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농구선수로서 공식경기에서 첫 덩크를 성공시켰던 조동우 선수를 소개합니다.
신장 199센티(공식 197)에 힘과 기동력, 탄력이 좋았고 팔까지 길었던 정통 파워센터!
물론 조동우 선수 이전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덩크를 할 수 있었지만, 정서상 경기에서 구사하진 않았죠.
79년 즈음으로 기억되는데, 한 실업농구 토너먼트에서 런닝덩크를 성공시켜 신문에 대서특필 됐었습니다.
아래 영상들은 정.말.로. 희귀한 경기 동영상에서 추출했습니다.
1982년에 벌어진 한국 국가대표팀과 필리핀 프로농구팀인 토요타 팀과의 친선경기였죠.
토요타 팀엔 다수의 필리핀 국가대표 선수들과 높이와 운동능력이 우월한 용병선수가 둘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박수교, 이충희가 각각 30점 가까운 고득점을 하며 활약했지만,
유일한 빅맨이었던 조동우가 5반칙 퇴장당하면서 급속히 골밑 수비가 흔들렸고,
경기 내내 10점차 정도로 앞서던 리드를 4쿼터 막판에 따라잡히면서 아깝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1. 조동우의 골밑 공격
속공 상황에서 박수교(10번)의 패스를 받아 매끄러운 핑거롤 레이업을 성공시켰고,
하프코트 오펜스 땐 이장수(7번)의 패스를 받아 군더더기없는 포스트업 무브로 득점합니다.
2. 조동우의 스틸과 박수교의 더블 클러치 왼손 레이업
코트 위에 조동우가 있고 없고는 한국 농구팀 전력에 있어서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농구는 슈터형 가드가 득세였기 때문에, 이쪽으론 백업들도 두터웠지만,
빅맨들은 절대적으로 그 수가 부족했었기에 조동우가 나가면 골밑은 무주공산이었죠.
물론, 조명수, 이장수, 임정명, 안준호 등이 있었으나 모두 190 전후의 단신들이었습니다.
국내에선 통했지만, 국제대회에선 상대팀 빅맨들에게 위협이 되질 못했죠.
조동우의 스틸에 이어 박수교가 빠른 속도로 치고 들어가 멋진 더블 클러치로 해결합니다.
박수교 선수... 자유투 라인에서 떴습니다.
3. 조동우의 포스트업 공격에 이은 풋백
조동우 선수는 저의 경복고 선배시기도 한데,
고교 시절엔 매일 새벽에 학교 뒷쪽에 위치한 부암동까지 토끼뜀으로 뛰어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그런 훈련과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서 탄탄한 하드웨어가 만들어진 것이죠.
실제로 보면 종아리도 씨름선수들처럼 굵고 강인합니다.
4. 한국 국가대표팀의 국제대회 사상 첫 덩크!
박수교-이영근-이충희-조동우로 이어진 빠른 얼리 오펜스!
제가 알기론 이 덩크가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나온 사상 첫 덩크였습니다.
조동우 선수는 이 경기에서 (비공식이지만) 16득점, 9리바운드, 3블락샷를 기록했습니다.
몸을 혹사해서였을까요? 조동우 선수는 항상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만약 조동우 선수가 80년대 중후반에 이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었다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86년 아시안 게임과 87년 아시아 선수권에서도 우승했을 겁니다.
실제로, 허재 - 이충희 - 김현준 - 김유택 - 조동우로 이뤄진 라인업이 80년대 아시아 최강이었습니다.
첫댓글 진짜 귀한 자료네요 대표팀 첫 덩크 멋집니다 ^^
쭈알레기!
쭈알레기 쭈알레기 쭈쭈쭈 빠식이 빠식이 빠빠빠
클경 클경 복복복 경복 경복 빅토리 야!
조동우, 김윤호, 유재학, 전희철, 우지원, 함지훈, 이종현...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삼일상고 전성기라(양희종, 하승진 등)... 박찬희 선수 정도만 지금 프로에서 맹활약하고 있는데
그 이후로 박재현 전준범(고교 때의 기대치에는 못 미치나)... 문성곤 이종현 최준용... 그리고 연대 14학번 진학할 고교 최대어 안영준까지
요즘은 경복 농구가 제일 잘 나가는 것 같습니다. 박사님 글에서 몇 번 조동우 선수에 대한 언급을 본 일이 있는데 고교 선배님이셨네요!
이민영도 크게 될 가드인데, 신장이 좀 아쉽더군요.
실제로 보니까 180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던데...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농구 전용 체육관'을 보유한 유일한 학교가 경복고였죠.
그래서 태릉 선수촌 체육관이 여의치 않을 땐 대표팀이 경복고에서 훈련하곤 했습니다.
제 학창시절 때는 심심치 않게 국가대표팀이나 청소년 대표팀이 훈련하는 걸 볼 수 있었죠.
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시설이 많이 낙후되었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는 체육관이었네요. 지금은 강당 허물고 그 자리를 체육관으로 씁니다. 졸업하고 대통령기를 모교에서 한다기에 가서 본 적이 있네요. 저도 이민영 선수에 대한 기대가 크고 고대로 진학해서 선배 이종현과 좋은 호흡 맞추며 박재현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를 바랐는데 아쉽게도(?) 경희대로 가서 ㅜㅜ... 안영준 이민영 김민기 고행석 등 경복 출신 선수들이 좋은 활약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박수교 정말 빠르네요 ㄷㄷㄷ
원래 앞선에서의 수비에 이은 원맨 속공엔 일가견이 있던 선수입니다.
당시 한국팀 가드진이 김동광, 이충희, 신동찬, 이민현, 박수교였는데,
다들 기량은 좋았지만, 저런 원맨 속공을 할 수 있는 선수는 박수교 뿐이었죠.
김선형 생각나네요. ㄷㄷㄷ
진짜 진귀한 자료네요..ㅎㄷㄷ
조동우선수가 간염을 앓고 나서 신체능력이 급감하지 않았었나요?
아닙니다.
조동우 선수가 간염을 앓은 게 82년 아시안 게임 직전이었죠.
하지만 그 간염은 완치가 됐고, 플레이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간염때문에 82년 아시안 게임에 못나갔고, 대신 신선우 선수가 차출됐죠.
(결과적으로 보면, 신선우 선수가 들어간 게 신의 한 수 처럼 됐습니다만...)
신체능력이 급감한 것은 86년 아시안 게임 직전에
대표팀 연습 경기에서 이문규 선수가 조동우 위로 넘어지면서
크게 다친 무릎부상 때문이었습니다.
와 플레이들이 생각보다 되게 깔끔하네요
지금도 미국에 계시려나요. 아드님과 잠깐 인연으로 LA근교에서 밥 얻어먹은적 있는데...조동우 선수....
지금도 미국에 계시답니다.
우와 박수교 선수 엄청난 스피드네요 ㄷㄷㄷ 어머님께서 박수교가 전성기 시절 화려한 플레이를 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정말입니다.
허재가 등장하기 전까지 7~80년대를 대표한 테크니션이 셋 있었는데,
그들이 최명룡 (한양대), 김동광 (고려대), 박수교 (연세대) 였습니다.
최명룡은 빠른 잔기술에 능했고,
김동광은 다이내믹하고도 창의적인 드리블과 패스, 돌파로 유명했으며,
박수교는 변칙 스텝(유로 스텝)과 더블 클러치 레이업이 장기였죠.
김동광은 남녀 모두가 좋아했고, 박수교는 여성 팬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렇군요. 어머님이 농구를 엄청나게 좋아하셔서
예전 선수들에 대해 가끔 얘기해주시면 그렇게 신기할수가 없습니다.
김동광 감독님도 허재처럼 화려하게 했다고 그러셨구요 ㅎㅎ
다만 플레이를 볼수가 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박사님의 움짤을 보고 그나마 느낄수가 있었네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
Kobe Jeans 님 어머니와 한 번 만나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싶군요.
너무 부럽네요 ㅠ 저희 가족중에도 저 말고 농구 좋아하시는 분들 있음 너무 좋을거 같습니다.
조동우선수가 어느 손이 주력이였는지 궁금하네요 영상에서는 왼손으로만 포스트업을 하는 모습만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왼손잡이였는지 궁금합니다.
오른손잡이였습니다.
저 박수교 선수의 속공 전개와 피니쉬는 살 떨릴 정도네요. 박사님 시간 괜찮으실때 박수교 선수 스페셜도 한번 만들어 주심 안될까요?
노력해보겠습니다.
박사님만이 보여주실수 있는 자료네요.ㅎㄷㄷ 그나저나 토끼뜀.. 무릎에 많이 안좋은데;; 다른 훈련을 하셨다면 더 오래 하실수 있지 않았을지.
옛날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체력 훈련이 너무 부족했어서...
다들 그냥 무식(?)하게 열심히 뛰고 달리고 하는게 전부였죠.
어떻게 이런자료를 가지고 계실수가...그저 놀라고 갑니다..저도 소싯적 모아둔 비디오 테입이 몇개 있긴 하지만, 뭐.....급수가 틀리시군요.(원체 여농팬이기도 했구요)
그 와중에 이영근 선수 이름이 왜 갑자기 반가운지...기억만 가물가물 합니다.
오늘이나 내일, 성정아 스페셜 올리려고 했습니다.
저 경기에서 활약한 이영근 편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매우 기대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형님 박수교선수의 코스트 투가 확 눈에 띄네요 박수교선수가 공격형 가드면서 승부처에서의 강렬함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제가 정말 다시 보고 싶은게 85~86시즌의 중앙대와 현대인데요 박수교선수가 허재선수와 많이 매치업되지 않았었나요?
형님의 당시 백코트진에서 허재와 박수교의 매치업을 어떻게 관전하셨나요? 기억나시는대로 누가 우위를 점했나요?
85-86 시즌이면 박수교 선수가 30대 중반에 은퇴를 앞둔 시점이어서,
20대 초반의 팔팔한 허재와의 맞대결 결과가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당시의 박수교 매치업 상대는 박경영이나 강정수였습니다.
허재의 매치업 상대는 주로 이원우 선수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