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마음에 여름의 씨를 심고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이꽃님/문학동네’를 읽고-
숭의 중학교
서영빈
내 작년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다양한 맛이 난다. 예를 들면 친구들과 생일에 함께 논 고소한 맛, 가족들과 함께 야구장이나 여행을 간 달콤한 맛, 가끔은 의견이 맞지 않아 친구들이나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던 맵고 쓴 맛이 느껴졌다. 또한, 여러 걱정과 그때의 고통은 전부 사라진 듯이 내 기억 속 작년 여름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맑아졌다. 추억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던 아픔보다 하늘을 뛰어놀던 행복의 무게가 더 컸다. 이번에는 나의 여름이 아니라 두 아이가 그리워하는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어본다.
첫입부터 심상치 않은 맛이 느껴진다. 짜증 나는 맛. 지오는 떨어져 살았던 친아버지가 있는 정주로 간 것도, 정주 유도부에도 실망한다. 그 속에서 매운맛도 느껴진다. 어렸던 엄마를 두고 떠난 매몰찬 아빠에 대한 분노가 페이지를 넘기면서 느껴진다. 하지만 금세 여름은 쓰고 단 맛으로 바뀐다. 바로 지오가 유찬을 만나면서부터이다. 심해에 가라앉아있던 분위기는 하늘로 올라간다. 유찬의 이어폰을 밟아 당황스러운 지오의 쓴맛 근처에 유찬에게는 지오가 마치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튼 느낌이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유찬은 마음이 들리지 않는 아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유찬은 지오와 있을 때만큼은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어야 하는 두려움에서 해방된다.
깊숙한 씨가 박혀있는 쪽의 여름을 물었더니 유찬의 짠한 과거가 나온다. 이상하게도 수박은 씨가 박혀있는 부분이 달달한데 과거는 달랐다. 과거 위에 얹힌 달달하고 행복했던 기억은 씨가 있는 쪽으로 갈수록 보고 싶지 않던 이야기들로 바뀐다. 화재로 부모님을 잃은 유찬은 그 고통으로 타인의 속마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유찬은 하늘이 무너졌지만 마을 사람들은 새별이를 보호하기 위해 그 일을 덮었다. 새별은 지오의 유도부 선배로 재능이 있고 착하다. 상준 선배에게 당하다가 코치님 앞에서 정당한 경기로 통쾌하고 시원하게 이겼다. 그런데 이제 떫은 맛이 난다. 새별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셔 가난한 상태에서 동생들을 보살피려고 힘들었다. 마을의 모범생인 새별이가 빈 밭에서 추위를 떨쳐내려고 불을 피우다가 남은 불씨가 유찬의 집에 붙은 것이었다. 새별이도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유찬의 마음에는 의도적 살인은 아니지만 사고라도 그 죗값은 치러야 하는데 새별이 형과 그 사건을 덮어준 마을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그럴 수밖에. 이해한다.
이제 그만 여름의 씨를 뱉어야 할 차례이다. 씨 속에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유찬의 복수심과 아빠를 미워하고 정주 사람들을 의심하는 지오의 마음이 있다. 자식을 위해 복어는 독을 품고, 은행은 독한 냄새를 풍긴다. 그렇다면 여름의 씨는 어떤가. 자손을 퍼트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름의 씨는 사실 보기 싫거나 마음에 비가 오다가 갑자기 맑아지도록 하는 것 같이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여름의 씨를 버릴 수도 없다. 씨는 버리는 게 아니라 심는 것이다. 잘 보이지도 않는 마음에 심어야 한다. 그 씨가 무럭무럭 자라 나무나 꽃이 된다면 그제야 그 존재가 드러난다. 어린 새싹이 겪는 고통과 다 큰 나무가 겪는 고통은 비교할 수 없다. 씨가 꽃을 피워 자신의 존재를 알려도 뿌리와 꽃은 다를 것이다. 상처로 떠올리기 아픈 기억이라도 끝내는 ‘이 또한 지나가서’ 굳은 살과 옹이가 되더라도 끝내는 나무의 키를 밀어 올릴 것이다.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도 있다. 유찬과 지오가 여름의 씨를 뱉어내도 버리지 않고 심어 보기를 바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속마음이 들린다는 것은 어떨까. 유찬은 속마음 때문에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되었으니 불행이다. 또 유찬처럼 생각한다면 속마음을 아는 것은 인생을 즐겁게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신처럼 모든 진실을 아는 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두려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 가면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얼굴이다. 그런데 그 가면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즐겁지 않다. 하지만 나는 속마음이 알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난 사람들에게 무슨 존재일지 궁금하다. 가끔 속마음들이 거대한 창이 되어 방패 없는 나를 찌를 것이지만 나의 궁금증은 나에게 고통은 허락하고 모든 걸 삼켜 버렸다. 남의 속마음을 아는 것은 또한 내 마음은 결코 하얀 백지같이 평안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다에 파도가 치면 잔잔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난 그 파도를 올라타 꼭 서핑할 것이다.
정말 새별이의 말처럼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을 때 못 느낀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 곁을 떠나면서 만들어진 여백은 너무 크다. 산에 나무 한 그루도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산이라면 무조건 나무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무를 소중히 여기지는 않는다. 산에 나무 한 그루라도 없으면 사람들은 그제야 나무도 소중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특히 가족일수록 심하다. 가끔은 귀찮고 밉기도 하지만 막상 떨어지게 된다면 걱정되고 불안하다. 그게 바로 새별이와 유찬이 지닌 마음이다. 반면 지오는 뒤에서 노력해준 아빠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지오가 꼭 소중함을 느끼면 좋겠다.
‘누구를 지키는 데 자격 같은 게 어딨노.’라는 말이 내 가슴에 울린다. 지오가 엄마를 지키려고 배운 유도는 도구적인 가치였고 엄마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가치였다. 만약 내가 죽어서라도 그 사람을 지키고 싶으면, 남을 위해 희생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인지가 더 중요하다. 마음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무엇을 마음먹든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그러니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내 여름은 앞으로 과거는 잊되 저버린 꽃만 딸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를 좇아갈 수 없다. 아무리 원수라고 해도 잊어줘야 할 때도 있다. 단 그 과거가 아직도 현재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래에 그럴 수 있는지도 고려를 해줘야 한다. 이미 꽃이 피어 열매가 된 것은 따면 안 된다. 그 열매가 자존심을 높여줄 수 있지만, 자만심과 거만함을 부추길 것이다. 만약 다시 꽃망울이 생겨도 다시 처음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항상 사람들은 아름답게 활짝 핀 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그 꽃을 피우는 데 걸린 노력과 시간은 계산하지도 않는다. 단지 결과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저버린 꽃도 아름답다. 진 꽃은 성공하지 못했거나 후회되는 것이다. 진 꽃은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을 다 한 사람이다. 피우기 위해 노력했고, 피었고, 졌으면 그것으로 훌륭하다. 꽃은 나무에 따라 다르고, 그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지 그 꽃이 지닌 가치는 같다. 이번 여름도 그리우면 좋겠다. 기억 속에서 베어 물면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빛나는 여름이기를 바란다. 모두가 무더위를 잘 견디기를 바란다. 자신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