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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장 불교의 제종파(諸宗派)
인도 불교에서의 부파(部派) 분열의 역사나 대승(大乘)이 대두한 경위는, 항상 경전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거니와, 중국 불교의 종파들도 역시 모두가 경전을 중심으로 하여 논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래로 13 종(宗)이라고 전해 왔다. 이를 테면 삼계교(三階敎)와 같이 이미 탄압에 의해 소멸되어 버린 것들은 무시되고 없다. 또 종파의 개념이 명확치 못했으므로 다시 다른 종파 명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 비담종(毘曇宗)
유부(有部)의 논서(論書)인 아비담팔건도론(阿毘曇八犍度論),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파(學派)이다.
2. 성실종(成實宗)
구마라집이 번역한 성실론(成實論)을 연구하는 학파이다. 이 논(論)을 대승이라 보느냐 소승이라 보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논의가 분분했으나 지의(智顗)가 소승이라 판정한 이래 아주 쇠미해졌다.
3. 삼론종(三論宗)
구마라집이 번역한 중론(中論) 백론(百論) 십이문론(十二門論)을 중심으 로 연구하는 학파이다. 이상의 3론과 대지도론(大智度論)을 추가하여 사론종(四論宗)이라 하기도 했다.
4. 섭론종(攝論宗)
진제(眞諦)가 번역한 섭대승론(攝大乘論)과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을 소의로 하는 학파이다.
5. 법상종(法相宗)
현장(玄奘)이 번역한 성유식론(成唯識論)에 의거해서 그 제자 규기(窺基)를 중심으로 성립한 학파이다. 인도에서 유가파(瑜伽派) 또는 유식파(唯識派)라고 불린 것 중에서, 달마파라(Dharmapala_護法)의 학설을 계승했다.
6. 지론종(地論宗)
보리유지(菩提流支 Bodhiruci)가 먼역한 십지경론(十地經論)에 의지하는 학파이다. 이 논은 화엄경에서 보살의 수행단계를 설한 십지품(十地品)을 주석한 것이니 화엄종이 융성함에 따라 흡수되었다.
이상은 논을 중심으로 하여 종파를 이룸으로 논종(論宗)이라 이른다. 논종은 모두 학파적 경향이 짙고 인도 불교의 직접적 영향이 강했다. 이 논설은 모두 인도학승의 저술이다.
7. 율종(律宗)
중국에서는 네 부파의 율이 번역되었다. 십송률(十誦律), 사분률(四分 律), 마하승기률(摩訶僧祇律), 오분률(五分律)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분률의 연구가 널리 행해져 도선(道宣 596ㅡ667)의 계률이 번창했다. 이를 남산종(南山宗)이라 한다.
율장을 소의로 하는 종파는 이 하나 뿐 이다.
8. 열반종(涅槃宗)
담무참(曇無讖 Dharmakshema 385ㅡ433)이 번역한 대반열반경(40권 본, 북본 열반이라 함)을 소의(所依)로 한다.
9. 천태종(天台宗)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다. 혜문(慧文 550ㅡ577), 혜사(慧思 515ㅡ577), 지의(智顗 538ㅡ597)의 순서로 전해오다가, 지의에 이르러 대성하다.
10. 화엄종(華嚴宗)
화엄경(華嚴經)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다. 두순(杜順 557ㅡ640), 지엄(智儼 602ㅡ668), 법장(法藏 643ㅡ712)의 순서로 계승해오다가 법장에 이르러 융성했다.
11. 정토종(淨土宗)
강승개(康僧鎧 Samghavarman 252 년에 낙양에 와서 254에 죽다.)가 번역한 무량수경(無量壽經)을 근거로 한다. 그 계통은 몇 개의 유파로 갈리었고, 독립된 한 종파라기보다는, 여러 학파 종파 사람들이, 각기 자기 입장에서 정토 신앙을 지니어 번창했다.
12. 진언종(眞言宗)
선무외(善無畏 Subhakarasimha 637ㅡ735)가 번역한 (大日經)을 중심으로 하는 밀교(密敎) 경전에 의거하는 종파이다. 선무외의 뒤를 이어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 671ㅡ741), 불공(不空 Amoghavajra 705ㅡ774)이 도래해 왔고 또 일행(一行 683ㅡ727)은 선무외의 설을 따라 대일경소(大日經疏)를 저술했으나 얼마 안 가서 당(唐) 무종(武宗)의 불교 탄압을 겪고 이어서 당말(唐末), 오대(五代)의 불교 쇠퇴기를 만나게 되어 종파로서 번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상은 경장에 수록된 경을 소의로 하는 종파였으므로 이를 경종(經宗)이라 이른다. 이것을 논종에 비할 때 그 종파로서의 양상은 매우 다른 점이 있다. 즉 학파 적 요소가 퇴조하는 대신 신앙적 요소가 더해지고 있다. 경종 속에도 여전히 학파적 경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었으나, 그런 중에서도 얼마간 실천이나 신앙에 대한 열정이 싹터가고 있었다. 그런 경향은 천태종(天台宗)과 화엄종(華嚴宗)에서 현저했고 정토종(淨土宗)에 이르러 더욱 현저 했다.
13. 삼계교(三階敎)
삼계교는 탄압으로 몰락하고 말았으나 언급을 해야 하겠다. 수(隋)의 신행(信行 540ㅡ594)에 의해 창시 되었고 7,8세기 사이에 금지 압박된 결과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신행 당시에 차차 대두되기 시작한 말법사상에 입각하여 불교를 3 단계로 나누고 이제는 제3 단계의 불교라야 한다 고 주장했다. 보법(普法)이라 하여 일체의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일체의 악(惡)을 끊고 일체의 선(善)을 닦으라고 주장 했다. 특별한 소의 경전은 없다.
14. 선종(禪宗)
이 종파도 소의 경전을 세우지 않고 도리어 교외별전(敎外別傳)임을 주장한다. 그 계보를 살펴보면, 기원 520년 경 바다를 통해 남중국에 이른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 ?ㅡ528)를 초조(初祖)로 제6 조 혜능(慧能 638ㅡ713) 이후 교세가 융성해졌다. 그 종풍은 가장 융성하며 우리나라 불교도 선종이 가장 우세하다할 수 있다.
교상판석(敎相判釋):교의(敎義)를 자세히 해석함
1. 천태종(天台宗)
1) 천태종(天台宗)의 명의(名義)
천태종(天台宗)은 산 이름을 따서 지은 종명으로 중국 절강성 태주에 있는 천태산(天台山)을 중심으로 성립되었다.
이 종(宗)은 법화경(法華經)을 종지(宗旨)로 하고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열반경(涅槃經)을 조역으로 삼고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과 중론(中論)의 삼제게(三諦偈)로서 일심삼관(一心三觀)의 관상법(觀想法)을 세운 교종(敎宗)이면서도 선관(禪觀)을 겸한 교관종(敎觀宗)이다.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석존(釋尊)이 보리수 밑에서 성도 하시고 부터 입멸하실 때까지 설하신 설법을 오시팔교(五時八敎)로 나누었다.
오시(五時)라 함은 석존의 45년 간 설법을 시간적으로 제1 화엄시(華嚴時), 제2 녹원시 (鹿苑時), 제3 방등시(方等時), 제4 반야시(般若時), 제5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로 나눈 것을 말한다.
제1 화엄시(華嚴時)는 붓다가 보리수 아래서 처음으로 정각을 이룬 뒤 3.7일 동안 해인삼매(海印三昧) 속에서 깨달은 법을 그대로 설한 것이다. 이 법은 가장 광대하고 심묘 함으로 이승인(二乘人)은 들어도 모르며 시방불국의 십지위(十地位) 보살만이 듣고 알 수 있는 대승최상승법(大乘最上乘法)을 설한 것이 화엄시(華嚴時)이다.
제2 녹원시(鹿苑時)는 보리수아래서 일승화엄시를 설했지만 그것은 대위보살이 아니면 알 수 없으므로 그 시대 사람에게는 아무런 이익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녹야원에서 교진여, 아사파기, 마하남, 바데, 바부의 5인에게 사제법(四諦法)을 설하여 깨닫게 하였다. 이와 같은 법문이 아함경(阿含經)이다. 이러한 법문으로 소승을 제도한 12년간을 녹원시(鹿苑時) 또는 아함시(阿含時)라 한다.
제3 방등시(方等時)는 아함경의 법문으로 소승 인을 교화하여 대승 법으로 이끌어 올릴만하게 되었으므로 방등이라는 대승 법을 설했다. 유마경(維摩經), 금광명경(金光明經), 능가경(愣伽經), 여래장경(如來藏經), 승만경(勝鬘經), 무량수경(無量壽經), 등의 법문으로 소승에서 대승보살도로 지향시킨 8년간을 말한다.
제4는 반야시(般若時)이다. 아(我)와 법(法)이 다 공(空)한 반야경(般若經) 법문을 설하여 대소승에 매이지 말고 상(相)의 집착을 떠난 진리의 참 모습을 설한 21년간의 교시이다. 제5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는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하셨다. 법화경은 석존이 세상에 출현하신 본의를 드러내 보이신 것으로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인을 일승으로 돌아가게 한 불법의 결론이며 열반경은 법신상주(法身常住)의 진리와 중생성불의 극의를 8년간 설시한 최후의 법문이다. 이것을 5시교(五時敎)라 한다. 8교(八敎)라 함은 설법의 내용에 의하여 분류한 것이니 이에는 화의사교(化儀四敎)와 화법사교(化法四敎)가 있다.
화의사교란 중생을 교화하는 의식으로는 네 가지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첫째 돈교(頓敎)는 석존이 처음 성도하여 화엄일승법(華嚴一乘法)을 단번에 설하여 대승 최상의 근기(根氣)로서 깨쳐 들어가게 한 것이다.
둘째 점교(漸敎)는 제2 녹원시부터 방등(方等) 반야(般若)의 순서로 차츰 얕은 데서부터 법을 설한 것이다.
셋째 비밀교(秘密敎)는 같은 회상에서도 사람의 근기에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돈교(頓敎)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점교(漸敎)를 설하지만 각기 제 근성에 맞추어 알아들을 뿐 서로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넷째, 부정교(不定敎)라 함은 부처님이 한 자리에서 같은 법을 설하는데 듣는 이가 제 정도에 맞추어 각기 이해하도록 하는 묘한 방식을 가러킴 이다.
이에 비해 화법사교(化法四敎)란 첫째, 장교(藏敎)로 장(藏)은 소승의 삼장교(三藏敎)라는 뜻이니 아함경(阿含經)의 가르침이다.
둘째, 통교(通敎)는 이승(二乘)에 공통되는 교법이니 소승과 보살승에 통하는 방등반야(方 等般若)의 교법이다.
셋째, 별교(別敎)라 함은 이승(二乘)에는 통하지 아니하고 대승만이 행할 수 있는 대승의 교법이다.
넷째, 원교(圓敎)라 함은 원만하여 모자람이 없다는 뜻이니 법화경(法華經)은 삼승을 다 교화하여 일승법으로 귀화한 것으로 가장 원만 하다는 것이다. 화엄경(華嚴經)은 일승 보살에만 국한된 것이다. 이승에는 통하지 못하는 일승별교이다.
법화(法華) 열반(涅槃)은 불교의 최종적인 결론이므로 돈교(頓敎)만도 아니요. 점교(漸敎)만도 아니요, 비밀부정(秘密不定)도 아닌 일승원교(一乘圓敎)라는 것이다.
2) 천태종(天台宗)의 교의(敎義)
이 종의 교의는 중론(中論)의 삼제게(三諦偈)에 의하여 원융삼제(圓融三諦)의 일심(一心三觀法)을 세우고 법화경(法華經)의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한 십여시(十如是)에 의하여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묘리를 천명하였다.
(1) 원륭삼제설(圓融三諦說)
천태종은 우주 만법을 공(空), 가(假), 중(中)의 삼제로서 남김없이 꿰뚫어 보았다.
혜문선사(慧文禪師 중국 남북조 때의 스님)가 중론의 삼제게(三諦偈)의 원리를 깨닫고 일심삼관(一心三觀)의 묘리를 발휘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삼제설(三諦說)은 본래 우주론적으로, 만유의 현상은 가유(假有)이고, 가유의 배경인 실상계는 공(空)이며, 그 공이 아주 완공이 아니라 인연생 (因緣生)의 현상계로 나타나니 공즉가(空卽假)이며, 현상계에서 실상계를 바라보면 가즉공(假卽空)이다. 이렇게 공즉가 가즉공이므로 공은 단공(但空)이 아니고 가는 단가가 아니라 즉공(卽空) 즉가(卽假)이면서 또한 비공(非空), 비가(非假)이면서 또한 비공(非空), 비가(非假)가 된다. 즉(卽)과 비(非)가 무애(無碍)한 이치가 중도제(中道諦)라고 하는 것이 중론(中論)의 본의이다. 그것이 천태종에서는 원융삼제설(圓融三諦說)로 전개된다.
이 삼제의 진리는 우주 현상계와 실상계의 온갖 법은 다 갖추어서 하나를 들면 셋이 그대로 따라오는 본연의 성덕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이 삼제의 이치에 어둡기 때문에 무명(無明), 견사(見思), 진사혹(塵沙惑)을 일으키어 무량한 윤회의 고(苦)를 받고, 제불은 이 이치를 깨달아 만덕의 묘용이 구족하여 대자재(大自在)를 얻는다는 것이다.
(2) 십계십여시(十界十如是)
십계라 함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 불의 십법계(十法界)를 말한다.
천태대사는 사성계(四聖界)와 육범계(六凡界)를 십법계(十法界)라 하였다.
십여(十如)란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에 제법실상(諸法實相) 소위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 여시보(如是報), 여시본말구경(如是本末究竟)이라고 돼있는데 여시가 열 개가 있어 십여시라 한다.
이 여시는 꼭 그렇다는 뜻으로 여(如)는 다름이 없다. 시(是)는 이것 이 다 라 는 의미가 있어 온갖 법 곧 우주만물의 실상은 상(相), 성(性), 체(體), 력(力), 작(作), 인(因), 연(緣), 과(果), 보(報), 본말구경(本末究竟)등의 십여시가 갖추어져 있다.
1. 여시상은 물질의 표면에 나타나는 모습
2. 여시성은 그 현상 속에 잠재한 성질
3. 여시체는 기체니 액체니 하는 것
4. 여시력은 그 물체가 지니고 있는 힘
5. 여시작은 그 힘이 가지고 있는 작용
6. 여시인 : 그 작용이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 원인
7. 여시연 : 그 인을 도와주는 것
8. 여시과 : 그 인연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
9. 여시보:말이 되는 9여시의 본과 말이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여시상 속에 9가지가 다 갖추어져 있듯이 하나하나가 다 이와 같이 하나를 들면 나머지가 그 속에 갖추어져 있게 된다. 이것을 일러서 본말이 끝내 동등하다고 한다.
이 일법계가 십여시를 갖추었으므로 십법계에 백 여시를 갖추었다. 또 일법계에 9 법계를 서로 갖추면 곧 백 법계가 되니 이것이 곧 백계천여 이다. 이것이 십계십여시로서 다시 백계천여가 되는 원리이다.
(3)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
이 종은 십계십여설을 근거로 하여 십계가 각기 십여를 갖추게 되니 십계백여가 된다. 일계가 나머지 9계를 갖추게 되는 이유는 가령 우리의 한 생각이 살(殺), 도심(盜心)은 지옥계, 탐욕은 아귀계, 우치(愚癡)는 축생계, 교만은 수라(修羅), 인도는 인간계, 복덕심은 천상계, 사제(四諦)는 성문(聲聞), 12인연관은 연각(緣覺), 이타심(利他心)은 보살계(菩薩界), 일념정각(一念正覺)은 불계(佛界)등 이것이 모두 한 생각 밖의 것이 아니라 한 생각의 움직임 그대로 십법계의 체(體)와 용(用)이 된다.
10계가 각기 이와 같이 다른 9계를 갖추었으므로 곧 백계(百界)가 되는데 계(界)마다 십여(十如)가 있으니 백계천여(百界千如)가 된다.
그런데 불계(佛界)에서는 이 세계를 3종으로 구분하니 곧 오음세간(五陰世間), 중생세간(衆生世間), 기세간(器世間)이 그것이다. 오음세간(五陰世間)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물심 양대 원소의 세계를 이르고, 중생세간은 모든 생명 계를 이르고 기세간은 중생의 의주 처(依住處)인 국토이니 근본 오음이 인연에 따라서 정보(正報 생명체)와 그 생명의 의보(依報 의주처)인 국토로 전개 되었다.
心如工畵師 造種種五陰 마음은 공인이나 화가와 같아서 갖가지 오음을 만들어 낸다.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마음과 같이 부처도 그러하며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다.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셋이지만 차별이 없다.
천태대사는 화엄경(華嚴經)의 이 게문에서 십법계가 한 생각 속에 있음을 발견 했다. 십법계란 사성(四聖),육범(六凡)의 정보(正報)만 말한 것이므로 의보(依報)인 국토가 제외된 것 같다. 또 그 의(依), 정(正)의 이보를 만들어 낸 요인은 오음이니 오음 중생 국토 이 삼세간도 물론 백계가 다 갖추어있으니 십계가 서로 갖춘 백계에 삼세간이 각기 갖추었으므로 삼백세간이 된다. 또 이 삼백세간이 각기 십여(十如)를 갖추었으므로 삼천여가 된다 .
이 삼천여의 세계가 우리의 일념심 위에 갖추어 있으니 이것을 일념삼천이라 한다.
이 일념삼천설은 천태종의 독특한 교의로서 이론만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실천법인 관행(觀行)으로서 더욱 그 값을 보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특히 마하지관(摩訶止觀)에서 이것을 밝혔던 것이다.
(4) 관행문(觀行門)
우리의 일념심(一念心) 위에 백계천여(百界千如) 삼천제법(三千諸法)이 본래 맞추어진 묘리를 고요히 관하면 번뇌는 곧 보리요 생사는 곧 열반인 실상을 깨닫게 된다. 이 관 법으로 자성 가운데 본래 갖추어져 있는 지혜를 개발하여 삼지(三智)로 삼혹(三惑)을 끊고 삼덕(三德)을 갖추므로 일심삼관(一心三觀)으로 불과(佛果)를 증득(證得)하는 법을 내세웠다.
그 관행법을 자세히 밝힌 것에 마하지관(摩訶止觀) 마하소지관(摩訶小止觀) 등이 있다.
가. 삼혹(三惑)을 끊는 법
중생이 본래 잦추고 있는 불성이지만 다만 번뇌에 가리어 그 광명을 나타내지 못하니 마치달이 구름에 가리운 것과 같다. 그 번뇌를 천태종에서 는 무명혹견(無明惑見), 사혹(思惑), 진사혹(塵沙惑)의 삼혹으로 나눈다.
이 삼혹은 본래 삼제의 이치를 알지 못하므로 우주의 실상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견사(見思), 사혹(思惑)으로 나누는데 그것은 중생이 우주의 본체가 공한 것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인연의 화합으로 생긴 사대신(四大身)을 자기의 실체로 삼고 보고 듣는 외경(外境)이 모두 진실된 것이라고 집착하여 탐욕 진애 우치 아만 등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견사혹(見思惑)이라한다.
진사혹(塵沙惑)은 그 수의 많기가 진사와 같다는 뜻이다. 근본이 되는 탐, 진, 치 등으로부터 현상계가 가유(假有)임을 알지 못한 관계로 보고 듣고 분별하는 대로 일어나는 무량한 번뇌를 가러킨다.
무명혹(無明惑)은 중생들이 일상에 활동하고 있는 자성(自性)이 곧 불성(佛性)인 줄을 알지 못하고 본래의 각성(覺性)을 덮어버린 무명성이 지혜를 가리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삼혹은 삼제에 어두운 까닭이다. 그러므로 일심삼관을 닦아서 삼혹을 깨뜨려야 한다.
나. 일심삼관(一心三觀)의 수증(修證)
삼관(三觀)이란 공(空), 가(假), 중(中)의 삼관이다. 삼관은 이법(理法)을 관하는 것으로 공관(空觀)으로 공제(空諦)를 중관(中觀)으로 중도제(中道諦)를 관하는 것이다.
처음 공관(空觀)으로 만유의 본체는 본래 공한 모습임을 사무처 보아 그 관행(觀行)을 성취하여 견사혹(見思惑)을 끊고 일체지(一切智)를 증득하여 법신덕(法身德)을 성취한다. 법신덕이라 함은 불의 법체(法體)로 본래 번뇌를 여의고 생사가 없는 진리의 몸을 가리킨다.
다음 가관(假觀)으로 만유의 현상이 가유인 모습을 사무쳐 보아 그 관행을 성취하므로 진사혹(塵沙惑)을 끊고 도종지(道種智)를 증득하여 반야덕(般若德)을 얻게 된다. 반야는 번뇌의 미혹을 벗어나서 깨달음의 지혜를 개발하는 묘지(妙旨)를 말한다.
다음에 중도관(中道觀)으로 현상은 곧 실상이요. 실상은 곧 현상(空卽假 假卽空)인 진리를 사무쳐 보아 그 관행을 성취하므로 무명혹(無明惑)을 끊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하므로 해탈덕(解脫德)을 성취한다. 해탈덕은 무명의 종자를 끊고 번뇌를 벗어나 생사를 여윈 열반의 경지로서 걸림 없는 대자연의 불과(佛果)를 가러킨다.
이 법신(法身), 반야(般若), 해탈(解脫)의 삼덕은 불의 묘지(妙智), 묘용(妙用)으로서 불성에 본래 갖추어 있는 덕성인데 삼혹으로 인하여 어두 어 진 것이 이제 삼관을 닦아 삼혹을 끊으므로 불의 삼덕을 증득하게 되는 것이 이 종의 실천 지침이다.
일심삼관(一心三觀) 또 불차제삼관(不次第三觀)이라고 하는 것으로 일념망심(一念妄心) 위에 삼제를 동시에 관하는 것이다. 공 가 중이 서로 다른 것과 관계없는 단공(但空), 단가(但假), 단중(但中)이라 보지 않고 이 셋이 서로 여일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원융무에(圓融無碍)한 것이어서 공에서 그대로 가(假) 중(中)을 관하고 가와 중도 또한 그러하다. 이것을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의 관법이라 한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밝혔는데 제법의 실상은 공, 가. 중이 따로 별립 된 것이 아니라 현재 눈앞의 현상이 가이면서 곧 공이요, 즉공이 즉가인 사리이다. 그러므로 일심 위에 제법실상을 직관할 때에 일심삼관이 선후의 차제가 없고 공간적인 격별이 없다.
다. 일념삼천관(一念三千觀)
본 종에서는 교(敎)와 관(觀) 이의(二義)를 세웠다. 교는 교의적(敎義的) 이론면을 말하고 관(觀)은 관행(觀行)의 실천문을 말하다. 교의는 깨달은 진리와 증득한 법체(法體)를 논증한것이며 관행은 그 이론으로 변증된 이법을 그대로 관조하여 그 이법을 실현하는 것이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이란 교의가 다만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념 위에 실증하려는 것이 그 교의를 논증한 목표이다. 마하지관(摩訶止觀)에 하나의 관법으로서 일념삼천론이 제시되어 일념심 위에 삼종세간을 둘러싼 백계천여(百界千如)가 갖추어 있음을 관하고 그 관법으로 유심무경(唯心無境) 심외무법(心外無法)의 유심관(唯心觀)이 성취된다. 이 일념삼천관을 닦으므로 한 마음 위에 모두가 다 구족한 불덕을 체현하려는 것이 그 비밀된 종지이다.
일념은 우주만법 그대로의 일념 뿐 일념 밖에는 일체가 따로 있을 수 없으니 이것이 일심삼관의 원융삼제인 묘리이다.
라. 육즉성불(六卽成佛)
이는 수행하는 계위(階位)를 6단계로 나눈 것이다. 이 6단계는 사람의 수행 상 어리석음과 깨침에 차이가 있음을 표시한 것일 뿐 수행의 대상인 실상의 이치에는 미(迷) 오(悟)가 둘이 아닌 것이므로 6즉 이라한다. 진리에 상즉(相卽)하여 그것과 일체가 되어가는 단계를 이즉(理卽), 명자즉(名字卽), 상사즉(相似卽), 관행즉(觀行卽), 분진즉(分眞卽), 구경즉(究竟卽)등 여섯이다.
1.이즉(理卽)은 범부도 불성을 지니고 있으니 그 불성의 이(理)로는 곧 불(佛)이라는 뜻이다.
2.명자즉(名字卽) 은 불성이 있다는 이치를 듣고 자기도 불임을 이해한다.
3.관행즉(觀行卽)는 오품제자(五品弟子) 곧 수희(隨喜: 불법을 믿고 닦는 이를 보고 기뻐함), 독송(讀誦), 설법(說法), 겸행육도(兼行六度), 정행육도(正行六度), 의 공행(功行)을 닦는 지위를 외품제자(外品弟子)라고 하니 이것은 관행상으로 즉불(卽佛)의 뜻이다.
4.상사즉(相似卽)은 이렇게 해서 미혹을 여의어서 깨달음의 경지에 접근하는 것으로 불에 차츰 닮아간다는 뜻이다.
육근청정위 곧 십신보살위(十信菩薩位)인데 이것을 내품(內品)이라고 한다.
5.분진즉(分眞卽)은 다시 미혹의 근본이 완전히 사라져서 진리의 일부분이 깨달음이 되어 몸에 나타나는 것이다. 어느 부분까지 진불(眞佛)에 상즉(相卽) 된다는 뜻이다. 십주(十住), 십회양(十廻向), 등정각(等覺位)의 보살을 가르킨다.
6.구경즉(究竟卽)은 최후로 진리가 완전히 깨달음으로 실증되는 것으로 묘각위(妙覺位)의 불과(佛果)를 증(證)한 자리이다. 이 가운데 처음 1,2를 외범(外凡) 3,4를 내범(內凡), 5를 성인(聖因), 6,을 성과(聖果)라고 한다.
2. 화엄종(華嚴宗)
화엄종(華嚴宗)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하여 사법계(四法界), 십현연기(十玄緣起)의 원리를 규명하며 사중법계(四重法界)의 진리를 실증하기 위하여 법계과문(法界觀門)을 닦으며 화엄경(華嚴經)의 궁극 목표인 부사의해탈(不思議解脫)의 과덕(果德)을 성취하기위하여 보현행원사상(普賢行願思想)을 실수함을 종취(宗趣)로한다.
1) 화엄종(華嚴宗)의 조사(祖師)
중국에 화엄이 학문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연구되어 왔지만 그것이 하나의 종(宗)으로 성립되기는 현수대사(賢首大師) 이후이다. 그러나 종통(宗統)의 연원 상으로는 제1조 두순(杜順) 제2조 지엄(智儼) 제3조 현수(賢首)로 이어져 그 뒤에는 제4조 청량국사 징관(淸凉國師 澄觀) 제5조 규봉선사(圭峰禪師)로 되어 있다. 또는 그 위에 마명(馬鳴) 용수(龍樹)를 더하여 화엄 7조라 하였다.
초조 두순화상(杜順和尙 557~640)은 진(陳), 수(隨)대 및 당초(唐初)에 재세했던 분으로 성은 두(杜) 이름은 법순(法順)이라한다. 인성사(因聖寺)의 승진(僧珍)에게 사사하고 선관(禪觀)을 수행한 선승(禪僧)이라 한다. 저서로는 오교지관(五敎止觀), 법계관문(法界觀門)이 있다.
제2조 지엄(智儼 600~668)은 두순에게 사사하고 지정법사(智正法師)에게 화엄경(華嚴經)을 배우고 수현기(搜玄記), 공목장(孔目章), 오십요문답 (五十要門答)의 저서를 남겨 교학 상 기초를 세웠다.
제3조 법장(法藏 643~712)은 곧 현수대사로서 지엄에 사사하여 화엄교학(華嚴敎學)을 깊이 연구하고 탐현기(探玄記) 20권, 오교장(五敎章), 망진환원기(妄盡還源記)등의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제자에 혜원(慧苑)이 스승에 배치되는 이론을 내세웠으나 현수대사가 입적한 후 120여년에 청량대사 징관(淸凉大師 澄觀 738~839)이 나타나서 혜원의 이설을 쳐버리고 다시 현수대사의 고의(古義)를 천명하여 제4조가 되었다.
그 뒤에 규봉 종밀(圭峰 宗密780~841)이 청량대사의 법계를 이어 5조가 되었다.
2) 화엄사상 (華嚴思想)
(1)사법계(四法界)
화엄사상에 있어서 그 우주관에는 네 가지의 법계를 설정하여 설명한다. 법계(法界)란 의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든 것이다.
모든 우주는 일심(一心)에 통괄되고 있으며 이 통괄된 것을 현상(現象)과 본체(本體) 양면으로 관찰하면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등의 네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고 한다.
사법계(事法界)란 차별 있는 세계를 말한다. 온 우주의 사물은 낱낱이 모두 인연에 의하여 화합된 것이므로 제 각기 한계를 가지고 구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법계(理法界)는 우주의 본체로서 평등한 세계를 말한다. 우주의 사물은 그 본체가 모두 진여(眞如)라는 것이다.
셋째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이다. 이(理)와 사(事)즉 본체계(本體界)와 현상계(現象界)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걸림 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넷째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이다. 현상계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모든 사물에는 개체가 있고 또 작용이 있으며 제 각기 연기(緣起)하여 자성(自性)을 지니고 있지만 사(事)와 사(事)를 상대시켜 보면 다연(多緣)이 서로 상응하여 일연을 이루고 있으며 또 일연은 널리 두루 다연(多緣)을 도와 서로 그 역용(力用)이 교류하게 되어 사사무애 중중무진(重重無盡)이 되는 것이다.
이 무진연기(無盡緣起)를 법계연기(法界緣起)라고 한다. 이 법계를 조직적 체계적으로 관찰하여 개시하는 것이 십현연기설과 육상원융(六相圓融)의 사상이다.
(2) 십현연기(十玄緣起)
법계의 연기관으로서 화엄경(華嚴經)의 깊은 진리의 상(相)을 해석하며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인다라미세경계문(因陀羅微細境界門),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俱德門),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 이다.
(가)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법계는 공간적으로 무한한 것이다. 이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현상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서로 의존하여 성립되어 있고 동시에 구족해서 상응하고 있으며 원만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사원융(事事圓融)하고 염겁유족(念劫融足)하고 있다. 연기(緣起)의 실덕인 법성해인삼매(法性海印三昧)의 역용(力用)에 의하여 석존의 해인삼매 중에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이 관문은 십현문가운데서 다른 9문의 모든 것까지 구족하고 있으며 자재롭고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총체설이다.
(나)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모든 인연에 의한 현상의 역용에 있어서 일 가운데 다(多), 다(多)가우데 일이 서로 상입하는 것을 말한다. 또 보편적 진리인 일은 다라는 하나 가운데 두루 있어 일로서 전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또 다를 모두 받아 들여 상호 융통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은 일이고 다는 다이어서 일과 다의 상을 각각 잃지 않으므로 부동이라고 한다. 일다상용은 일이 다를 용납하고 다가 일을 용납하는 것을 말한다.
(다)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모든 현상의 본체에 있어서도 일과 일체가 서로 상즉하고 자재하여 일체화하고 있음을 가르킨다. 일과 다가 상즉이므로 동체와 이체가 함유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체 법은 무릇 일 법이고 일 법은 그대로 일체 법이므로 모두 일여(一如)임을 말한다. 2의 상입과 상즉은 서로 대비를 이룬다. (라) 인다라미세경계문(因陀羅微細境界門)
모든 현상인 삼라만상은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것을 비춰서 끝이 없고 중중무진이란 것인데 마치 제석천궁의 보주망의 눈 마디에 꿰여 있는 보주가 서로 비추고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모든 존재가 중중무진으로 상즉상입하고 있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다수의 구슬 가운데 한 개의 구슬을 생각하면 이 구슬 가운데 다른 전체의 구슬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다른 구슬의 하나하나에도 또 기타의 구슬 그림자가 나타나므로 이를 일중루현(一重累現)이라 한다. 또 하나의 구슬에 영현하는 일체의 구슬에 다른 구슬의 모든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을 비추므로 이를 이중누현이라고 한다. 이렇게 삼중 사중 오중내지 중중무진으로 비추어 나타나서 한이 없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상즉 상입하는 것은 이와 똑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서로 무애하여 영발하는 데 서로 혼란이 없다. 한 구슬에 모든 것이 융섭하여 짐으로 일미진에 수미산을 용납하는 것도 일미공에 대해를 용입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이것이 그대로 연기의 실제이고 근본지 다음에 얻어지는 후득지(後得智)의 경계이며 진리 곧 본성의 실덕이라 하겠다.
(마)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
연기(緣起)로서의 현상(現象)의 상(相)에 있어서 상입(相入)을 말하는 것으로 일다상용부동문과 다른 점은 특히 자상(自相)을 파괴하지 않는 것을 주안으로 한다. 하나 하나의 현상에서 소를 대(大)에 넣고 일(一)을 다(多)에 융섭하면서 대소(大小)의 상(相)이 흐트러지지 않고 일과 다의 상 이 파괴되지 않고 질서가 정연하게 있는 것이다.
가령 한 겨자 알에 수미산을 용납하더라도 일과 다가 서로 파괴되지 않고 동시에 현현하는 것을 말한다. 미진(微塵)은 작은 것 국토(國土)는 큰 것이라 하여 대소(大小)가 다르더라도 미진이 큰 것이 되는 것이 아니고 국토가 작은 것이 되지 않으며 상호간 이를 수용하는 것을 미세상용(微細相容)이라고 한다.
(바)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現俱成門)
연기로서의 현상에 있어서는 일을 유(有)라고 하여 그 나타난 상에서 보면 그때의 다(多)는 공(空)이 되어 숨겨진 의미가 된다. 그처럼 은(隱)과 현(顯)이 상호간 동시적으로 일체화 되어 성립하는 것을 말한다. 비밀이란 심심미묘(深深微妙)한 것을 말하고 은현이란 일이 다를 몰아 잡을 때를 현(顯)이라고 하면 일이 다에 몰아 잡혀지는 것을 은(隱)이라고 한다.
다가 일을 몰아 잡을 때를 현(顯)이라고 하면 일이 다에 은(隱)이라고 한다.
그리고 작용에 있어서 상입 하는 것을 현이라고 하면 본체에 있어서 상즉(相卽)하는 때를 은(隱)이라고 한다. 상즉(相卽)을 현(顯)이라고 하면 상입은 은이며 이체문(異體門)의 상즉상입을 현이라면 동체문(同體門)의 상즉상입은 은이 된다.
가령 한 사람이 자식이면서 형제인 경우를 본다. 이 사람은 부모에 대하여 자식이라는 명목과 자식이 현이고 형제에 대하여는 형제라는 명목과 자격이 은이 된다. 이와 같이 은현(隱顯)이 함게 구성되어 있는 것을 가르 킨다.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에 있어서는 일에 다가 즉(卽) 하는 때에 다는 공이 되어 일만 있고 또 다에 일이 즉하는 때는 다만 있다. 그러나 이 문(門)에서는 은과 현이 상즉하고 또 은과 현이 동시에 함께 있으면서 여기서 연기법을 이루므로 일과 다가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법(法) 위에서 말하는 것이다.
(사)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俱德門)
이문을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이라고도 한다. 공간적으로 광과 협이라고 하는 대립은 서로 모순 되는 것이면서 그 대립적 모순을 매개로 하여 상즉 상입 하고 자재하게 서로 융화되어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제장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제법으로서 모든 법은 서로 섭장(攝藏)하므로 장이라고 한다. 가령 보살이 하나의 삼매에 들어가서 다만 보시를 행하는 것이 무량무변하여 다른 행위가 없을 때는 순(純)이라 하고 또 하나의 삼매에 들어가서 시(施), 계(戒), 도(度), 생(生)등의 무량무변의 다른 잡행이 함께 동시에 성취되면 보시에 다른 행위가 혼란함이 없이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을 구덕(俱德)이라고 한다. 또 동시에 일념으로 구족하여 무애자재하다고 한다.
(아)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각각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있으므로 9 세가 되고 그 9세는 결국 일념에 몰아 잡히고(攝) 또 일념을 열면 9세가 되므로 모두 합하여 십 세라고 한다. 이 십세는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으나 상즉상입하여 하나의 총합을 이루지만 그러면서도 전후 장단 등의 구별이 뚜렷하여 질서가 정연한 것을 말한다. 일념을 펴면(舒) 무량겁이 되고 무량겁을 말면(卷) 일념이 된다는 데에서 염겁(念劫)이 융즉(融卽)한다는 뜻이다.
(자)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
연기의 여러 현상에 있어서 어떤 하나의 현상이 주가 되면 다른 모든 현상은 반(伴)이 되는데 이처럼 서로 주가 되고 반이 되어 모든 덕을 원만히 갖추는 것이므로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俱德門)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유심이란 여래장(如來藏)의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으로서 모든 법은 이 일심의 변화작용에 지나지 않으므로 여래장을 자성이라 한다. 이것은 결코 심외(心外)의 경계가 아니고 그대로 유심(唯心)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도 악도 마음에 따라서 회전하는 것이다. 선성이란 능성(能成)과 같은 것이다. 유심을 여래장에 한정하는 것은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 혹은 망식(妄識)을 아뢰야식(阿賴耶識)과 구별 지으려는 것이다. 이를 성기(性起)의 구덕(俱德)이라고 한다.
(차)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
모든 사사물물은 무릇 다 무진연기의 진리이다. 이 진리의 상즉상입하는 무애의 모습은 결코 어떤 특정한 하나의 사물에 대하여 만 말하여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현상에 기탁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비유는 곧 바로 법의 상징이다. 일사일물은 모두 다 무한한 진리의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사물은 곧 법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법즉유(法卽喩)이고 유즉법(喩卽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화엄(華嚴)에서는 일화일엽(一華一葉)이나 일진일법(一塵一法)도 다 심심미묘(甚深微妙)한 진리의 문이라고 한다. 상징이나 비유가 직접 진리를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 특색이라고 할 것이다.
(3) 육상원융(六相圓融)
모든 존재는 다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의 육상을 갖추고 있다. 이 육상은 서로 다른 상을 방해하지 않고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이 일체가 되어 원만하게 융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기로서 이루어진 모든 존재는 반드시 여러 가지 연이 모여 성립된다. 그러므로 거기에 성립된 총상은 부분을 총괄하여 전체를 만들고 있다.
또 별상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과 부분을 말하는데 이것은 총상에 의지하여 원만하고 완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총상이 없으면 별상이 없고 총상밖에 별상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부분을 가러킨다.
동상(同相)이란 별상의 하나하나가 서로 조화되어 모순 되지 않고 성립되는 힘을 균등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상(異相)이란 별상이 서로 혼동되지 않고 있으면서 제 각기의 상을 잃지 않고 조화되어 있는 모양이다. 성상(成相)이란 별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총상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부분이 다만 집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유기적인 관계상을 가지고 모여서 하나의 전체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괴상(壞相)은 별상이 총상을 성립시키면서도 별상 제각기의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서 총상의 모양으로 혼융되지 않는 것을 말하다.
육상의 대강은 이러 하지만 법장(法藏)은 집(屋舍)에 비유하여 설명하면 가령 총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을 총괄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별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그 자체를 이른다. 동상(同相)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서로 힘을 합쳐 집을 조립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상(異相)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은 각각 가로와 세로로 되어있어 다른 유형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또 성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각각인 연이 되어 집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괴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집을 조립하여 설립시키고 있으면서도 각각 자체의 본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이 육상의 관계를 체 상 용으로 나누어 보면 총상과 별상의 두 상은 연기의 체라고 보고 동상과 이상은 연기의 상이라고 하고 성상과 괴상은 연기의 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연기법에는 원융(圓融)과 행포(行布)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이에 의하면 총상 동상 성상의 삼상은 원융문(圓融門)이라고 하고 별상 이상 괴상의 삼상은 행포문(行布門)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무차별을 나타내는 원융문은 차별을 나타내는 행동문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고 행포는 원융을 떠나있지 않으므로 원융이 곧 행포이며 행포가 곧 원융이 된다. 여기에 무진한 법계의 연기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원융이 곧 행포이며 행포가 원융인 것을 육상원융이라고 한다. 우주만법은 다 같이 이러한 육상을 갖추어서 무애자재하며 상즉상입하여 다함없는 연기상을 이룩하니 이것이 사사무애한 십현연기의 원리이다.
화엄교학의 궁극적인 교의로서의 부사의법계연기(不思議法界緣起)의 이론 범주인 십현문(十玄門)은 육상원융(六相圓融)에 근거를 둔 것으로 지엄화상(智儼和尙)이 신승의 지시에 의하여 이 뜻을 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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