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기도로 시작하고 마무리해야 합니다! (행13:1-3)
* 비전의 사람은 동역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13:1)
비전의 사람은 무엇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까? 함께 동역하는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동역을 통해 비전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 역시 효과적으로 세워갈 수 있고요.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꺼리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까? 동역하는 일입니다. 물론 동역을 하려다보면 응당 무엇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까? 여러 가지 오해나 의견의 충돌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우리는 각기 서로 다른 가치관이나 인생관 등을 가지고 여태껏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역으로 인한 손해보다는 유익이 훨씬 크다는 점에는 모두가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조금씩만 더 맞춰보고 조율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이 과정을 통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4:9)
물론 어떤 분들은 ‘나는 혼자서 일하는 게 편해!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함이 없을 거야.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은 도무지 내 적성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동역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이 같은 생각들은 다시는 하지 않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혼자서 일하고 있습니까? 동역의 길을 함께 모색함으로써 이를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비전의 사람 사울(바울)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무슨 근거로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그와 바나바 외에도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등의 여러 동역자들이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13:1) 이들은 각각 선지자와 교사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안디옥 교회를 함께 섬겼던 것입니다.
시므온과 루기오, 마나엔 등은 추측컨대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이거나,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행11:20) 바나바처럼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파송 받은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행11:22)
참고로, 본 절을 통해 무엇을 더 알 수 있습니까? 선지자와 교사가 초대 교회 당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두 직책이었다는 점과 당시의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일 외에도(행11:27,28)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목회적인 일도 감당했었다는 점입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행11:27,28)
아울러 신약시대의 선지자들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는 달리 단순히 영감이 뛰어난 자들로서 교회 내 어떤 특별한 사건을 예고하거나 혹은 성경을 해석해주는 사역을 담당하는 정도에 그쳤으며, 이후 교회 시대에 이르러서는 설교자로 대체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비전의 사람들은 혼자 가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을 항상 선택하며, 이와 같은 동역을 통해 효과적으로 공동체를 세워나갔다는 점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1절)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동역의 의미나 맛을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동역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한두 사람에게 미루지 말고 리더는 리더의 자리에서, 우리도 우리의 자리에서 함께 공동체를 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