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란
주황색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군자란꽃과 눈이 마주쳤다. “세상에나 이런 기적을 보여주고 있네.” 하면서 가까이서 눈을 맞추었다. 초록 잎사귀 사이로 노란 꽃술을 드러내면서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다. 3월 내내 날씨가 오락가락 바람과 비가 오가면서 군자란꽃을 키우고 있었다. 어제 보지 못했던 것을 오늘 보게 되는 일이 나에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눈에 띄지 않아서 못 본 지도 모르지만, 지금 기적처럼 나에게 온 군자란꽃에 바싹 다가앉아 코가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향기를 맡으려고 킁킁거리고 있다. 겨우 눈썹만 보이는 꽃망울이 잎사귀 사이에 숨어서 꽃대를 키우는 중이다.
3월 초에 기온이 올라가서 개화 시기가 2주 정도 앞당겨진다고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일찍 샴페인을 터트린 탓인지 영동할매가 내려온다는 음력 2월 내내 바람과 비가 내리고 기온도 예상보다 올라가지 않았다. 봄을 해산하는 진통이 만만하지 않다. 자연분만을 못 한 나로서는 진통의 고통을 감히 알 수 없지만 쉽게 봄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때가 되면 어느 아침에 꽃이 팡팡 터지면서 봄을 데리고 온다는 것을 안다.
논둑길에 올망졸망 모여서 꽃샘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글거리는 봄까치꽃처럼, 겨울이 보내는 작별 인사처럼 눈처럼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는 냉이처럼, 언덕빼기에 보랏빛 앉은뱅이 꽃으로 꽃자리를 만들고 살아가는 제비꽃처럼, ‘뼈에 사무치는 추위 한 번 겪지 않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 얻으리.’라는 글을 품고 연 저수지를 걸으며 새봄을 기다린다. - 2024년3월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