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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좋은글) 스크랩 제10화. 천재 투자자들의 투자전략 _ 이지성 작가.
서범준 추천 0 조회 119 10.09.11 19:55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제10화. 천재 투자자들의 투자전략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 부의 90% 이상은 세계 인구의 약 0.1%가 소유했다. 민주주의가 도래하기 전에 그 0.1%는 왕과 귀족이었다. 지금은 월스트리트 투자자들과 세계적인 기업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의 부자들인 왕과 귀족들은 신분제도를 만들어서 평범한 사람들이 부자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현대의 부자들은 교육제도를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사립학교와 공립학교다. 부자들의 자녀가 다니는 사립학교와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자녀가 다니는 공립학교는 교육과정 자체가 다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에서 충분히 이야기했다. 과거의 부자들과 현대의 부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인문고전 독서가라는 사실이다.

 

J. P. 모건을 비롯한 모든 미국 금융인들보다 더 많은 영향을 세계 금융 시장에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단 두 명의 직원으로 시작해서 세계 최대 증권회사인 메릴린치를 창업한 찰스 메릴은 아이비리그보다 깊이 있는 인문고전 교육으로 유명한 앰허스트 칼리지 출신이다.

 

5달러로 시작해서 1929년에 1억 달러, 오늘날의 원화가치로 약 2조원 이상의 자산을 모은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개인 투자자라고 불리는 ‘추세매매기법의 아버지’ 제시 리버모어(왼쪽 사진)는 비록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을 지녔지만 책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또 그는 인간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로 유명했는데, 심리학 같은 경우 대학에 가서 청강을 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코스톨라니의 달걀’이라는 투자순환도로 유명한, 월가를 한 손에

쥐고 흔든 유일한 유럽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앙드레 코스톨라니(오른쪽 사진)는 대학에서 철학과 미술을 전공했다. 그의 마지막 저서로 알려진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는 주식투자서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서에 가깝다.

 

천재 투자자들의 투자전략을 비교분석하여 추출해낸 ‘주식 감별 툴(Stock Screening Tool)’로 유명한, 『천재 투자자들』이라는 책의 공동저자 존 리즈와 잭 포핸드는 각 시대별 최고의 투자자 10명을 뽑은 뒤 이들이 동일한 시장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투자를 한다면 과연 누가 최고의 수익률을 올릴 것인가라는 실험을 5년 동안 한 바 있다. 결과는 총 수익률 146.3%를 기록한 벤저민 그레이엄(아래 사진)이었다. 그는 워런 버핏의 약 15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세계 최초의 금융 분석가로 현대적인 의미의 증권분석 및 가치투자 이론의 창시자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월가로 들어갔는데, 고작 스물다섯 살에 6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았다. 당시가 1910년대였으니 오늘날의 원화 가치로 환산한다면 최소 10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은 셈이다. 그는 또 1928년부터 1957년까지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투자이론을 강의했는데, 그의 강의를 성실히 들은 사람들은 모두 월가의 전설이 되었다.

 

그레이엄은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투자가로도 유명했지만 인문고전 독서가로도 유명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 재학 시절 그리스 로마 고전에 광적으로 빠져들었는데, 얼마나 열광적으로 공부했던지 졸업을 하기도 전에 총장으로부터 철학 교수로 임명해줄 테니 모교에 남아서 학생들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의 인문고전 독서는 평생에 걸쳐 계속되었다. 그는 문학, 철학, 역사고전을 마치 애인처럼 곁에 두며 정독했고, 대부분의 고전을 원어로 읽었다. 그리고 입만 열면 인문고전을 이야기했다. 그는 월가의 투자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인문고전 연구가에 가까웠다.

 

셸비 데이비스는 서른여덟 살이던 어느 날 공무원을 그만두고 월스트리트로 향했다. 전업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주변에서는 다들 미친 짓이라며 말렸지만 그는 자신이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데이비스는 5만 달러로 시작했다. 약 45년 뒤 그 5만 달러는 놀랍게도 1만 8천 배 불어나서 9억 달러가 되었다. 그는 역사를 전공했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식이니 펀드니 하는 것에는 아예 관심 자체가 없었다. 이랬던 사람이 어떻게 월가 최고의 투자자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일반적인 전업 투자자들과 비교할 때 차원이 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안목은 인문고전 독서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그가 아들과 손자에게 입만 열면 했다는 다음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전설의 투자가문 데이비스』에서 인용했다.

 

“회계는 언제라도 독학으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반드시 전공해야 한다.

역사를 배우면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고 특별한 사람들에게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철학과 신학은 네가 투자를 하는 데 더없이 좋은 배경이 될 게다.

투자에 성공하려면 철학이 있어야 하지. 투자를 하고 나면 죽어라 기도도 해야 하고.”

 

셸비 데이비스의 아들과 손자는 위의 말을 충실하게 따랐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월스트리트의 전설이 되었다. 데이비스 가문은 월가에서 전설의 투자가문으로 불린다고 한다.

 

존 템플턴(오른쪽 사진)은 영혼의 투자자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탐욕의 대명사로 불리는 월가의 일반적인 투자자들과 달리 박애정신에 입각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테레사 수녀, 알렉산더 솔제니친, 빌리 그레이엄 목사, 한경직 목사 등이 수상한 바 있는 ‘템플턴 상’의 제정자이자 매년 4천만 달러 이상 기부하는 자선 단체인 ‘존 템플턴 재단’의 창설자로 유명하다. 물론 이보다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투자 실력이다. 존 템플턴은 1954년에 ‘템플턴 그로스 펀드’를 출범시켰는데, 만일 당신이 그때 이 펀드에 1천만원을 투자했다면 그 돈은 지금쯤 약 60억원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펀드 운용 능력으로 인해 그는 1999년에 ‘금세기 최고의 주식 투자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내가 가진 자료들에 따르면 존 템플턴은 겸손한 성품의 소유자답게 자신의 인문고전 독서 경력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템플턴 플랜』을 보면 서양 고전의 뿌리가 된 성경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안티파네스, 노자, 파스칼, 토마스 칼라일, 필립 체스터필드,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찰스 디킨스, 월트 휘트먼 같은 인문고전 저자들의 말이 수시로 인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가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성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자기 자신을 살아 있는 도서관으로 만들라”고 대답할 정도로 독서광으로 유명했고, 사람들로부터 월스트리트의 철학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혼의 성장’이라는 철학적 주제에 평생 천작했고, 가능하면 책을 읽는 시간 가운데 일부라도 할애해서 정신을 맑게 해주는 책을 읽으라고 조언했던 점,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에게 윤리학, 종교, 철학 분야의 책을 두루 읽으라고 강조했던 점 등을 놓고 보면 그가 열성적인 인문고전 독서가였으리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한편으로 존 템플턴은 진정한 부자가 되기 위한 스물한 가지 삶의 원칙을 담은 ‘템플턴 플랜’에서 자신은 독서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세상 사람들이 행운이라고 부르는 것을 얻었노라고 고백했다. 그가 말한 ‘독서’는 당연히 인문고전 독서다.

 

피터 린치는 스물두 살에 월가에 들어가서 스물다섯 살에 애널리스트가 되었고, 서른세 살에 펀드매니저가 되었다. 그런데 시기를 잘못 만났다.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때는 주가가 대폭락해서 주식시장이 초토화되었고, 펀드매니저로 첫 발을 내디뎠던 때는 펀드 시장이 붕괴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후일 그의 상징이 된 ‘마젤란 펀드’도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고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통에 한때 2천만 달러에 달했던 운용자산이 6백만 달러 수준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고객들의 펀드 계약 해지 요청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피터 린치는 이 마젤란 펀드를 맡아서 약 13년 만에 약 660배로 불렸다. 덕분에 다른 펀드를 합병해서 2천만 달러로 시작했던 마젤란 펀드는 13년 만에 약 140억 달러라는 믿기 힘든 규모의 운용자산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이 기적 같은 업적을 달성한 후 곧바로 마젤란 펀드를 떠났다. 남은 인생을 소중한 가족들과 보내고 싶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펀드매니저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피터 린치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자신이 월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인문고전 독서로 쌓은 사고(思考)의 힘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대학에 들어갔을 때 과학, 수학, 회계학 같은 일반 경영학 과목은 필수 과목을 제외하고는 피해 다녔다. 대신 인문 과목을 주로 수강했다. 역사, 심리학, 정치학을 배웠고 형이상학, 인식론, 논리학, 종교학, 고대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통계학 공부보다 역사와 철학 공부가 나의 주식투자에 훨씬 도움이 되었다.”

 

“논리학은 내가 월스트리트의 비논리성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나의 종목 선정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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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9.12 21:25

    첫댓글 확실히..철학은 ,생각을 더욱 복잡하게는건 있어. 그래서 철학은선뜻 손이안가..범준아.너두 그러니?

  • 작성자 10.09.12 21:47

    이에 대한 답은, 재가 추후에 글로 올리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철학을 사랑합니다. 생각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독방에서 지낸때도 무지 많거든요 ㅋㅋ;; 비록 나이는 어려서 철학에 대한 이해와 삶에 대한 이해, 인문학에 대한 이해는 부족합니다. 나이가 어려서 삶에 대한 이해의 부족함을 절실합니다. 경험에 대한 이해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재가 사고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생각들이 후일 저의 삶을 결정하고 변화하고 세상과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을 알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 10.10.06 18:16

    철학이 있으면 성공 범준은 성공 할거야!!!!

  • 작성자 10.10.06 21:03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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