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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횡단 여행기/靑石 전성훈
발길을 따라 길은 좌우로 혹은 위아래로 갈라진다. 어디를 가든지 가다 보면, 길은 돌고 돌아 만나기 마련이다. 나그네가 걷는 길은 기쁨과 환희의 길이기도 하지만, 쓰라린 마음의 상처에 위로를 받는 치유의 여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길과 땅도 있다. 지구라는 별에서 유일하게 남북으로 갈라진 비극의 땅, 산새는 구름 따라 마음대로 훨훨 날고 바람을 쫓아서 철조망을 넘나들지만, 사람은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곳이 금단의 땅이다. 언제나 저 북쪽으로 갈 수 있을지, 꿈꾸며 기다린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조상의 혼이 서려 있는 북쪽 고향 땅을 밟고 싶은 소망과는 달리, 남북을 연결하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일부 철도 구간을 폭파해 버린 북한 정권의 무자비한 광란의 짓거리를 보니, 내 생애에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게 더욱더 분명하다. 꿈을 이룰 수 없다면 현실을 인정해야지 어찌하겠는가? 꿩 대신 닭이라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나마 음식을 씹을 수밖에 없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북쪽 하늘 대신에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남쪽을 향해, 육순을 맞이하며 용띠 동갑끼리 우리 강산 순례를 시작한 게 10년이 훌쩍 넘는다. 그사이에 몇몇 친구가 하늘로 떠나고 없다. 나이를 생각하니, 어쩌면 이번이 함께하는 여행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 봄꽃이 만발한 5월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떠난다. 서쪽 경기도 파주에서 동해 강원도 속초까지 국토를 횡단하는 여정이다.
첫째 날, 만나기로 한 염창역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는 마음에 오전 6시 반 창동에서 지하철 대신에 택시를 탄다. 그러나 출근길과 겹쳐 정체가 심하여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보다 20분 정도 늦었고, 교통비도 3만 원이 넘는다. 출근하는 인생이 아니기에 아침 출근길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친구를 만나 그의 자동차에 오르니, 친구 부인이 마련해준 샌드위치와 찐 밤을 먹으라고 건네준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여행 출발점인 파주를 휘감고 흐르는 임진강에는 바람이 차갑다. 끊어진 철길에는 포격을 맞아 앙상하게 녹슨 철마가 외롭게 서 있다. 임진각 망배단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중국인 관광객들이 인솔자의 손짓에 따라 북적거리며 움직인다. 차가운 가을바람을 맞으며 북녘땅을 바라보니 찹찹한 기분이 든다. 현실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헛된 꿈속의 설익은 이상에 불타는 평화의 노래는 우리의 국토와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임진각을 떠나서 아득히 먼 옛날 선조들의 격전지인 호로고루로 향한다. 1500여 년 전 고구려와 백제의 격전지인 호로고루 성터, 고량포구 임진강은 무심한 듯 말없이 흐른다. 젊음의 9월을 노래하던 해바라기 축제 구경꾼은 어디에 있는지 차디찬 강바람 속에 보이지 않는다. 꽃잎이 떨어진 해바라기 군락지에는 가냘픈 꽃대만 훗날을 기약하며 강바람을 온전히 맞고 있다. 호로고루 성터 부근에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왕릉이 있다. 망국의 임금은 처참한 꼴을 당하기 마련이지만, 경순왕은 나라를 고려 왕건에게 바치고 왕건의 사위가 되어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다가, 죽어서 고향인 경주에 묻히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이곳에 안식터를 잡은 것이리라. 경순왕의 비애를 느끼며 감악산 출렁다리를 찾아간다. 올라가는 계단이 상당히 가파르다.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없다. 숨을 헐떡거리며 몇 번이나 쉬었다가 다시 오르고 오른다. 감악산 출렁다리는 파주 마장호수 출렁다리보다 심하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 몰랐던 걷기 편한 코스로 내려와서 커피숍에서 차 한잔 나눈다. 감악산에서 연천 재인폭포로 가는 도로 양쪽은 깊어가는 가을을 맞이하는 듯이 평화로운 모습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는 겨울철 가축 양식으로 사용하는 ‘곤포 사일리지’가 이곳저곳에 널려있다. 콩밭에는 누렇게 익은 콩이 주인을 기다린다. 길 한쪽에는 코스모스가 가득히 활짝 피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떤 곳에는 노란 해바라기꽃이 다 떨어지고 쓸쓸한 잔재만 가득하다. 어두운 하늘에 햇볕이 들어 밝아지는데 바람은 여전히 차갑게 분다.
철원 삼부연폭포는 여러 번 갔지만, 재인폭포는 초행이다. 재인폭포로 들어가는 둘레길 주변에는 처음 보는 노란색 ‘황화(黃花)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 연인 모습이 꽃처럼 아름답다. 슬픈 재인폭포의 전설 이야기, “폭포 인근에 줄을 타는 금실 좋은 재인(才人)부부가 살았는데, 새로 부임한 사또가 재인 부인에게 흑심을 품고, 재인에게 폭포 위에서 줄을 타라고 명령하였다. 재인이 줄을 타자 사또는 몰래 줄을 끊으라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재인은 폭포로 떨어져 죽었다. 그런 다음에 사또가 재인 부인에게 수청을 들게 하자, 재인 부인이 사또의 코를 물은 다음에 자살하였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그 폭포를 재인폭포라고 부르고, 동네 이름을 코문리로 불렀고 현재는 고문리로 부른다”고 한다. 아름다운 재인폭포 주위를 둘러보고,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군남댐 부근 매운탕 집으로 향한다. 메기 매운탕 집에는 기쁜 우리 날의 축제를 즐기는 늙은이들 웃음소리가 흘러넘친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연천 댑싸리공원을 찾아간다. 댑싸리는 싸리 가지를 묶어 만든 빗자루 싸리비와 닮은 한해살이풀로, 싸리비 대용으로 사용한다는 뜻으로 댑(대용)싸리로 불린다고 한다. 처음 보는 댑싸리가 신기하여 손으로 만져보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빨강색 우산을 쓰고 보라색 댑싸리 군락 앞에서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 함께한 친구들이 우스워 죽겠다고 난리를 친다. 댑싸리공원을 빠져나와 끝없는 철원평야를 달린다. 평야에는 수많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진다. 철원읍으로 들어가 6.25의 참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뼈대만 앙상한 노동당사를 보고, 고석정으로 향한다. 고석정 꽃축제는 구경했지만, 고석정까지 보기는 처음이다. 고석정은 한탄강 중류에 있는 정자와 그 주변 지역을 말한다. 철원 9경의 하나인 고석정에는 신라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이곳에 머무르기도 했다고 한다. 살기 힘든 그 옛날에 전설의 태권브이 용사처럼 불쑥 튀어나와 원한과 원망에 쌓인 무지렁이 백성의 한을 풀어준 임꺽정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날씨가 쌀쌀해진다. 고석정을 나와 삼부연폭포 가는 길목의 모텔을 찾아간다. 오래되어 낡고 허접한 숙소에 짐을 풀고 신철원 번화가를 찾아가, 돼지갈비에 소주를 곁들인다. 오늘의 여정은 그야말로 강행군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한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이런 것 같다.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린다. 어두움 속에 깊어가는 가을을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근처 성당에서는 저녁 미사만 있다. 성당이라도 보려고 찾아간 갈말성당 성모상 앞에서 주모경을 바친다. 이어서 김화성당을 찾아가니, 마침 성전 문이 열려있기에 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도를 드린다. 근처 정육점 및 식당을 겸하는 곳에서 뜨거운 곰탕으로 아침을 먹는다. 음식값을 계산하려고 카드를 냈더니 이른 시간이라서 카드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아침을 배불리 먹고 평화의 댐을 찾아간다. 철원군과 화천군의 경계선인 한 많은 수피령고개(해발780m)을 넘어가는데 자동차도 숨이 차는지 힘들어한다. 계곡 양편에는 단풍이 곱게 곱게 물들어 보기에 너무 예쁘다. 군대 시절 근무했던 곳이 근처이므로 수피령고개를 넘으면서 감회가 새롭다. 당시 공병부대 트럭에는 살벌한 구호가 쓰여 있었다. “앉아, 서면 죽어” 비포장 고개로 경사가 심하여 자동차 전복 사고가 잘 나던 곳이라서 이토록 무시무시한 구호를 적어 놓았던 것 같다. 고개를 넘자 눈에 익숙한 지명이 보인다. 사창리, 다목리, 삼거리, 마현리, 파포리를 지나서 화천 수력발전소 부근의 화천 역사박물관에 들러 사진을 찍는다. 거의 50년 만에 다시 찾은 곳이다. 화천에서 양구 평화의 댐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심하다. 빗길에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는 굽이굽이 급경사를 돌아간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지고 속이 매스꺼워 토할 것 같아 자동차 창문을 열어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다. 평화의 댐에 도착하여 친구들에게 어지럽다고 하자, 친구들도 그렇다고 한다. 어지러운 탓에 댐 구경을 하는 듯 마는 듯하고 양구로 넘어간다. 양구 방향의 산길은 경사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양구읍에서 국토 정중앙 양구라는 입간판을 바라보고 선사박물관을 둘러본다. 비가 조금 더 많이 쏟아진다. 비를 흠뻑 먹은 붉은 단풍의 모습이 불타오르는 듯이 화려하다. 파라호 전망대를 찾아가니 물안개가 심하게 끼여서 좋은 경치를 찍기가 곤란하다. 늦은 점심으로 막국수를 먹으려고 했지만, 장사가 안되어 음식점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몇 군데나 있다. 양구를 벗어나 인제로 넘어가 만해 한용운 박물관을 찾는다. 박물관에 사람은 없는데도 큰 스님의 기개가 세상을 덮을 듯하다. 작은 연못에는 잉어가 세상 걱정을 잊어버리고 한가롭게 논다. 비가 세차게 퍼부어 몸속으로 찬 기운이 스며든다. 가을비 속의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단풍을 바라보니,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지나간 그 시절의 아련한 사연만 스멀스멀 떠오른다. 속초로 향하며 막국수 집을 찾아보니, 역시나 헛일이다. 이 계절에 막국수를 찾는 게 음식의 제철을 모르는 짓인가 보다. 본의 아니게 점심을 거르고, 속초 중앙시장 지하 횟집에서 주인이 권하는 도미와 떡곰 생선회를 주문하고 빈속에 소주부터 털어 넣는다. 횟집 주인이 먹으려고 남겨두었다는 ‘무늬오징어’를 서비스로 준다. 처음 맛보는데 존득존득하니, 갑오징어보다 식감이 좋다. 떡곰회는 고기 씹는 맛이 난다. 매운탕에 밥을 말아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먹는다. 손으로 떼어 넣은 수제비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많이 먹으라며 소주를 따라준다. 배부르게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인 리조트에 도착하여 샤워하고 나니, 피곤한 탓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셋째 날, 아침에 일어나 리조트 사우나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목욕하니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 음식솜씨가 좋은 친구가 어제저녁에 사 두었던 곰치로 김치 곰치국을 맛있게 끓여 환호성이다. 식당에서 먹을 때는 곰치가 별로 없는데 직접 끓인 곰치국은 내장과 알과 입에 들어가면 그대로 녹아버리는 야들야들한 살이 푸짐하다. 비 오듯 땀을 흘려 겉옷을 벗고 내의 차림에 정신없이 먹는다. 정성을 다해 맛있게 요리해 준 친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이런저런 아침 약을 먹기에 곰치국에 소주 한잔 곁들이지 못하여 못내 서운하다. 짐을 챙기고 숙소를 떠나 교동성당을 찾아가 미사에 참례한다. 무지개가 뜬 아름다운 울산바위를 보면서 사진을 찍고 오대산 월정사로 향한다. 월정사는 처음이다. 오대산 단풍을 보러 온 관광객이 무척 많다. 잠시 숲길을 걸으면서 맑고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도는 용 모습을 닮은 구름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른다. 월정사 개천에는 어제 종일 비가 온 탓인지 콸콸 우렁찬 소리를 내며 많은 물이 거침없이 흐른다. 오대산 월정사를 뒤로하고 평창군 봉평면 이효석 문학관을 찾아간다. 문학관 부근 음식점에서 그토록 맛보고 싶었던 본고장 메밀 막걸리에 감자전과 메밀국수를 안주로 맛있게 먹는다.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으뜸으로 여기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선생의 복원한 생가와 생활하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갑다. 교교히 흐르는 달빛 아래 물방앗간에서 사람은 무슨 생각에 빠질까? 달멍일까 물멍일까? 청아한 목소리로 옛글을 읽으며 달빛을 감상할지 혹은 달빛 아래 남몰래 만나 손을 마주 잡은 젊은 남녀가 눈길을 맞추며 끓어오르는 야생마의 꿈을 꾸는지? 봉평에서 대화로 넘어가는 늦은 밤 산길에는 발정한 나귀 울음소리만 들리는 게 아닐 텐데, 밝은 듯 어두운 듯 은은히 퍼지는 달빛 아래서 눈같이 하얀 메밀꽃 향기에 취한 채, 조선달과 동이가 걸어갔던 그 길을 나도 한 번쯤 걷고 싶다.
평창을 떠나 집을 향하여 길을 달린다. 2박 3일간의 짧지만 긴 여정이다. 무사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신 하느님 은총에 감사를 드린다. 피곤한데도 3일 동안 운전을 해 준 친구의 노고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끝없이 농담하며 세상 이야기를 풀어놓은 친구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속초 중앙시장에서 곰치를 사다가, 맛있게 끓여 준 일급 요리사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며 언제 일지 모를 다음 여정을 기약해 본다. (2024년 11월)