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5천 원, 맥주 5천 원. 메뉴판을 잘못 보았나, 몇 번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맞았습니다. 학교 앞 식당에 소주 5천 원이라니...
이 대학 출신 친구와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자리를 바로 옮겼을 것입니다. 2차로 갔던 집에서도 5천 원이었습니다.
이 대학 다니는 학생들은 부자 부모를 뒀나? 알바로 돈을 많이 버나?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나름 음식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이 있습니다.
특별식으로 한 번 먹는 건 모르지만, 식사용으로 먹는 한 끼는 8천 원이 넘으면 부담스러워 찾지 않게 됩니다.
한 그릇에 8천 원 하던 유명한 콩국수집도 1년 사이에 두 번 올려 만원을 받기에 기억에서 지우기로 했습니다.
한 번씩 찾던 냉면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가격보다 가치가 높으면 다시 찾게 되지만, 가격과 친절도, 쳥결도까지 합쳤을 때의 가치가 가격보다 높은 집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물가가 워낙 오르다보니, 코로나19사태 장기화로 2년 반 동안 매출이 줄었으니 그동안의 손해를 만회하려고 그렇겠지, 이해하려 해도
가격 상승폭의 압박이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구미에서는 소주 한 병에 아직은 대부분 4천 원 받긴 하지만, 한 번씩 가던 식당에 5천 원이 붙어 있으면 다음부터는 발을 끊습니다.
단골술집은 다행스럽게도, 고맙게도 4천 원을 유지해주어 고민 안 해도 됩니다. 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술값에 대한 기준이 있듯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을 할 때도 나름대로의 결제 기준이 있습니다.
인당 7천 원까지는 현금 결제, 그 이상의 식단가에는 카드결제를 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한 끼 식사의 상한선은 8천 원으로 못 박아 두고 있습니다.
아직은 제가 아는 많은 식당이 제 기준에 만족하여 수시로 찾고 있습니다.
대구 칠곡의 6천 원짜리 소고기국밥, 구미 신평시장의 7천 원짜리 돼지국밥, 아직도 7천 원 하는 도개 금오산맥우의 물냉면 등등...
음식에 대한 것도 이러할진대, 사람에 대한 가치기준, 심리적 저항선에 대해서는 더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세상사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연예인들은 한 번의 실수, 잘못이 주홍글씨처럼 몇 년을, 길게는 십 수 년을 끌고 갑니다.
무죄판결을 받아도 여론재판의 결과는 더 엄중합니다.
한 번의 실수로 연예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충분히 사죄하고 반성의 길을 걸었음에도 반응은 전반적으로 싸늘합니다.
그에 반해 정치꾼에 대한 판단 기준은 지나치게 관대합니다. 유죄판결을 받아도, 여러 건의 전과가 드러나도 팬심으로 덮어버립니다.
본인 스스로가, 잘못했다는 자기성찰마저 애써 지워버립니다. ‘저 쪽의 누구도 그랬는데’로 물타기를 해버립니다.
그게 용케도 ‘정치’라는 아싸리판에서는 용납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정치하는 이들이 싫습니다.
제 주변에 정치꾼이, 모리배가 없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춘풍추상’, 참 멋진 말이지만 실천하는 정치인을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진정한 지도자를, 정치인을 목 빼어 기다리고, 찾는 겁니다.
소주 한 병에 5천 원 하는 식당을 손절하듯이, 식언하고 안면몰수하고,
자신의 잘못은 감춘 채 타인의 잘못만 물고 늘어지는 정치꾼들은 과감히 기억 속에 지워 버리렵니다.
요즘 여야 하는 행태를 보니 좋은 것만 보고 좋은 말만 하고 살자던 올해를 맞을 때의 초심이 심하게 비틀어집니다.
그래서 다짐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좋은 면만 보도록 노력 더 하자, 좋은 말만 해도 끝이 없다, 스스로의 말과 행동에도 더 신중하자....
‘소확행’이란 위의 다짐과 같은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해도 맞을 거란 생각입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오래 다니지 않더라도 집 근처에서 자연을 느끼고 가족의 진한 정을 느낀다면 거기가 바로 천국입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2797435355
오전에 봉사활동 갔는데 고문님께서 좋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인터넷을 항해해보니 시조시인인 정영학님의 글이네요.
앞으론 마음을 껴안는 것, ‘포용’에 더 집중하렵니다.
포옹과 포용(모셔온 글)=======
몸을 껴안는 것은 포옹이고
마음을 껴안는 것은 포용입니다
포옹은 나와 당신의 교감이지만
포용은 나와 우리의 교감입니다
포용 속에는 포옹도 있지만
포옹 속에는 포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포옹은 몸과 마음이 유리 될 수 있지만
포용은 몸과 마음이 늘 함께 합니다
마음이 따르지 않은
포옹은 자기기만입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따르는
따뜻함으로 나와 우리를 엮어갑시다
-----정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