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엘 공원(Park Güell)
「구엘 공원」이 들어 설 뺄라다 산은 해발 120–150미터에 달하는 험악한 지형으로, 도무지 공원이 들어설 자리로는 적합하게 보이지 않았다. 가우디는 건축의뢰가 들어오면 언제나 직접 부지를 찾아 주변의 환경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자연을 닮은 건축물을 창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가우디는 부지가 가진 풍부한 자연미를 보존하기 위해 초목을 잘라내지 않은 채 산을 오를 수 있도록 구불거리는 길을 내리라 마음먹었다. 공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던 부지는 이제 지상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탄생하고 있었다.
특히 「구엘 공원」의 구불거리는 길은 영국식 정원이 가지고 있는 픽처레스크(picturesque)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여 카탈루냐식인 '공원(parc)'이 아닌 영어식 '공원(park)'으로 표기 되었다고 전해진다. 「구엘 공원」에 들어서면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느낌을 받는다. 직선은 찾아볼 수 없고 온통 구불거리는데다가 동화책에서나 나옴직한 형상들이 특이한 껍질로 싸여 있기 때문이다. 기본 장식에 덧붙은 카탈루냐 전통의 '트렌카디스 장식'은 가우디의 건축언어를 보다 더 풍부하게 만든 장본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카탈루냐의 미장공들이 개발한 물고기 비늘 같은 이 타일장식은 그 기법과 형태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를 표현하기 위해 가우디가 취했던 행동들이다.
가우디는 인부들에게 출근하는 길에 깨진 타일 조각이 있으면 주워오라고 지시하거나, 아주 조심스럽게 배달된 베네치아 타일을 받자마자 산산조각을 내버려 운송업자들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다양한 색의 깨진 타일들은 온통 「구엘 공원」을 덮고 있다. 특히 공원의 대 계단은 1984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독특한 것으로, 활기찬 조형감과 함께 타일 조각의 화려한 색채를 자랑한다. 계단은 두 갈개로 나눠지다가 각각 또 다른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형태적으로나 장식적으로 바로크적이라고 평가될 만큼 다이내믹한 구성을 하고 있다. 계단 양쪽의 둥근 벽 표면은 짙은 색과 옅은 색을 번갈아 배치한 타일 조각들로 덮여있다.
일단 모자이크를 구성할 디자인이 결정되면 가우디는 표면작업을 미장공에게 지시하는데, 이러한 타일 조각의 작업은 미장공에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우디는 작업하는 인부들 곁에 앉아 타일이 붙을 자리를 일일이 지시했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까지 붙였던 모든 타일들을 떼어내어 처음부터 다시 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아름다운 길이 완성된 것이다. 다양한 색채의 타일 조각들은 구불거리는 벤치에도 이어져 있는데, 벤치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져 쉬고 있는 아름다운 비늘로 덮인 용처럼 보인다. 이처럼 가우디의 장식은 형태도 색채도 마치 자연이 빚어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장식에는 색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중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식물이나 지형이나 지세나 동물의 세계에도 항상 색감의 대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건축물에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색을 가미해야 한다.
가우디는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이 가지고 있는 장식과 색채가 자신의 건축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시인한다. 그리스 신전은 형태만으로도 장엄함과 통일성을 달성하지만, 그것에 사용된 색채로 인하여 형태는 더욱 명확해졌다고 본 것이다. 가우디는 색이란 형태를 분명하게 하고 생기 있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여겼고, 단색은 무미건조한 것으로, 실력이 없는 건축가의 '은폐수단'이라고 생각하였다.
대 계단에 있는 3개의 분수는 「구엘 공원」을 더욱더 활기차게 만들고 있다. 지상에 떨어진 빗물이 모이면 세라믹 재질로 된 용의 입으로 토하듯이 나오게 되는데, 이 역시 아폴로 신에 의해 죽임을 당해 매장된 용이 땅속에서 물을 지키고 있다는 그리스 신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용의 형태는 반짝거리는 색색의 타일 조각들과 태양 빛을 쏟아내는 물줄기로 인해 더욱더 생생하게 보인다. 「구엘 공원」 정문에 있는 봉사관과 경비실 또한 돌로 된 벽과 함께 잘게 부순 무지개 빛의 모자이크 타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반짝거리는 거대한 버섯처럼 보인다. 이는 잘게 부서진 세라믹 파편들이 둥근 지붕 위에서 햇빛을 굴절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엘 공원」의 모든 것은 낮에는 햇빛에 빛나고 밤에는 달빛에 반짝거리며 바르셀로나의 많은 연인들을 유혹한다.
가우디는 「구엘 공원」이 좋았다. 그래서 아버지와 죽은 누이의 딸과 함께 이곳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가우디는 「구엘 공원」을 신을 위해 만든 지상의 천국이라 생각했고, 그런 자신의 작품 속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가장 사랑한 아버지와 신을 느낄 수 있는 곳. 하지만 그곳에서 가우디는 아버지마저 하나님의 품으로 보내야 했다. 건축가의 재능을 물려주었고 자식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버렸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잃자 가우디는 더욱더 말이 없어졌고, 오직 일에만 파묻혀 지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