 헤니를 유혹하는 이야기다. 작품을 고르는 안목도 괜찮았고 자신이 맡은 배역을 기대 이상으로 표현하며 성장해 온 엄정화가,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다음 작품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