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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上波夫의 騎馬民族說 1)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인 3~5세기 무렵에, 스키타이族, 기마민족문화와는 매우 다른 또 하나의 기마민족문화가 흉노․선비․오환․부여․고구려등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그것은 胡族문화와 漢族문화의 혼합인 胡漢문화 혹은 중국화된 호족문화라 할 것이다. 그 특색은 騎射전법과 거기에 적합한 마구․도검․궁시․갑주등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2)일본에 통일정권이 형성된 것은, 고고학상으로 그 전기고분문화(4세기 말~7세기 말)로 들어온 뒤인데, 그 고분들의 부장품이 보여주는 무기, 마구, 호사한 장식품 등은 한반도 남부의 그것과 공통되어 있고, 그것은 동북아시아의 胡漢 기마민족문화가 한반도를 경유하여 일본열도로 들어간 것을 나타내고 있다. 또 일본의 전기고분문화가 그 선행문화로부터 변질한 과정은 점진적이 아니라 급격한 것이어서 이것은 외래의 새 문화가 그 담당자인 상당한 대규모의 인원에 의하여 급격히 그리고 지배적으로 전차된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기마민족 내지 그 문화는 부여․고구려 →임나 →북구주 →일본기내의 순서로 전파된 것 이다.
3)한반도 남부의 기마민족이 북구주로 이동한 것은 4세기 초로 보이며, 제 10대의 왜왕으로 기록되어 있는 미마키왕=숭신왕-御肇國天皇이 그 영도자였다. 천손강림 설화는 이 단체의 이동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은 筑紫와 바다 건너의 임나에 걸친 倭․韓연합왕국을 형성하고, 그 연합국의 왕인 왜왕은 북구주에 본거지를 두었다.
4)이 倭․韓연합왕국은 4세기 말~5세기 초에, 고구려에 대항하는 한반도 남부 제세력의 작전을 주도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광개토왕릉비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아. 이 때의 왜왕이 제 15대로 기록되어 있는 호무타왕=응신왕이다. 응신왕은 한편으로 그 기마민 집단을 이글고 북구주로부터 오사카지역으로 진출하여, 그 얼마 뒤에 수립되는 대화조정의 기초를 닦았다. 일본의 통일국가는 이리하여 비로소 형성된 것이다. 大阪지역의 거대한 고분인 應神王陵과 그 다음대인 仁德王陵은 일본 후기고분문화의 첫 단계를 대표한다.
5)숭신 - 응신 계열의 왜왕은, 한반도의 辰王의 자손, 혹은 진왕의 자손이라는 의식을 가졌던 지배자들이었다. 진왕은 한동안 馬․辰․弁 삼한에서 가장 유력했던 지배자로서, 한반도 중․남부에서 상당한 廣域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4세기에 백제․신라가 각각 국가를 형성하자, 진왕 계통의 지배는 임나에서만 유지되었다. 이 임나왕이 김해의 狗邪國을 작전기지로 삼아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왜인의 협력을 얻어 북구주로 침입한 것이, 숭신왕의 御肇國이요 천손강림이었다. 진왕은 또 부여․고구려계와 연결되는 듯이 보인다. 천관우《가야사연구》P167~169에서 재인용 |
일본사람들은 야요이 문화시기의 좁은놋단검관계 문화와 4세기 말~5세기 초의 수혈계 횡혈(횡구)식 무덤의 분포가 조선남부와 북뮤슈(후꾸오까 현을 중심으로 한 일대)에서 비슷한 데로부터 ‘왜한문화권’이라는 말을 지어내면서 북큐슈와 조선남부의 문화가 같으니 정치적영역도 같으니 정치적영역도 같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설이 있다. 그들은 나아가서 ‘왜한 연합왕국’이라는 설까지 내놓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사람들은 <광개토왕릉비>에 나오는 왜를 북큐슈와 쯔시마 및 낙동강하류에 근거를 둔 ‘왜한 연합왕국’의 왜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4~5세기에 조선의 문화가 일본(북큐슈)에 전해진 진실을 잘 알지 못한데로부터 내려진 잘못된 평가이다. 역사적사실은 일본의 그 어떤 문화도 야요이문화시기와 고분문화시기에 조선에 건너와 영향을 준 적이 없으며 또 낙동강하구일대에 왜인의 근거지가 있어본 적이 없다. 조희승《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
<한국 이주민 집단의 계통적 진출과 일본열도 내에서의 그 이동>
1.18세기 일본학자인 후지이(藤井貞幹)의 저서인 ‘국사’에서
⇒일본의 일들은 마한․진한으로부터 열렸고 곁가닥으로 변한의 것도 섞였다. 이것을 새겨 놓고 《일본서기》를 해석해야 할 것이다.
2.《일본서기》권10 응신14년 궁월군의 내귀 설화
‘궁월군이 내귀하는데 신라가 막아서 가라에 머물러 있다’
※백제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데 왜?
백제 →가라 →신라 →야마도라는 항로를 선택했는가...
․큐슈(고마왕국과 가라왕국) →기비(신라계통) →야마도가 딱 들어맞는다.
궁월군(유즈끼노 기미)의 君 ⇒기미 ⇒궁월군은 백제에서 건너간 사람이라기 보다는 북 큐슈의 구니노 - 미야쯔꼬(지방호족)였다고 보는게 합당하지 않을까...
이 설화는 5세기 말 큐슈의 동정에 뒤이어 일어났던, 큐슈에 살던 이주민들의 동쪽으로 일대 진출을 전한다고 볼 수 있다.
3.아지사주(阿知使主:아찌노 - 오미)의 내귀설화
․궁월군이 하다(秦 )씨의 조상이라면 아찌노 - 오미는 倭의 漢(아야)씨의 조상
《신찬성씨록》에는 아야씨는 백제 사람 다가야(多加夜)의 자손
․오미: 臣 ⇒야마도 왕정의 일등급 성씨.
臣을 使主로 한 것은 오미의 조상이 한국계라는 것을 숨기기위한 것.
․궁월군이나 아지사주의 내귀는 한국이주민들의 집단적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기내지방으로 이동해 가서 그 곳에 정착했던 사실을 말한다고 본다.
첫댓글 일본은 얼핏 보기에는 기마민족과 별로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변발 같은 특이한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볼때 어떤 기묘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아보입니다. 물론 4세기 일본 고대국가를 건설한 세력이 유목적 성격이 있었다고는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