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문지아
상심의 위력 외
그 시절 나
물음이 되고 싶었지
부엌에 누구 있니?
발음을 낳으려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입술
나직하게 반복되는 이어웜
낭떠러지 같은 미래 구간을 예견하며
서로의 구원이 된 다음 생각해 보자던
약속을 남발하는 손가락
지문 희미해지고
하늘을 등지고 눈을 감아버린 채
수직으로 투신하는 새의 흔적도 가물가물
눈물은 집이 없어서 흘러
나약한 의지 마냥 접힌 빈 박스가
죄 없는 사람들로부터 회수되는 거리엔
벗어버린 각자의 표정들만이 시간으로 두터워진다
우리 처음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내일이 통채로 삭제될 거라고
미래는 없다 예고해서
오늘만 늘리는 중인데
지금 비로소 시작된 비극 속으로
온전히 걸어갈 수 있을까
찰나가 늙는다
이어서
다시
우리는
사라지고 있었다
멀어지고 지워지며
감기 같은 투명으로만
서로의 마음 안에서 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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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 town
-루시퍼와 함께
하염없이 걸어가면 당신에게 들킬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없는 눈금의 온기 당신
떨어진 꽃잎들을 짓밟으며 걸어가면
영원에 도달했으면 좋겠어
더 세상을 공부했다면
표현을 예습했다면
우리 적절한 표정을 입고
사랑을 얘기할 수 있었을까
밤이 오고야 말듯이
흐를 것은 흐르고 말지
설익은 감정도 농염해진 오해도 통곡마저도
수백 개의 문장들은 마침표를 달고 공중에서 분해되고 말지
피가 모자라 아득해지며 자꾸 떨리어 감기는 눈꺼풀
어둠을 탕진한 밤이 후퇴하며
상서로움이 침체되고 있던
그곳에서
서로의 라비린스를 한참 헤매다
추억은 침수되고 지향들이 익사한다
이제 간결한 낯설음으로 기억되어질
11월 몇시, 43초에
그곳을 버리며
관계를 감당하던 질량들 더 흔들리기 전
어서 우리, 여권 들고 이 궤도에서 도망치지 않을래
더 껴안을 수 없는 간격은 포기하고
밤은 우리를 증명할 수 없지만
안락이 더워질 때까지
세상에 우리가 안 들릴 때까지 멀리 사라져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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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아|2023년 《시사사》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