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누가복음 3장에 가서야 족보가 소개됩니다. 우리는 족보 이해를 통해 마태복음의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말씀합니다. 헬라어 원어를 보면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 순서로 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1:1~17절까지의 족보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다”입니다. 특별히 복음서 중에 유일하게 마태복음이 강조합니다. 마태복음 전체 구조를 보면 마태복음 1장 다윗의 자손으로 시작해서 마태복음 28장 아브라함 씨(복)에 관한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17절을 보면 다윗 족보가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총 3 X 14 = 42”이어야 하는데, 실제로 “41”입니다. 다윗을 두 번 넣으면 “42” 개입니다. 특별히 “14”는 다윗 이름값입니다. 다윗의 히브리어 이름이 (דוד“) 14”라는 값을 가지고 있어서, 마태는 숫자 14를 중심으로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달레트(ד)+ 바브(ו) + 달레트(ד) 로서 4 + 6 + 4 는 14입니다. 또한, 다윗은 계보에 나열된 14번째 이름입니다. 다윗을 세 번 반복한 것과 같습니다. 다윗부터 여고니야까지 14대로 묶기 위해서 요압과 웃시야(아사랴) 사이에 있는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를 생략합니다. 결국 족보의 내용이 다윗이 핵심 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 이후로부터 예수님까지 족보를 보면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하나님의 백성이 돌아왔습니다(에스라, 느헤미야). 그런데 포로로 끌려간 사람이 돌아왔는데, 마태복음 족보에서는 백성이 아직도 바벨론 상태에 있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의 백성은 영적인 포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족보를 보면 왕조의 시작과 왕조의 절정(다윗), 그리고 왕조가 망하는 마지막 지점에 한편으로는 하나님 백성의 수치, 다른 한편으로는 왕의 수치를 소개합니다. 세 가지를 묘사합니다. 첫째, 시작 부분과 끝이 나는 부분이 같습니다. 2절을 보면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라고 말씀합니다. 11절을 보면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라고 말씀합니다. 두 가지를 비교하여 보면 공식이 있습니다. 형제들 사이에 다툼이 있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합니다. 하지만 요셉을 통해 자손이 늘어납니다. 이 일을 통해 12지파의 뿌리가 됩니다. 요시야의 아들 세 명이 왕이 됩니다. 조카 한 명도 왕이 됩니다. 왕들의 수치입니다. 왕위를 가지고 형제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자기들의 다툼이 아닌 애굽에 붙을까? 바벨론에 붙을까? 싸움이 일어납니다.
둘째 다윗 왕의 기록도 이상합니다. 6절을 보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말씀합니다. 나쁜 언급입니다. 우리야의 아내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을 낳을 때 다윗이 밧세바와 결혼한 상태입니다. 다윗이 합법적으로 난 막내아들입니다.
셋째, 물론 다윗 왕조에 있어서 다윗이 절정인데, 그 이후에 “왕”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다윗부터 바벨론 이주까지 왕들인데, 다윗만 왕으로 언급됩니다. 즉 다윗과 버금가는, 능가하는 왕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결국 다윗과 같은 왕이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알려줍니다.그러므로 다윗의 자손이면서 그를 능가하는 다윗의 주님이면서 진정한 왕은 예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다윗 왕조의 시작도, 절정도, 끝에도 수치와 죄악임을 강조합니다. 이 수치와 죄악을 과연 누가 해결합니까? 21절을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족보가, 하나님의 백성 대표인 왕조가 죄에 빠집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 못한, 영적으로 바벨론에 가 있는 상태입니다.
마태복음 1: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책”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계보”라는 말이 원어로 보면 “게네세오스”로서 “게네시스”의 소유격입니다. 창세기 2:4절의 “창조된”이라는 말이 “게네시스”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새로운 시작, 제2의 창조주로서, 예수님은 새 이스라엘이고 새 다윗 왕조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귀결됩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으로 새출발해서 땅끝까지 가서 열방이 복 받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구원 사역을 이루심으로 다윗 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하고 열방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됩니다.
23절을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임마누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입니까? 아니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까? “임(함께) 마누(우리) 엘(하나님)”, 즉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인 몸을 통해 낳고 있는 아들, 우리와 함께하는 분인데,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마태복음 28장을 보면 예수님이 끝까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입니다.
예수님이 임마누엘로 오셔서 영원한 임마누엘로 남겠다고 하십니다. 그 임마누엘의 능력, 위엄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땅끝까지 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팔복을 갖고 땅끝까지 가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