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살과 대승불교
초기 불교에서 보살(菩薩)은 석가모니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뜻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音寫)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이고,
갖가지 모습으로 보리를 구하며 중생을 구하는 전생의 부처님은 바로 대승불교의 핵심이 아닌가.
지금도 남방 상좌부 불교에서 보살이란 부처님 전생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북방의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란 부처님이 되기 전 모습으로 선행을 하는 모습이니..
우리도 부처님이 되려면 선행을 많이 해야 할 것이요, 그때 이름을 보살이라 하니 대승불자는 모두 보살이라 불려야 하듯..
일반명사로 바뀐다.
그리고 <금강경>을 보면 보살이 무엇을 하는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은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하니, 이른바
'세상에 있는 온갖 중생(衆生)을 내가 모두 제도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도록 제도하리라.' 하여
이렇게 한량없고 끝없는 중생을 제도했어도,
실제로는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이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일
어떤 보살이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라는 나(相)가 있으면 이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강경. 제3. 대승정종분 에서>
그 뿐 아니라 대승불교에서 보살에 대한 존경심은 점점 더 고양되어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과 같은 보살마하살은 부처님 급이 된다.
그것은 자연히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은 귀의 대상이 되어 "불보살님께 귀의합니다"가 되었다.
그럼에도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과 보살님께 귀의하는 것은 다른 점이 있으니..
전자의 목표는 지금 여기서 부처가 되는 것인 반면에,
후자는 지금 여기서는 보살마하살을 그냥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불자이기를 서원하니..
부처가 되려 앉아있는 수행자에서 불자가 아닌 법륜스님의 정토회처럼 사회에서 행동하는 불자이니..
그 모습은 기독교인의 실천과 비슷하다.
의문이 든다.
우리 불교 1800여 년은 처음부터 대승불교였는데.. 기독교와 같은 보살행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도 마찬가지..
불교가 들어온 삼국시대나 불교 전성시대였던 고려, 그리고 불교를 박해한 조선은 모두 절대 왕권국가였다.
절대 왕권이다 보니 겉으로는 만 백성 모두가 자기 자식과 같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중이 협력하거나 집회하는 것을 강제로 막았다.
그랬기에 참으로 민중을 위하는 보살 불교 운동을 벌이는 자의 행동이 그들이 보기엔 자기에 반대하는 역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하여 그들을 극형을 처했다.
역사를 보면 왕에게 도전하려는 세력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승려들이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민중을 위한 보살심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민중의 봉사단체로 된 것은 민주제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마찬가지로 20세기 한반도에 민중이 중심인 민주국가가 들어서기 전까지 진정한 보살행 모습은 개인적으로는 있지만
조직적이며 단체적인 활동은 거의 없다. 중국에는 마니교라 불리던 명교 활동이 있었다.
그 말은 민주제같은 국민이 주인인 국가일 때 보살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불교는
여전히 권력에 아부하거나 거리를 유지하며 보살행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구관이 명관이라며.. 지금과 같은 불교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세력이 보살불교 운동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직도 적극적으로 보살행을 추구하는 리더가 턱없이 적으며.. 기독교의 보살행에 많이 뒤처져 있어..
보살 불교로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1세기 보살행은 부처님을 마음에 새기며 사회, 정치, 경제, 교육 모든 분야에서 권력자가 아닌 민중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이 아닐 수 없다.
냉정히 말해 대승불교 운동은, 보살행은 부처님 보다 올바른 사회[정토]가 되는 것을 우선하는 불자 행동이다.
그 목적을 바르게 성취하기 위해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지만.. 부처님이 일차 목표가 아니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픕니다." 라고 말하듯
보살행은 중생을 위한 내가 되어야 한다.
보살행은 이기보다 이타가 우선한다.
보통 법당에 가면.. 중앙에 계신 부처님은 선정에 드시어 앉아 계시고, 좌우에 보살님은 서 계신다.
그와 같은 불상을 바라보며 귀의하는 우리 자세는 어떠해야 하나..
안으로는 부처님처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추고 밖으로는 보살님처럼 이타행 실천을 부지런히 해야만 한다.
남방불교 사원에 있는 부처님상은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 상이라 장담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그에 반해 북방불교 사원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상이 많지만.. 아미타 부처님을 비롯한 많은 부처님 상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우 보처는 문수보살님과 보현보살님이다.
문수보살님은 지혜의 상징으로, 보현보살님은 불법을 대하는 10대 원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우리 각자가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전하기 위해 실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미타 부처님의 좌우 보처는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이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상에서, 지장보살님은 우리 사후 세계가 되는 지옥 중생을 구제하고 계신다.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을 멘토로 여기는 불자라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까?.
'반야 지혜는 보시를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을 믿고 오직 보시를 열심히 행하면 된다.
왜냐면 <금강경>에 나오듯.. 우리는 기억 하지 못하지만.. 여러분들은 과거 생에 한두 번이 아닌 수많은 부처님께 공양을 드렸기 때문이다.
<법화경>을 보면 마주치는 이들을 향해 "당신은 부처님이 되실 겁니다." 라고 빠짐없이 축원하는 상불경 보살님의 통찰은
과거 생에서 수많은 부처님께 공양드린 공덕으로 생긴 지혜안이 있기 때문이었다.
주위를 보면 더 많은 이들이 불교가 옆에 있음에도 참 가치를 몰라 보고 스쳐 지나가고 있다.
그들을 위해 보살인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저는 당신을 경멸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처님이 되실 겁니다.()."라고
진정으로 생각하며
그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그 입장에 서서 해야 하지 않는가.
"왜 내가 그래야만 합니까?. 내 앞길 챙기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데!"
"당신 스스로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니 무지 속에 고통받고 있는 그들을 행복한 곳으로 이끌어 주셔야지요.^^()."
보살행에는
보시 : 상대에 도움이 되는 베품인 보시 보살행이 있고,
지계 : 선행으로 이끄는 지계 보살행이 있고,
인욕 : 쉽지 않은 일이기에 참고 나아가는 인욕 보살행이 있고,
정진 : 하루이틀하고 멈추는 게 아닌 항상 나아가는 정진 보살행이 있고,
선정 : 늘 마음에 부처님 마음을 일으키는 선정 보살행이 있고,
반야 : 지금 하는 행이 바로 지혜임을 헤아리는 반야 보살행이 있다.
절이란..
어린 보살, 젊은 보살, 노인 보살이 머무는 곳.
21세기는 보살이 주인공이 되어 활개를 치는 시대인데 동이 트려면 아직도 멀었는가..
아미타 부처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상불경보살.().
대불사라 하여 절에 돌이나 금속으로 커다란 부처님 상과 보살상을 조성하는데..
참 보살은 지금 여기서 살아 숨 쉬며 행동하는 그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