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전도여행 바울 사도의 전도여행은 유대인들의 틀 속에 갇혀 있던 기독교를 그 두터운 틀을 뚫고 세계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만일 사도 바울이 아니었더면, 오늘날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생자이자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기독교의 실현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사도의 역할은 컸다고 할 것이다. 사도의 전도여행은 비로소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확산시킬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기독론의 탄생도 어려웠을 것이다.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은 유대인들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사상적으로도 유대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는 성령의 확실한 증거를 체험하여 예루살렘 제자들에게 전해줌으로써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주었고, 이를 통해 기독교를 세계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지역을 갈라디아라고 부른다. 갈라디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보니 자꾸 이방인들을 유대인들처럼 만들려고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논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다가 복음을 믿은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방인 신자들을 할례를 받게 하고, 모든 율법의식을 지키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유대인들이 문제를 일으키게 되자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대표를 보내어서 이 문제에 대하여 복음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게 하였다. 이때에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이 문제를 놓고 의논한 결과 그들은 구원을 받는 데에는 예수 외에는 아무 조건도 없다고 결론을 맺었다. 구원받기 위해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법을 지켜야 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그러나 믿은 후에 자원하여 말씀에 순종할 수는 있다. 복음을 구체적으로 요약을 해서 들려주면 듣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여기에 율법은 끼어 들 자리가 없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깊이 깨닫게 될 때에 참다운 삶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에 총회장이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였다. 그리고 이때에 사도들과 바울이 교제의 악수를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제 두 번째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흘렀고, 남서쪽인 아프리카로 흘러 들어갔다. 그래서 2-5세기에 유명한 신학교와 신학자들이 많이 일어났다. 사도 바울은 두로와 시돈을 거쳐서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갔다. 이 곳에서 길리기아 지방으로 돌아서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가서 드로아에 이르렀다. 이때에 성령께서 이 곳으로 더 이상 가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마게도니아에서 바울을 부르는 환상을 보게되었다. 그리하여 유럽으로 복음이 전해지게 된다. 빌립보가 있는 지역을 마게도니아라고 불렀다(지금의 알바니아). 소아시아는 지금의 터어키 그리고 남쪽은 아가야(지금의 그리이스)라고 불렀다. 바울이 바로 이 아덴에 이르러 논쟁과 논란을 벌였다.
고린도에 약 1년 6개월 간 있으면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썼다. 그리고 겐그레아에서 에베소로 건너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려고 이미 곳곳마다 회당을 준비해 놓으셨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상당히 준비가 잘되어 있었다. 알렉산더가 헬라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 그래서 전 세계 공용어는 헬라어였다. 그래서 주전 150년 구약 성경을 그리이스 성경으로 번역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유대 사람이면서 유대 말을 잘 몰랐다. 그래서 헬라어로 성경을 번역했는데, 이것을 70인경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 때에는 사도들이 헬라어로 쓴 신약 성경을 썼으며 구약 성경도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주전 4-500 년경 에스라를 통해서 10명만 있는 마을에는 곳곳에 회당을 지어 놓았다(구약의 회당).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서 95년에 죽게 되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를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 등에서 예루살렘을 위한 구제 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에 전해 주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선교 보고를 하였다. 이때에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인해서 다툼이 있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려가기를 원했고, 바울은 그를 데려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마가가 어려서 일차 여행에서 돌아간 것이 그 싸움의 문제였다. 그래서 바울 파와 바나바 파가 갈라졌다. 바울은 누가를 데리고 다시 전도한 지역으로 갔고, 바나바는 또 다른 지역으로 따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이제 바울은 세 번째로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약 4년 간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1차 전도 여행을 했던 갈라디아 지역은 들리지 않고 직접 에베소로 갔다. 그래서 이곳에서 드로아, 네압볼리,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를 방문을 하였다. 이때에 드로아에서 바울이 고별 설교를 밤늦게까지 하다가 한 청년이 창문에서 떨어져서 죽은 일이 발생을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에 오면 조는 사람들이 있다. 호롱불에서 나오는 탄산가스를 창문에 앉은 사람이 다 마심-그리고 고린도에서 56-7년에 로마서를 썼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에도 많은 열매를 주셨는데, 이제는 스페인까지 가야하겠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이때에 이미 로마에는 교회가 있었다. 로마에 가서도 복음의 열매를 맺고 싶다고 한 유명한 로마서가 이때에 쓰여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때는 2차 여행과 같이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거쳐온 모든 지역들을 다시 돌아서 갔다. 그리고 드로아에 이르러서 밀레도에 이르렀을 때에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을 다시 초청하여 고별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다시 배로 여행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이하에서는 사도 바울이 3차에 걸쳐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한 전도여행의 주요한 내용에 대하여 좀더 상세하게 진술한다.
Ⅰ. 제1차 전도여행
안디옥 교회는 이방 전도의 중심이었다. 처음엔 예루살렘교회에서 파송 된 바나바가 목회를 하였다. 그 후에는 바나바가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에 가서 이미 개종한 바울을 설득하여 안디옥으로 데려와서 함께 목회를 했다. 안디옥 교회에서는 이방 전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바나바와 바울을 택하여 안수하고 이방 전도를 위해 파송했다(행 13:1-3). 요한이라고도 하는 마가도 그들과 동행했다(행 14:1.3).
1. 구브로 섬 전도
제일 먼저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구브로에 갔다. 구브로는 지금의 키프로스이다. 터키 내륙 남단과 레바논 북부 해안에 위치한 섬이다. 그곳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하는 큰 성과를 달성했다(행 13:4-12).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행 13:13).
바울 일행은 구브로를 떠나 배를 타고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남단 밤빌리아에 도착했다. 여기서 마가는 선교 여행을 중단하고 예루살렘의 집으로 돌아오는 실수를 한다. 이로 인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행13:13,15:2). 그러나 마가는 그 후 바나바와의 전도여행을 훌륭히 수행하여 실수를 만회했고, 기독교 사상 위대한 저술가가 되었으며 초대교회의 매우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비시디아의 안디옥은 레바논 북부의 선교 중심인 안디옥과는 이름은 같지만 다른 지방이다. 바울은 이곳에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두 안식일에 복음을 전했다. 이곳에서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이방인 다수가 바울 사도의 말을 듣고 개종하는 성과를 얻었다(행13:43). 그들은 많은 핍박을 받고 쫓겨나 다른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행 13:50).
3. 이고니온 전도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지방이다. 이곳에서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한다. 표적과 기사이적이 나타나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의 무리가 믿고 따르게 되었으나 핍박이 격렬하여 그곳에 서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었다(행 14:1-5).
4. 루스드라와 더베
루스드라에서 전도할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있었는데 바울 사도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쳐서 일어나 걷게 하는 기적을 행했다.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 하여 바나바를 쓰스 즉 제우스신이라고 하였고 바울을 허메 즉 헤르메스라고 하였다. 제우스는 헬라의 주신이었고 헤르메스는 제우스신의 전령이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므로 바나바의 전령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을 가지고 와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일이 너무도 마음이 아파 옷을 찢으며 이를 제지하고 나서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바울 일행을 잡고 돌로 쳐서 죽이려 했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로 알고 성밖으로 끌어다 버렸으나 죽지 않고 살아나 계속 전도 활동을 했다(행 14:20).
바울 일행은 왔던 길로 돌아가면서 전도된 신도들을 만나서 믿음을 굳게 하도록 권면했고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왔다. 이로써 1차 전도여행은 소아시아 남단의 몇몇 지방에서 행해졌으며 성공적이었다. 그 후에 율법주의자 유대인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거듭난 성도들도 반드시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일로 바울 일행과 율법주의자들과 변론이 일어났다. 그래서 안디옥에서는 바울과 바나바와 몇몇 형제를 예루살렘에 보내어 이 문제의 해결 을 원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사도와 장로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바울 사도의 주장을 인정하여 율법의 준수로 구원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됨을 결의하였다(행 15:1-11).
Ⅱ. 제 2차 전도여행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돌아와서 다시 전도여행을 계획했다. 그는 실라를 데리고 내륙 지방을 통하여 더베와 루스드라에 가서 1차 전도 여행을 할 때 전도된 신자들을 돌보았으며,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사도와 장로회의의 결과를 전해 주었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헬라인이요 어머니가 유대인인 신실한 청년 디모데를 만나 전도여행에 동참하게 했다(행 16:1-5).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계속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고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이 그곳에 와서 도와 달라는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행 16:1-10). 마게도냐는 지금의 발칸반도의 중동부 그리스의 북부에 위치한 곳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고장이다.
1. 빌립보 전도
바울은 에게해를 건너 빌립보에 도착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경의 첫 성이며 로마의 식민지였다. 그곳에서 특기할 만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가 비단 장사 루디아의 전도고, 둘째가 간수의 가족이 극적으로 전도된 일이다. 빌립보에 도착하자 바울 사도는 기도하기 위해 기도처를 찾아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곳에서 몇몇 여인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때 루디아라고 하 는 한 여자의 마음이 열려 바울 사도의 말을 믿게 되었고, 그 집 식구 모두 세례를 받고 개종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이 그 집에서 유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 루디아의 집에서부터 역사적으로 유명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행 16:11-15). 그 후 바울 사도가 기도하러 가는데 한 귀신들린 여인이ꡒ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ꡓ하며 따라다녔다. 그러기를 여러 날을 하였다. 이것을 볼 때 귀신들도 신실한 하나님의 종을 알아본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자 바울 사도는 매우 괴로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귀신을 쫓아내어 그 여인을 온전하게 했다. 그 여인은 귀신이 들려 점을 하 여 그 주인에게 크게 돈을 벌도록 해주었는데 귀신이 나가자 점치는 일을 못하므로 돈을 벌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그 주인이 바울 사도 일행을 고발하여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바울 사도 일행은 옷이 찢기고 매를 많이 맞고 발이 착고에 채워져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밤에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그 때 지진이 나서 옥터가 흔들려 문이 다 열리고 착고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간수는 졸다가 일어나 보니 옥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칼로 자결하려고 했다. 아마 죄수를 잘 지키지 못해 놓치면 그 책임으로 모진 고문 끝에 사 형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본 바울 사도는 급히 제지하였다. 그러자 간수는 바울 일행이 그대로 감옥 안에 있음을 보고 엎드려 절하며 ꡒ 선생들아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ꡓ라고 물었다. 이때 바울은 그 유명한 말로 대답했다.
ꡒ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ꡓ(행 16:30-31) 바울의 말을 듣고 그 밤중에 바울 일행을 집으로 초청하여 모든 식구가 복음의 말 씀을 듣고 세례를 받아 구원을 받았다.
2.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전도
바울 일행은 다시 서쪽 내륙을 향하여 가다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데살로니가는 로마 시대에는 마게도니아 지방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등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3주간 복음을 전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핍박이 심하여 다시 베뢰아로 옮겨 복음을 전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비록 3주라는 짧은 기간동안 만 바울 사도의 양육을 받았지만 많은 핍박과 궁핍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바울 사 도를 감동하게 했고, 오늘의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다(살전 1:6-8). 베뢰아는 데살로니가 서남쪽 75km 지점에 있는 전원도시이다. 지금은 베리아라고 불리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순박하여 바울 사도의 말을 듣고 상고하여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성경은 베뢰아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ꡒ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않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니ꡓ(행 17:11-12)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이 바울 사도가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까지 와서 핍박하며 방해를 하자 바울 사도는 선교지를 옮겨 아덴(그리스의 아테네)으로 갔다.
3. 아덴과 고린도 전도
바울은 베뢰아에 디모데와 실라를 남겨두고 떠나 배를 타고 아덴으로 갔다. 아덴 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아테네이다. 이곳은 그리스의 수도이며 서양 철학의 본산이 다. 그곳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위대한 철학자가 활동했다. 이곳에서 바울은 철학적 논쟁을 통하여 몇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이로 보건대 바울 사도는 헬라 철학에도 능통한 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그곳에서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를 만나 논쟁을 벌였다. 에비구레오는 에피쿠로스학 파로서 쾌락주의자들이다. 처음에는 육체의 쾌락을 절제하고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정적 쾌락주의자들이었으나 후에는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동적 쾌락주의로 변하게 되었다. 스도이고는 스토아학파를 말한다. 스토아학파는 키디움 출신의 제 논이 창설했다. 에피쿠로스학파와 대립되는 학문으로 이성을 강조하며 청빈과 자 연에 따르는 생활 등을 주장하고 금욕주의를 가르쳤다. 사상이 고매하여 로마의 황제나 귀족들이 많이 추종하였다. 바울은 그들과 논쟁하여 개종을 시켰다(행 17장).
고린도는 아덴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항구도시이다. 당시에 아가야 지방의 행정 수도로서 경제와 정치의 중심이었다. 이곳은 해상의 요충지로서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하여 호사스러운 생활과 온갖 부도덕한 타락된 행위들이 만연했다. 더욱 이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천 여명의 여사제들이 있어서 종교의식으로서의 매춘을 자행하였다. 그만큼 고린도는 타락하고 문란한 도시였다. 바울은 이곳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장막 만드는 일을 하여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며 안식일마다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행 18:1-4). 그곳에서 일년 육 개월을 머물렀다(행 18:11).
4. 에베소 전도와 2차 전도 여행의 마감
바울 일행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데리고 겐그리아로 가서 그곳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맞은편 소아시아에 있는 에베소로 갔다. 에베소는 로마의 소아시아 관할 지역의 수도이며 상업의 중심지였다. 바울 사도는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러 복음을 전했다. 이곳은 후에 아볼로가 와서 잠시 목회를 했고, 3차 전도 여행 때 바울 사도가 3년을 머물며 전도하고 양육했던 곳이다(행 18:24-28, 20:31). 그리고 떠나면서 디모데를 그곳에 머물게 하여 목회하도록 했다(딤전 1:3). 후에 요한 사도가 말년에 이곳에 머물면서 복음서와 요한 1,2,3서를 기록하였다. 그러한 만큼 에베소 교회는 영적 지식이 풍부하고 믿음이 대단히 열 심인 교회였다. 그러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책망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았다(계2:4). 그곳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두고 바울은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서 내려 안디옥으로 갔다(행 18:26). 이로써 2차 전도 여행을 마친다.
Ⅲ. 제3차 전도여행
1. 에베소(행 18:18-19:41)
바울 사도는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전도여행을 떠났다(행 18:23). 먼저 육로로 소아시아의 위 지방인 갈라디아와 부르기아를 지나며 제자들을 권면했다. 그리고 에게해 가까이 있는 에베소에 도착한다.
에베소 교회에서 있었던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에베소는 2차 전도여행 때 들러서 유대인의 회당에서 잠시 복음을 전했던 곳이다. 바울 사도가 도착하기 전 아볼로라는 교사가 그곳에서 잠시 목회를 했었다. 아볼로는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학문이 매우 많고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었다(행 18:24,28, 고전 3:4-6). 그가 에베소 교회를 떠나 고린도 교회로 간 후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에 도착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의 신도들이 성령으로 기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ꡒ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ꡓ(행 19:2)
이것은 참으로 중요하고도 의미심장한 질문이다. 이 질문 속에는 예수를 믿는다고 모두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다. 만일 믿을 때 성령을 받았다면 새삼스럽게 다시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성령 받은 곳에 관한 기록은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은 별개임을 말하고 있다. 믿음이 있어야 성령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를 믿음과 동시에 모두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고 반드시 성령을 구하여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행 2:1-4, 8:14-18, 행 10:44-48, 눅 11:9-13).
에베소 성도들은 예수를 알고 믿은 것은 사실이지만 성령에 관한 지식도 없었고 올바른 세례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만을 받았다. 이 때 바울 사도는 올바른 세례를 가르쳐주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성령을 받도록 안수를 했다. 안수를 하자 성령이 임하므로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 방언을 하는 사람이 모두 열두 사람쯤이었다고 그 숫자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을 받은 공통점은 무엇인가? 성령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그러한 성령을 받은 증거는 무엇인가? 사도행전은 성령 받은 외적 증거는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행 2:33). 방언은 단지 은사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성령 받은 외적인 유일한 증거이다.
바울은 회당에서 2개월 간 강론을 하다가 반대자들이 많아지자 두란노 서원으로 옮겨서 2년 간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이때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복음을 들었고 에베소의 성도들은 진리에 있어서 높은 수준을 갖게 되었다(행 18:10, 계 3:2). 바울 사도는 에베소에서 약 3년 정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으로 보인다(행 20:31).
2.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행 20:1-6)
바울은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먼저 마게도니아로 보낸 후 얼마간 에베소에서 머물다가 마게도니아로 향했다(행 19:22, 20:1). 마게도니아에서 제자들을 권면하고 헬라로 가서 3개월 간 체류하며 교회를 돌보았다. 그리고 배로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하려 하므로 그 길을 포기하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육로로 마게도니아를 거쳐서 가기로 작정했다. 마게도니아 지방의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드로아에 도착했다. 드로아에서 일주일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다.
3.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행 20:7-16)
바울 사도는 밀레도 항구에 도착하자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을 불러서 그곳으로 오게 하였다. 아마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하여 에베소까지 직접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행 20:16). 그는 장로들에게 유언을 하듯이 간곡하게 부탁을 하였다. 바울 사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자신이 가야할 길이며 사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려는데, 핍박과 환란과 죽음까지도 예상되지만 죽을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것을 결심하고 있다. 그는 많은 고통과 시련을 참고 어디서나 복음을 전했으며, 눈물로 전하고 가르쳤으며, 재물을 탐하지 아니하고 직접 일을 해서 생활문제를 해 결하면서까지 복음전파와 교회를 위해서 헌신했으며, 모든 일에 모범을 보였다(행 20:35).
바울 사도는 에베소에서 고별 설교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갈 결심을 하고 배를 타고 작별을 했다. 먼저 두로에서 내려 일주일을 머물며 제자들을 권면했다. 그리고 돌레마이를 거쳐 가이사랴에 들렸다(행 21:7-8). 가이사랴에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이며 전도 일에 전념했던 빌립 집사의 집에서 여러 날 유했다. 여기서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와서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많은 제자들이 울면서 바울 사도에게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만류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동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 21:13).
4. 예루살렘에서(행21:17-26:32)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먼저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를 방문했다. 당시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지도자였다. 그 당시 장로들도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바울 사도의 보고를 듣고 기뻐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바울 사도가 모세 율법을 폐한다는 주장을 오해하여 적개심을 가진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은 물론이고 믿는 자들 가운데도 많이 있었다. 그 들의 오해를 해소시키기 위하여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을 권면하여 같이 온 이방인 네 명의 신자들과 함께 율법의 결례의식을 행할 것을 권면했다. 바울 사도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할 목적으로 본인과 더불어 결례의식을 행했다(행 21:17-26). 이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구하기 위한 조처였지 단지 핍박을 면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전 9:19-22).
그때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 사도가 성전에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잡아죽이려고 했다. 이러한 소동이 일어나자 로마군의 천부장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바울 사도를 그들의 손에서 빼앗아 보호하고 쇠사슬로 일단 결박하였다(행 20:27-40). 그리고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 벨릭스에게로 보냈다. 당시의 총독은 로마에서 유대 지방을 통치하도록 보낸 로마의 고급관리였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총독에게 와서 정식으로 바울을 고발했다. 총독 벨릭스는 바울의 주장을 듣고 죄를 지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었다(행 24:27). 그 후 벨릭스가 임기를 마치자 베스도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했다. 베스도 역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바울 사도를 유대인들에게 넘겨서 재판을 받도록 하려고 했으나 바울 사도는 로마인이기 때문에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직접 재판 받을 것을 청하였다(행 25:1,9,12). 바울 사도는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변명을 행한 후에 결국 로마로 보내지게 되었다(행 25장).
바울은 죄수 호송선을 타고 피의자의 신분으로 로마로 가게 되었다(행 27장-28장) . 그는 평소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간절한 열망이 있었다(롬 15:22). 더욱이 좋은 길을 얻어서 가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다(롬 1:10).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 좋은 길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바울 사도의 소망을 이루어주셨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편하고 좋은 길을 주시기를 소망하지만 그와는 반대일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진다면 그저 감사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AD 60년 이른 가을에 가이사랴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향했다. 배가 해안을 따라 시돈, 길리기아, 밤빌리아를 거쳐 루기아의 무라에 도착했다. 무라에서 알렉산드리아 배로 갈아탄 다음 그레데의 미항에 들렸다가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나려고 출발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유라굴로 라는 광풍을 만나 고생을 하다가 열 나흘 후에 간신히 멜리데라는 섬에 도착하여 목숨을 구했다. 그 곳에서 바울 사도가 불을 쬐다가 독사에 물렸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해를 받지 않고 무사할 수가 있었다(행 27:1-6, 마 16:17). 그리고 그 섬의 추장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렸으나 바울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되었고 다른 병든 사람들도 와서 고침을 받았다(행28:7-9). 그로 인해 후한 대접을 받았고 여행할 물 품도 충분히 공급을 받았다. 그곳에서 3개월을 머물며 겨울을 난 후 로마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형제들의 영접을 받았다. 그는 셋집에서 연금 상태로 2년 동안 로마에 있는 제자들을 만나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였다(행 28:16, 30-31). 이로써 사도행전의 기록은 끝을 맺고 있다.
사도 바울은 네로 황제의 핍박이 극렬했던 AD 67년경 목 베임을 받아 순교하여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고 역사가들은 전하고 있다(딤후 4:6). 주님은 그의 확신처럼 그의 믿음과 충성에 합당한 영광의 면류관을 주셨을 것이다. 우리도 그러한 영광의 면류관을 기대하면서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을 하자. ꡒ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실 것이니라ꡓ(딤후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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