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찻길에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오늘도 안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장사익 노래
장사익은 ‘소리꾼’인가 가수인가?
무대(舞臺)에서 자신이 발표한 노래나 흘러간 트로트를 열창하는 대중음악인이지만 가수로 부르는 관중(觀衆)은 없다.
흔한 게 가수이지만 가요무대의 소리꾼은 한사람뿐이니 장사익의 노래는 더욱 슬프게 들리는 것일까?
구성지고 애절(哀絶)하기보다 순박(淳朴)한 목청으로 이어지는 노랫말과 소리의 선율(旋律)이 향수(鄕愁)와 한(恨)의 여운(餘韻)을 가슴 안으로 저밀게 하는 탓이다.
지금 그의 연륜(年輪)이 어디쯤에 이르렀는가?
하여 소리꾼의 얼굴에는 어느새 골이 패이고 흰머리가 덥히고 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 세워 울었지.
관중(觀衆)은 대부분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고단한 인생들녘을 헤쳐 온 세대(世帶)들로써 그들의 고향은 찔레꽃이 피는 남쪽나라일지 모른다.
장사익은 어느 공연을 보아도 충청도 억양(抑揚)의 사투리로 수줍게 인사말을 하고 노래가 시작되면 익숙하게 공손(恭遜)한 자세로 몸을 낮추었다가 펴는 동작을 반복한다.
몸짓이 그토록 단조롭지만 온몸으로 소리를 토해내는 장사익의 열창은 밤에 우는 두견새의 피울음 같이 깊고 넓게 울린다.
그는 아주 평범한 서민(庶民)의 인상으로 장터에서 마주치는 포목(布木)장수와 같고 농사일을 거들다 막 지게다리를 바치고 난 그 옛날 내가 살던 이웃의 아저씨와도 같지만 지금은 서울 도심(都心)의 가장 크고 화려한 홀을 가득 채운 객석(客席)을 해마다 감동(感動)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사람이다.
미국과 러시아, 중동과 일본 등을 돌며 공연을 할 때 동포들은 장사익의 노래를 듣고 쌓인 향수병을 풀면서 두고 온 고향산천과 사람이 그리워서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장사익의 그 신비(神秘)한 매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는 어쩌다 소리꾼이 되어 사람들을 노래로 그토록 슬프게 만드는 것일까?
듣는 이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혼(魂)의 소리’로 유명한 장사익이 ‘돌아가는 삼각지’ ‘달맞이 꽃’ ‘눈동자’ ‘봄날은 간다’ 등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여러 곡의 대중음악(大衆音樂)을 특유(特有)의 구성지고 걸쭉한 목소리로 풀어내는 모습은 40대중반이후의 사람들의 마음속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노래는 판소리꾼 같기도 하며 트로트 가수와도 같지만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부르면 그만의 독특(獨特)한 노래가 된다.
그가 소리꾼이라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들었던 농악(農樂)소리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다.
“엄니가 돌아가셨을 때 상주인 지가 ‘비 내리는 고모령’을 선물로 불러 드렸시유. 경제학자이자 언론인인 정운영 선생의 영결식에서는 ‘봄날은 간다’를 불렀고, 신영복 선생 출판기념회에서는 ‘동백아가씨’를 불렀시유.
작가 이청준 선생 장례식에서는 미당의 시에 곡을 붙인 ‘황혼길’을 불러 드렸지유. 원래 장례는 돈만 내고 공허한 대화만 나누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한바탕 푸지게 놀다 가는 것이지유.”
늘 웃는 얼굴로 천하태평(天下泰平)인 사람만 같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역정(人生歷程)은 결코 간단치 않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 농가의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시골 생활을 견디다 못해 상경(上京)하여 25년 동안 열대여섯 개 직장을 전전했다.
“왜 그렇게 직장을 전전하였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가 원래 참을성이 없시유.
학벌도 능력도 없구.
술 담배도 못 해유.
근데 꿈은 많아 유.
지 이름이 생각 사(思)에 날개 익(翼)이니 생각이 날아다니지 않겄시유.”
그의 노래는 가수의 제도권 안에 있지 않으면서 제도권을 압도(壓倒)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조용필을 국민가수로 호칭(呼稱)한다면 그는 토종가객(歌客) 이라고 불러야 옳지 않을까?
자신의 음악적(音樂的) 미래(未來)를 낙관(樂觀)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 지는 아흔까지 노래를 부르겄시유.
지금은 힘과 테크닉으로 노래를 부르지만 그때는 저만의 ‘노인네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생각만 해도 즐겁구먼 유.”
우리민족의 영원한 혼(魂)을 간직한 목소리를 이 세상 어디에서 또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노래를 또 잊으랴.
*대전 부르스 *
잘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세상은 잠이들어 고요한 이 밤나만이 소리치며 올줄이야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우는 눈물의 플렛트홈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눈물로 헤어지는 쓰린 심정아- 보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첫댓글 뉴 라이트 회원님이 종종 올라오시네 ㅋㅋㅋ 명박이 물러나모 다시 변절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