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보의 '팥 시루떡' 행진 /신 영

"떡보는, 뭐니뭐니 해도 떡을 무지 좋아해!"
어릴 적 유년의 뜰에 서면 어렴풋한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 기억 중에는 늦가을(동지)에 맛나게 먹었던 '팥죽과 팥 시루떡'을 잊을 수 없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팥죽과 팥 시루떡이 떠오르면서 함께 내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아마도 그랬으리라, 시골의 가을걷이 끝나갈 무렵 햅쌀과 햇곡식을 거둬들이며 감사한 마음으로 뒤꼍에 놓인 장독대에 '팥 시루떡' 올려놓고 마음과 정성을 모아 어머니는 하늘에 두 손으로 빌었으리라. 가족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서 어머니는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을 것이다.
또한, 어머니가 떡을 만드셨던 이유 중에는 술을 못하시는 아버지를 위한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술을 안 하시는 분들은 군음식을 찾는다지 않던가. 지금도 팥 시루떡을 좋아하는 것은 아버지의 식성을 따라 좋아하는가 싶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팥 시루떡'은 아버지를 유난히 좋아했던 쉰둥이 막내딸과 막내딸을 유독 사랑하셨던 늙은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떡'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시어머님께서는 가끔 팥 시루떡을 만들어 주셨다. 떡을 만들고 남은 팥고물은 언제나 막내며느리인 내 차지였다. 팥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이맘때쯤이면 더욱 팥 시루떡이 먹고 싶어진다. 바람이 차갑고 단풍이 하나 둘 가을비에 젖어 낙엽이 될 즈음엔 언제나처럼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 무엇인가 입이 심심해지고 군음식을 찾는 것을 보니 동지가 가까워져 오는 모양이다. 팥죽이 생각나고 팥 시루떡이 먹고 싶은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딱히 과자나 빵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니 주로 계절 과일로 군것질을 대신한다. 하지만, 동네 떡집에 떡을 주문하면 $70.00 이란 금액이 정해져 있다. 혼자서 먹을 떡의 양도 많고 액수도 적지 않으니 늘 고민하다 주문을 그만두고 만다.
어릴 적 친정어머니가 만드셨던 팥 시루떡 찌는 방법은 기억이 생생치 않아 할 수 없고 결혼 후 시어머님이 가끔 만들어주시면 곁에서 보았던 '팥 시루떡'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작정을 했다. 한국 마켙에서 얼린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를 사가지고 왔다. 팥은 먼저 사두었던 것이 있어 그것으로 쓰기로 하고 돌아와 팥을 먼저 삶아 놓았다. 팥이 조금 식을 즈음 팥을 절구로 찧어 놓고 시루떡을 안쳐보기로 했다. 그 옛날 이른 새벽 정화수 떠놓고 하늘에 정성 들이는 여인처럼 마음이 떨리고 잘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젖은 하얀 보자기를 찜통에 깔고 붉은 팥 찧은 것을 골고루 펴 놓았다. 붉은 팥 깔아 놓은 것 위에 멥쌀가루를 골고루 쌓아 올렸다. 그리고 그 멥쌀가루 위에 찧어 놓은 팥을 또 골고루 펴 올렸다. 그 위에는 다시 찹쌀가루를 정성스럽게 펴고 찧은 붉은 팥을 곱게 펴 올렸다. 하얀 보자기에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는 담기고 위에 찌어 놓은 붉은 팥만이 얹혀 있다. 찜통 뚜껑을 덮고 보자기를 그 위에 감싸놓았다. 그리고 스토브에 불을 붙이고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더니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길 한참을 지났을까, 시간을 재어보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날 즈음 그만해도 되겠다 싶었다. 스토브의 불을 끄고 쌓았던 보자기를 펴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나무 젓가락으로 붉은 팥 사이를 비집고 '찹쌀가루와 멥쌀가루'가 '찰떡과 메떡'이 된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바로, 다름 아닌 새로이 변화된 그 순간의 그 찰나이다. 찜통에서 팥 시루떡을 내려놓고 떡을 떼어 먹는 순간 아뿔싸! 첫 작품이려니…. 소금 간을 하지 않아 너무도 싱거웠다. 나의 첫 작품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다.
첫 작품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음 작품은 제대로 만들어 볼까 싶어 어릴 적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다. 팥 시루떡을 혼자서 난생처음 만들어 본 자랑과 함께 두 번째 작품은 친구에게 선물하겠노라고 말을 전했다. 이 친구는 내가 '떡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떡을 썩 좋아하지 않는 친구는 동네잔치(돌, 결혼)에서 얻게 되는 떡은 모두 내게로 가져온다. 요즘은 쌍둥이(친구의 딸) 둘이서 떡을 좋아해 내 몫은 물 건너간 얘기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맛나고 멋진 두 번째의 성공 작품을 친구와 친구 딸들에게 선물로 보냈다.
10/26/2009.
깊은 새벽에 /하늘.
* 사진은, 웹의 '이미지 공간'에서 발췌
첫댓글 축하드려요 !!! 그렇게 첫작품인 시루떡 ..싱거운듯 맛나게 드셨나요 제 동생도 유난히 시루떡을 좋아해서 하늘님이 오늘은 왠지 남같지 않네요 떡드시면서 부모님 생각은 많이 하셨겠네요
고맙습니다, 리디아님! 동생도 시루떡을 좋아하는군요? 가끔 멀리 있어도 함께 음식을 먹던 생각에 '맛나는 음식'을 먹다가 그 음식을 좋아하던 가족이나 친구가 떠오르지요. 아마도 깊은 사랑에서 일 겝니다. 함께 먹는 일만큼 더 정이드는 일이 또 있겠는지요? 오늘도 행복하시고 평안하소서! ~.~*
떡 찔때의 간절함... 소금간을 잊은 아쉬움 앞에선 살짝 웃음이... ㅎㅎ 그래도 맛있으셨지요~^^
고맙습니다, suzan님! 언제나 곱게 내려주시는 그 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소금간을 잊은 아쉬움~~' ㅎㅎㅎ,,, 다음에 수잔님께도 맛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도 멋지고 맛나는 하루이소서! ~.~*
생각하면 어머니의 손은 요술...그 손이 거친 음식 맛을 우리는 잋지못하며 살아갑니다 그 맛과함께 어머니가 그리워지고 그 맛을 다시는 맛 볼 수 없음에 그 얼굴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음에 애달아지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밖에...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떡을 좋아하게 된다고들 합니다 저도 전엔 별로였섰는데 좋와지더라구요.손수만든 떡 맛 보다 더 진한 마음이 들어갔다 여기시면...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비치 세실리아님! 정말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어머니의 손맛이 더욱 그리워질때는 더욱이... 이 가을 또 어머니 그리움으로 한차례 가을앓이를 할 모양입니다. 오늘도 넉넉하고 풍성한 누림이소서! ~.~*
...............!!!!!!!!!!!!!
고맙습니다, 감사! _()_
사진을 보니 갑자기 먹고 싶어지네요. 25년전 보스톤에 살때 신혼초의 새댁들이 모여 한국생각에 문득 팥시루떡 이야기가 나와 궁리끝에 아이디어를 모아 결국 오븐에서 구어내고는 환호 하던 추억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sunni님! 음,,, 25년 전이라면??? 보스턴에 '떡집'이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떡집이 있고 한국 식품점에 오더를 하면 만들어 주시더군요. 수니님, 이 남은 가을도 더욱 행복하시고 평안하소서! ~.~*
시루에 떡을 앉히고 시루를 빙 둘러 밀가루 반죽을 해서 틈을 막자나요. 그걸 뭐라고하죠? 시룻번이라 하나요? 그것을 엄마 몰래 조금 떼어 먹어 보던 어린 시절이 있었네요. 이참에 나도 시루 하나 장만해야겠어요. 여태 시루도 하나 없이 살림을 살았으니... 시늉만 하면서 허투로 살았나봅니다.
고맙습니다, 은우님! 그렇지요? 그 하얀 반죽을 시루를 돌려가면 붙여 놓았던... 모두가 그리움입니다. 시루떡도 그 하얀 반죽도 그리고 어머니도... 은우님, 가을 환절기 더욱 건강 잘 지키시고 행복하소서! ~.~*
우리집에도 시루가 2개나 있는데 사용을 안하고 짐만되고 있는데...소금 가장 중요한것 빼놓으셨군요. 저도 오곡밥할때 소금 넣는것을 깜빡하곤하는데 조금의 소금이 맛을 좌우한다는것을 실감나게 하죠.
고맙습니다, ruhas님! 곱게 내려주신 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음,,, 시루가 2개나??? 이 남은 가을도 행복하시고 환절기에 더욱 강녕하소서! ~.~*
어릴적 지푸라기 불을 아궁이에 밀어넣으시며 떡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그 떡맛도.... 그리움 속에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푸른별 시인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이 가을에는 더 깊어지시고 아름다워지시겠는 걸요?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고, 시인의 계절이기도 하지요. 시인님, 환절기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하소서! ~.~*
오늘 따라 신영님과 더욱 친밀함을 느낍니다. 쉰둥이시군요. 저도 그래요. 저도 몇일 전에 떡을 해 보았습니다. 쑥 대신 집에 쌓아 놓고 먹지 않았던 녹차를 물에 불려 녹차설기와 계피와 건포도 흑설탕으로 계피설기 맞췄어요. 떡 방아간에서 오는길에 들려 나눠 주고 친구들과 나누다 보니 반이나 나갔더군요. 되돌아 오는 감사 말에는 녹차떡의 특이함과 계피향이 넘 좋았다고 하네요. 풍족하고 흐믓한 가을 입니다. 샬롬*^^*
고맙습니다, 로사리아님! 님께서도 '쉰둥이'시군요? 부모님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이별도 너무 길어 슬픈 인연이기도 하지요. 하늘이도 님께 각별한 느낌이 듭니다. '녹차설기'와 '계피설기' 와우~!!! 특별한 떡이로군요? 군침이 막~~ 돕니다. 로사리아님, 이 가을도 행복하시고 환절기 더욱 건안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