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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서늘해서일까 가을엔 마음이 시려 온다.
연한 코발트 하늘엔 솜사탕을 찢어 놓은 듯 하얀 구름이 흩어져 있고...
저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엔 왜 물기가 도는 것인지...
어제 저녁 누군가가 말했다.
이토록 좋은 날에 공부 하지 않아 후회하는 사람 많을 거라고.
글을 씀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어려운 것도 아닐진대,
하지만 산행기나 쓰고 있기에는 자신의 복잡한 심사가 가납ㅎ질 않는다고...
술 기운의 괜한 우쭐거림으로 산행기를 쓰겠노라 큰 소릴 쳤고
실인즉 나야말로 산행기에 매달릴 속 편한 팔자도 아닌데...
연일 계속된 술자리 모임 탓이었는지 정말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졌던 것 같다.
전화 벨 소리에 잠을 깨니 회장 김 진산군.
성수 아버님께서 끝내 회복하지 못하셨다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의 한 평생이 그렇듯 허망할 수 없다.
철 없을 적 부모의 그늘이야 하늘보다 높은 든든함이었는데
어느날 문득 내 눈 앞에 그 하늘이 있고
그 하늘을 느껴갈 즈음 부모는 곁을 떠난다.
지인 중에 자기 부인에게 다시 없이 잘 하는 사람이 있다.
타고 난 훼미니스트도 아닌데...
사연인즉, 직장암 수술을 하신 부친을 모친께서 얼마간 수발을 하시다가
더 이상은 도저히 못하겠노라고 장남인 지인에게 맡기셨단다.
그 부친을 자기 부인이 삼 년을 모셨단다.
직장암 수술을 한 환자인 탓에 집안은 온통 악취가 가득했고
아들인 자신도 견디기 힘들어 퇴근 후 술의 힘을 빌어야 들어갈 수 있었던 집인데
평생의 동반자라는 자기 어머니마저도 포기했던 부친의 수발.
그게 그가 갚아야 할 평생의 부채란다.
점심하며 든 소주 반 병의 반주 탓인가?
산행기 쓴다는게 엉뚱하게 새는것 같다.
내가 굳이 산행기를 쓰겠노라 마음 먹었던 것은
좋은 산 좋은 산행을 해서 남기고 싶은 좋은 것들이 많아서가 결코 아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 출근하며 라디오를 듣는데 뉴스 말미에
'50세 이상의 노인들을 위한 실버 세대 재취업 운운'이라는 아나운서의 멘트에 가슴이 스산했었다.
능히 하늘의 뜻을 헤아린다는 지천명의 세대 오십.
이미 내 곁에 차고 앉아 있지만 결코 익숙하지 않은 숫자 오십.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 스무살 어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몸만 바삐 두 걸음 씩 내달린 것일까.
몸은 실버인데 마음만 그린green인 것은 나 뿐이 아니었고
몸의 나이를 따르지 못한 영적인 미숙아 우리 산술당원들이
이 영과 육의 부조화로 인해 겪어야 했던 해프닝!
지난 일요일(9월 2일) 점봉산 산행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나마
산행기를 겸하여 남기면서 통절한 반성을 하고자 함이다.
혹자는 어제 점심에 먹은 걸 기억하지 못한다 하는데
이 몸은 오늘 아침에 먹은 것도 기억하지 못함을 감안하시어
기록상에 작은 오류 있어도 해량하시길...
테마산악회에서 주관한 점봉산 산행.
근간 원거리 산행이 없어서인지 아마도 금년 중 가장 많은 참석자인 열 한명이나 모였다.
양재역 서초구 구민회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한게 오전 7시 20분 쯤.
산악회에서 나눠 주는 김밥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우고 불편하게나마 잠깐 눈 붙였나 했더니
버스는 영동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지난 7월의 폭우 피해로 한계령 통행이 불가하단다.
대여섯 자리나 비었을까? 얼추 만석인 버스는 푸른 동해 바다를 끼고 달리다
양양에서 한계령 초입으로 접어드는데 지난 여름 폭우가 할퀴고 간 흔적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물에 쓸려간 도로 이곳 저곳은 대충 흙으로 나마 때워 놓았지만 가히 누더기에 다름 아니고
계곡을 가로 지르던 콘크리트 다리는 한결같이 물에 쓸려가 계곡 이곳 저곳에 내던져지듯 나뒹굴고 있다.
상판은 상판대로 교각은 교각대로.
사태로 무너져 버얼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산 등성이도 한 두 곳이 아니다.
전체 인원 중 열 두엇은 오색에서 대청으로 오르고 우리를 포함한 약 스무 명은 점봉산을 오른다.
안내자가 달랑 혼자인지라 대청을 오르는 팀은 각자가 알아서 오르고 점봉산 일행만 안내한다고.
여섯 시 까지는 내려와야 한다는 말을 뒤로 하고 점심으로 주는 역시 김밥 도시락을 받아
오색초교 인근에서 점봉산 자락으로 접어 든게 11시 20분.
산 자락을 끼고 난 길을 따라 십여분 오르니 인가 한 채가 나오고 이내 계곡과 만난다.
아름드리 거목들이 뿌리째 뽑혀 여기 저기 나뒹굴고 있는 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인솔자가 길을 찾지 못한다.
7월에도 왔었는데(물론 퍽우가 있기 전) 길이 보이질 않는단다.
결국 길을 찾지 못하고 잡목이며 산죽이 울창하게 우거진 산등성이를 차고 오른다.
능선에 이르면 길이 있다며.
찾는 길은 보이지 않고 상당한 급경사를 산죽에 매달려 헉헉대며 오르는데
결국 홍일점이었던 여자 한 분과 일행 남자가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 간다.
나중을 생각하면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족히 시간 반을 길도 없는 밀림을 헤치고 올라서야 능선의 산행로를 만날 수 있었다.
상당히 경사가 급한 데다 무른 흙에 미끄러지기 일쑤였던 터라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것 보다
훨씬 힘든 여정이었다.
등산로를 찾아 오르느라 너무 많은 기력을 소모했음을 배려함인지 능선 길은 비교적 평탄하다.
굵은 참나무 숲은 울창하게 우거져 하늘을 가리는데 길 옆은 멧돼지들이 들쑤셔 놓은 자국들로 가득하다.
멧돼지 자국은 정상에 이르도록 길을 따라 내내 이어져 있었고 나중에 들었지만 멧돼지를 직접 본 등산객들도 있었다.
1시 어름에 단목령에 이르니 제법 널찍한 터가 나타난다.
안내 표지판 양 옆으로는 그럴듯한 장승도 서 있고 쉬어 가기에 제격인 곳이다.
산악회에서 받은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각자가 준비한 막걸리와 매실주에
얼린 맥주까지 가세하니 땀 범벅인 심신이 한순간에 뱃속까지 시원하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내쳐 길을 나서는데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얼추 한 시간이면 정상에 이르리라 싶은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단목령의 표고가 팔백 수십 미터 였으니 1400미터가 조금 넘는 정상까지 가려면
조금은 오르막일 것 같다는 짐작은 했었고.
완만한 오르막을 김 영수 군을 앞세우고 걷는다.
나도 빠른 걸음인데 제법 신경써야 할 정도의 속도로 걷는다.
하늘 높은 참나무 밑엔
아직 파란 잎의 단풍나무가 머리 맞춤의 키로 서 있고
그 아래엔 무릎 높이 산죽이며 관목이 성성한데
가끔은 연한 보라빛의 흡사 종을 매달아 놓은 듯한 이름 모르는 꽃이
수줍게 고개 숙이고 있는 모양으로 눈길을 끈다.
얼마나 갔을까.
갑자기 물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려 보니
뺵빽한 숲을 이고 있는 깎아 지른듯한 급경사가 왼쪽에 있고
결코 멀지 않은 거리로 계곡이 보인다.
계곡을 가린 숲이 없었다면 현기증을 느낄만 한 절벽이다.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이 나타나고
점봉산 방향은 오르막의 계단길이다.
지금 기억으로는 아마 정상까지 2키로로 표시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앞서 가던 영수군.
십 수어 개의 계단을 오르더니 멈추어 선다.
나도 멈출까하다 그냥 가기로 했다.
급한 오르막은 결코 아닌데 정말이지 청계산이나 북한산에서 흔하게 만나는
그런 정도의 오르막이 결코 아닌데 언제부턴가 다리에 무거움이 실린다.
아마도 산행 초기에 길 아닌 곳을 오르느라 다리에 무리가 갔기 때문 아닌가 싶었다.
끝인가 싶으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고 나니 온 몸은 소나기 같은 굵은 땀방울로 젖어 든다.
심장은 흡사 가슴을 뚫고 나올 듯 쿵쾅대고.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하늘을 덮은 구름이 걷혔는지 빽빽한 나뭇잎 사이를 가른 햇살이
깨져 흩어진 유리 조각처럼 길바닥에 떨어져 반짝인다.
1키로 미터의 안내판을 지나고...
얼마쯤 가니 포토 포인트라는 팻말이 있고
아니나 다를까 설악산 자락을 볼 수 있는 반 평 남짓 공간이 있다.
턱을 치는 숨을 달래며 한계령의 천태만상 만물상에 잠시 홀렸다.
500미터.
묵지근한 다리는 그대로이고 하나, 둘 셈을 세며 가기로 했다.
아마도 팔백 쯤 세면 도착하리라.
하나,
둘,
셋.....
하늘을 가리던 숲이 머리 높이로 내려 오더니 어느새 어깨에 내려 와 있다.
두런 두런 사람 소리 들리더니 드디어 정상.
안내자와 두엇이 더 있다.
백 평은 실한 넓다란 공터 중앙에 점봉산이라 새긴 큼지막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고
작은 철쭉이며 주목 나무들이 세찬 바람에 시달려 땅으로만 기고 있다.
가쁜 숨 달래며 사위를 살피니 북으로는 귀때기봉에서 대청까지 이어지는
설악의 서북 능선이 병풍처럼 길게 펼쳐져 있고
대청 옆으로는 하얀 뭉게 구름 떼에 가려 속초 시가가 보일 듯 말 듯 하다.
동쪽으로 고개 돌리니 멀리 산과 산을 맛대어 웬 콘크리트 담장이 보이는데
양수 발전소란다.
돈키호테가 창 빗겨 들고 달려 들던 괴물형상의 풍차와는 너무도 다른
맵씨있게 빠진 날렵한 몸매의 하얀 풍차 두개가 콘크리크 댐 양쪽에 서서 세팔을 돌리고 있다.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어쩌면 드러 누운 황소의 평평한 등짝같은 산 자락이
푹신한 초록색 양털을 씌우고 남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옆에 있는 이가
곰배령 어쩌고 한다.
더 멀리로는 산이 겹겹으로 서 있다.
열심히 사진 찍는 이가 있어 물으니
백두대간을 뛰는 중이란다 혼자서.
북의 설악을 한계령을 사이로 이어 받아 남으로 오대산이며 소백산이며 그리고
멀리 지리산 까지를 잇는 이곳은 그래 백두대간을 이루는 한 곳이다.
따갑기 까지한 햇살을 몸으로 받으며 이곳 저곳을 살피는데
가로 세로 이십 센티나 될까 조그마한 정방형의 석편이 있다.
'점봉에서 그대는 산이 되다'
손바닥 만한 석편에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문귀.
누군지 아마도 점봉산 산행 중 목숨을 다한 이가 아닌가 싶은데
갑자기 가슴이 뭉클한 한편으로 두려움도 든다.
얼마를 기다리니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염려했던 전 흥섭, 김 영국 군 까지도 무사히 올라 온다.
간단하게 자리펴고 나 상철 군의 배낭을 털었다.
이미 안내자와 같이 있던 또 다른 일행들은 벌써 하산했기에
우리도 서둘러 자리를 떴다.
망대암으로 해서 오색촌으로 하산하는 것인데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등산로를 줄을 쳐 막아 놓았다.
안내자를 포함 앞선 이들이 지난 길이기에 줄을 넘어 가지만 마음 한 구석 찜찜함도
없지 않다.
망대암을 지나 갈림길로 들어서 얼마를 내려 오는데 안내자가 표시한 또 다른 갈림길.
뒤 쳐진 일행을 잠시 기다리는데
등산화를 벗고 아예 자릴 잡는 이까지 있다.
6시 까지 내려 가기로 되어 있고 이미 5시를 넘긴 시간이었는데...
다른 사람들 기다릴텐데 빨리 서두르자고 싫은 소리 몇 마디 내던지며 일행을 독촉해 보지만
굼뜨게 움직이는 모습 보기 답답해 먼저 길을 나섰다.
비탈을 내려와 계곡에 내려 서는데 길이 보이질 않는다.
뒤 따르는 유 진광 군에게 '길이 없으니 서두르라고 뒤에 말 전하라' 하고
이곳 저곳을 헤메며 길을 찾았다.
어차피 뒤 쳐지는 사람도 있을 텐데 모두 함께 내려가며 길을 찾기 보다는
우선 내가 먼저 앞서 가며 길을 찾아 놓는 게 한결 시간을 줄일 수 있으리라 싶었다.
산중의 밤은 세속과 달리 훨씬 빨리 찾아 든다.
어둑해지는 느낌에 해 떨어질 것 같다 하니 뒤에 있던 유 진광 군,
헤드 랜턴 있으니 걱정 말라는데.
뒤의 일행 기다리는 진광 군을 살피며 때로는 바위를 뛰어 넘고
때로는 바위에 매달려 마치 니치 등반하듯 내려 간다.
계곡을 가득 메워 휩쓸어 갔을 폭우에 길도 같이 쓸려 가 흔적도 없다.
아름드리 거목들은 뿌리채 뽑혀 거친 물살에 껍질 홀랑 벗기운
흰 몸뚱아리로 서로 뒤엉켜 여기 저기에 널부러져 있다.
길은 어디에고 없었다.
깎아지른 듯한 비탈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으니 그저 계곡을 타고 갈 밖에.
얼마를 내려 갔나 두개의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이르러 뒤를 살피니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십 여분을 기다렸을까.
물 흐르는 소리뿐 적막강산인데 목이 터져라 불러 보지만
대답이 없다.
전화를 켜보니 먹통이다.
황당하게도 처음 구입하여 개통하기 전의 초기 화면이 뜬다.
문득 겁이 난다.
눈에 뜨이라고 모래가 있는 곳을 밟을 때면 발자국을 내느라 일부러 힘 주어 밟았었지만
만약 뒤에 오는 친구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고 다른 길로 접어 들었다면 나 혼자 산중에
남는 것 아닌가.
양 쪽이 다 깎아 지른 협곡이라 어느새 어둑해지는 느낌인데...
먹을 거라곤 쌀 한 톨도 없고...
이게 아니다 싶어 하산을 서두른다.
어차피 길은 없는 터라 계곡으로만 내려가면 설사 조금은 돌아 갈 지언정 오색촌과
닿아 있으리란 생각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위를 타고 넘고 뛰고 넘고...
수수 만년에 걸쳐 물살에 패인 협곡은 모래 한 점 없이 말끔한데
그런 곳을 기듯 매달려 내려 가노라면 등에 식은 땀이 가득하다.
전화도 되지 않고 사람도 없는 곳인데...
만일 미끄러져 떨어진다면...
아니 크게 다치진 않았을 지라도 걷는데 지장이라도 있다면...
주위 경관은 눈에 훑어 볼 겨를도 없다.
십이폭의 경사를 게딱지 마냥 달라 붙어 엉금엉금 기어 내려 오면서도
오직 어떤 곳이 내려 가기 쉽고 보다 안전할까만 찾는다.
간혹 몇 길도 더 되는 높은 곳에 남아 있는 철 구조물의 산행로 흔적을 보면
가는 방향이 옳다는 안도감도 들지만 길이 없어진 것에 대한 두려움도 같이 든다.
마치 검은 안개가 끼는 것처럼 서서히 밀려드는 어두움에 마음만 다급해지는데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집채같은 바위를 맞닥뜨릴 때의 절망감과 두려움이라니.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데....
갈 수 있는 틈을 찾기 위해 온 길을 되돌아 가기도 하고
이쪽으로도 가 보고... 저쪽으로도 가보고...
평시에는 능히 쉬이 내려설 수 있을 만한 곳인데도
한 번 저린 오금은 펴지질 않아 그저 기고 앉고 매달린다.
가뜩이나 다치기라도 하면 끝장이라는 걱정도 앞서기에.
간혹 산행로였던 흔적이 나타나는데 산행로를 지탱했던 쇠 기둥은
바위에 박힌 흔적만 남긴 채 칼로 자른 듯 잘려 나갔고
때로는 엿가락처럼 제멋대로 휘어져 바위에 널부러져 있기도 하다.
오를 때와 내려 올 때의 높이와 경사에 대한 감각은 다른 법이다.
오를 때 보다는 내려 올 때가 더 높아 보이고 더 가파르게 보인다.
그러기에 오르기 보다는 내려 오기가 훨씬 어렵다.
어느 결엔가 분간이 쉽지 않을 정도의 어둠이 쌓였다.
한 발 내딛기가 지극히 조심스럽다.
가뜩이나 거센 물살에 휩쓸려 제멋대로 쌓인 돌 무더기이다 보니
혹시 잘못 디뎌 우르르 무너지면서 깔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함부로 발을
내딛기도 겁이 난다.
울고 싶은 마음으로 손으로 앞을 젓듯 하며 내려 오는데
채 차지 않아 이즈러진 모양의 누런 달이 산 꼭대기를 기어 올라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아주 깜깜하지는 않겠다 싶어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엉금 엉금 기며 조심해서 내려 오는데 저 만치 앞에 흰 플랭카드 같은 것이 눈에 띈다.
작년에나 걸어 놓은 '산불조심' 플랭카드인가 하는 마음도 없잖았지만
사람의 흔적이 느껴져서 가슴 한 켠에 안도감이 든다.
마지막 용을 써서 플랭카드에 다다르니
폭우로 인해 등산로가 유실되어 입산을 통제 한다는 플랭카드였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그냥 주저 앉고 말았다.
여기서 부터 입산 통제 지역이니 이제부터는 길이 있을 거란 생각에 온 몸의
기력이 일순 빠지며 주위를 둘러 볼 여유도 생긴다.
용소 폭포 어름인 모양이다.
겁에 질려 그 빼어난 주전골의 절경을 눈을 감고 온게다.
하긴 십이폭을 지나면서도 엉금엉금 기며 몸 챙기느라 눈 돌릴 경황이 없었는데.
조심히 살피니 바닥에 흰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데 그것이 곧 길이다.
줄을 따라 내려 가니 아닌게 아니라 임시 방편이나마 길을 다듬어 놓았다.
잠시 후에 금강문을 만나는데 이젠 제 정신이 돌아 온 지라
예가 금강문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십 수년 전 한계령에서 점봉산을 올라 이곳 주전골로 내려 올 때는 그 빼어난
절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에 감회가 새로워 진다.
비록 길이 있다 하나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져 손가락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니 하얀 줄이라 그나마 다행이지만 가끔 줄이 끊어진 곳에서는
길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나가기도 했다.
얼마나 왔을까.
누군가가 앞에서 소리를 치는데 계곡 물 소리에 알아 듣질 못하겠다.
다가가 보니 산악회 안내자와 산행객 한 사람이 반석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사람 소리가 반가와서 부르는 소리였다.
나를 보더니 일행이 다 오는거냐 묻는다.
우리 일행은 아직 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니 아무도 오지 않았단다.
길도 없는 이런 곳으로 데려 오면 어쩌느냐고
도대체 사전 답사도 하지 않았느냐고 역정을 내니
안내자 왈, 사전 답사는 사무실에서 하고 자기는 어제 지리산을 다녀 왔을 뿐이란다.
사람도 만났겠다 이제 드디어 제 정신을 차릴 여유되니
잊고 있던 목마름을 계곡물로 달래면서 찌들은 땀도 씻어 낸다.
물에 빠진 것 같이 흠뻑 젖은 옷을 갈아 입고 앉아 뒤 따를 싸람을 걱정하며
어떻게 해 봐야 하지 않느냐 하니 인원이 많으니 그래도 안심이라며 좀 더 기다리잔다.
하긴 나보다는 좀 뒤로 쳐졌으니 약간 늦을게다 싶기도 하고
유 진광 군에게 불이 잇었으니 위험한 구간은 지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전화를 해 보지만 연결이 되질 않아 '전화 터지는 대로 전화 하라'는 문자를 너댓에게
보냈다.
원래 출발 시간이 6시였는데 지금 시간이 7시가 넘다 보니 버스에 있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우리 걱정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늦게 가는 것에 대한 불만들이 대단하단다.
내가 버스로 간다하니 사람들에게 상황을 잘 얘기해 달란다.
오 분 쯤 걸으니 오색촌 상가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눈을 메운다.
몇은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듯 하고 몇은 버스 안에서 산악회 본사에다
전화를 하는 둥 시끄럽기 그지 없다.
눈치가 보여 배낭만 버스에 살짝 두고 밖으로 나와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 보지만
전화도 되지 않고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시장하기도 해서 저녁 먹으며
막걸리 잔 기울이는 이들에게 막걸리 한 잔 얻어 먹고 또 전화를 해 본다.
8시 반이 넘어 서니 안되겠다 싶어 진다.
혹시 바위를 타다 누가 다치기라도 해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으니
마음이 더 다급해진다.
호주머니를 털어 내니 2만원.
근처 가게에 들러 랜턴을 사니 이미 인근에 소문이 쫘아 하니 퍼져 있는 모양이다.
주전골에서 조난 당했다고.
가게 주인 내외가 하는 말이 그곳 사람들도 지난 폭우 후로는 무서워서 주전골을 들어가지
못한단다.
어떻게 혼자 들어 가느냐고 걱정 반 하면서도 물건 팔 욕심이 앞서는지 천원 깎은 값에
랜턴 2개를 내어 준다.
오색촌을 막 벗어 나니 안내자가 내려 온다. 사람 다쳤으면 어떡할 거냐고 빨리 119에 신고하라
하니 밑에 있는 사람들이 난리여서 어쩌며 우물대며 내려 간다.
칠흙같은 어둠을 큰 랜턴으로는 우리 팀이 혹시 볼 수 있을까 하여 먼 산골짜기를 비추고
작은 손전등으로는 내 발밑을 비추며 급한 걸음을 내딛는다.
신작로처럼 잘 닦인 길을 가는데 웬 집이 나타난다.
불빛 한 점 없는 기와집.
깜깜 산 중에서 느닷없이 불빛 한 점 없는 기와집을 맞닥뜨리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분명 아까 내려 왔던 길인데...
분명 아까는 없었는데....
정신을 추스려 이곳 저곳을 살피니 '성국사'라는 표지판이 있다.
그제서야 무슨 절이 있었다는 예전의 기억이 살아 나는데
내려올 때는 얼마나 급했던지 이 큰 절을 보지도 못하고 갔던 게다.
절 앞에서 드디어 계곡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조매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혹시 인적이라도 느껴 힘받이라도 할까 하고 절을 한 바퀴 돌아 보지만 적막강산.
용기를 내어 계곡을 들어 서는데 한 번 겁 먹은 마음이 가라 앉질 않는다.
마구 내지르는 불빛에 혹시 산짐승이 놀래어 내게 덤벼들지나 않을까 싶기도 하고
지난 폭우에 이곳에서 죽은 사람도 많다는데 아직 시신도 찾지 못한 사람들의 원혼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들고...
겁이 나니 발걸음만 빨라지고 이마엔 구슬같은 땀방울이 흐르며 숨은 헉헉대는데
더운지도 숨이 찬지도 못 느낀채 그저 발걸음만 재게 놓을 뿐.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까지 흐흐흐 하며 울부짖는 귀신 소리 같기도 하고.
길을 나선게 후회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오늘 무슨 일을 당하려는 일진이어서
이렇듯 계속 꼬이다가 결국 이러는게 아닌가 싶어 집에 있는 애들 얼굴도 생각나고 벌려 놓은 일은
어찌 하나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야 같이 가자고 말 붙여 볼 엄두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안내자라도 붙들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막급이다.
친구들 걱정에 앞서 아까도 내가 조난 상황이더니 정말 이제 내가 조난 당하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뿐이다.
내친 걸음인데 돌아설 수도 없고 양쪽에 우뚝 선 기기묘묘한 암석 봉우리는 양팔 벌리고
으흐흐하며 달려드는 괴물 형상이다.
겁을 쫓으려고 목을 놓아 이름을 부르고 간다.
'이 놈아 저 놈아.....'
금강문을 지나는데 저승문을 들어 서는 것 처럼 기분이 싸해 진다.
'이 놈아 저 놈아...'악만 쓸 밖에.
도대체 흔적은 없고..
더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러다가 내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나 않을까...
저들끼리 어울려 소싯적의 캠핑 기분내며 희희덕 대는 것을 상상이나 할까.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지 전혀 종 잡을 수 없으니 답답할 밖에.
돌아 가자니 혼자 돌아 갈 길도 겁나고.
엉금엉금 기며 이제는 목이 잠겨 제 소리도 나지 않는데 악 쓰듯 부르며
이리 저리 나아 가는데 얼핏 진산 군이 나누어 준 호르라기 소리가 나는 듯 하다.
귀를 쫑긋 세우니 계곡 물 소리 뿐.
혹시 하는 반가움에 조금 더 나아가 보자 싶어 겁 없이 내닫는데 또 호르라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분명 호르라기 소리였다.
랜턴 불빛을 미친듯이 휘저으며 고래고래 이름을 불러 보지만 이미 쉰 목소리는 몇 걸음
가질 못하는 것 같다.
내 불빛을 보았건 내 목소리를 들었건 저들 찾는 인적에 얼마나 반가워할까 싶으니 절로 힘이 난다.
랜턴 불빛을 휘젓다 보니 저쪽에서도 불빛을 비추어대는 것 같아 이쪽 불을 모두 껐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 저쪽에서 내지르는 불빛이 숲 사이를 뚫고 빗살처럼 퍼져 나간다.
이제 찾았구나 싶은 안도감과 반가움...
불빛 비치는 집채만한 바위에 누군가가 서있어 누구냐고 불러 보지만 물소리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더 가까이 다가가니 이 정희 군이다.
검은 어둠 속에서 굼실굼실 군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사 만난게다
이 정희 군이 준비하고 있었다는 자일을 타고 내려 오는 이들에게 먼 발치에서
불빛을 쏘아 주고...
...
....
전화도 불통인 데다 집에 들어 가지 않아도 될 아주 제격인 핑계도 있겠다 .
그곳에서 비박을 하고 아침에 내려가 바다에서 회 쳐먹자고며
모닥불 피워 놓고 '조개 껍질~~ ' 노래 노래 불렀단다.
벌렁 누워 밤 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도 헤아렸단다.
젊은 날 이쁜 소녀와 가졌던 아련한 추억에 빠져서...
오색촌에 이르니 정말 난리다.
붉은 경광등 번쩍거리며 경찰차에 119 구급차에...
다행히 한 사람도 다치지 않은 채 10시 50분 쯤 오색을 출발해서 2시 조금 넘은 시각에
양재역에 이를 수 있었다.
정말 반성하건대,
무릇 물가 즐기는 놈과 나무 잘 타는 놈은 집에 두지 말라는 옛말이 아닐 지라도
산이건 물이건 좋은 만큼 위험도 상존할 진대
이제 몇 년 산에 올랐다는 작은 교만에 우리 모두가 빠져 있었음이다.
원거리 산행임에도, 정말 가까운 곳의 작은 산이 아니었음에도
반 바지 반 팔 티셔츠 차림으로 비상 식량 없이 마냥 꾸물대며 산행했었다.
서늘한 가을 바람에 잔뜩 약 오른 풀잎은 잘 벼른 칼날 보다도 날카롭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흡사 면도날처럼 살갗을 스치며 핏줄을 그려 낸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산행은 요령이라는게 통하지 아니 한다.
오직 자기의 체력대로 갈 뿐이다.
따라서 평소에 꾸준히 체력을 가꾸어야 하고
자기 체력에 맞게 행해야 한다.
산행에는 당구처럼 쫑나서 맞거나 안 맞는 일은 없다.
산행은 각자의 내공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이다.
회비 내네 안 내네 하면서
그 귀중한 회비로 장만한 비싼 워키토키는 지참도 아니 하고...
비록 폭우에 길이 쓸려 험한 노정이었지만
바삐 서둘렀던 다른 일행 대 여섯은 무사히 시간에 맞춰 하산하지 않았던가.
만일 우리네 아들들이 우리 같은 경우를 당했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어라고 말을 할까.
아마도 산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거나
준비성이 있어야 한다거니
근엄한 표정으로 나무랐을게 틀림없다.
우리 스스로에게 준엄해 지도록 하자.
다행스럽게도 다친 사람이 없었지만
만에 하나 일행 중 누가 다쳤다거나 아니면 더 큰 사고를 당했다면
그 후회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호랑이는 작은 토끼를 사냥하면서도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크든 작든 산을 가벼이 보지 말자.
세상 살아 가는 모든 일들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하자.
이제 술 기운은 간데 없고 성수 문상이나 가야겠다.
누구의 아픈 말처럼 결코 산행기 두들길 처지 아님에도 한 나절을 쏟아 부었으니
비록 문상에 조금 늦었더라도 해량해 주기 바라며..................
첫댓글 그날 이후 계속되는 만남과 사건으로 심신이 무척 힘든 상황임에도 얽힌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니 고전을 대하듯 고마운 마음으로 읽으며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마음의 여유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더 진한 교훈을 설파할 수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살사에게 고개숙여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추억으로만 치부하려 한다면 분명 그것은 살사의 표현대로 영적미숙아 의 치기에 가깝다. 전화위복. 환골탈태의 계기가 되어 완성도를 한층 높이고 견고한 teamspirit이 구축되는 계기가 되었기를 소망한다.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며
산술당의 보배. 살사의 자세와 정신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산행후기 잘보았소이다.근데 산행기는 산행기난에 올려 놓으시기를..... 안가고도 간것 같은 글을 보며 다시한번 여러가지를 생각하게합니다. 장거리 산행시 준비물들은 잘준비하도록 신경쓰고, 랜턴,비상식량,바람막이등 개인 준비물은 꼭들 가지고 다닙시다. 달랑 빈베낭들로 다니지말고.겨울철에는 배낭도 커야함으로 각자 40리터정도 준비하시고. 이번경험으로 반성들 많이하고 안전산행을 위하여 신경들 써주시기 바람니다
총무님! 천원빠지는 이만원 랜턴비용 정산해 줘야하는것 아니가벼? 생명도 건져주었는데... 연말 공로패 주더라도 지갑털린 살사 집에는 뭐로 가셨었나?
내가 모셔다...드렸지요..
당연히 모셔다 드려야지! 이런 모범당원을 둔 산술당 黨首로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연말 선거에 참작하겠슴.
살사..그대는 작가로 나갔어도 크게 성공했으리라 생각되네..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