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이야말로 미술사가들의 해석이 가장 분분하게 갈리는 지점이다. 많은 미술사가들은 이러한 ‘혼란’과 과도한 ‘쾌락의 추구’가 오른쪽 패널의 지옥을 향하는 지름길임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경고야말로 전체 작품의 핵심적 의미라고 얘기한다. 다른 미술사가들, 특히 2002년 이 작품에 대한 책을 펴냈던 저명한 미술사가 한스 벨팅(Hans Belting)은, 이 중앙 패널의 묘사야말로 이 때까지 어디에도 없었던 ‘유토피아(Utopia, 라틴어 어원으로 ‘U-topia’는 ‘No-Place’, ‘어디에도 없는 곳’을 뜻함)’의 가상적 시공간이라고 해석한다.
세상의 피조물을 창조한 신의 마음 그리고 난감한 표정
어떠한 해석이 더 진실에 가깝든, 세계에 태어난 창조물이 빚어낸 온갖 종류의 혼란한 이야기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들은 얼른 이 세 폭 제단화를 닫아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천지창조의 셋째 날 모습이 어두운 회색 톤으로 화면을 메운다(도판 14). 아직은 해와 달이 만들어지기 전이기에 회색조를 띈 이 세계에는,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개념대로 물로 둘러싸인 평평한 디스크(disc)같은 모습의 지구가 묘사되어 있다.
이 화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마도 왼쪽 위 귀퉁이에 조그맣게 묘사된 신의 모습일 것이다(도판 15). 성경을 무릎에 얹어 놓은 채, 천지창조는 시작되었지만, 이미 자신의 컨트롤을 벗어나고 있음을 느끼는 것 같은 난감한 표정. 그런 신의 표정에서 뭔가 망설임을 읽어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제단화를 열었을 때 펼쳐지는, 지옥을 향한 인간 드라마들은, 아무래도 이러한 신의 망설임을 끊임없이 재확인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첫댓글 귀한 그림 감상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